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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블레어가 던진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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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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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박사 죽음으로 드러난 영국 정부의 이라크 정보 조작… 지지율 떨어지며 총리 측근 사임 압력도

대량살상무기 정보왜곡을 둘러싼 한 과학자의 죽음이 영국 블레어 정부의 추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7월18일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데이비드 켈리 박사가 그의 자택 가까운 벌판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진통제를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고, 손목에는 상처가 나 있어 애초 그는 자살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는 생물·화학무기 전문가로서 국방부의 정책 자문역을 맡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조사에서 핵심 역할을 해온 인물인데 얼마 전 막 이라크에서 돌아온 터였다. 하지만 켈리 박사의 죽음을 둘러싼 파장은 블레어 측근과 블레어 자신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

‘45분설’은 누가 삽입했나

사진/ 7월18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린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당시 켈리 박사의 실종이 보도되며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AFP연합)
사건의 발단은 ‘오늘의 프로그램’에서 앤드루 길리건 기자가 “정부 안보 관계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토니 블레어의 측근들이 영국을 전쟁 개입으로 몰고 가기 위해 정보국의 정보를 선정적으로 가공해 이라크의 군사 능력을 실제보다 과장했다”고 보도한 데서 비롯됐다. 특히 그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두 문건(이른바 ‘9월문건’과 ‘2월문건’)에서 앨러스터 캠벨 공보수석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45분 안에 공격용으로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대목을 고의적으로 끼워넣어 이라크 위협을 각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당사자인 캠벨은 발끈하며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나아가 그는 기사에 인용한 ‘고위 소식통’이 누군지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리건 기자는 보도윤리상 밝힐 수 없다고 버텼고, 평소 전쟁 반대 논조를 펼쳤던 와 블레어 총리간에 쌓인 감정은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정부는 에 정보를 준 장본인이 켈리 박사라고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고, 주요 일간지들은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결국 켈리 박사는 하원 외교위원회에 소환되어 심문을 당했고 이틀 뒤에는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켈리 박사는 비교적 조용한 성격에 공적인 자리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성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국방부의 고위 자문역이었으나 평소 블레어쪽에 의해 이라크의 군사능력이 과장되고 선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전문가로서 몹시 언짢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기자들을 만나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고, 그 결과 마침내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심하게 추궁을 당했을 뿐 아니라, 이것이 텔레비전에까지 방영되어 마치 공개재판과 같은 모양새를 띠게 되었다. 최근 블레어쪽이 여론을 통해 ‘그럴 자격도 없는 2류 과학자’로 전락시킨데다 청문회에서 바보 취급까지 당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극도의 분노와 모멸감에 사로잡혔다.

사진/ 자택 근처 벌판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켈리 박사. 그는 생물·화학무기 전문가로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조사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다.(AFP연합)
켈리 박사는 청문회에서 기자들을 만난 것은 사실이나, 자신이 총리실 통신국장 캠벨을 지명해 그가 11월문건에 ‘45분설’을 삽입한 주범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기자를 만나 토니 블레어 측근들이 ‘45분설’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고 불평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켈리 박사가 ‘45분설’을 문건에 넣은 사람이 공보수석인 캠벨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는지 여부는 이제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켈리 박사는 입을 다물었으나 길리건 기자가 지레짐작으로 허위·과장 보도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문제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평가 문건에 ‘45분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근본적으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를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답하는 정부

그렇다면 영국을 전쟁 수렁으로 몰아넣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평가 문건은 누가 만든 것일까. 더구나 ‘9월문건’에는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수입했다”며 핵무장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이는 미 중앙정보국(CIA)도 믿지 않는 정보였다. 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45분설’도 이제 정황적·기술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평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낭설까지 집어넣어 필사적으로 영국을 전쟁으로 몰고 간 문건의 필자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진실이 밝혀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국 정부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흔히 영국을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지칭한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곧 영국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는 ‘비밀주의’가 정부 안에 판을 치고 있다. 하원 외교위원회는 다른 모든 관련 인물들을 조사했지만 정작 영국을 이라크 전쟁 참여로 몰아간 명분을 만든 두 문건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정보국은 캠벨과 정부 장관들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진실 여부를 추가로 조사할 수 없다. 하원 외교위원회는 핵심 의문사항에 대한 대답을 끌어낼 권한이 없다.

사진/ 캘리 박사의 죽음을 대서특필한 영국 신문들.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 현 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답하는 정부’로 인식될 정도로 신뢰를 잃고 있다. 정부의 로비 시스템은 언론인들에게 정부 대변인으로부터 내용을 확인할 수 없도록 익명을 전제로 브리핑하게 되어 있으며, 정부의 공식통계는 종종 신뢰를 잃고 거의 가치가 없을 정도로 조작된다. 이런 사례는 비단 블레어 정부에서만 아니라 마거릿 대처 집권 때도 발견된다. 당시 영국 정부는 실업자 통계를 30차례나 수정한 적이 있어 국민들의 눈총을 샀으며, 광우병이 기승을 부려도 정부는 영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강변했다.

정부 발표에 대한 해묵은 불신은 이번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토록 호언장담하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자 영국 정부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 게다가 두 문건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터지자 언론이나 대중들은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영국의 전쟁 개입 결정에 단초를 제공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평가 문건의 많은 부분이 인터넷에서 퍼온 10여년 전의 어느 박사학위 논문에 근거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이라크군의 45분 만의 대량살상무기 공격 가능성 제기는 허술함의 압권으로 지적되고 있다. 생전에 켈리 박사는 이 가능성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그는 청문회에서 “기다리면 나올 것”이라는 블레어의 주장과는 달리 대량살상무기 존재 가능성은 30%밖에 안 된다고 맞받아쳤다.

총리 지지율 한달 만에 12%포인트 떨어져

사진/ 7월30일 월례 기자회견에서 블레어 총리에게 켈리 박사의 죽음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기자들.(AFP연합)
이번 사건은 자칭 선진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는 영국에서도 정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보를 조작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얼마 전 블레어는 미 의회 연설에서 “역사는 우리를 용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용서할 것 같지 않다. 우선 영국 국민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집권 노동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슬람인 거주지역에서 4∼6곳의 의석을 잃어 심대한 타격을 받았으며, 7월21일치 <가디언>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집권 노동당의 지지율이 두달 만에 5%가 떨어진 36%를 보여주고 있다. 블레어 개인에 대한 신뢰성 역시 한달 만에 12%가 떨어진 39%를 기록했다. 켈리 박사 죽음의 파장은 전쟁을 부추긴 블레어 측근들에 대한 여론의 강한 사임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블레어가 던진 부메랑은 이제 그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런던=조임숙 전문위원 joimsoo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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