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정전의 늪에 빠진 뉴욕의 풍경… 전력산업 사유화와 ‘풍요’의 삶이 문제
북미대륙 북동부의 지역을 강타했던 14일의 정전사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사무실을 빠져나가 무료한 여름날 오후 한잔의 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어느 순간부터 건물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서성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들어보니 전기가 나갔다는 것이다. 그 뒤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정전사태가 꽤나 넒은 범위에 걸쳐 일어난 대규모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77년에 비해 질서 유지
대충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 랩음악이 크게 흘러나오던 휴대용 오디오 플레이어들은 이날따라 라디오 속보를 커다랗게 켜놓은 채 수십명의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가게들 앞에는 건전지나 초를 사려는 사람들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 아름 생수병을 사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철제 셔터를 내리는 상점 주인의 왠지 긴장돼 보이는 얼굴 표정에는 1977년을 강타했던 뉴욕의 정전사태와 당시의 폭동에 대한 두려운 기억이 떠오르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스무 시간 남짓 지속된 2003년 여름의 정전사태는 1977년의 그것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1977년 뉴욕의 정전사태는 각각 1천건이 넘는 화재와 약탈, 그리고 4천명에 가까운 구속자를 만들었다. 1970년대 초반의 오일쇼크 이후 계속된 경제침체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뉴욕시와 뉴욕경제는 이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2003년 여름의 정전사태는 극소수의 절도 행위를 제외하고는 아주 평화롭게 지나갔다.
어둑해질 무렵 뉴욕의 거리는 인파로 북적댔지만 무척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아직도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가게들은 안에 초를 켜놓은 채 차례로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있었고, 그 가게들 앞에서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신호등이 들어오지 않는 사거리에는 경찰이 아니면 일반인들이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숨 막히게 들어선 빌딩 안을 피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간이식 의자에 앉아 마치 마실이라도 나온 듯 서로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트럭에서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밤에는 곳곳의 시내 광장들에서 파티가 열리기도 했단다. 왠지 모르게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1977년과의 선명한 대비 때문인지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이번의 대규모 정전사태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공공질서를 유지했던 뉴요커들의 모습에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했고, 2001년 9·11 사태 이후로 더욱 성숙해진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냈다. “뉴욕에 산다면 이제 이런 일 따위에 당황하면 안 되죠.” 방송사 기자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한 시민의 말은 최근 뉴욕과 뉴욕시민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의 폭력이 평화로 바뀐 것만이 이번 정전사태가 보여주는 변화는 아니었다. 책임 있는 단위가 사라졌다
1977년, 시민들은 뉴욕의 정전사태가 낙뢰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으며, 동시에 지역 전력회사였던 콘에디슨이 정전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당시 뉴욕시장은 정전사태와 이를 계기로 터진 폭동에 분노하며 공개적으로 그 전력회사를 크게 질타했고, 준공기업이었던 콘에디슨은 낙뢰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전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했다. 그러나 2003년의 정전사태는 전기가 들어온 지 이틀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그 정확한 원인에 대한 공식발표도 없고 정전사태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뜬구름 잡는 논쟁만 있을 뿐이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전력산업의 사유화와 이로 인한 분절화를 꼽는다. 1977년 당시에는 콘에디슨이 뉴욕주의 모든 발전소와 송배전 시스템을 총괄적으로 담당하는 유일한 전력회사였다. 그러나 지금 콘에디슨은 뉴욕주 내의 송배전 시스템만을 소유하고 관장할 뿐, 전력생산이나 다른 주 송배전 시스템의 운영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분권화의 전통이 강했던 미국에서 각 주마다 나름대로 독자적인 전력운영 시스템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문제는 전력생산과 송배전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전력 시스템이 조금씩은 다른 논리를 가지고 운영되는 작은 시스템들로 분절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미국 북동부의 전력 시스템을 총괄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책임 있는 단위가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연방정부나 주정부 차원에서 전력 생산과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시킬 만한 어떠한 힘도 법제화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1980년대 말 전력산업 규제법안으로 인해 몇몇 재판에서 큰 손해를 입었던 사적 전력회사들은 그 이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법을 바꾸게끔 로비를 벌였고, 90년대 초 전력산업의 사유화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 이르러서는 이전까지 존재했던 규제법안들이 폐기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미국 북동부 지역의 전력생산과 송배전의 안정성은 법적 강제력 없는 자발적 가이드라인에만 의존하게 되었던 것이다.
총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전력의 생산과 수급이 여러 갈래로 분할된 가운데 전체적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게다가 분절화된 전력라인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는 조건…. 이런 조건에서 제대로 된 정전사태에 대한 분석이나 책임소재 규명이 명확하게 일어날 리는 없다. 그렇다고 사유화나 탈규제화만이 이번 정전사태의 원인이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1977년의 정전사태, 그리고 그보다 앞선 1965년 뉴욕에서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철저하게 공공화된 전력산업 구조 아래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력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규제법안들이 갖춰지고 책임소재가 명확해야 전력기업들이 투자와 관리에 대한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사유화나 탈규제화가 되지 않았다고 정전사태가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노숙으로 몰린 비싼 호텔 투숙객들
이와 관련해 또 한 부류의 전문가들은 전력의 송배전 시스템 자체가 이미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으며, 오늘날 전력 시스템이 대규모화되고 복잡해지는 조건에서 이와 같은 사고는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최강의 신화와 최고의 풍요를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퇴근 뒤에도 쉼 없이 가동되는 에어컨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로지 소비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절약’이라는 개념이 낯선 것이 되어버린다. 이런 가운데 더 많은 전력생산을 통해 정전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전력소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측의 주장이 맞서는 양상도 흥미롭다.
어쨌거나 이번 정전사태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지루하게 계속될 듯하다. 이곳 언론들은 사유화와 탈규제화가 정전사태의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를 원인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는 또 경계하는 모습이다. 이미 구조조정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져버린 것마냥 말이다.
하지만, 이번 정전사태를 직접 겪고 또 지켜보면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어떤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뉴욕의 비싼 호텔들에 투숙했던 손님들은 이번 정전사태로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열쇠가 아니라 마그네틱 카드를 사용하는 열쇠를 모두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비싼 돈을 내고 호텔에 투숙했던 많은 손님들은 호텔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생전 처음 거리에서 신문을 깔고 자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호텔에 환불을 요구했으나, 호텔은 이번 사태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환불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아직까지 공공화되어 있는 뉴욕의 대중교통은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정전사태로 인해 지하철에 3만5천명이 갇히는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구급대원들은 가장 먼저 지하철, 기차와 역에 갇혀 있는 시민들을 구출하는 데 보내졌고, 뉴욕의 교통당국은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 시민들에게 시내버스 사용을 무료화했다. 비록 평소보다 느려지긴 했지만, 그 덕에 나도 일터가는 왕복길을 무료로 다녀올 수 있었다.
뉴욕=김선철 | 자유기고가 jollary@yahoo.com

사진/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퇴근자들이 뉴욕 중앙역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이번 정전을 계기로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GAMMA)
어둑해질 무렵 뉴욕의 거리는 인파로 북적댔지만 무척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아직도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가게들은 안에 초를 켜놓은 채 차례로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있었고, 그 가게들 앞에서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신호등이 들어오지 않는 사거리에는 경찰이 아니면 일반인들이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숨 막히게 들어선 빌딩 안을 피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간이식 의자에 앉아 마치 마실이라도 나온 듯 서로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트럭에서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밤에는 곳곳의 시내 광장들에서 파티가 열리기도 했단다. 왠지 모르게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1977년과의 선명한 대비 때문인지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이번의 대규모 정전사태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공공질서를 유지했던 뉴요커들의 모습에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했고, 2001년 9·11 사태 이후로 더욱 성숙해진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냈다. “뉴욕에 산다면 이제 이런 일 따위에 당황하면 안 되죠.” 방송사 기자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한 시민의 말은 최근 뉴욕과 뉴욕시민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의 폭력이 평화로 바뀐 것만이 이번 정전사태가 보여주는 변화는 아니었다. 책임 있는 단위가 사라졌다

사진/ 시민들이 정전 뒤 암흑으로 변한 부르클린 다리를 건너고 있다. 이날 시내 곳곳의 거리와 다리는 걸어서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댔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