터키 정부 압력으로 아르메니아인 학살 인정 철회한 미의회… “우리의 상처를 어쩔 것이냐”
지난 10월 초 미국의회 국제관계위원회는 ‘아르메니아대학살’을 인정하는 안을 24 대 11이라는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지난 19일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빌 클린턴 대통령과 13명의 전임각료, 군사지휘관들의 거부로 안건은 도중에 철회되고 말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하원의장에 보낸 편지에서 “이번에 이 안건을 통과시키면 미국에 엄청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염려된다. 세계의 분쟁지역인 이곳은 동·중앙아시아에서 제기된 위협, 발칸국가들의 안정, 새로운 에너지 원천의 개발 등 중요한 이해가 걸려 있다”라며 아르메니아대학살건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하원의장인 데니스 하스터트는 “대통령의 의견과 중동 지역 미국민들의 생명의 안전”을 이유로 하원에 이 안건을 상정하는 것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아르메니아대학살건이 미의회 국제관계위원회를 통과한 직후 미국은 터키로부터 협박을 받아왔다. 터키 정부는 만약 이 안건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현재 북부 이라크의 무비행대(no fly zone)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사용하고 있는 터키 남부의 인질리크 공군기지를 되돌려 받을 것이라고 발표해 워싱턴에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터키 동력원장관 에르주메르는 터키주재 미국대사를 불러 경우에 따라서는 11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회사들과의 37건의 에너지계약들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인들의 터키방문을 막기 위해 비자발급을 취소하는 한편, 아르메니아로 드나드는 모든 선박들의 터키영해통과를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4월24일, 그들이 모이는 이유
이에 대해 미하원 프랑크 팔론 의원(미국 아르메니아회의 공동의장)은 공식적으로 미하원의장에게 전달한 편지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 미국이 터키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하며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간섭받는다는 것이 수치스럽다. 이는 터키가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를 협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매년 4월24일 전세계에 흩어진 아르메니아인들과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이날을 추모한다. 85년 전 이날 오토만제국에 거주하던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235명의 아르메니아 지식인들을 처형함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오토만제국이 ‘젊은터키단’의 쿠데타로 붕괴하면서 민족주의가 전면에 등장했다. 타민족에 대한 추방정책이 시작되면서 구조적인 학살이 구오토만제국 전역에서 자행된다. 당시 500만명의 기독교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학살되든지 추방돼 현재는 15만명의 기독교인들만 터키에 남아 있는 상태다. 이 중 200만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의 동쪽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구조적인 민족말살정책으로 수십만이 학살되고 수십만이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되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갔다. 1차대전이 끝난 뒤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침략했을 때도 그곳에 피난해 있던 수십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다시 학살했다. 당시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구조적인 학살을 비난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수단도 동원하지 않았다. 아테네에 살고 있는 아고프 쿠연장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한스러운 기억을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많은 아르메니아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삼촌은 당시 동부 터키 카르페르트의 부유한 상인이었다. 터키 군인들의 무차별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그곳까지 오리란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미처 피난도 떠나기 전에 이들이 들이닥쳤다는 소문이 들렸다. 삼촌은 자신의 온 가족을 예복차림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삼촌은 12명이나 되는 아내와 자식들과 식사를 마치고 곧이어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미리 준비한 독을 푼 차를 마시게 한 다음 자신도 마지막으로 찻잔을 들었다. 터키 병사들이 오기 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이미 3세대가 지났지만 조부모대나 부모대의 친지들 중 희생자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아르메니아대학살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세계에 흩어진 아르메니아인(diaspora Armenian)들을 통해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1965년 우루과이 정부가 최초로 아르메니아대학살 50주년을 계기로 이를 공식인정하면서 많은 나라에서 계속 아르메니아대학살을 공식인정해왔다. 올해 3월에는 스웨덴의회도 공식인정하는 안을 통과시켰으며 600만 유대인대학살의 피해자인 이스라엘의 교육부 장관은 아르메니아대학살을 교과과목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역사의 진실 밝혀야 상호신뢰 싹튼다”
그러나 터키는 이웃나라인 아르메니아와 국교수립을 거부한 채 지금까지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금지해오고 있다. 또한 몇몇 미국 역사학자들을 매수하여 아르메니아대학살의 역사적 사실 자체를 아예 부정하고 대신에 아르메니아인들에 의해 터키인들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정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이 상호신뢰와 이해의 분위기를 창조하는 지름길”이란 입장을 견지하면서 이 문제가 터키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세기 최초의 대학살을 격어야 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은 지금도 600만명이 외국에 흩어져 살고 있고 단지 300만명의 인구만이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다. 1991년 당시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수백년 만에 다시 독립국가를 건설한 아르메니아는 지금까지 끈질긴 민족성을 이어오면서 민족의 상처를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young@otenet.gr

(사진/도시 중심가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을 공개사형하는 장면. 백오십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1914-1923년 사이에 학살당했다)
이에 대해 미하원 프랑크 팔론 의원(미국 아르메니아회의 공동의장)은 공식적으로 미하원의장에게 전달한 편지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 미국이 터키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하며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간섭받는다는 것이 수치스럽다. 이는 터키가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를 협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매년 4월24일 전세계에 흩어진 아르메니아인들과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이날을 추모한다. 85년 전 이날 오토만제국에 거주하던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235명의 아르메니아 지식인들을 처형함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오토만제국이 ‘젊은터키단’의 쿠데타로 붕괴하면서 민족주의가 전면에 등장했다. 타민족에 대한 추방정책이 시작되면서 구조적인 학살이 구오토만제국 전역에서 자행된다. 당시 500만명의 기독교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학살되든지 추방돼 현재는 15만명의 기독교인들만 터키에 남아 있는 상태다. 이 중 200만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의 동쪽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구조적인 민족말살정책으로 수십만이 학살되고 수십만이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되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갔다. 1차대전이 끝난 뒤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침략했을 때도 그곳에 피난해 있던 수십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다시 학살했다. 당시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구조적인 학살을 비난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수단도 동원하지 않았다. 아테네에 살고 있는 아고프 쿠연장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한스러운 기억을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많은 아르메니아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삼촌은 당시 동부 터키 카르페르트의 부유한 상인이었다. 터키 군인들의 무차별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그곳까지 오리란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미처 피난도 떠나기 전에 이들이 들이닥쳤다는 소문이 들렸다. 삼촌은 자신의 온 가족을 예복차림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삼촌은 12명이나 되는 아내와 자식들과 식사를 마치고 곧이어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미리 준비한 독을 푼 차를 마시게 한 다음 자신도 마지막으로 찻잔을 들었다. 터키 병사들이 오기 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이미 3세대가 지났지만 조부모대나 부모대의 친지들 중 희생자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아르메니아대학살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세계에 흩어진 아르메니아인(diaspora Armenian)들을 통해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1965년 우루과이 정부가 최초로 아르메니아대학살 50주년을 계기로 이를 공식인정하면서 많은 나라에서 계속 아르메니아대학살을 공식인정해왔다. 올해 3월에는 스웨덴의회도 공식인정하는 안을 통과시켰으며 600만 유대인대학살의 피해자인 이스라엘의 교육부 장관은 아르메니아대학살을 교과과목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역사의 진실 밝혀야 상호신뢰 싹튼다”

(사진/터키반미시위대. 미국하원의 아르메니아대학살 인정안을 성토하고 있다)
| 인터뷰/ 아테네주재 아르메니아 대사 아르멘 페트리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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