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 외국인의 한글 사랑]
일본인을 위한 실용적인 한-일 사전 준비하는 유타니 유키토시 도시샤대학 교수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으며, 한국 관련 연구자들도 생각보다 적다. 특히 한국어사전 편찬에 관련된 학자들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하지만 연구 열기만은 한국 못지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도시샤대학의 유타니 유키토시 교수의 작업은 단연 빛난다. 그가 중심이 되어 몇몇 교수가 함께 1993년에 쇼각칸(小學館)에서 발행한 <조선어사전>은 수록 어휘가 방대한데다 주석도 매우 정밀해 일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나 연구자들에게 필수품이다.
유타니 교수는 교토대학 언어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덴리대학과 도야마대학을 거쳐 지금은 일제 강점시대에 윤동주와 정지용이 다닌 학교로 유명한 도시샤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라디오의 한글 강좌도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어사전>(공편)을 비롯해 <한글의 기초>(1988), <조선어 입문>(1996), <일-한 대조언어학 입문>(2003) 등 모두 11권이 있다.
사전다운 사전도 없던 시절… 유타니 교수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1970년대 초반에는 교재는 물론 사전다운 사전도 없었다. “당시 시판되고 있던 참고서 가운데 하나는 1960년대 초에 이른바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송지학씨의 <기초 조선어>이고, 다른 하나는 이시하라 로쿠조 교수와 아오야마 히데오 교수의 <조선어 4주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기술 방법이 달랐습니다. 전자가 이론적이라면 후자는 실용적이었어요. 그래서 우선 두 책을 대조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이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초기부터 적지 않은 어려움에 부닥쳤다. “사전은 어휘도 적고 설명도 제대로 안 된 것밖에 없어서, 문학작품은커녕 논설문을 읽을 때도 사전에 없는 단어들이 많아 고생했습니다. 특히 어미의 미묘한 차이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비례해 발견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있었지요.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다가 문맥에 딱 맞는 말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어떤 것에도 비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파 라디오를 갖고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을 들으면서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혔다. 한국어사전을 만들게 된 계기는 대학 강의에서 좋은 사전이 없으면 교육적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부터다. 마침 쇼각칸에서 한-일 사전을 만드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기존 한-일 사전들의 문제점을 보완한 좋은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도 있었다. 기존의 사전들은 한국에서 출판된 국어사전(한국어-한국어 사전)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한국의 국어사전에는 고지엥(廣辭苑)과 같은 일본의 사전을 베낀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이것을 실감한 것은, 덴리대학에 근무할 때 <현대 조선어사전>의 개정에 관여하면서였습니다. 사실 이 사전의 개정 작업은 혼자 도맡다시피 했는데, 그 기초적인 작업 중 하나가 한자어들을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국의 사전과 고지엥을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한국 사전의 뜻풀이가 고지엥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심지어 일본 문화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뜻풀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어요.” 발음기호 없어선 안 된다 그는 조선어사전의 편찬 방침을 이렇게 정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사전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인들이 쓰는 국어사전에는 필요 없는 정보, 예컨대 ‘가면’과 ‘가거든’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또 ‘안, 속, 가운데’에는 어떤 구별이 있는가, 그런 점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종래의 사전에는 실리지 않은 용법을 찾아내 새로운 뜻풀이를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실용적인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예로 발음기호를 들 수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는 한글은 그대로 발음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는 오해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어에는 글자, 곧 한글대로 발음되지 않는 단어가 적지 않고, 그 중에는 ‘사건’처럼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된소리가 되는 단어도 있습니다. 따라서 발음기호가 없는 한국어사전은 실용적인 것이 못 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그는 일-한 사전의 기능도 부여하려고 했다. 권말에 간단한 일어 색인을 수록한 것은 그 일환이며, 작문할 때도 도움이 되게끔 동사와 형용사에는 활용 번호를 붙여 권말의 활용표를 찾으면 복잡한 활용형을 자동으로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교토=글 · 사진 고영진 | 도시샤대학 언어문화교육연구센터 조교수 youngko@mail.doshisha.ac.jp

사진/ 유타니 교수와 그의 역작 <조선어사전> 표지.
사전다운 사전도 없던 시절… 유타니 교수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1970년대 초반에는 교재는 물론 사전다운 사전도 없었다. “당시 시판되고 있던 참고서 가운데 하나는 1960년대 초에 이른바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송지학씨의 <기초 조선어>이고, 다른 하나는 이시하라 로쿠조 교수와 아오야마 히데오 교수의 <조선어 4주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기술 방법이 달랐습니다. 전자가 이론적이라면 후자는 실용적이었어요. 그래서 우선 두 책을 대조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이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초기부터 적지 않은 어려움에 부닥쳤다. “사전은 어휘도 적고 설명도 제대로 안 된 것밖에 없어서, 문학작품은커녕 논설문을 읽을 때도 사전에 없는 단어들이 많아 고생했습니다. 특히 어미의 미묘한 차이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비례해 발견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있었지요.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다가 문맥에 딱 맞는 말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어떤 것에도 비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파 라디오를 갖고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을 들으면서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혔다. 한국어사전을 만들게 된 계기는 대학 강의에서 좋은 사전이 없으면 교육적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부터다. 마침 쇼각칸에서 한-일 사전을 만드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기존 한-일 사전들의 문제점을 보완한 좋은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도 있었다. 기존의 사전들은 한국에서 출판된 국어사전(한국어-한국어 사전)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한국의 국어사전에는 고지엥(廣辭苑)과 같은 일본의 사전을 베낀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이것을 실감한 것은, 덴리대학에 근무할 때 <현대 조선어사전>의 개정에 관여하면서였습니다. 사실 이 사전의 개정 작업은 혼자 도맡다시피 했는데, 그 기초적인 작업 중 하나가 한자어들을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국의 사전과 고지엥을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한국 사전의 뜻풀이가 고지엥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심지어 일본 문화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뜻풀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어요.” 발음기호 없어선 안 된다 그는 조선어사전의 편찬 방침을 이렇게 정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사전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인들이 쓰는 국어사전에는 필요 없는 정보, 예컨대 ‘가면’과 ‘가거든’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또 ‘안, 속, 가운데’에는 어떤 구별이 있는가, 그런 점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종래의 사전에는 실리지 않은 용법을 찾아내 새로운 뜻풀이를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실용적인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예로 발음기호를 들 수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는 한글은 그대로 발음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는 오해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어에는 글자, 곧 한글대로 발음되지 않는 단어가 적지 않고, 그 중에는 ‘사건’처럼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된소리가 되는 단어도 있습니다. 따라서 발음기호가 없는 한국어사전은 실용적인 것이 못 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그는 일-한 사전의 기능도 부여하려고 했다. 권말에 간단한 일어 색인을 수록한 것은 그 일환이며, 작문할 때도 도움이 되게끔 동사와 형용사에는 활용 번호를 붙여 권말의 활용표를 찾으면 복잡한 활용형을 자동으로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교토=글 · 사진 고영진 | 도시샤대학 언어문화교육연구센터 조교수 youngko@mail.doshisha.ac.j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