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등지에서 기부한 중고옷 때문에 아프리카 의류업 고사 위기…수입 금지를 둘러싸고 논란 가열
‘향료의 섬’으로 불리는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는 세계적 정향 산지로 유명하다. 동이 틀 무렵 이 섬에 있는 크웨레크웨 시장에 나서니 생동감이 느껴진다.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 화물차를 여객 운송차량으로 개조해 대중교통 수단으로 사용하는 ‘달라달라’(daladala)들이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거리를 질주하고, 시장의 한 귀퉁이에는 대나무 바구니에 갇힌 닭들이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목을 내밀며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으며, 닭을 팔러 나온 사람들은 그들을 다시 바구니에 집어넣기를 반복한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중고품”
시장은 장보러 나온 사람들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가져온 과일과 야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도로변에는 여러 가지 생필품을 파는 좌판이 펼쳐진다. 펼쳐진 좌판 위에는 행인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갖가지 물건들이, 그 중에서도 중고 옷과 신발이 주류를 이룬다. 동부아프리카에는 흔히 중고 의류를 ‘미툼바’(mitumba)라고 부른다. 모든 형태의 중고 물건들을 통칭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스와힐리어로 ‘꾸러미들’을 의미하는 미툼바는 보통 담배나 면화 등의 물건들을 묶은 꾸러미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다가 이제는 중고 헌옷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흔히 꾸러미째로 수입되어 거리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불리는 이름이다. 중고 의류들이 잠비아에서는 ‘살라울라’(salaula)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바야흐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거대한 ‘미툼바 경제’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케냐를 배경으로 프란체스카 마르치아노가 쓴 소설 <야생의 법칙>의 머리에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항상 남이 사용한 중고품이다”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자동차도, 집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두바이나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중고차들이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거리를 메우고 있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대량 반입되는 중고 헌옷들이 아프리카인들의 몸을 두르고 있으니 이런 표현이 그다지 생경하지는 않다.
유럽에서는 곳곳에 헌옷 수거함이 설치되어 있다. 수거된 헌옷들을 분류하고 재처리해 동구, 러시아연방, 아프리카 등지로 보낸다. 헌옷 수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대의에 동참한다고 믿는다. 서유럽에서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일일이 분류하지 못하고 무게로 달아서 컨테이너에 실어 필요한 곳으로 보내거나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동구권 나라들에서 분류 및 수선 과정을 거친 뒤 재수출되기도 한다. 중고 의류를 선적할 때 적십자사나 비정부기구의 로고를 사용해서 보내기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통관될 때는 수입관세를 보통 무게로 산정해 부과한다. 예컨대 케냐는 중고 헌옷 100kg마다 2500케냐실링(34달러 정도)을 적용하기 때문에 각종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아주 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미국 돈 1달러나 2달러 정도에 상태가 양호한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중고 헌옷 구입은 가난한 자들의 삶의 방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헌옷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지만, 중고 헌옷 구입은 많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있어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궁핍과 이로 인한 구매력 상실의 불가피한 대안이다. 또 잘 선별한 중고 헌옷이 때로는 국내에서 생산된 새옷보다 맵시나 질적인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세수 출혈·고용 감소 등 부작용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거한 중고 헌옷들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로 대량 반입되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사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국가의 의류와 섬유산업 붕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값싼 중고 헌옷들이 대량 유입되면서 국내에서 생산된 의류들은 경쟁력을 잃고 시장을 꾸준히 잠식당함으로써 점점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섬유와 의류 산업의 황폐화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섬유와 의류 산업의 몰락과 함께 ‘미툼바 경제’의 부상으로 세수가 크게 줄어들어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빚고 있어, 이른바 ‘세수 출혈’도 당면 문제로 지적된다. 경제가 비공식경제로 점점 편입됨으로써 국가 운영에 긴요한 세수가 줄어 효율적 국정 운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섬유와 의류 산업은 특성상 고용창출 효과가 다른 산업에 비해 크지만 섬유와 의류 산업 붕괴로 신규고용 창출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섬유와 의류 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라 아프리카 각국의 산업구조에 적합하다. 게다가 면화를 재배하는 나라들이 많아서 생산된 면화를 가공하여 섬유와 의류 산업을 발전시키면 농업 분야의 발전은 물론 고용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이중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중고 의류의 대량 유입은 이러한 잠재적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중고 의류의 대량유입이 시작된 뒤 생활상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중고 헌옷이 아프리카시장으로 대량 유입되기 전에는 손수 옷을 만들거나 고쳐서 입었다. 예전에는 거리에서 재봉틀을 놓고 옷을 깁거나 꿰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이런 모습을 점점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부정적 파급효과 때문에 중고 헌옷의 수입 여부가 나라마다 주요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제조업 비중이 큰 남아공화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고 헌옷 수입을 불허하고 있지만 가까운 모잠비크를 거쳐 밀반입되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의류 제조업체들은 중고 헌옷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학교 교복 생산이나 전통의류 생산으로 전문화함으로써 활로를 모색하거나 업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섬유와 의류 업계는 정부 당국이 중고 헌옷에 대해서 수입관세를 대폭 올려 국내 섬유와 의류 산업에 경쟁력을 부여해 숨통을 트이게 해달라고 부단히 요구하고 있으나, 이미 시장을 잠식한 헌옷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키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중고 의류에 대한 수입관세율 인상안이 관철되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구입하려는 일반대중의 욕구는 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중은 헐벗으란 말이냐”
헌옷 수입 허용 여부를 둘러싼 찬반논쟁도 뚜렷한 결론이나 해법 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중고 의류 수입을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할 나위 없이 섬유나 의류 제조업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단기적으로 일반대중들의 의생활을 향상시킬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중고 제품 수입의존형 경제로 귀착됨으로써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산업화는 요원해지고 장기적 국가발전에도 커다란 해악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중고 의류의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반대중들이 엄두도 못 낼 의류를 생산해내는 의류 제조업체들이 국내산업 보호를 들먹이는 행위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기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공박한다. 이는 마치 국내의 섬유와 의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대중들에게 헐벗으라고 요구하는 뻔뻔한 작태와 같다는 논리다. 일반대중들이 헐벗지 않도록 하고 다른 한쪽으론 국내산업 보호를 강구해야만 하는 정부는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난감한 지경이다. 크웨레크웨 시장에서 몸에 맞는 옷을 고르는 사람들의 분명한 손놀림만큼 정부의 대책이 뚜렷하지 않은 현실은 그래서 더욱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잔지바르(탄자니아)=양철준 전문위원 YANG.chuljoon@wanadoo.fr

사진/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대량 반입되는 신발 등 잡동사니(왼쪽)와 중고 의류(오른쪽) 등을 팔고 있는 수단의 한 지역시장.(SYGMA)

사진/ 아프리카에서는 길거리에서 중고품을 사고파는 모습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사진은 가봉의 한 노점상.(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