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는 이유… 유럽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역사·정치적 맥락
지난 6월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5가지 경제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EURO)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의 주장이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해도 영국 정부의 결정이 경제와 관련 있다고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사람들은 유럽연합(EU)과 유로에 점점 강한 적대감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현 블레어 정부가 유로화 가입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지금으로서는 통과될 것 같지 않다. 애초 유로화 가입을 강하게 주장하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이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지금까지 유로화 가입을 옹호하던 재계조차 의견이 분열되어 있다.
‘너도 유럽이냐’는 빈정거림
유로화 가입 논쟁은 단순히 통화 재편 문제만은 아니다. 이는 가입 반대파들에게는 바로 주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은 독자 통화와 이자율 없이 영국은 독립성을 상실할 것이며, 초국가 유럽에 흡수되어버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편 가입 찬성파들은 반대 의견에 대해 외국인 혐오증적 공포이며 유로화 가입으로 영국의 독자성이 위협받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도리어 영국이 미적거리고 있는 사이 무역과 투자 기회를 놓치게 되며, 결국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들 역시 유럽과의 정치적 통합은 원치 않고 있다.
영국이 유로화 가입을 망설이는 뿌리 깊은 이유는 영국이 제국주의 시대 이후 자신감과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딘 애치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영국은 제국을 상실한 이후 자기 역할을 못 찾고 있는 나라’다. 제국주의 시절 <더 타임스>의 한 머릿기사에서는 ‘영국해협의 안개로 대륙이 고립되다’라고 묘사할 정도로 세계 중심으로서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이제는 되려 영국 스스로가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유럽국가들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63년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반대하면서, 영국은 유럽국가로서는 자격미달이며 유럽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당시 드골의 본심은 영국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을 제거하는 데 있었으나,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영국을 밉살스럽게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전에서 반전 입장을 표명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과 달리 영국의 노골적인 친미적 행태를 두고 유럽인들은 ‘너도 유럽이냐’고 빈정거린다.
영국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리적으로 유럽에 속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들과 다른 독자적 행보를 걸어온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16세기 영국인들의 인식에는 자신들이 하나의 세계였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을 가리켜 ‘왕좌의 섬’ ‘또 하나의 에덴’ ‘조물주가 만든 요새’ 등으로 자화자찬을 했다. 하지만 항상 영국과 유럽 본토 사이는 긴장이 존재했다. 영국은 신교도의 종교개혁으로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가톨릭에 대항했다. 그 결과 스페인 무적함대의 공격까지 받게 되었다. 한편 영국은 의회제도를 한층 발전시키면서 자신을 유럽 귀족정치에 대항한 민주주의의 선봉으로 여겼다.
제국 상실 뒤 유럽경제공동체 가입
영국인들의 눈으로 볼 때 유럽은 18·19세기 혁명으로 온갖 ‘난리’를 치른 끝에 결국 나폴레옹 전제정치의 획일적 지배로 평정되고, 다시 영국을 침략한 위험한 존재였다. 급진적 비전을 기치로 내걸고 극단적 혁명을 겪은 대륙과는 대조적으로 영국은 선례와 관례에 입각한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해왔다. 영국인들은 자국의 온건한 실용주의 노선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반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인들에게 유럽은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못 믿을 곳’으로 각인된다. 이런 유럽대륙에 대응한 영국의 전략은 ‘세력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는 어느 한 국가가 유럽을 획일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 동맹을 맺는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경제·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현저히 줄면서 유럽에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즉,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식민지의 상실과 더불어 영국은 경제적 침체를 겪었으나 유럽경제공동체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결국 영국은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계기로 유럽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영국은 유럽경제공동체에 경제적 목적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들은 목적이 조금 달랐다. 전쟁에 시달린 이들 나라는 대체로 유럽의 정치적 안정을 추구했다. 독일은 나치 독일에 대한 거부감을 씻고 거듭나길 원했고, 프랑스는 당시 세계가 영국과 미국 사이의 앵글로-아메리카 동맹에 지배되는 데 제동을 걸고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기 위한 토대로 유럽경제공동체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영국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시 나치독일에 함께 대응한 믿음직스런 동맹인 미국에 더 의지하며 이에 대한 어떤 리스크 부담도 기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 방위나 대외정책과 관련해 다른 유럽국가들, 특히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등과의 사이에 늘 미묘한 긴장감과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기관차는 멈출 것 같지 않다. 영국인 스스로도 지금은 반대하나 현실적으로 언젠가는 유로화에 가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체념 섞인 무력감 때문에 영국인들은 더 움츠리면서도 은근히 유럽에 대한 반감은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사실 영국과 유럽의 다른 나라들 사이에는 법뿐 아니라 일상적인 제도까지 상당히 다르다. 과거 영국은 나폴레옹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다른 유럽국가들에 일괄적으로 이식한 법과 제도 등으로부터 자신들의 고유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서 유럽의 공통 기준이 되어버린 많은 것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어 정체성 위협을 느끼고 있다. 가령 나폴레옹이 옮겨다 심은 ‘미터법’이 전 유럽에 보편화돼 언젠가는 영국도 야드, 마일 등 고유의 표기법을 불가피하게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영국의 유로화 가입에는 또 다른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영국은 변동환율제를 폐지했다. 파운드가 평가절상되면서 유로의 신용을 급격히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유로통화권의 성장률은 느리고, 단일 이자율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많은 영국인들은 과연 유럽연합 가입이 경제적 이득이 되는지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로 경제적 성장은 누리고 있지만, 유럽 대륙은 아직도 각종 규제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 가입 뒤 영국의 일부 산업분야, 가령 어업, 제조업 그리고 농업은 눈에 띄게 침체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입장 뒤바뀌어
영국의 유럽정책은 언제나 두 갈래로 나뉘었다. 흥미로운 현상은 노동당은 1980년대 초 반유럽노선을 견지했으나 이제 노동당과 노동조합이 유럽식 시장규제를 지지하고 있으며, 반면 이전에 친유럽노선을 유지했던 보수당과 재계가 유럽연합이 가하는 각종 제한을 반대하는 등 보수-진보 진영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영국이 미국과 유럽의 다리로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로화 가입을 주장하면서도 유럽 안에서 새로운 동맹은 신생 동유럽국가들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논리를 편다. 결국 영국의 유로화 가입은 단순히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이런 복잡한 역사·정치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영국인들은 경제적 측면에서 유로화 가입의 필요성을 내심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사회·정치적 파급력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런던=줄리안 체인(Julian Cheyne) 전문위원 Juliancheyne@onetel.net

사진/ 영국의 유로화 가입 논쟁은 단순한 통화 재편이 아니라, 가입 반대파들에게 주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영국 파운드화(왼쪽)와 유로화.(GAMMA)

사진/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 애초 유로화 가입을 강하게 주장하던 노동당 정부도 이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GAMMA)

사진/ 과거 영국은 나폴레옹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다른 유럽국가들에 일괄적으로 이식한 법과 제도 등으로부터 자신들의 고유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