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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하얀 가면’을 벗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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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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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를 흠모하고 중국을 멸시한 일제시대 윤치호와 그를 닮아가는 현대 중국의 지식인들

우리는 보통 일제 식민지 시대를 ‘암흑의 시절’이라고 부른다. 지주와 식민지 당국으로부터 이중의 억압을 당하던 농민이나 노동자에게 식민지형 ‘주변부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암흑이었다. 반면 여유가 있는 조선의 식자층에게 식민지 시절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국제화’의 시기였다. 조선의 민족 문제에 고민하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이미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에 잡지에서 번역·게재된 인도의 간디 자서전이나 체코 민족 지도자 마사리크 박사 관련의 기사나 필리핀 독립운동에 대한 논문을 탐독했다.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한 조선인들의 기행문을 읽는 것은 지금처럼 그때도 장안의 소일거리였다. 각종의 매체를 통해 전 세계가 조선 식자들의 ‘지식 공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1989년 톈안먼 시위. 그 뒤 중국 지식인들이 구상하는 ‘신(新)중국’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사회가 될는지 모르지만 약자를 보살필 줄 아는 평등 지향적인 사회는 아니다.(사진/ SYGMA)

일본은 ‘동양의 영국’이었으니…

그때 세계를 보는 조선인의 시각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째 유형은, 당시 기독교계의 ‘어른’으로 받들어지던 윤치호(1865~1945)처럼 세계의 지배자들인 유럽 게르만 계통의 민족, 특히 영국과 미국의 ‘앵글로색슨 인종’을 태생적으로 우월한 ‘초인간’들로 숭배하고 기리는 것이었다. 예컨대, 윤치호가 한 프랑스인의 책에서 발췌해 <동광>이라는 잡지(제11호, 1927년)에 대서특필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세계에 우승권(優勝權)을 가지고도 최대행복을 누리는 앵글로색슨족의 교육이 그들로 하여금 제 일은 제가 하게 만든다. 영국 청년들은 안정(安靜)하거나 유약한 것보다 생존경쟁을 좋아하고 자립을 존숭하고 전진하기를 좋아한다. (…) 이는 그 사회조직이 인생의 곤란을 우승하기에 가장 유효하게 된 까닭이다.”

식민지 시절 ‘앵글로색슨 인종’을 태생적으로 우월한 ‘초인간’들로 숭배하고 기렸던 윤치호.(사진/ 한겨레21)
윤치호나 그를 받들던 기독교 우파 인사들에게는 ‘힘이 세고 기상이 가장 고귀한 앵글로색슨 인종’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이 바로 ‘동양의 영국’이었으니 친일협력도 ‘태생적으로 허약한 조선 민족의 생존방안’이었다. 1896년 일본의 근대화 모델이던 독일을 여행한 것을, 윤치호는 1927년에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별건곤>, 제6호).

“독일의 벽촌이라도 도로가 청결하고 가옥이 조밀하여 어느 곳이나 물 부어 샐 틈 없을 듯하고 밤을 굴려도 먼지 하나 안 묻을 듯이 정리되어 있고 길가에도 의복을 풀거나 발을 벗고 다니는 아녀자 하나 볼 수 없었다.” 예의범절과 질서의 낙원인 셈이다.

지배자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따른 윤치호 유형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좌파의 세계관이었다. 윤치호와는 대조적으로, 유명한 좌파 이론가 이여성(李如星)은 식민지 시절의 잡지인 <삼천리>(제8호, 1930년)에 영국의 희생자인 아일랜드에 대한 뜨거운 동병상련의 정이 넘치는 논설을 실었다.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를 무력으로 정복함으로 만족치 않고 아일랜드인의 토지를 몰수하고 아일랜드인을 학살하고 구축한 뒤 영국인을 이주하게 하였으니, (…) 1851~61년간에만은 아일랜드 인구가 약 100만명으로 줄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고 1846~7년 기근에는 아사자 75만명에 달하였다는 바인즉 (…) 영국인의 잔인성이 얼마나 극악하게 발현되었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논설을 비교해보면 유산층 이념가의 세계 중심부 위주 세계관과 공산주의자의 세계 주변부 위주 세계관의 대립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쪽은 가해자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다른 쪽은 피해자의 고통부터 생각해준다. 해방 이후 월북한 이여성처럼 식민지 시대의 좌파는 월북이나 남한 당국의 탄압 등으로, 윤치호식 친미우파의 독차지가 된 남한의 공론의 장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요즘 유럽관광 여행을 떠나 파리나 런던의 웅장한 건축물들을 바라보는 많은 한국 젊은이들 중에서, 그 순간 서구의 웅장한 수도들이 서기 위해 비참하게 죽은 식민지 노예들을 생각해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서구의 국가들은 대다수 한국인에게 세계적 규모의 가해자라기보다는 “우리가 따라야 할 발전의 모범”, “합리적이며 질서정연한 낙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란츠 파농이 썼던 비유를 다시 이용하자면 우리는 “하얀 가면”(서구 중심주의적 세계의식)을 아직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쑤샤오캉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은 어떨까. 한국과 달리 공산혁명이 승리한 중국에서는 윤치호의 ‘하얀 가면’은 어디에서도 없을 것이라 기대할 만하지 않는가 마오쩌둥이야말로 ‘제3세계 연대론’을 최초로 제창하고 베트남 등의 반제 운동들을 아낌없이 후원해준 사람이 아닌가?

15년 전 국내외에서 ‘중국의 변화’의 상징으로 유명했던 것은 감독 쑤샤오캉(蘇曉康)의 <하상>(River Elegy)이라는 지적 다큐멘터리였다. 공산당의 보수파로부터 비판을 받은 뒤 톈안먼 시위에 참여하여 결국 1989년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쑤샤오캉의 투사적 이미지 덕분이기도 하지만, 특히 서방에서는 이 영화를 ‘중국 지식인 사회의 자성과 근본적 개혁의 모색’의 상징처럼 여긴다. 그러면 이 영화가 정말 ‘자성’에 불과할까 권력자들에게 황하의 용왕에게 기우제를 지내듯 대하는 비겁한 쑤샤오캉의 ‘중국인’ 이미지는 마치 오리엔탈리즘에 듬뿍 젖은 서양 탐험가의 여행기록 같다. 중국과 대조되는 것은 역시 ‘역동적이고 자립적인, 세계사를 이끄는’ 서양이다. ‘일찍 죽은 사람에 대한 엘레지’(상·‘일찍 죽은’ 것은 중국의 발전능력인 듯하다)는 ‘진취적인 서양인’에 대한 찬미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중국의 폐쇄적 관료주의를 서구와의 비교를 통해 전복해보려는 쑤샤오캉의 의도를 좋게 볼 수도 있지만, 구한말 탐관오리에 대한 윤치호의 비판이 서구와 일본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진 것처럼, 중국이라는 지역적인 ‘골목 대장’에 대한 서구중심주의적 비판은 결과적으로 서구라는 세계적 ‘조폭 조직’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쑤샤오캉의 경우는 극단적이지만 이상화된 ‘서양’에 대한 선망은 너무 많은 신세대 중국 지식인들의 말과 글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통제의 사회’인 중국과 개방적인 서방, 중국의 관시(關係) 문화와 서구의 합리적 관료제도, 그리고 중국 국가만능주의 등을 거의 막스 베버 식으로 정면 대조시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개방적인’ 서구가 대다수 중국인을 포함한 제3세계 출신 이민을 무자비하게 통제하는 사실이나, 서구의 자본주의도 국가적 보호 아래서 자라온 사실, 서구의 지배층도 보이지 않게 각종의 ‘연’(緣)으로 묶여져 있는 사실 등의 객관적 현실은 무시되고, ‘서양’은 한폭의 낭만적 그림이 되고 만다.

물론 세계 체제 주변부의 개발주의적 엘리트들이 중심부를 동경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고, 토착적 자본주의 발전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순기능도 있다. 문제는 ‘위’를 흠모하다보면 ‘아래’를 아주 쉽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일본을 숭배하면서 ‘후진적인’ 중국을 멸시한 윤치호처럼, 식민지 약탈로 치부한 서구를 흠모하는 오늘 베이징의 젊은 엘리트 인텔리들은 중국의 식민지인 티베트나 신장, 내부 식민지라 부를 만한 내륙지방 농민들의 극심한 궁핍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거나 멸시적이다. 그들이 구상하는 ‘신(新)중국’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사회가 될는지 모르지만 약자를 보살필 줄 아는 평등 지향적인 사회는 아닌 것이다.

‘우리 안의 서구 중심주의’를 생각하자

1960년대의 유럽이나 일본의 좌파, 1980년대의 한국 운동권이 그토록 신뢰하고 싶었던 ‘혁명의 중국’이 점차 윤치호의 언어를 구사해간다는 것은 또한 좌절을 안겨준다. 어떻게 해서 제국주의에 대한 규탄들을 듣고 자랐던 세대가 ‘하얀 가면’을 쓰게 됐는가 격동의 시기를 지나 이제 보수화돼가는 사회의 내부적 변화나, 윤치호 시기의 조선처럼 세계 체제의 주변부로 편입돼가는 중국의 대외 상호작용의 논리 등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영국이나 미국을 늘 ‘추월해야 할 대상’, ‘공업 발전의 척도’로 보고 서구 자본주의 못지않게 환경파괴에 무관심했던 마오쩌둥 사상 내부의 보이지 않는 서구 중심주의도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이 ‘하얀 가면’을 벗으려면, 차후의 중국 좌파나 한국 좌파가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서 반성했듯이 ‘우리 안의 서구 중심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참고될 사이트:

1. <하상>의 ‘친외적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적 설명:

http://deall.ohio-state.edu/denton.2/mclc/abstracts/liutoming.htm

2. <하상> 상영 이후의 논쟁에 대한 미국 대학교 교재 자료:

http://www.columbia.edu/itc/eacp/webcourse/chinaworkbook/what/read6b.htm

3. 최근에 나온 쑤샤오캉의 영문 자서전 발췌문:

http://www.randomhouse.com/knopf/authors/xiaokang/excerpt.html

4. 쑤샤오캉을 포함한 ‘반체제 인텔리’ 인권탄압에 관한 보고서:

http://www.hrw.org/reports/1995/China.htm

5.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인의 세계·민족·인종 인식 변화에 대한 논문:

http://jia.sipa.columbia.edu/Dikotter.html


박노자 |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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