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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학생정치’를 떠나 ‘기성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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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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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나잉옹의 고백IV- 무장조직을 떠나며 존경하는 동지들에게 마지막 인사

(사진/동이 트는 아침. 버마 국방부 앞 광장에서 국기를 올리는 버마군인. 버마가 민주화의 새 아침을 맞을 날은 언제인가)
비록 무장투쟁을 통해 혁명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정치적 이념과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말하자면 혁명에는 무장투쟁의 법칙과 동시에 정치투쟁이 함께 존재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같은 것이었다. 나는 버마 내부의 서로 다른 민족들이 힘을 모아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완전한 평화라는 최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적 시간표를 지녀야 한다는 데 주목했고, 결국 혁명전략을 일부 수정하게 되었다.

이기적인 국제사회에 대한 절망

그동안에도 우리 버마학생민주전선은 민족화해를 외치며 군사정권에 대화와 협상을 촉구해 왔다. 우리는 이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빈곤에서 벗어나 국가를 재건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가 군사정부를 두려워해서거나 우리가 혁명의 토대를 잃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해왔다고 군사독재를 인정한다는 뜻은 더욱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완전한 복구를 향한 평화적이고 순조로운 이행과정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군사독재정권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왜? 그 까닭은 너무 명백하다. 공포를 억압의 무기로 사용한 이들은 자신들이 늘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의 사람들은 대개 진실을 보는 능력이 공포에 가려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류사를 통해 시민들은 수많은 독재자를 봐왔고, 그 독재의 억압이 혁명을 낳았고, 마침내 혁명이 독재를 타파하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줄기차게 해왔다. 시민들의 항거와 세상의 변화는 누구에 의해서도, 어떤 이유로도 중단될 수 없었던 것이 역사의 경험 아니던가.

이쯤에서 나는 버마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투쟁과 국제사회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1988년부터 버마 군사독재정권이 시민들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이자 버마 민주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현실 국제사회는 세계 시민들의 관심과 달리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스칸디나비안 국가들은 버마의 실질적인 독재기구인 국가평화개발회의(SPDC)에 경제제재를 비롯하여 강력한 압박정책을 펼친 반면, 아세안(ASEAN) 회원국들은 이른바 ‘건설적인 관여’라 말해온 회원국 상호간의 국내 문제 불간섭 원칙을 내걸고 버마를 고립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아세안의 이런 입장은, 첫째 회원국 사이에 서로 다른 원리와 정책을 지닌 탓이며 둘째는 오랫동안 깊이 뿌리내려온 전통적인 신념을 바꾸고 싶지 않은 탓이며 나머지 하나는 버마가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참고로 중국은 버마군사정권이 1988년 유혈쿠데타를 일으킨 때부터 이 독재정권을 지원해온 중추세력이다. 중국은 국제공산주의를 폐기처분하면서 다른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고, 결국 강력했던 버마공산당이 해체되면서 버마 상황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버마를 경제·군사적 최대 전략지대 가운데 하나로 여겨온 중국은 버마의 민주화를 직접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버마가 서구식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중국의 대버마 정책이란 건, 버마와 국경무역을 원활히 하고, 국경 안보문제에 말썽이 없고, 마약 근절과 같은 사회문제를 잘 이끌어갈 안정적인 정부라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는 수준인 셈이다. 이런 까닭에 아세안 회원국들 입장에서는 중국 정부라는 든든한 배경을 지닌 버마정권을 놓고 부담을 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인도마저 버마군사정권과 좀더 강력한 관계를 형성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아시아의 시장 확대를 통해 아시아의 경제 군주가 되고 나아가 세계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에 찬 일본도 버마의 독재자들과 꾸준히 협력해 오고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모든 나라들이 버마 사안을 놓고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인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제사회의 이기심 속에서 버마사회는 이미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군사정권의 압박에 못 이겨 피난민이 되어 국경을 넘고 있으며, 경제파탄으로 생존 위기에 직면한 시민들은 불법노동자의 꼬리표를 달고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흩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다시피 버마는 국제사회에서 마약의 온상으로 악명을 떨치지만 군사정권의 독재자들은 실질적인 마약퇴치에는 관심도 없다. 이 버마의 마약문제는 에이즈문제와 관련을 맺고 쌍둥이형 폭발력을 보이며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인간적인 세계화

자, 마약과 에이즈문제, 이걸 버마만의 문제로 무시해버릴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할 것인가. 이건 당신들의 선택이다. 인류의 대중적인 민주화와 인권문제를 언제까지 영역과 지역에 따라 제한적인 용어로 사용할 것인가. 물론 이것 또한 국제사회, 당신들의 선택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계화는 경제적 이익에만 골몰해온 신자유주의 같은 천박한 꼴이 아니라, 진정으로 세계의 시민들이 우리의 감정과 정서를 함께 나누고 상호 이해의 바탕 위에서 서로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교감 같은 것이다.

이건 관세장벽을 뚫기 위해 교묘히 설쳐대는 다국적기업의 성장을 극찬하기보다는 폭격지역에서 부상당한 보스니아의 아이들을 안전지대로 옮겨내야 한다고 이역만리 버마-타이의 산악밀림에서 울분했던 우리의 정서 같은 것이다. 물난리를 겪고 있는 중국의 할머니들에게 먹을거리라도 보내고 싶은 우리의 심정 같은 것이다. 탈리반의 극단적인 근본주의 아래 고통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들을 위로해 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 같은 것이다. 비록 그 가능성은 눈곱만치도 없지만,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비자없이 신분증만 있으면 되는 세상, 이게 바로 시민들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고, 이게 우리가 바라는 세계화다.

나의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나는 한국의 친구들에게 그동안 내가 느낀 감상을 전해주고 싶다. 1998년 아태평화재단의 초청으로 나는 한국을 방문했고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한국은 역사적 경험에 충만한 사회이기에 그 시민들은 정치적 경계심과 인식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특히 나는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한국 시민들의 경험을 배우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

당시 나는 한국사회의 가장 진보적인 추동세력인 학생과 노동자들을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가 매우 강력한 토대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다양한 종교단체들의 사회운동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런 강력한 시민사회의 조건 위에서 어떻게 한국 시민들이 국제문제와 국제연대에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아태평화재단에서 만났던 김대중씨는 조용하며 평화로운 인상을 주었고 특히 그의 정치적 식견과 지혜에 나는 깊은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이건 김대중씨가 아태평화재단을 통해 버마군사정권에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던 대통령이 되기 전의 일이었고,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그의 정부뿐만 아니라 아태평화재단마저 버마군사정권에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버마 시민들은 참으로 어두운 국제사회의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현 버마상황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들인데도 그들 스스로 그 역할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비하의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버마 군사독재정권은 결코 한국과 일본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들의 돈줄이 이들 국가에 달렸고 따라서 버마 시민들은 두 나라의 민주화 지원을 간절하게 염원해 왔다. 특히 한국은 민주화과정의 스승으로서 우리에게 누구보다 큰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민들에게 참으로 바라는 것

어쨌든 이런 인연들로, 버마학생민주전선의 많은 동지들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고, 우리 사이에 김치와 불고기가 유명한 주제가 되고 있듯이, 나는 한국과 버마 시민들 사이에 좀더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건 버마독재정권과 한국 정부 사이의 이익관계가 아닌 철저히 두 시민끼리의 이익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진정으로 한국의 시민들이 우리 버마 시민들의 참뜻을 한국 정부에 전해 주기를 염원한다. 여기 <한겨레21>에 어리석은 질문으로 시작했던 나의 이야기 마지막 연재인 이 네 번째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버마학민주전선과 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가장 먼저 <한겨레21> 독자들에게 보고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난주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중앙위원회를 소집해서 그동안 국내외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핵심의제가 되어왔던 조직체계의 재창출을 결의했다.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도전기를 맞게 된 이 조직 변화는 기본적으로 무장투쟁조직과 정치투쟁조직으로 이원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나는 군사독재정권의 무력에 맞서는 무장투쟁조직으로 남기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미래를 준비하며 특히 희망잃은 젊은 세대들을 엮는 직접적인 정당 창설을 위한 준비를 의미한다.

이 결정과정에서 나는 그동안의 ‘학생정치’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운 기성정치조직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제 나는 버마 민주화를 위해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고 가장 어려운 이 시기에 지난날의 의문들에 대한 정리를 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미래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태어난 버마학생민주전선의 무장조직을 떠나면서 나는 가장 존경하는 동지들에게 가장 큰 예를 갖춰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버마상황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저는 그동안 성장도 하지 못했고 철도 들지 않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사 어른이 된 듯하고 기쁨도 느낍니다. 저 자신과 정치를 배우고 수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준 버마학생민주전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저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허락해 준 조직과 저의 지도력을 추인해 주었던 동지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저는 그동안 민주혁명을 위해 생명을 바쳤던 동지들께 깊은 경의를 표하면서, 이 자리를 빌려 저의 삶을 통해 절대로 어기지 않을 약속 하나를 먼저 산화해간 동지들과 앞으로도 민주혁명을 위해 투쟁해 나갈 동지들께 올립니다. 저는 독재정권을 타파하고 완전한 민주화를 성취하는 날까지 버마학생민주전선과 손을 맞잡고 저의 몸을 바쳐 주어진 책임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저는 결코 버마학생민주전선의 동지애와 정신을 잃지 않을 것이며 어디서든 버마학생민주전선의 깃발에 대한 맹세를 지키며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영원할 것입니다.” <끝>

사나나 구스마오 자전수기 독점연재

333호부터는 동티모르 독립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54)의 자전적 고백이 세계언론 사상 처음으로 <한겨레21>에 연재됩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닥터 나잉옹(Dr.Naing Aung)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겸 버마연방민족회의 중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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