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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소수인종의 식민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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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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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네트워크 | 채팅아시아]

아시아 해방의 달에 생각해보는 각국의 민족주의 언어정책… 소수자들이 고민과 분노를 나누다

아시아는 과연 식민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되었는가. 이번주 아시아 채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는 아시아의 ‘소수’들을 초대해 고민과 분노를 함께 나눠보기로 했다.


뿌리내렸으나 차별받는 자들

8월은 아시아에게 뭔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달이다. 9일 싱가포르, 15일 한국, 17일 말레이시아, 31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이 줄줄 이어지며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와 상관없이 여전히 ‘전쟁’과 ‘식민지’라는 묵직한 주제가 따라붙는다.

아시아는 과연 식민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되었는가. 이번주 아시아 채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는 아시아의 ‘소수’들을 초대해 함께 고민과 분노를 나눠보기로 했다.

국적을 묻자 “미국의 53번째주, 싱가포르”라 대뜸 대답해버린 아랍계 싱가포르인 카이루딘, 스스로를 2등 국민으로 규정해버린 인디아계 말레이시아인 쉬린, 그리고 살기 위해 인도네시아인 흉내를 낼 수밖에 없었다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치웨이, 모두에게 문제는 ‘말’이었다. 언어의 충돌과 갈등, 아시아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런 주제는 모국어 선택과 교육이라는 근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한 데서부터 비롯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말레이 중심주의 언어정책은 결국 말레이계를 포함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놓았다.” 이 채팅을 위해 자문을 구했던 말레이시아 정치학자 화리쉬 눌 박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식민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지식인과 무식한 놈, 가진 자와 가난뱅이, 이주민과 원주민을 나눠 통치했던 이른바 ‘분리정책’이 민족주의를 내건 아시아 독립국가들에서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아시아 국가들은 저마다 정체성을 찾고자 맨 먼저 손댔던 일이 언어정책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말레이어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인도네시아어는 인도네시아의 국어로 각각 채택되었다. 그러나 식민주의를 대신한 민족주의는 아시아 각국이 지닌 다양한 민족·인종·문화를 무시한 채 다수중심의 일방적인 언어정책을 구사함으로써 사회적 분열을 조장해왔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1960년대 후반부터 중국어 사용을 금지했고, 말레이시아는 ‘말레이 중심주의 정책’을 통해 소수민족 언어교육을 폐지해버렸다. 싱가포르는 영어식 교육을 받은 이들이 중국어 사용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서양에 접근하는 경제적 생존방식을 채택하면서 영어가 공식어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런 언어정책 속에서 ‘소수’들은, 이번 채팅에 참가한 이들처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이민 3세대로 이미 각국에 깊이 뿌리내렸음에도 여전히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있는 실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독립국가 아시아에서 고유한 민족·인종적 정체성이라는 인간의 조건도, 또 평등이라는 시민의 권리도, 그리고 모국어를 선택할 수 있는 태생적 자유도 없다는 말이다. 식민주의자를 대신해 민족주의로 무장한 전체주의자들이 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정치권력, 거대자본가, 엘리트관료, 주류언론과 학자들의 부를 부풀리는 일에 종사하는 아시아의 언어정책 아래 시민들은 새로운 식민주의자들을 훔쳐보고 있을 뿐이다.

유니스 라오(Eunice Lau)/ 전 <스트레이츠타임스> 기자 letchatasia@hotmail.com



채팅 참가자 : 쉬린(인디아계 말레이시아인), 카이루딘(아랍계 싱가포르인), 린치웨이(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채팅방 주인 : 유니스 라오(Eunice Lau)
채팅 날짜 : 2003년 8월6일

유니스 : 아시아 네트워크 채팅방에 오신 모두를 환영합니다. 8월15일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이고 그로부터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식민지 상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죠. 그러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아시아 각 나라들이 지독한 민족주의로 무장하면서 사회 내부 소수인종들이 박해를 받는 새로운 식민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오늘 참여자들이 모두 이른바 ‘소수’들이니 여기 채팅방에서 마음껏 자유를 구가해봅시다. 특히 언어와 문화 같은 걸 중심에 놓고 경험들을 나눠보았으면 좋겠어요.

당신 국가의 언어정책을 인정하는가

치웨이 : 난 뿌리 없는 중국인, 문화적 정체성 같은 게 없는. 학창시절부터, 내가 중국인임을 드러내면 비난을 받았으니. 인도네시아인일 때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지.

쉬린 : 난 인디언이지만 (타밀) 영어와 말레이어밖에 몰라. 영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사용해왔는데, 학교를 마치고 보니 좋은 직업에는 반드시 훌륭한 영어가 따라붙는 거야. 해외파들에게 ‘쨉’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지. 말레이어만 중요하게 다루는 학교에서 영어를 워낙 ‘개판’으로 배웠으니. 부모를 원망했지! 그렇더라도 인디아 유산은 자랑스러워해왔고.

카이루딘 : 난 아랍하고도 예멘 3세대인데 동남아시아에서 아랍어를 배운다는 일이 참 어려워.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말레이어를 모국어처럼 배웠고 무슬림이니 저절로 말레이인 싱가포르로 살아가고 있어.

유니스 : 지금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의 언어정책을 인정하는가?

쉬린 : 시스템 속에서 살아왔으니 크게 할 말은 없지만 말레이시아는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은 점은 불만스러워. 싱가포르를 잃어버린 것도 그런 배경이야. 말레이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영어도 중요하다는 뜻이야. 내 경우엔 집에서 영어를 쓰니까 비교적 행운인 셈이지만.

치웨이 : 인도네시아 언어정책, 절대로 인정하지 못해.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려면, 나와 다른 문화, 언어, 인종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건, 만약 한 정부가 책임 있는 시민을 강조한다면, 그 시민들의 문화, 인종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지. 사회란 건 ‘오케스트라’ 아냐? 모두 바이올린만 연주한다면 어떻게 음악이 나오겠어?

유니스 : 거, 기막힌 표현이네! 그럼 당신 부모세대에게는 그런 언어정책이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가령 직업을 구한다든지 하는 데 어려움 같은 건 없었을까?

쉬린 : 전체는 잘 모르지만, 양쪽 말에 다 정통했던 우리 부모에게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애. 영국 식민 시절 영어가 잘나갔으니.

카이루딘 :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영어를 썼다니 우리쪽에도 별 문제가 없었고. 할아버지가 식민통치 시절 법원 영어 통역자 노릇을 했으니, 그 시절에는 괜찮았다는 건데 문제는 해방되고부터야. 말레이어가 서툴다보니 결국 말레이시아쪽에서는 살 수 없었던 거지.

치웨이 :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들은 개인 사업을 하거나 외국 기업들과 연을 대면서 살았지. 우리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어도 할 수 있고 또 개인사업을 했으니 별로 영향이 없었다고 해. 중국어 사용금지가 중산층 위로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차피 중국인들이 정부 관리로 진출하는 경우도 없었으니.

유니스 : 가령, 말레이시아에서는 오히려 말레이어 우선정책으로 영어를 못하는 말레이계 사람들이 직업을 갖는 데 오히려 손해보는 역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쉬린 : 사실이야.

사진/ 인도네시아의 화교들. 식민주의를 대신한 민족주의는 아시아 각국이 지닌 다양한 민족인종문화를 무시한 채 다수 중심의 일방적인 언어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사회적 분열을 조장해왔다.(SYGMA)

아, 그 지겨웠던 학창시절!

카이루딘 :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해봐. 왜 말레이계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못할까? 근데 문제는 단순히 언어정책 탓만이 아니라는 거야. 거꾸로 중국인은 말레이어를 곧잘 하는 걸 보면. 이건 부미푸트라 정책- 말레이계에게 모든 분야별로 특권을 주는- 의 결과가 아니겠냐는 거야. 그런 정책이 말레이계의 의식이 되어버린.

쉬린 : 사실은 말레이계에게는 모든 게 쉬워. 권력과 정치적 도구인 언어에서부터 말이야. 그러니 힘들게 일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거지.

카이루딘 : 우리 부모는 싱가포르가 찢어져 나온 뒤로는 말레이시아에 가질 않아. 바로 그 ‘말레이시아 의식’ 탓이야. 우리 아버지는 마하티르 총리의 개혁정책 지지자였지만 그 극단적인 민족주의인 ‘말레이시아화’ 정책에는 반대했다고 하더군.

유니스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양쪽 정부 모두 사기쳤던 거지 뭐. 말레이시아는 스스로에게 말레이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했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어를 거부한다면서 대신 영국 표준말을 빌렸으니. 둘 다 모두 극단적이긴 마찬가지 아냐?

쉬린 : 헤헤헤… 맞는 말이야. 그러면서 둘 다 극단적인 서구화를 시도했으니.

치웨이 : 물 논쟁이 좋은 예잖아.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떠벌리면서도 그깟 물 문제 하나 풀어내지 못하는 걸 봐. 말레이시아는 감성적인 말레이 용어를 쓰고 싱가포르는 딱딱한 표준 용어를 쓰니.

유니스 : 아무튼 어떤 말을 쓰든 간에, 당신들은 지금 각자 정부의 융통성 없는 언어정책 탓에 소수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인가?

쉬린 : 예스 마담! 난 그냥 2등 국민이야. 아니 3등 국민. 정부는 말레이계나 오랑 아스리(원주민)가 아닌 내게 아무런 지위를 주지 않으니. 이런 판에 중국인들은 섞여 살아보겠다고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다지? 인디언들은 농담밖에 몰라. “다 밀어내거나 아니면 우리가 떠나자.” 아니면 떼돈을 번 뒤 다른 나라로 가서 살자고.

카이루딘 : 학교에서는 진짜로 힘들었어. 지지 않으려고 공부했던 기억뿐이야. 아직도 학창시절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어. 한놈이 내게 했던 말인데 들어볼래. “넌 내가 본 말레이 중에 가장 잘생겼어. 말레이는 너처럼 잘생긴 경우가 드물어.”

쉬린 : 아, 그 지겨웠던 학창시절. 죽고 싶었어!

치웨이 : 지금은 정부가 중국어 사용금지 정책을 버렸지만, 그 전에는 차별이 극심했지. 난 영리해서, 그 차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뿌리를 강하게 키웠어. 하하하! 대학시절 논쟁이 벌어지자, 한 친구가 대뜸 하는 말이 ‘중국으로 꺼져라’였어. 그 길로 말 다했지, 뭐!

한국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생각

유니스 : 참, 말이 난 김에 하나 물어보자. 언어정책이라고는 필요도 없는, 수천년 묵은 전통어 하나만으로 통일된 국어를 사용해온, 그래서 복에 받쳐서 그러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사회에서 일부가 심심찮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말들을 하고 있는가 본데, ‘소수’들인 당신들 생각은?

치웨이 : 세계시민으로서 교류하자는 의미 같은데 문제는 뿌리와 조화겠지.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게 어때? 다양한 언어에 다양한 문화!

카이루딘 : 영어로 다 끝날 것도 아냐. 한 인종의 언어를 유지하면서 다른 쪽의 뿌리를 알자는 거지. 그런 면에서 영어만이 신앙이 될 수는 없어.

쉬린 : 영어를 하라고 해. 다만 우리들 유산을 잃지는 말고.

유니스 : 그럼 당신들은 그 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인가. 비록 당신 정부가 일방적인 언어정책을 구사하고 있지만?

쉬린 : 완벽하진 않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고 여겨.

카이루딘 : 언어정책은 내 유산에도 정확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봐. 말레이어 강도를 낮추며 영어를 ‘주어’로 쓰게 되면서부터 학교에서 영어로 된 식민지 버전의 영어 역사를 배웠는데, 마치 외국 역사를 배우는 기분이었으니. 요즘 말레이로 된 역사책을 다시 보니 말레이시아 역사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살아나는 거야. 해서 지금 아랍 역사를 공부하는 중이지.

쉬린 : 그건 정말 중요한 부분 같아!

유니스 : 화제를 좀 옮겨볼까. 부모님들은 식민지 시절이 어땠다고들 해 2차대전 뒤 해방되고부터 시절과 비교해서.

쉬린 :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고들 하던데.

카이루딘 : 특히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인디언과 아랍인들에게는 그랬다고들 하지.

쉬린 : 예를 들면 우리 이모 할머니들쪽은 인디아보다 영국쪽에 더 가까웠다고 여겼던 모양이야. 그이들은 요즘 같은 횡설수설 영어가 아니라 진짜로 본토 순종 표준영어를 했다는 거지. 이모들 가운데 둘은 서양인과 결혼까지 했으니. 그 다음 우리 극단적인 영국식 할머니, 쿠키와 케이크를 만드는. 그이들에게는 향수 같은 게 있음이 분명해.

카이루딘 : 우우우! 식민통치 시절 인디언들과 아랍인들은 요즘 말레이들처럼 잘 수용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 식민시절이 해방 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유니스 : 어째, 그 말이 좀 이상하지 않나?

카이루딘 : 사실이야. 탈식민지 이후를 보면, 개인에게 집단에 대한 소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잖아. 말레이시아 역사를 살펴보면 요즘처럼 개인이 어떤 땅에 소속 당해 있다는 강박감이 전혀 없었어.

치웨이 : 중국인들도 식민시절 큰 역할을 했다고 하지. 식민통치 당국이 원주민들을 하급인간으로 분류해버렸으니 자연스레 중국인들이 대우를 받았던 모양이야. 난 절대 인정하지 못하지만, 일부 중국인들 사이에는 식민시절이 더 좋았다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야. 사람이 뭐겠어? ‘평등’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그나마 동물들 사이에서도 체면이 서는 것 아냐? 식민통치가 좋았다고 믿는 이들은 그게 누구든 독립 인도네시아에 살 자격이 없다고 봐. 자유를 삶의 편리와 물질로만 따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어. 내 말이 너무 길었나?

유니스 : 쉬린, 그래서 식민통치가 끝난 뒤에는 그 할머니들이 어떻게 되었어?

쉬린 : 세 할머니들은 외국으로 떠났고, 다른 한명은 남아 영어 선생이 되었지 뭐! 그건 언어 탓이 아니었어. 말레이시아가 독립해버리고 말레이 중심사회로 변했으니 어땠겠어? 아, 그러고 또 남은 할머니들도 비록 영어를 썼지만 그래도 말레이시아인이 되려고 노력했다고들 하데. 문제는 다만 말레이계가 아니라고 2등 국민으로 다루는 게 힘들었다는 거야.

유니스 : 부모님들 세대에 비춰 당신들이 더 강한 민족주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쉬린 : 난 전혀. 부모님들은 식민통치와 전쟁을 거친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들을 지니고 있는 듯해. 뭔가, 진짜 역사를 지녔다는 식으로. 우린 좀 다르지 않나?

식민주의자냐 민족주의자냐

카이루딘 : 난 좀 다국적주의자인 편이야. 부분적으로는 내 모습 탓인데, 생긴 게 말레이에서부터 중국까지, 또 파키스탄에서 인디아까지, 아랍에서 알제리까지 와글와글 섞인 듯하니 말야. 아랍어에 ‘사람은 그가 지닌 시간의 아들이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은 그이들 시간의 아들이었겠지. ‘식민주의자냐 아니면 민족주의자냐’ 라는 식의 양자택일 사이에서.

쉬린 : 난 둘 다 아냐!

카이루딘 : 우린 좀 다르지? 우린 잡동사니기도 하고, 정체성 사이에서도 오락가락 하는. 아랍 옷을 걸치고 서양음악을 들으며 아시아 밥을 먹잖아.

쉬린 :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 세대는 더 혼란스러운 거 아냐? 우린 말레이시아인이라 믿으면서 말레이시아인처럼 행동하지 않는… 좀 별난….

유니스 : 뭐가 말레이시아를 특징적으로 드러내줄 만한데?

카이루딘 : 히히히. ‘로작’ 아냐 (로작: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먹는 종합 과일 샐러드)

쉬린 : 아니, 들켰잖아!

카이루딘 : 자, 모두들 역사 공부 좀 합시다. 식민주의는 어땠고 민족주의는 뭔지를 놓고.

쉬린 : 그 지긋지긋한 공부! 유니스 저 사나이를 좀 말려줘.

카이루딘 : 왜, 내가 아랍계라서 싫다는 건가? 그러잖아도 이제 아들놈과 놀 시간이 돼서 이 몸은 떠날까 하는데

쉬린 : 아랍은 좋은데, 당신이 무서워요!

유니스 : 쉬린이 카이루딘을 무서워하고, 카이루딘이 아들 보러가야 하고, 한 15분쯤 전부터 치웨이는 통신불량으로 사라져버렸으니, 이제 마무리를 합시다.

쉬린 : 재밌었어! 바쁜 시간들 내줘서 너무 고맙고,

유니스 : 잠깐, 쉬린, 그건 내 마무리 멘트인데

카이루딘 : 근데, 우리가 떠들고 놀고 한 이게 정말 한국 잡지에, 그것도 시사주간지에 인쇄된다는 게 사실인가? 거짓말은 아니겠지? 진짜라면, 엄청난 일인데! 아무튼 모두들 안녕.

치웨이 : 끝났다고? 겨우 다시 접속해 들어왔더니!

유니스 : 그럼, 둘만이라도 밤새도록 이야기 나눌까요

치웨이 : 아, 그럴 수만 있다면! 아내가 지켜보고 있어서….

유니스 : 긴 시간 동안 골치 아픈 주제를 놓고 인내심을 가져준 모두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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