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네트워크 | 채팅 아시아]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베트남·이란까지, 싸고 가까운 땅을 탐험하는 멋진 휴가여행을 위하여
채팅 참가자 : 대니얼 고(중국계 미국인), 대니얼 라지(영국), 허니(말레이시아), 존슨 루(싱가포르)
채팅방 주인 : 유니스 라오(싱가포르)
채팅날짜 : 2003년 7월8일 유니스 : 다들 안녕. 먼저 등장인물 소개부터 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지만 싱가포르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존슨 루가 들어왔고, 또 말레이시아의 여행가 허니도 들어왔고…. 각자 한 말씀씩 하는 게 낫겠군.
허니 : 난 여행 예찬론자, 여행광, 그런 종류고. 또 여행기를 쓰는 시시껄렁한 작가고. 또 있군. 주로 학문연구소에 가구와 금고를 팔아먹는 장사꾼이기도 하고. 근데, 대니얼 고는 뭘 하시나? 대니얼 고 : 나, 여행광이고 잠재적으로는 영어 선생이지. 대니얼 라지는 어떤가? 대니얼 라지 : 대학원생. 근데 여기 이름이 같아 헷갈리니 지금부터 날 라지로 불러주게. 존슨 루 : 난 유니스가 소개한 것과 달리 잘 나가는 변호사는 아니고, 좀 늦어빠진…. 중국을 봐! 아아아 런던은 늙었어! 유니스 : 자, 이제 시작해도 되겠지요? 오늘의 주제는 ‘내가 경험한 아시아 여행’. 한마디씩 슬슬 풀어가봅시다. 허니 : 난 유학한답시고 유럽에서 어슬렁거릴 때 여행에 맛을 들였는데, 고향으로 돌아와보니 아시아가 자연스럽게 다가왔어. 유럽에 비해 값도 싸고…. 멈출 수 없는 매력으로. 라지 : 그렇지. 아시아, 한번 담그면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마력 같은 게 있지. 중국을 봐! 에너지가 넘치고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그 중국. 아아아, 런던은 늙었어! 대니얼 : 난 미국산 아시아인이라 처음엔 그저 가족을 만나겠다고 아시아를 찾았지.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된다는 게 참 헷갈리는 일이라, 아시아인이 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가를 알 필요가 있었던 셈이지. 존슨 루 : ‘왜 하필 아시아인가, 왜 아시아가 아닌가’ 하는 논쟁과 상관없이, 난 어쨌든 여행이라면 다 좋아. 분명한 건, 가령 영국과 비교해서 아시아 여행은 여유가 있어. 유니스 : 라지, 앞에서 중국을 ‘긍정적인 미래지향’이라 했는데? 라지 : 이건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건데, 중국은 내가 지녔던 예상의 한계를 넘었어. 단 여섯달 만에 대형빌딩이 들어서고, 아홉달 만에 논이 도심으로 변하는 판이니, 3년 뒤쯤에 다시 간다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못할 거야. 다이내믹! 허니 : 말이 났으니 말이지, 중국, 굉장해! 가능성의 도도한 물결 같은 걸 느낄 만해. 유니스 : 대니얼은 중국의 그 놀랄 만한 가속도를 사람들 문화 속에서는 어떻게 보았는지? 대니얼 : 이미 속도를 초월했어. 20년 전만 해도 공산당가나 가벼운 록음악 정도였다면, 지금은 어딜 가든 최신 테크노뮤직이야. 문화적 과도기라든지 상투적인 세대차도 없어. 유니스 : 자, 중국은 이쯤에서 접고, 모두들 유럽을 여행해봤을 텐데, 유럽과 아시아여행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해? 허니 : 유럽이 잘 정돈된 놈이라면 아시아는 좀더 혼란스럽고. 대니얼 : 이건 당신이 누군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인데, 백인이 아시아를 여행하는 것과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여행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을 거야. 일반적인 걸로 따지자면, 아시아 여행에서 백인은 주로 돈 많은 관광객 정도로 대우받는다는 게 내가 겪은 아시아였어. 그러니 무조건 깎아야 한다는 건데. 지나쳤나? 존슨 루 : 백인은 그만큼 눈에 잘 띄는 약점이 있다는 거지. 난 번잡한 호치민을 여행하면서도 현지인들로부터 열광적인 환대()를 거의 받아보지 못했는데! 라지 : 난 중국을 여행하면서 때때로 신장에서 온 사람으로 속였지. 그랬더니, 왜 내가 중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지 이해들 하는 눈치였고, 관광객으로 보지 않더라는 말이지. 가능하면 영어를 감추는 게 좋았다는 결론이고. 아시아인들이 푸대접을 받는다? 허니 : 내 경우는, 유럽을 여행했을 무렵이 애벌레였다면, 아시아를 여행하기 시작할 때는 그래도 나비로 날기 시작한 시기다보니 아시아가 지닌 많은 것들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었지. 유니스 : 좀 예민한 걸 하나 짚어볼까? 우리,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여행할 때, 어쩐지 백인들보다 푸대접을 받는다는 불만들이 많던데? 대니얼 : 푸대접보다는 아시아인들이 백인 여행자들에게 해주었던 만큼 아시아인들이 백인 나라에 갔을 때 그만한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게 더 옳은 게 아닐까? 아무튼 결론은 대접 받고 못 받고는 ‘현금’의 문제지! 색깔이 다르다는 건 별 문제가 아닐걸? 허니 : 유럽과 아시아를 늘 감성으로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 걸까 사실 아시아 여행자들 가운데는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걸 느낄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존슨 루 : 이건 대답하기 참 난처한 질문이네. 내 경우엔 가능하면 여행객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기어다니는 편이라…. 관광객 대접이 싫다는 뜻이지. 유니스 : 화제를 돌려볼까. 아시아에서 손꼽을 만한 여행지 하나쯤은 다들 있겠지? 허니 : 주로 베트남,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 같은 인도차이나 지역을 꼽을 만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다닐 수 있다면, 볼거리가 무궁무진해. 만약 꼭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이란이고. 존슨 루 : 교토, 한 한달쯤 살고 싶은 곳이야. 전에 꼭 일주일 머문 일이 있었는데. ‘느낌’이 오는 그런 곳이지. 허니 : 일본, 일본은 파고들기에 쉽지 않은 나라야. 대니얼 : 일본인들은 매우 동질적이라는 느낌이 들던데. 또 자신들을 울타리 속에 감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일본이 흥미롭다는 뜻이지. 아마도 내가 다양한 성질을 지닌 곳에서 살고 있어 그런 걸까? 허니 : 아냐. 일본을 흡수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해. 내 경험으로 보자면, 일본은 개인과 사회를 철저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어. 그이들이 매우 순종적이고 공손한 태도를 지녔지만, 사회 속에서 그이들의 위치를 찾기는 너무 힘들어. 존슨 루 : 그런 것 같기도 해. 일본에 갔을 때, 가는 곳마다 후한 대접을 받은 기분인데, 공항에서도 관광안내소에서도 후지필름 판매소에서도 모두. 근데 그게 사실은 그냥 그렇게 직업적으로 일하고 있는 거라고 하더군. 기막히게 좋은 모습임에도! 유니스 : 또 일본이 얻어터질 모양인데,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려봅시다. 라지 말로는 중국 윈난이 요즘 말이 아니라고 하던데. 라지 : 많은 사람들이 윈난에 가는 까닭은 소수민족들을 보겠다는 뜻인데, 그게 요즘 자본주의에 물든 한족들 탓에 테마파크로 변해 돈 빼먹기 바쁜 곳이 되고 말았어. 유니스 : 바로 그건데.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관광산업에 혈안이 되면서 자연미를 파괴시키는, 말하자면 신성모독 행위를 하고 있다는 뜻인데, 관광과 여행의 수혜자들인 당신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허니 : 내가 보기엔 모든 게 속도문제야. 급하게 가는 게, 관광산업에서도 가장 큰 문젯거리야. 자연이 숨돌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하는데. 고향은 당신 가슴속에 있다오 대니얼 : 관광산업이 아니더라도, 그냥 놔두겠어? 무슨 ‘개발계획’이라는 이름을 붙여, 결국은 신성모독을 하고 말겠지. 공장을 짓든 어쨌든. 아시아뿐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야. 라지 : 만약 영국의 19세기를 여행한다면, 지금 아시아가 겪고 있는 환경문제와 개발의 대가라는 점에서 같은 인상을 받게 될 거야.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유니스 : 그럼 관광객과 여행자는 뭐가 다를까? 당신들은 어디에 속해? 허니 : 난 두쪽 다 경험한 셈인데, 어릴 때 무리지어 유명한 곳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은 관광객이었고, 철 좀 들어 이름나지 않은 곳들을 기웃거리며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면서부터는 여행자라고 스스로 여기게 된 셈이지. 존슨 루 : 난 양쪽 다야. 대니얼 : 관광객과 여행자, 다른 점은 남들이 어떻게 당신을 보느냐에 달린 문제일 뿐, 실제로 다른 점은 없겠지. 좀 고차원적으로 말하자면, “관광객은 돈이 시간보다 많은 여행자이고, 여행자는 시간이 돈보다 많은 관광객이다”라고나 할까. 라지 : 난 여행할 때는 관광객이었지만 어딘가엔 머물렀을 때는 여행가라는 생각이 들던데. 그러고보니, 이거 정말 구분하기 힘든 단어 같네. 허니 : 외형으로 따진다면, 여행자는 문화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는 경향이 있고, 정복자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습성보다는 한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고. 아마도 수백만장의 기념사진을 찍거나 하는 일이 없을 거고…. 유니스 :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좀더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또 한편으로는 당신이 속한 나라나 사회로부터 소속감이 희박해지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라지 : “집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좀더 많은 영국이 있다”는 말이 있어서…. 유니스 : 그건 전통적인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문장인데. 허니 : 고향으로 돌아오면 다시 현실과 접속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 나는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대개 이틀 정도 가동을 일체 중단하면서 고향과 새롭게 접속을 시도해. 대니얼 : 허니는 고향을 들고다니지 못하는가본데, 고향은 당신 가슴속에 있어요! 내가 몇년 동안 수만리길을 따라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어디서든 내가 집이라 부를 만한 곳이 있었던 탓이야. 존슨 루 : 불행하게도, 난 여행자로서 집과 나를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데 실패했어. 가나 오나 별로 다른 감흥을 못 받았으니. 대니얼 : “어디서 왔느냐?” 다니다보면 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잖아. 그 질문에 몇 개국 말 정도로는 대답할 수 있어야 진짜 여행자라고도 하지. 존슨 루 : 하하하! 대니얼 말이 옳아. 그런데 이탈리아, 그쪽 아이들은 다르던데. 묻고 자시고도 없이 처음부터 다짜고짜 ‘곤니치와’로 가던데. 망치는 짓, 원주민 생활의 상품화
라지 : 난 내 자신을 국적으로 정의한 적이 없어. 난 편리에 따라 중국인도 되었다가 미국인도 되고, 뭐 그런 식이지. 남이 인정하든 않든, 그것도 별 상관없는 일이고. 내 말은 국적조항에 매달리기 싫다는 뜻이야.
허니 : 여행 중에는 말레이시아라는 국적이 자연스럽게 잊혀지지. 국경에서 말레이시아라고 찍힌 여권을 꺼내들 때말고는.
유니스 : 이런 것도 여행이나 관광을 놓고 생각해보는 고민 가운데 하나인데, 가령 타이에 살고 있는 카렌족 아이들이 당신들의 그 아메리카식 태도를 흉내내지는 않을는지?
대니얼 : 이미 늦었어. 관광객이 떠나고 나면, 그 카렌족 아이들이 VCD를 꺼내 본다던데.
존슨 루 : 동감이야!
라지 : 이걸 논쟁거리로 삼지는 말자.
유니스 : 연구결과가 있어. 관광객이 다녀간 원주민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관광객의 차림새와 태도를 유심히 살피고, 결국은 닮고 싶은 욕망을 따라 마을을 떠나게 된다는 건데.
존슨 루 : 맞아. 타이 북부 치앙마이에서 트래킹 중 산족마을에 머문 적이 있는데, 어쩐지 마음이 상쾌하지가 않았어. 너무 관광단지화된 현실도 그랬고…. 결국 그 트래킹을 후회했지.
대니얼 : 지역문화는 뭔가 순수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흉포한 바깥 것들의 유입을 차단해야 하고, 뭐 이런 이야기인데. 문제는 그 산족이나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노출’말고는 생존방법이 없다는 거야.
허니 : 푸하하. 욕망이란 인간의 조건인데 어이하리오. 당신의 만족을 위해 그 산악민족에게 계속 전통옷을 걸치고 그 산속에서 살아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릴 수 있을까?
유니스 : 그렇다고, 관광용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그이들의 공간과 문화를 침범해도 좋다는 것일까?
허니 : 긍정적으로 보면 고립되어 있던 사회가 다른 사회로부터 배운다는 건데, 여기서도 문제는 속도인 듯싶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만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거지. 악순환이지. 또 불행하게도 관광객 가운데는 그이들의 공간과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이도 있고.
존슨 루 : 거꾸로, 진짜 함정은 이런 것일 수도 있어. 관광객이 큰돈을 내고 원주민 생활을 경험하는 상품 같은 건데, 이걸 탐험이라고들 하면서. 양쪽 모두 망치는 짓들이지.
좀더 작은 길을 찾아다니자
유니스 : 아무튼, 여기 들어온 이들은 모두 ‘도덕적 관광주의자’라는 훈장을 하나씩 달아드리지요. 난 앙코르와트를 열망해온 만큼 또 주저하고 있어. 지나치게 몰리는 관광객 틈에서 내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탓이지. 역사적 현장과 관광산업, 이런 걸 생각해본 적이 있나?
허니 : 어휴! 이런 논쟁에 참여하든 말든, 대량관광산업은 이미 온 세상을 뒤덮고 있어. 누구든 자유고 어디든 권리지만. 바라건대, 사람들이 좀더 작은 길을 찾아다녀주길!
존슨 루 : 이건 나도 책임져야 해. 책임있는 행동으로.
라지 : 동감!
유니스 : 어이구, 대니얼이 사라져버렸어! 근데, 여행을 마치고 나면 어떤 기분들이 들어?
존슨 루 : 귀향의 고통 같은 건데…. 늘 느끼는…..
허니 : 그게 중독증이란 거야.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거고, 짐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다시 다음 여행을 꿈꾸는 식으로. 낭만을 쫓는 방랑자 같은 삶인데, 한때의 자유로움으로 괜찮은 거지. 이게 인생 전체를 뒤집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나친 걱정일까?
라지 : 미안, 여행을 떠날 시간이야. 집으로! 그 전에 한마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채팅에 참여한 오늘을 기억할 것이고, 이 ‘사이버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여행을 이야기한 이 엄청난 경험을 고이 간직할 것이고…. 참, 다음에 부탄행 함께, 어떤가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겠어?
유니스 : 끝으로 <한겨레21> 독자들에게 아시아 여행을 강력히 권유하는 걸로 인사를 대신합시다.
허니 : 좋지! 말레이시아 개고기 식당으로!
유니스 : 허니, 개들은 그만 좀 내버려둬.
라지 :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하라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요!” 서울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서울로 갈 궁리를 하고 있는 중.
유니스 : 라지, 그럼 한국 독자들에게 서울을 떠나지 말라는 건가?
라지 : 역시, 똑똑하시네! 꼭 떠나겠다면, 인도를 권하고 싶어.
허니 : 아시아, 최고의 출발지지! 싸고 가깝고!
유니스 : 싱가포르 시각 현재 새벽 5시! 잠을 포기하고 다들 이 자리에 모여준 걸 독자들을 대신해서 내가 고마움을 전하고, 자, 모두들 올 여름 최고의 휴가를!
라지 : 유니스, <한겨레21> 독자들을 서울에서 직접 만날 무슨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절대로 나를 잊지 말아요! 안녕히…. 록스 동물원 갈 때 함께 가자. 좋은 아침. 난 일어날 시간이야!
| 인터넷 채팅창에서 만난 아시아의 5인이 마음속에 숨겨뒀던 휴가지를 풀어놨다.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베트남·이란까지. 싸고 가까운 땅을 탐험하는 멋진 휴가여행을 위해 지금 당장 지도를 꺼내보자. |

유니스 라오(Eunice Lau)/ 전 <스트레이츠타임스> 기자 letchatasia@hotmail.com
채팅방 주인 : 유니스 라오(싱가포르)
채팅날짜 : 2003년 7월8일 유니스 : 다들 안녕. 먼저 등장인물 소개부터 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지만 싱가포르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존슨 루가 들어왔고, 또 말레이시아의 여행가 허니도 들어왔고…. 각자 한 말씀씩 하는 게 낫겠군.
허니 : 난 여행 예찬론자, 여행광, 그런 종류고. 또 여행기를 쓰는 시시껄렁한 작가고. 또 있군. 주로 학문연구소에 가구와 금고를 팔아먹는 장사꾼이기도 하고. 근데, 대니얼 고는 뭘 하시나? 대니얼 고 : 나, 여행광이고 잠재적으로는 영어 선생이지. 대니얼 라지는 어떤가? 대니얼 라지 : 대학원생. 근데 여기 이름이 같아 헷갈리니 지금부터 날 라지로 불러주게. 존슨 루 : 난 유니스가 소개한 것과 달리 잘 나가는 변호사는 아니고, 좀 늦어빠진…. 중국을 봐! 아아아 런던은 늙었어! 유니스 : 자, 이제 시작해도 되겠지요? 오늘의 주제는 ‘내가 경험한 아시아 여행’. 한마디씩 슬슬 풀어가봅시다. 허니 : 난 유학한답시고 유럽에서 어슬렁거릴 때 여행에 맛을 들였는데, 고향으로 돌아와보니 아시아가 자연스럽게 다가왔어. 유럽에 비해 값도 싸고…. 멈출 수 없는 매력으로. 라지 : 그렇지. 아시아, 한번 담그면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마력 같은 게 있지. 중국을 봐! 에너지가 넘치고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그 중국. 아아아, 런던은 늙었어! 대니얼 : 난 미국산 아시아인이라 처음엔 그저 가족을 만나겠다고 아시아를 찾았지.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된다는 게 참 헷갈리는 일이라, 아시아인이 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가를 알 필요가 있었던 셈이지. 존슨 루 : ‘왜 하필 아시아인가, 왜 아시아가 아닌가’ 하는 논쟁과 상관없이, 난 어쨌든 여행이라면 다 좋아. 분명한 건, 가령 영국과 비교해서 아시아 여행은 여유가 있어. 유니스 : 라지, 앞에서 중국을 ‘긍정적인 미래지향’이라 했는데? 라지 : 이건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건데, 중국은 내가 지녔던 예상의 한계를 넘었어. 단 여섯달 만에 대형빌딩이 들어서고, 아홉달 만에 논이 도심으로 변하는 판이니, 3년 뒤쯤에 다시 간다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못할 거야. 다이내믹! 허니 : 말이 났으니 말이지, 중국, 굉장해! 가능성의 도도한 물결 같은 걸 느낄 만해. 유니스 : 대니얼은 중국의 그 놀랄 만한 가속도를 사람들 문화 속에서는 어떻게 보았는지? 대니얼 : 이미 속도를 초월했어. 20년 전만 해도 공산당가나 가벼운 록음악 정도였다면, 지금은 어딜 가든 최신 테크노뮤직이야. 문화적 과도기라든지 상투적인 세대차도 없어. 유니스 : 자, 중국은 이쯤에서 접고, 모두들 유럽을 여행해봤을 텐데, 유럽과 아시아여행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해? 허니 : 유럽이 잘 정돈된 놈이라면 아시아는 좀더 혼란스럽고. 대니얼 : 이건 당신이 누군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인데, 백인이 아시아를 여행하는 것과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여행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을 거야. 일반적인 걸로 따지자면, 아시아 여행에서 백인은 주로 돈 많은 관광객 정도로 대우받는다는 게 내가 겪은 아시아였어. 그러니 무조건 깎아야 한다는 건데. 지나쳤나? 존슨 루 : 백인은 그만큼 눈에 잘 띄는 약점이 있다는 거지. 난 번잡한 호치민을 여행하면서도 현지인들로부터 열광적인 환대()를 거의 받아보지 못했는데! 라지 : 난 중국을 여행하면서 때때로 신장에서 온 사람으로 속였지. 그랬더니, 왜 내가 중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지 이해들 하는 눈치였고, 관광객으로 보지 않더라는 말이지. 가능하면 영어를 감추는 게 좋았다는 결론이고. 아시아인들이 푸대접을 받는다? 허니 : 내 경우는, 유럽을 여행했을 무렵이 애벌레였다면, 아시아를 여행하기 시작할 때는 그래도 나비로 날기 시작한 시기다보니 아시아가 지닌 많은 것들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었지. 유니스 : 좀 예민한 걸 하나 짚어볼까? 우리,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여행할 때, 어쩐지 백인들보다 푸대접을 받는다는 불만들이 많던데? 대니얼 : 푸대접보다는 아시아인들이 백인 여행자들에게 해주었던 만큼 아시아인들이 백인 나라에 갔을 때 그만한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게 더 옳은 게 아닐까? 아무튼 결론은 대접 받고 못 받고는 ‘현금’의 문제지! 색깔이 다르다는 건 별 문제가 아닐걸? 허니 : 유럽과 아시아를 늘 감성으로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 걸까 사실 아시아 여행자들 가운데는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걸 느낄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존슨 루 : 이건 대답하기 참 난처한 질문이네. 내 경우엔 가능하면 여행객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기어다니는 편이라…. 관광객 대접이 싫다는 뜻이지. 유니스 : 화제를 돌려볼까. 아시아에서 손꼽을 만한 여행지 하나쯤은 다들 있겠지? 허니 : 주로 베트남,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 같은 인도차이나 지역을 꼽을 만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다닐 수 있다면, 볼거리가 무궁무진해. 만약 꼭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이란이고. 존슨 루 : 교토, 한 한달쯤 살고 싶은 곳이야. 전에 꼭 일주일 머문 일이 있었는데. ‘느낌’이 오는 그런 곳이지. 허니 : 일본, 일본은 파고들기에 쉽지 않은 나라야. 대니얼 : 일본인들은 매우 동질적이라는 느낌이 들던데. 또 자신들을 울타리 속에 감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일본이 흥미롭다는 뜻이지. 아마도 내가 다양한 성질을 지닌 곳에서 살고 있어 그런 걸까? 허니 : 아냐. 일본을 흡수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해. 내 경험으로 보자면, 일본은 개인과 사회를 철저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어. 그이들이 매우 순종적이고 공손한 태도를 지녔지만, 사회 속에서 그이들의 위치를 찾기는 너무 힘들어. 존슨 루 : 그런 것 같기도 해. 일본에 갔을 때, 가는 곳마다 후한 대접을 받은 기분인데, 공항에서도 관광안내소에서도 후지필름 판매소에서도 모두. 근데 그게 사실은 그냥 그렇게 직업적으로 일하고 있는 거라고 하더군. 기막히게 좋은 모습임에도! 유니스 : 또 일본이 얻어터질 모양인데,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려봅시다. 라지 말로는 중국 윈난이 요즘 말이 아니라고 하던데. 라지 : 많은 사람들이 윈난에 가는 까닭은 소수민족들을 보겠다는 뜻인데, 그게 요즘 자본주의에 물든 한족들 탓에 테마파크로 변해 돈 빼먹기 바쁜 곳이 되고 말았어. 유니스 : 바로 그건데.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관광산업에 혈안이 되면서 자연미를 파괴시키는, 말하자면 신성모독 행위를 하고 있다는 뜻인데, 관광과 여행의 수혜자들인 당신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허니 : 내가 보기엔 모든 게 속도문제야. 급하게 가는 게, 관광산업에서도 가장 큰 문젯거리야. 자연이 숨돌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하는데. 고향은 당신 가슴속에 있다오 대니얼 : 관광산업이 아니더라도, 그냥 놔두겠어? 무슨 ‘개발계획’이라는 이름을 붙여, 결국은 신성모독을 하고 말겠지. 공장을 짓든 어쨌든. 아시아뿐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야. 라지 : 만약 영국의 19세기를 여행한다면, 지금 아시아가 겪고 있는 환경문제와 개발의 대가라는 점에서 같은 인상을 받게 될 거야.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유니스 : 그럼 관광객과 여행자는 뭐가 다를까? 당신들은 어디에 속해? 허니 : 난 두쪽 다 경험한 셈인데, 어릴 때 무리지어 유명한 곳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은 관광객이었고, 철 좀 들어 이름나지 않은 곳들을 기웃거리며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면서부터는 여행자라고 스스로 여기게 된 셈이지. 존슨 루 : 난 양쪽 다야. 대니얼 : 관광객과 여행자, 다른 점은 남들이 어떻게 당신을 보느냐에 달린 문제일 뿐, 실제로 다른 점은 없겠지. 좀 고차원적으로 말하자면, “관광객은 돈이 시간보다 많은 여행자이고, 여행자는 시간이 돈보다 많은 관광객이다”라고나 할까. 라지 : 난 여행할 때는 관광객이었지만 어딘가엔 머물렀을 때는 여행가라는 생각이 들던데. 그러고보니, 이거 정말 구분하기 힘든 단어 같네. 허니 : 외형으로 따진다면, 여행자는 문화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는 경향이 있고, 정복자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습성보다는 한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고. 아마도 수백만장의 기념사진을 찍거나 하는 일이 없을 거고…. 유니스 :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좀더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또 한편으로는 당신이 속한 나라나 사회로부터 소속감이 희박해지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라지 : “집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좀더 많은 영국이 있다”는 말이 있어서…. 유니스 : 그건 전통적인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문장인데. 허니 : 고향으로 돌아오면 다시 현실과 접속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 나는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대개 이틀 정도 가동을 일체 중단하면서 고향과 새롭게 접속을 시도해. 대니얼 : 허니는 고향을 들고다니지 못하는가본데, 고향은 당신 가슴속에 있어요! 내가 몇년 동안 수만리길을 따라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어디서든 내가 집이라 부를 만한 곳이 있었던 탓이야. 존슨 루 : 불행하게도, 난 여행자로서 집과 나를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데 실패했어. 가나 오나 별로 다른 감흥을 못 받았으니. 대니얼 : “어디서 왔느냐?” 다니다보면 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잖아. 그 질문에 몇 개국 말 정도로는 대답할 수 있어야 진짜 여행자라고도 하지. 존슨 루 : 하하하! 대니얼 말이 옳아. 그런데 이탈리아, 그쪽 아이들은 다르던데. 묻고 자시고도 없이 처음부터 다짜고짜 ‘곤니치와’로 가던데. 망치는 짓, 원주민 생활의 상품화

사진/ ‘보존’이냐 ‘개발’이냐? 이 전통적 논란 속에서 책임 없는 관광산업은 오늘도 세상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타이 북부 아카족 퉁유아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