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 외국인의 한글 사랑]
한국여행의 필수품 … 미국인 대니얼 홀트 행정관의 한글 사랑
유네스코는 올해 ‘세종대왕상’ 수상자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템발레투 교육센터’와 비정부기구(NGO)인 ‘CIRAC’(International Reflect Circle)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한글날인 10월9일에 열린다. 지난 1990년부터 실시해온 세종대왕상은 지구상에서 문맹퇴치에 공을 세운 인물이나 기관, 단체에 수여한다. 이 행사는 문맹퇴치를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업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에서 ‘한글날’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데 반해 정작 한국에서는 한글 격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외국 학자들까지 못마땅해하고 있다. 국경일이었던 ‘한글날’이 기념일로 추락하고 이제는 일부에서 영어 공용화까지 들먹이고 있다.
한글의 합리성에 경탄
1970년대 평화봉사단(Peace Corps, 1969~76)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미 캘리포니아주 교육국의 고위 행정관 대니얼 홀트(56)씨는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고 있다. 그는 또 영어 배우기 붐에 편승해 한국의 부모들이 어린 자녀 손을 이끌고 병원에서 혀 수술을 받게 하며, 일부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영어 사용을 강요하는 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그는 “한글은 한국 가족의 언어이자 나라의 언어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정의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출판사인 바론스(Barron’s)에서 1988년에 간행한(속성 한국어)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달에 200~300권이 꾸준히 팔리는 등 한국을 찾는 미국인들에게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은 홀트 행정관이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서적으로 전 부인 그레이스와 함께 펴낸 것인데 지금까지 약 4만권이 팔렸다. 그는 서문에 “영어와 달리 한글은 독창성을 지닌 언어”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영한/한영사전을 포함해 한국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한국인들과 사귀기 위한 예의범절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미국인들은, 기본적인 인사말에서부터 생활 한국어, 비즈니스·여행 용어, 응급시 도움을 청하는 말 등 빠르고 쉽게 한국어로 대처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한국 여행시 편리했다고 칭찬하는 글들을 ‘아마존닷컴’ 서평에 올리기도 했다. 필자는 캘리포니아 주도인 새크라멘토시에 사는 홀트 행정관과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홀트 행정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 교육인적자원부의 세계화교육 정책에 자문을 담당한 한국통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속담 풀이까지 책으로 펴낼 정도로 한국어에 유창하다. “한글의 매력은 과학적인 글자와 명확한 음성표기법에 있다”고 평가한 홀트 행정관은 “언어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글의 간결함과 용이함에 경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글 자음의 형태가 발음할 때 입모양과 혀 위치가 동일하다는 점에 반했다”며 “한글의 우수한 간결성은 영어의 불규칙한 철자법과 발음과 현저한 대조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글의 우수성은 1994년 미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6월호에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의대 생리학 교수인 제어드 다이어먼드 박사의 기고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다이어먼드 교수는 “한글은 그 독창성과 기호배합의 효율성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했다. 그는 또 “한글이 쓰기에서 가장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었기에 학계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문맹률이 낮은 것도 한글의 간결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봉사단과 춘천의 기억
홀트 행정관은 “한글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자신들이 독특하고 자랑스런 민족임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의 매력과 인상적인 한글이 한국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면서 “한국인들은 출신학교와 학벌에 따라 신분상 구별이 되고 상대방의 언어구사 능력에 따라 그들의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독창적 언어가 갖는 특성에 대해서도 그는 “한글이라는 전통적인 언어는 한국인들이 한 민족으로 단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한글은 15세기 이래 줄곧 한국인들의 자존심과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한글날의 국경일 문제로 화제가 이어지자, 그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한글 발명은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필자가 “한글날은 1990년도부터 한국에서 더 이상 국경일이 아니다”라고 알려주자 그는 대답 대신 “오, 마이(Oh, my)…”라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홀트 행정관이 한국에 오게 된 것도 특별한 인연인 것 같다. 그는 “원래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 남미로 가기를 희망했다”면서 하지만 당시 운명적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전 부인 그레이스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춘천에서 처음 만났단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홀트 행정관은 나중에 평화봉사단 교육고문관으로 있으면서 한국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로 그가 2년 동안 성수중·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할 당시 김용해 교장 자택에서 살던 때의 춘천을 떠올렸다. “보통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조르지만 김 선생은 내게 조금이라도 더 한국말을 가르쳐주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면서 “김 선생은 타고난 교육자이면서 나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싶었다”는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인 저자가 소개한 한국 관련 서적을 통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 혹은 상투적 소개를 한 데 대해 무척 실망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를 펴낸 다른 동기에 대해 “한국에서 봉사하면서 교류했던 한국인 친구들이나 교사들이 나의 책을 보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격려해준 한국인들의 정성에 보답하는 의미로 책을 펴냈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는 1999년 한국 속담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 속담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속담 20개를 추려 라고 제목을 달았다. 한글과 영어를 섞어 외국인들에게 한글로 속담을 읽을 수 있도록 표기하고, 속담의 의미와 사용법까지 수록한 이 책은 펴내는 데 1년이나 걸렸다. 이들 속담의 주제는 한국인들의 기질과 협동심, 그리고 식도락(eating)을 즐기는 한국 문화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한국 속담에 대해 “한국어 구사가 능숙하지 못했던 시절 속담 한마디로 나의 복잡미묘한 생각을 짧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가 속담으로 대답을 하면 한국인들이 또 다른 속담을 가르쳐주는 등 한국 속담을 통해 한국어 공부뿐 아니라, 한국 속담이 지니는 중요성과 관습을 체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애용하는 속담이 무엇이냐”고 묻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며 “한국을 방문할 때면 친구들이 늘 새로운 음식점에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다른 한국 속담으로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와 ‘시작이 반이다’ 등이 있다.
속담을 알면 한국이 보인다
홀트 행정관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1969년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이중언어교육학과 교육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그는 대학원 졸업 뒤 바로 평화봉사단에 자원해 한국에 나가 춘천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76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평화봉사단원을 훈련시키는 한편 ‘제2외국어 영어교수법’(TEFL)의 고문위원을 맡았다. 미국에 돌아가 1977년부터 현재까지 캘리포니아주 교육국의 전산 부문을 지도해오고 있다. 그는 1979년 이후 재미한인교육자협회의 고문을 맡아 도와주고 있다.
LA= 김지현 전문위원 lia21c@hotmail.com
| 한글날을 맞아 해외 전문위원들이 발굴한 외국인들의 특별한 한글 사랑 이야기들을 묶어보았다. 한국에서 살았던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한글로 쓰고, 한글에 매료돼 배움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으며, 배움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보급에 나서게 된 경위 등을 살펴봤다. 특히 현지어-한글 사전을 펴낸 한글 마니아도 만났다. 이들을 통해 한글의 빼어난 점과 불편한 점, 세계언어로서의 도약 가능성 등을 들어봤다. 한글날의 위상 추락과 갈수록 한글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외래어가 주인 행세를 하는 국내 현실과 달리, 외국인이면서도 한글을 가꾸고 다듬어가고 있는 이들의 한글사랑을 통해 자성과 함께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겨봤으면 한다. - 편집자 |
유네스코는 올해 ‘세종대왕상’ 수상자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템발레투 교육센터’와 비정부기구(NGO)인 ‘CIRAC’(International Reflect Circle)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한글날인 10월9일에 열린다. 지난 1990년부터 실시해온 세종대왕상은 지구상에서 문맹퇴치에 공을 세운 인물이나 기관, 단체에 수여한다. 이 행사는 문맹퇴치를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업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에서 ‘한글날’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데 반해 정작 한국에서는 한글 격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외국 학자들까지 못마땅해하고 있다. 국경일이었던 ‘한글날’이 기념일로 추락하고 이제는 일부에서 영어 공용화까지 들먹이고 있다.

사진/ 한국인을 찾는 미국인들의 필독서인 〈Korean at a Glance〉를 펴낸 홀트씨 부부. 이들은 한글의 독창성을 극찬했다.(김지현)
1970년대 평화봉사단(Peace Corps, 1969~76)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미 캘리포니아주 교육국의 고위 행정관 대니얼 홀트(56)씨는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고 있다. 그는 또 영어 배우기 붐에 편승해 한국의 부모들이 어린 자녀 손을 이끌고 병원에서 혀 수술을 받게 하며, 일부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영어 사용을 강요하는 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그는 “한글은 한국 가족의 언어이자 나라의 언어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정의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출판사인 바론스(Barron’s)에서 1988년에 간행한

◁ 홀트 행정관의 한국어 실력을 보여주는 〈Korean at a Glance〉.

▷ 한국 속담 풀이집 〈Tigers, Frogs, and Rice Cakes〉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