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 외국인의 한글 사랑]
사전에 ‘미친’ 조선족 3세 김성규씨… 공무원으로 일하며 ‘한-중 외래어 사전’ 펴내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사는 조선족 3세 김성규(42)씨는 자칭 사전 만드는 일에 ‘미친’ 사람이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열정을 바친다는’ 건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가 사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베이징 중앙민족대학교 조선어문학과 3학년 때부터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조선어-중국어, 중국어-조선어 사전이라고는 북한에서 발행되는 일명 ‘6권 사전’(전 6권으로 된 사전을 줄여서 부르는 말)밖에 없었다. 외래어를 쓰지 않기로 유명한 북한임에도 사전 속에 이해할 수 없는 외래어가 너무 많았다고 한다.
만든 순간 과거가 되는, 그래서 매력적인
그 뒤 접한 한국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는 더 이해할 수 없는 외래어가 범람하는 걸 보면서 우리말 속에 섞어 쓰는 외래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중 외래어 사전’을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격적인 사전편찬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졸업 뒤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다. 랴오닝성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만 12년을 일하는 동안 그는 퇴근 뒤에 하루도 빠짐없이 사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 도대체 누가 돈 주고 시키지도 않은 일에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느냐는 물음에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힘이 들어서 하지 않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결국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한-중 외래어 사전을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 일이었어요. 난 원래 그런 일을 좋아하거든요(웃음)”라며 다소 싱거운 대답을 한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1996년 요녕민족출판사에서 그의 첫 ‘자식’이 세상에 나왔다. 그 뒤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아예 출판사로 자리를 옮긴 그는 계속해서 한-중 컴퓨터 용어사전과 중-조(중-한) 사전 등을 만들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문학은 상상력과 영감이 필요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무한한 영역입니다. 그러나 사전은 일절 그런 것들이 용납되지 않아요. 판에 박힌 작업이라고 할까. 문학은 과거를 쓸 수 있지만 사전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충실하게 반영해야 합니다.” 그는 ‘뜬금없이’ 문학작품 만드는 일과 사전 만드는 일을 비교하면서 사전작업은 티끌만한 상상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재미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업 과정의 ‘재미없음’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뜻이다. 그렇게 재미 없이 마치 수행하듯 만들었어도, 곧바로 ‘과거’가 돼버리기 때문에 사전을 만든 뒤에는 기분이 아주 ‘유감스러워’진다고 한다. 그런데 김성규씨는 그런 점이 끊임없이 사전을 만들게 하는 마력이라고 말한다. “사전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곧바로 과거가 돼버리고 헌 것이 돼버립니다. 왜냐하면 사전이 나오는 순간에도 세상에 끊임없이 새로운 말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새롭게 시작해야 하고 자꾸 미련을 두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백과사전 저자에게 어느 날 한 독자가 편지를 보내 환불을 요구했다고 한다. 편지에는 “당신이 만든 사전에는 내가 찾고자 하는 단어가 없으니 즉시 돈을 환불해달라”고 쓰여 있었다. 사전을 만들면서 그는 그 일화를 늘 가슴에 새겨두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찾아보지 않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 할지라도 만에 하나 누가 그 단어를 찾으려고 사전을 펼쳤을 때 그것이 없다면 사전은 이미 효용가치가 없는 ‘죽은 사전’일 수밖에 없다. 자신도 직접 그런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바로 그런 ‘만에 하나’의 독자를 위해 낱말 하나에도 몇날을 고민한다고 말한다. ‘죽은 사전’이 되지 않기 위해 한-중 외래어 사전을 만들게 된 계기도 남북한에서 섞어 쓰는 외래어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조 사전을 만들 때는 반대로 ‘한자’ 때문에 고생했단다. 특히 중국에서 잘 안 쓰는 한자어를 한국에서 자주 쓰는 것에 의아했다고 한다. 현대어를 쓸 것 같은데도 고대 한자어의 활용이 많은 데 놀랐으며, 이런 한자어를 쓰는 것은 외래어 사용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한국인 중에 ‘죽은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것을 고집스레 쓰기보다는 우리말로 바꿔서 쓰는 노력을 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충고한다. 베이징=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사진/ 어려움 끝에 ‘한-중 외래어 사전’을 펴낸 김성규씨는 앞으로 ‘한-중 동식물 사전’을 만들 계획이다.
그 뒤 접한 한국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는 더 이해할 수 없는 외래어가 범람하는 걸 보면서 우리말 속에 섞어 쓰는 외래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중 외래어 사전’을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격적인 사전편찬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졸업 뒤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다. 랴오닝성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만 12년을 일하는 동안 그는 퇴근 뒤에 하루도 빠짐없이 사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 도대체 누가 돈 주고 시키지도 않은 일에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느냐는 물음에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힘이 들어서 하지 않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결국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한-중 외래어 사전을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 일이었어요. 난 원래 그런 일을 좋아하거든요(웃음)”라며 다소 싱거운 대답을 한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1996년 요녕민족출판사에서 그의 첫 ‘자식’이 세상에 나왔다. 그 뒤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아예 출판사로 자리를 옮긴 그는 계속해서 한-중 컴퓨터 용어사전과 중-조(중-한) 사전 등을 만들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문학은 상상력과 영감이 필요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무한한 영역입니다. 그러나 사전은 일절 그런 것들이 용납되지 않아요. 판에 박힌 작업이라고 할까. 문학은 과거를 쓸 수 있지만 사전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충실하게 반영해야 합니다.” 그는 ‘뜬금없이’ 문학작품 만드는 일과 사전 만드는 일을 비교하면서 사전작업은 티끌만한 상상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재미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업 과정의 ‘재미없음’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뜻이다. 그렇게 재미 없이 마치 수행하듯 만들었어도, 곧바로 ‘과거’가 돼버리기 때문에 사전을 만든 뒤에는 기분이 아주 ‘유감스러워’진다고 한다. 그런데 김성규씨는 그런 점이 끊임없이 사전을 만들게 하는 마력이라고 말한다. “사전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곧바로 과거가 돼버리고 헌 것이 돼버립니다. 왜냐하면 사전이 나오는 순간에도 세상에 끊임없이 새로운 말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새롭게 시작해야 하고 자꾸 미련을 두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백과사전 저자에게 어느 날 한 독자가 편지를 보내 환불을 요구했다고 한다. 편지에는 “당신이 만든 사전에는 내가 찾고자 하는 단어가 없으니 즉시 돈을 환불해달라”고 쓰여 있었다. 사전을 만들면서 그는 그 일화를 늘 가슴에 새겨두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찾아보지 않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 할지라도 만에 하나 누가 그 단어를 찾으려고 사전을 펼쳤을 때 그것이 없다면 사전은 이미 효용가치가 없는 ‘죽은 사전’일 수밖에 없다. 자신도 직접 그런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바로 그런 ‘만에 하나’의 독자를 위해 낱말 하나에도 몇날을 고민한다고 말한다. ‘죽은 사전’이 되지 않기 위해 한-중 외래어 사전을 만들게 된 계기도 남북한에서 섞어 쓰는 외래어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조 사전을 만들 때는 반대로 ‘한자’ 때문에 고생했단다. 특히 중국에서 잘 안 쓰는 한자어를 한국에서 자주 쓰는 것에 의아했다고 한다. 현대어를 쓸 것 같은데도 고대 한자어의 활용이 많은 데 놀랐으며, 이런 한자어를 쓰는 것은 외래어 사용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한국인 중에 ‘죽은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것을 고집스레 쓰기보다는 우리말로 바꿔서 쓰는 노력을 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충고한다. 베이징=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