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가 외교력과 안보를 강화시킨다고? 쓰레기 같은 거짓 합리화!
1998년 5월 인도가 5발의 핵폭탄을 연속적으로 터뜨리자 많은 이들은 이 핵실험이 5대 핵패권주의국에 대한 도전이며 그들이 거부한 대량파괴무기 폐기에 대한 역습이라 생각했다. 또 많은 이들은 핵무기가 인도의 안보를 강화시키며 국제사회에서 인도의 독립적인 운신 폭을 확대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면서 파키스탄의 핵실험이 뒤를 따르자 어떤 전략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인도의 안정과 성숙한 관계를 위해 전례없는 침착함을 대중에게 권유하기도 했다.
아직도 칼길의 교훈은 없는가
2년 반이 지난 현재, 이건 모두 쓰레기 같은 거짓 합리화임이 드러났다. 파키스탄과 인도, 양쪽은 모두 자신들의 안보문제에 오히려 기가 꺾였다. 수천만의 양쪽 시민들은 절멸적인 핵미사일 공격 앞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빠져들었고,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을 경우 양쪽 도시들이 모두 3분에서 8분 사이에 끝장나고 마는 상황에 직면했다. 더구나 인도는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경제력에서 세배나 우월한 중국과 핵무기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잠재적으로 파멸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인도의 핵무장화는 1990년대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땅굴을 파는 식으로 음흉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두 나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국경의 안정과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상징적인 협정을 거론하고 있을 때였다. 한편 중국은 계속 인도를 꾸짓고 조롱하고 위협하면서 인도의 핵무장해체를 요구하는 1998년 6월의 안보결의1172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침착한 권유와는 거리가 먼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에서 핵무기는 수상한 혐의에 불을 지피며 상호 적대감만 키웠고, 군사적 모험주의 구축을 조장했다. 핵실험을 한 지 단 1년 만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의 통제선 내 칼길에서 전쟁을 벌였다. 칼길분쟁은 핵보유국(NWSs) 사이에 역사상 가장 큰 재래식 전쟁으로 비화했다. 이전 중국과 러시아가 우수리강을 끼고 벌인 사소한 국경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로. 인도는 칼길전쟁에 최정예 무장병력 4만명과 전투기를 동원했고, 약 2천명의 전사자를 내며 20억달러의 전비를 투입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전쟁 동안 직·간접적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적어도 상호 13번에 걸쳐 위협적인 핵공격 선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양쪽은 모두 핵무기 사용의 아슬아슬한 순간에 외부의 압력으로 그 결정을 거두었다.” 미국의 국방장관 윌리엄 코엔의 회고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칼길의 교훈은 없다. 두 나라의 정치가들은 오늘까지도 무모하게 ‘제한적인 재래전’을 이야기하고 그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인도 내무장관 애드바니는 “파키스탄은 인도의 붕괴밖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해왔다. 파키스탄이 적절하고 결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고, 어쨌든 인도의 국방장관 조지 페르난데스는 자주 이슬라마바드에 대해 “시간과 장소 선택만 남았다”며 재래전을 부추겨왔다. 이런 분위기 아래 인도에서 영향력을 지닌 많은 이들은 파키스탄의 붕괴없이는 남아시아의 최종적인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인도와 미국의 밀월
인도 핵무장화의 가장 큰 손실 가운데 하나는 외교상 운신의 폭이 확장된 게 아니라 오히려 축소돼버린 현실일 것이다. 인도는 전략적 파트너로 미국을 선택한 결과 자신이 주도했던 비동맹 강령을 황칠해버렸다. 인도는 단순한 외교적 손상보전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위로조의 거대한 사업 이익을 건네주었다. 지금 인도는 미국의 요구인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구조’를 효성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가로 인도는 아시아 지역에서 기껏 미국의 주요한 동반자 자격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 동맹관계는 지난 3월 클리턴 미국 대통령의 인도 방문과 바지파이 인도총리의 9월 미국 답방에서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 동맹관계의 핵심은 인도가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다국적사업을 받아들이며 군사적 유착을 강화한다는 일방적인 속임수로 드러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미국 입장에서 ‘동반자’란 이름이 극우세력들의 ‘중국공포증’에서 비롯된 정도라는 사실이다. 이건 인도가 그동안 중국에 대항해왔다는 점을 인정받은 수준일 뿐이다.
미국과의 밀월을 통해 인도는 그동안 핵실험으로 가해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압박감 없이 뛰어넘는 재주를 부렸다. 인도는 약 3억달러의 미미한 원조와 차관을 잃은 대신 연간 이 액수에 맞먹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인도가 국방비를 28%나 증액하면서 1962년 이후 이 분야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잘 알 수 있다.
경제적으로 핵무장화는 성가신 것으로 입증될 것이다. 중국의 것과 비교해 5분의 1 크기에 지나지 않는 조그만 군수공장 하나가 120억∼150억달러에 이르는 현실은 인도 전체의 연간 초등교육비 지출의 3분의 1을 뛰어 넘는 수준이고, 1년 전 국가안보자문위원회가 작성한 핵정책초안에 따른 개방적인 막대한 군수체계를 직시한다면, 그 예산은 국내총생산의 5%에 이르고 이건 인도정부가 보건위생에 투입하는 비용을 넘어서버린다.
한편 핵무장화의 사회·정치적 비용은 비록 다른 분야에 비해 규모가 적더라도, 어쨌든 핵무기의 전쟁억지력은 위험을 통해 안전을 추구한다는 뜻을 내포함으로써 인류의 가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핵무장화는 필연적으로 인간이 지닌 조잡한 역사적 신념인 ‘분쟁의 영속성’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핵무장의 전쟁억지력이란 합리화와 규격화에 따른 집단공포며 동시에 “권력은 정의”라는 개념을 기초로 삼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이 비이성적인 관념들의 작용은 정치적으로 평등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공격하는 일에 그 역량을 발휘하고 말 것이다. 이미 핵보유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시민적인 핵정책들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 반핵운동에 극적인 전환점을
따라서 충돌하기 전에 지금 당장 남아시아의 핵무기계획을 되돌려 놓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남아시아의 경쟁은 미국과 러시아 분쟁에 비해 더욱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인도대륙은 반세기 동안 전혀 완화의 조짐 없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과 열전을 되풀이하고 있는 지역으로 목격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은 취약한 안전문화와 저질스런 모험관리로 재난발발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악명을 떨쳐 온 게 핵무기를 다루는 일에서도 큰 짐이 되고 있다. 9천억달러를 들인 초강대국들의 경보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위기상황에서, 남아시아의 핵무기 제어구조에 대한 신뢰성은 매우 낮은 상태다. 1962년 쿠바의 미사일 위기 뒤부터 냉전 전기간을 통틀어 비교해도 현재 남아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더 높은 실정이다. 그게 실수든 의도든간에. 따라서 만약 핵무기를 실전배치했다면 그 실제 사용의 기회는 비록 제한되어 있더라도 어쨌든 그 사태 자체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아직 핵무기의 실전배치를 하지 않은 상태라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다. 두 나라는 국제사회가 핵 철폐를 외치는 동안, 지금 당장 핵억제협정에 서명하고 핵무기의 실전배치 포기와 미사일계획의 동결을 선언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남아시아의 핵과 미사일 동결은 미약한 국제반핵운동에 극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파키스탄과 인도가 남아시아 비핵지대를 설치함으로써 지구비핵지대화에 절대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남아시아 비핵지대화는 이 지역에서 핵무기의 제조와 실전배치를 금지시킬 뿐만 아니라, 모든 핵보유국들이 남아시아에 대한 공격목표를 설정할 수 없고 또 핵무기가 남아시아 수역을 통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핵지대는 이미 네개 지역에서 조약들을 맺었고, 특히 남반구에서는 중대한 억지력과 매우 높은 단계의 성공적인 핵확산 예방을 입증하고 있다. 핵의 비확산뿐만 아니라 무장해제와 같은 개념까지 포함하는 남반구의 사례를 현재 북반구로 이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남아시아는 북동아시아처럼 이제 유력한 비핵지대 후보지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 오직 몇몇 국가만이 영속적으로 핵무기를 소유한다는 비핵지대 논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핵지대화는 전 지구적 규모의 핵 철폐를 위한 부분적인 과정일 뿐이다. 현실론을 인정하다면, 이 거대한 핵 철폐 작업은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고 따라서 순차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핵보유 강대국들도 확실하게 반드시 핵무기를 철폐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령 핵탄두를 미사일로부터 분리시키고 핵분열물질을 금지하고 등급에 따라 핵무기들을 해체하고 파괴시켜야 한다는 것이 바로 비핵지대화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비핵지대화는 궁극적으로 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무기의 해체를 추동하는 강력한 운동성을 지닌 살아있는 논리로 보면 될 것이다.
이제 인도와 파키스판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평화운동이 요구하는 길을 따를 것인지 인간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파멸의 길로 걸어갈 것인지.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더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 핵 전문 칼럼니스트


인도의 핵무장화는 1990년대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땅굴을 파는 식으로 음흉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두 나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국경의 안정과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상징적인 협정을 거론하고 있을 때였다. 한편 중국은 계속 인도를 꾸짓고 조롱하고 위협하면서 인도의 핵무장해체를 요구하는 1998년 6월의 안보결의1172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침착한 권유와는 거리가 먼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에서 핵무기는 수상한 혐의에 불을 지피며 상호 적대감만 키웠고, 군사적 모험주의 구축을 조장했다. 핵실험을 한 지 단 1년 만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의 통제선 내 칼길에서 전쟁을 벌였다. 칼길분쟁은 핵보유국(NWSs) 사이에 역사상 가장 큰 재래식 전쟁으로 비화했다. 이전 중국과 러시아가 우수리강을 끼고 벌인 사소한 국경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로. 인도는 칼길전쟁에 최정예 무장병력 4만명과 전투기를 동원했고, 약 2천명의 전사자를 내며 20억달러의 전비를 투입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전쟁 동안 직·간접적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적어도 상호 13번에 걸쳐 위협적인 핵공격 선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양쪽은 모두 핵무기 사용의 아슬아슬한 순간에 외부의 압력으로 그 결정을 거두었다.” 미국의 국방장관 윌리엄 코엔의 회고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칼길의 교훈은 없다. 두 나라의 정치가들은 오늘까지도 무모하게 ‘제한적인 재래전’을 이야기하고 그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인도 내무장관 애드바니는 “파키스탄은 인도의 붕괴밖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해왔다. 파키스탄이 적절하고 결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고, 어쨌든 인도의 국방장관 조지 페르난데스는 자주 이슬라마바드에 대해 “시간과 장소 선택만 남았다”며 재래전을 부추겨왔다. 이런 분위기 아래 인도에서 영향력을 지닌 많은 이들은 파키스탄의 붕괴없이는 남아시아의 최종적인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인도와 미국의 밀월

(사진/1998년 인도핵실험지.많은 인도인들이 “파키스탄의 붕괴없이는 남아시아의 최종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사진/인도 핵실험에 환호하는 시민들)
전 <더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 핵 전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