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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민운동은 아시아의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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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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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 필리핀

1기 연수생 수료식을 연 아시아센터… “한국이 인권 가해 국가라는 사실을 몰랐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이제 활동무대를 아시아로 넓히고 있다.

지난 6월23일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간간이 비가 내리는 늦은 시각, 한국말로 ‘평화’라는 뜻을 지닌 필리핀의 마파야파 동네에서 50여명 한국인들과 필리핀 사람들이 감격스런 행사를 치렀다. 이날은 ‘한국시민사회아시아센터’(이하 아시아센터)가 지난 다섯달 동안 필리핀 시민사회단체와 아시아 연대를 체험했던 9명의 연수생 수료식을 연 날이었다. “오랫동안 여성단체에서 일을 했음에도 직접 현장을 체험하지 못했으나, 이곳에서 실제로 매매춘 여성들이 일하는 현장을 보고 여러 단체 사람들과 만나 몸으로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자신을 돌아보고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이구경숙 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이 풀어놓은 감회다.

사진/ 아시아센터 활동가들의 현장 방문. ‘파타야스’라는 쓰레기 매립장을 방문해 지역 실태와 건강문제 등을 조사했다.


시민사회 차세대 리더들을 위해

아시아센터(운영위원장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는 지난 2월4일 녹색연합, 여성민우회, 여성의 전화, 여성연합, 환경운동연합 등이 아시아와의 연대를 위해 마닐라에 세운 단체다. 또 아름다운재단이 아시아센터의 프로그램 운영에 적극적인 후원의 손길을 보내주면서 힘을 얻고 있다. 이는 필리핀에 세워진 최초의 한국 시민단체들의 국제 연대기관으로 기록된다. 지난 1월 말부터 각 단체에서 추천한 활동가들이 5개월 과정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과거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해외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빈곤과 열악한 인권에 시달리는 아시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인 셈이다.

한국 단체에서 파견된 연수생들은 필리핀의 문화·정치·사회의 이해를 비롯해 각 지역 현장을 방문하는 체험적 연수 과정을 밟았다. 모두들 언어 문제로 적지 않은 곤란을 겪었고, 처음 몇달간은 근처 영어학원에서 낮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필리핀의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될 즈음에는 해외에 나와 있는 활동가들과 연대 반전성명을 발표하는 기동성을 과시하기도 했고, 각종 평화촉구 집회에 참여해 국제평화연대 활동에 한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바세코’라는 빈민지역에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즉석에서 성금을 모아 식료품을 구입해 전달하는 등 주민들을 돕기도 했다.

서주원 사무총장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시민사회의 차세대 리더들이 시야를 넓히고,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세우기 위한 교육·훈련의 기회를 주며, 아시아 시민사회의 성장을 돕기 위해 한국시민사회가 기여할 때”라면서 “왜 하필 아시아인가? 그것은 지정학적 근접성 외에 우리가 구체적으로 연대하고 스스로를 연마해야 할 ‘바닥 현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그동안 국제연대를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정도로 인식하거나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몇몇 활동가들의 분야로만 인식해왔으나, 이제는 아시아의 구체적인 현장에 참여하고 연대하는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국제연대라고 강조한다.

지난 6년간 전북여성단체연합에서 활동했던 김금옥(38)씨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인권피해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인권문제를 야기시키는 ‘가해 국가‘가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 및 대응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서 산림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벌목을 벌이는가 하면, 필리핀에서는 한국 어선들이 현지인의 어업생존권을 위협하고, 필리핀의 수출자유지역 ’가비떼‘에서는 일부 한국 기업들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고 성희롱을 저지르는 사례가 속출하였다. 우리는 국내 문제에 매몰된 나머지 한국인 또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어떤 인권유린 행동을 벌이고 있는지에 대해 귀담아 듣지 않거나 최소한 조사활동도 없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얘기다.

인천 실업극복 국민운동의 양재덕(57)씨는 “노동운동을 열심히 해왔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으며, 정말 우리가 아시아연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김혜애 녹색연합 국장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어떤 나라들이며, 어떤 문제들을 안고 있는지 정말 너무 모르고 살았다”며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또 “현장 실습시간에는 현지 환경단체들과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연대 과정을 통해 지난 수개월이 앞으로 분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재정확보 등 시급

사진/ 아시아센터 수료식에서 연수생들이 축하객들 앞에서 공연하고 있다. 이날 모두 9명의 연수생들이 교육프로그램을 마쳤다.
아시아센터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늘 재정에 허덕이며 사는 시민사회단체가 지속적으로 교육 프로그램과 아시아 시민단체들간의 연대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재정확보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이슈를 다른 동남아 국가에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들 나라의 가난과 인권 문제를 부각시켜 인식을 공유하고 적절한 역할을 모색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시아센터의 미래는 그리 어두워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것이 많은 우리 시민사회가 좀더 발전할 수 있는 길은 가진 것이 충분해서 나누기보다 부족하지만 함께 나누고 끊임없이 배움으로써 스스로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동시에 아시아의 많은 동지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것이다.” 문창식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각오다.

1기 연수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연대활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참여자들은 말한다. 7월21일에는 필리핀의 주요 비정부단체(NGO)들을 초청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개혁과 선거를 주제로 한국의 총선시민연대 활동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또 몇몇 참여자들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방문해 국제 경험을 더 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시아 시민사회단체의 주요 활동가를 한국으로 초청해 경험을 공유할 계획도 구상 중이다. 아시아센터는 현재 2기 연수생을 모집하고 있으며 오는 8월 둘째주부터는 5개월 과정의 연수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한다.(자세한 정보는 www.asianngocenter.net 참조)

마닐라=글·사진 나효우 전문위원 nahyo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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