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모는 홈리스?
등록 : 2000-11-01 00:00 수정 :
(사진/시드니 시내의 홈리스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약3만여명에 달하는 홈리스들로 골치를 앓고 있다)
“홈리스들이 빈 건물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하는 대신 건물 관리책임을 맡기자.” 지난 10월 중순 사우스시드니 시의회가 공공건물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홈리스들을 ‘관리인 임대’라는 형식으로 합법화한 명분이다. 이 결정은 초기엔 만성적 골칫거리인 홈리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각광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이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찮게 나오면서 격렬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9개월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일단의 홈리스들이 시드니 중심가인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시 소유 건물로 무단 침입했다. 이 건물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계획으로 인해 비워진 상태였는데, 인근 울티모 지역에서 쫓겨난 홈리스들이 마침 비어 있던 이곳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한 것이다. 시당국은 이들에게 즉각 퇴거할 것을 명령했지만, 순순히 따를 리 없었다. 이때부터 홈리스들과 시당국간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홈리스들은 건물의 2개층을 주거시설로 개조해 사용하면서 장기전에 돌입했다. 경찰을 동원해 강제퇴거시키는 방안도 여러 차례 고려되었으나 동정여론에 밀려 차일피일 세월만 흘러갔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일단 보류된 이 문제는 시드니올림픽이 끝난 10월 초부터 다시 해결책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동정론과 합법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의회는 결국 ‘관리인 임대’라는 형식을 통해 홈리스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대신 건물관리 책임을 부여했다. 격론을 벌이던 9명의 시의원들이 표결까지 벌인 끝에 5:4라는 근소한 차로 합법화가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홈리스에 대한 논란은 정작 시의회에서 어렵게 합법화가 결정된 뒤에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우선 보험회사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홈리스들이 관리인으로 지정된 건물에 대해 더이상 ‘공공위험 보험’을 제공할 수 없다며 모든 보험계약의 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시의회로서는 홈리스의 주거를 합법화한 대신 해당 건물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한 보상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또한 <데일리텔러그래프>에 폭로된 브로드웨이 홈리스들의 생활상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시 소유 건물에 살고 있는 홈리스들은 보통 홈리스들이 아니다. 변호사를 포함해 대부분이 버젓한 직업인이고 건물 내엔 비디오 게임기와 텔레비전 등 각종 생활용품이 구비되어 있고 심지어 몇몇은 자가용까지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브로드웨이 홈리스의 수는 25명으로 집세, 전기세, 수도세 등을 포함하면 1인당 1주일에 약 150달러 상당의 생활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폭로기사로 인해 문제의 홈리스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여론에 민감한 지역 정치인들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몰염치한 사람들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시의회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격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지난 10월17일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가 진상조사에 나설 뜻을 밝히는 등 이미 지방의회 차원을 넘어선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합법화 조처를 주도한 노동당과 녹색당쪽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일부 홈리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이 홈리스 전체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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