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프랑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소개하라

479
등록 : 2003-10-08 00:00 수정 :

크게 작게

[움직이는 세계 | 외국인의 한글 사랑]

프랑스 ‘한국학 연구소 I.E.C’ 마르틴 프로스트 소장에게 들어본 한글 보급 방안

프랑스에서 한국어의 자취를 훑어보는 일은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특정 언어의 세계적 위상은 순수 언어적 요소보다는 경제·정치·문화·사회적 요소 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에서 한국어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필자는 파리 5구에 위치한 ‘콜레주 드 프랑스’ 부속기관인 ‘한국학연구소 I.E.C’(http://www.college-de-france.fr/site/ins_ins/p1000307518399.htm)를 찾았다. 1959년 ‘소르본대학’ 부속 연구기관으로 설립되었고, 1973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 부속으로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등에 관한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연구소는 2만여권의 한국학 도서를 소장하여 프랑스 내에서 한국학을 심층 연구하는 학자와 연구원들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 연구소의 소장이자 파리 7대학 한국어과 학과장인 마르틴 프로스트 교수를 만나 한국어를 직접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경험한 일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진/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프로스트 교수는 “언젠가 종교를 가진다면 불교를 선택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국의 영어 붐 때문에…


프로스트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에 유학하던 중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79년 서울대에 연구원 자격으로 유학을 떠난 게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긴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 파리 7대학의 한국어과 학생 수는 50여명이다. 중국어과나 일본어과에 비해 수적으로 훨씬 적다. 프로스트 교수는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동기에 대해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한국어과는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입양된 학생들, 다른 동양어를 배우다가 한국어를 추가로 배우거나 전과한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특기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그건 어디선가 한국인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관심이 생겨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의욕을 갖는 경우입니다. 우정이나 사랑의 정서가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이전보다 유럽이나 프랑스로 많이 진출하고 있고, 또 한국인들의 역동적인 인간관계 등에 힘입었다고 봐요. 태권도를 배우다 한국에 관심을 가져 찾아오는 학생도 가끔 있긴 했죠. 한국은 태권도 사범처럼 강한 이미지의 나라일 거라는 인상을 갖고 있어요.”

올해 파리 에어쇼에서 대한항공은 에어버스 5대를 구입하는 계약을 한 바 있고, 지난 6월 알카텔은 한국 KT와 통신위성 ‘Koreasat 5’ 제작을 위해 억대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에 진출한 프랑스 기업들도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요소들은 한국어 보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업 차원에서 짧은 연수를 거치는 경우가 있긴 한데, 대학까지 찾아와 실시되는 심층적인 학술 차원의 연수는 아니죠. 게다가 한국에서의 영어 붐은 오히려 한국어 보급에 역효과를 빚기도 해서, 굳이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한국에선 영어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심리를 낳고 있어요.” 그렇다면 한국어나 문화의 보급을 위한 방안은 있는 걸까? 그래서 우리가 늘 남의 정서만 이해하고 살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서도 남들에게 이해시키며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빨리빨리’ 문화가 이미지 해쳐

“언어나 문화 보급에 가장 효과적인 요소는 아주 큰 나라, 아주 강한 나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뭔가를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이겠죠. 그렇지 않고 한국처럼 작은 나라는, 그 문화가 아주 매력적이고 독창적일 필요가 있어요. 특히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프랑스에선요. 프랑스에서 일본 문화나 일본어가 흥미를 끄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이죠. 사실 한국의 판소리는 프랑스에 소개되어 크게 호응을 얻기도 했죠. 판소리뿐 아니라 건축·미술·한복·보자기·돗자리·전통음식·과자 등 한국 문화도 아주 독창적이고 미학적이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장점이 있는 한국어가 널리 확산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어) 파급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소개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아름다운 걸 아름다움이 그대로 와닿게 소개하는 걸 한국 관료사회가 잘 못해낸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한국에서 적잖이 일어나는 부실사고가 낳는 부정적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어요. 사회 한편에 잠식해 있는 ‘빨리빨리’식 문화가 한국의 미학적·독창적인 문화 이미지를 해칠 수 있거든요. 한국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

한국식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대변하는 단어인 정·우정·사랑·애정 등 한국인의 정서를 듬뿍 담은 단어들을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 인간관계에 젖어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이해시키기 힘들다고 프로스트 교수는 말한다.

파리=글 · 사진 이선주 전문위원 seoulparis@tiscal.f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