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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도] 자살은 인도 농민의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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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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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 몰려 4월 이후 카르나타카 농민 300여명 자살…보상금보다는 구체적 방지 대책 필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뱅갈로르는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의 수도다. 수도가 ‘IT 강국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라는 영화를 누리는 동안 시골 지역 농민들의 삶은 점점 가혹해지고 있다. 지난 4월 이후 현재까지 카르나타카에서는 약 300명이 넘는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농민들의 자살은 1998년 이후부터 이 지역에서 문제가 되어왔지만 특히 올해 들어서는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지금까지는 상황이 어려운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해온 자살 현상이 이제는 주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40살의 한 농부와 임신한 아내가 세 딸들에게 약을 먹여 살해한 뒤 자신들도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렇게 많은 농민들이 자살하는 가장 큰 원인은 농가부채다.

사진/ 인도 정부의 무관심 속에 농민들은 가뭄과 더불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보상금이 자살을 유혹한다

지난 3년간 카르나타카는 계속되는 가뭄과 그에 따른 흉작으로 농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카르나타카와 이웃한 타밀나두주와의 물싸움으로 가뜩이나 인도에서 가장 강수량이 적은 지역인 카르나타카의 어려움은 가중돼왔다. 두 주의 경계에 위치한 카우베리댐의 물을 방출하는 문제를 두고 정치인들이 긴 싸움을 벌이는 동안 곡식은 점점 말라들어갔던 것이다. 지난해는 어느 농민이 카우베리댐의 물을 방출할 것을 주장하며 댐에서 투신자살을 한 일도 있었다. 또한 가뭄으로 인한 카우베리댐의 낮은 수위 때문에 방출량은 지극히 미미했다.


게다가 우기철에도 농사에 충분한 강우량을 기록하지 못하자 농민들은 물을 댈 양수기가 필요했고 양수기 가동에 필요한 전력으로 인해 높은 전기요금을 납부해야 했다. 또한 그동안 주정부가 지급해온 전기 및 비료구입 보조금 등의 농업지원금 삭감으로 농민들의 경작비용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늘어나는 수입 농작물로 인한 곡물의 가격 하락도 농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고 부채에 시달리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식품가공회사들이 농민들에게서 사탕수수를 사들이는 가격은 1992년 100kg당 4만원에서 현재는 약 3만원으로 떨어졌다. 또 정부는 100kg당 현지 가격 2만4천원에 사탕수수를 수입하고 있다. 쌀 가격은 올해에만 100kg당 1만8천원에서 1만3천원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정부는 과다한 양의 곡물을 정부창고에 저장하고 있으나 곡물을 방출하지도 않고 새 곡물 구입을 위해 돈을 쓰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주정부가 새로 발표한 생활보호자대상 기준은 많은 농민들을 구호식량 배급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인도 농민들은 정부에 가뭄 때 양수기 가동을 위한 전기를 무료로 공급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복합적 요인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소규모 농민들에게 은행 문턱은 너무나 높다. 주의 인구 중 농민의 비율이 75%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농업 부분에 할당된 대출은 전체 대출의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출금 회수가 줄어들자 은행들은 대출액을 점점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자연히 농민들은 점점 사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보통 30%에서 50%에 달하는 터무니없는 사채업자들의 높은 이자율은 빠른 시일 내에 대출을 받는 경우에는 최고 6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정부는 과도한 이자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이 법령은 담보 없는 대출의 경우 23% 이상, 담보 있는 대출의 경우 21% 이상의 이자를 물리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대출 1년 이내에 대출금 상환을 독촉하거나 강제로 대출금을 돌려받는 행위는 징역 3년과 8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이 법령의 영향을 받는 것은 등록된 사채업자들뿐이다. 보통 지주들이 겸하고 있는 시골의 사채업자는 거의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또한 주정부는 농민 자살에 대한 해결책으로 2천억원의 가뭄구제사업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협동조합 대출금의 이자 감면, 종자와 농기구 구입 비용 지원, 일부 특수 농작물에 대한 가격 지원, 양수기 관련 체불 전기요금 감면, 토지세 면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농민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무료 전기공급 요구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 가뭄구제 정책에는 부채로 자살한 농민의 가족에게 270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조처가 발표된 이후에도 오히려 자살은 증가하고 있다. 일부 농민운동가들은 270만원의 보상금이 오히려 자살의 큰 매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100만원에서 200만원가량의 빚으로 고민하다 자살은 선택하는 인도의 농민들에게 있어 살아남은 가족에게 지불될 270만원은 분명 커다란 유혹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가장이 목숨을 맞바꾼 보상금을 남아 있는 가족들이 손에 쥐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주정부는 농민 자살이 농가부채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는데 8월 말까지 보고된 208건의 자살 중 156건만이 위원회에서 다루어졌다. 이 중에서 ‘진짜로’ 빚으로 인해 목숨을 끊었다고 판명된 경우는 63건에 불과했고, 그 중 현재까지 실제 보상금을 받은 경우는 20건에 불과하다.

많은 가족들이 차용증 등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위원회에서 보상금 지불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농민들은 주장한다. 어느 농민의 경우 자살한 그의 몸에서 토지저당문서, 은행대출서류, 사채업자로부터 당한 고통 등이 언급된 유서가 발견되었으나 그의 죽음은 보상금을 지불받을 수 있는 ‘진짜’라고 판명받지 못했다. 이 보상금은 사실 지난해에 폐지된 것인데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부활한 선심 공약이라고 농민운동가들은 말한다.

세계화가 농업 위기 가중시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죽은 뒤의 보상금보다는 자살을 막을 방도라는 것이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심리학자들은 주 전역의 마을에서 정기 회의를 조직해 문제를 가진 농민들이 정부관리뿐만 아니라 심리상담가들과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계속되는 생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농민들 사이에는 심리적 불안정이 팽배해 있다. 4년 전 농업이 정신병과 관련돼 있는지에 대한 영국의 한 연구는 농민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정신병의 빈도는 낮지만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농민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결여와 전통적인 마을 결속 체제의 붕괴 역시 농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농민들은 상담치료 등으로 농민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가뭄 동안의 양수기 가동을 위한 무료 전기 공급, 대출금 이자를 감면하고 대출금 상환을 연기하는 법률의 제정, 소작농과 임대 농민 등 소규모 농민들을 위한 은행 대출 확대, 현재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는 국영 농작물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불을 확실히 보증하는 법률 제정, 가뭄 구호에 관한 신문 발행으로 농민들의 불안감 완화 등의 구체적인 조처들이다. 일부 농민운동가들은 자살의 자극이 되는 280만원의 보상금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칸쿤에서의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 결렬을 축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계무역기구를 통한 농업 세계화의 부정적 효과는 이미 발생한 인도의 농업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계속해서 자살하는 농민들의 소식을 언론이 다루고 있지만 사실 죽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수많은 농민들은 오늘도 힘든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델리= 글 · 사진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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