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 미국
마구잡이 추방에 떠는 미국 동포들…최근 수용소에서 한인이 자살한 사건도 발생
지금 미국에서는 영주권자나 장기 체류자들이 추방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추방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한인 동포들은 미 시민권을 따야 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내 외국인에 대한 제반 감시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불심검문까지 하면서 마구잡이로 추방 대상자를 찾아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추방재판을 기다리던 한인동포가 두려움에 못 이겨 연방구치소에서 목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미 동포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이민자가 추방 때문에 목숨을 끊은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통위반만 해도 추방당할 수 있다
지난 6월10일 캘리포니아 주 샌페드로 연방구치소 독방에서 추방을 앞둔 정관우(46)씨가 목을 매 자살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평소 우울증 증세에 시달려온 정씨가 추방을 앞두고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정씨는 수년 전 홧김에 자신의 아파트 방 벽에 총을 쐈다가 이웃의 신고로 ‘살상무기를 동원한 폭력혐의’를 받고 6년의 실형을 살고 지난해 2월 출소했다. 갱생의 삶을 꿈꾸며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목사로부터 얻은 차량을 운전하던 도중, 불운하게도 접촉사고를 내면서 경찰에 붙잡혔다. 형기를 마친 지 얼마되지 않아 정씨는 추방을 위해 샌페드로 연방구치소에 구금됐다. 추방길에 놓인 많은 한인들의 고민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떨어져 살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도 거처할 곳도 마땅치 않을 뿐더러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희망이 없다는 데에 있다. 자살한 정씨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과거 5년 이상 복역한 범법자들을 주로 추방해왔는데 반 이민정서가 높아진 1996년에 이민법이 개정되어 1년 이상 실형 선고자들도 추방할 수 있도록 확대됐다. 그러다가 9·11 사태를 맞으면서 테러 혐의자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추방에 대한 시행조처 범위가 대폭 강화되었다. 심지어 교통위반 딱지를 받고 벌금을 내지 않았거나, 사소한 음주운전이나 가정폭력 또는 도박, 마리화나 흡연, 매춘 등으로 위법 기록을 지닌 사람들까지 추방심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3살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한국계 애론 빌링스(27, 한국이름 권성호)가 마리화나 소지 및 판매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95년 차량절도 혐의로 11개월 징역형을 산 것이 드러나 이민귀화국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고 난감해하고 있다.
지난 3월에 신설된 국토안보부(DHS)는 미 시민권자가 아닌 모든 외국인 중 불법체류자와 전과자, 추방명령을 받고 잠적한 사람들을 체포하는 특별단속반(FOI)을 지난 5월부터 가동시켰다. 특별단속반은 추방명령을 받고 잠적한 약 30만명의 외국인 명단을 전국범죄정보센터(NCIC) 전산망에 올렸다. 이들은 FBI 등의 협력을 받아 체포 작전에 나서는데, 지역경찰에까지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연방법무부도 지역경찰을 포함한 사법기관들이 이민법 위반자를 체포할 수 있다는 행정 지침을 내렸다. 이에 대해 아메리칸민권연맹(ACLU) 등 인권단체는 인권침해를 이유로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보석 불가, 추방 때까지 계속 구금
추방대상자를 찾아나서는 미 정부 관리들은 불심검문을 통한 단속에도 나서고 있다. LA 코리아타운의 이민법률상담소들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 캐나다와 멕시코 등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한인들이 국경 도시에서 불심검문을 당한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중 과거 전과 사실이 밝혀져 추방재판에 회부당하는 한인들이 생겨나 LA 총영사관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미 행정부의 추방강화 조처에 대법원도 동조하는 기세다. 지난 4월29일 대법원은 한국인이 관련된 추방 관련 심리에서 아주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날 대법원은 “추방 조처가 계류된 영주권자 ‘한국인 김형준’을 정부가 계속 구금하는 행위는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바로 판례가 되어 추방재판을 기다리는 수많은 영주권자들이 보석 없이 장기간 구금을 당하는 고통을 감수하게 됐다.
영주권자인 한인 김형준(25)씨는 6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에 왔는데, 지난 96년과 97년에 무단침입과 절도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후 추방재판에 회부됐다. 그러나 추방재판 중 보석을 허가하지 않아 인권단체인 아메리칸민권연맹(ACLU)이 김씨를 위해 법정투쟁에 나섰고, 항소법원은 김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씨는 그동안 추방이 연기돼왔으나 미 법무부가 이 케이스를 대법원까지 끌고 가 끝내 ‘보석 불가’ 조치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대법원이 김씨 사건에 판결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5월부터 애리조나 주 이민법정은 이미 보석으로 풀려난 재판 계류자들까지 다시 구속하는 조처를 내리고 있다. 이민 법조계는 이러한 조처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미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 위법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추방조처를 할 심산이다. 이민귀화국(BCIS)은 오는 8월부터 '유학생 감시시스템(SEVIS)'을 발동해 학생신분(F-1)에서 이탈한 학생들은 예외없이 추방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유학생 전담반의 인원을 증가해 매 학기별 유학생 동태를 파악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전산화로 운영되기에 유학생들의 학업등록, 전학, 진학, 휴학, 졸업 등의 기록을 정부가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유학생이 5개월 이상 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외국인 유학 상담자의 허가 없이 수강등록을 취소하면 그날부터 불법체류자가 되어 추방 대상이 된다. 또 졸업 후나 학위 취득을 받은 후 60일 이내에 미국을 떠나지 않으면 역시 추방 리스트에 오른다.
미 국무부는 내년 1월1일부터 미국과 무비자 협정이 체결된 일본 등 27개국을 제외한 한국 등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비자발급시 지문을 등록시키도록 재외공관에 지시했다. 이에 앞서 국무부는 오는 8월부터 관광, 방문, 상용 등 비이민 비자는 반드시 직접 인터뷰를 거쳐 비자를 발급토록 조치했다. 따라서 미국을 입국하려는 한국인들은 비자신청을 훨씬 일찍 접수시켜야 한다.
한국 돌아가도 살 방편 없어
추방 대상자를 수감하는 이민수용소는 지난번 한인 정관우씨가 자살했던 LA 소재 샌페드로 수용소를 포함해 미 전역에 9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2001년 통계로는 1만9천여명이 수감되어 있는데, 이 수치는 94년의 7천500명에 비해 거의 3배나 증가된 것이다. 미 법무부 2002년 회계연도(2001년 10월∼2002년 9월) 자료에는 한인 추방자 수가 300명을 넘었다. 이는 2001년 회계연도에 비해 2배로 늘어난 수치다.
한인 추방자가 늘어난 이유는 정부의 단속강화로 적발되는 경우가 많고, 장기간 구금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지쳐 차라리 한국으로 가버리자는 심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다. 미국에서 살다 추방되어 가더라도 생활 근거지가 달라 일가 친척도 없는 한국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치소에서 자살한 정관우씨가 대표적 사례다. 최근 이민수용소에서 추방이 확정된 한 한인은 친지에게 “기약 없는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한국으로 추방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한국에 가더라도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연고도 없어 직업을 찾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서부지역을 관장하는 샌프란시스코 이민귀화국의 쉐런 러머리 대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민법은 미국에서 세법 다음으로 복잡한 법"이라면서, "미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는 어디까지나 외국인의 신분일 뿐이므로 이민법을 잘 숙지하고 이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9.11 테러사건 이후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9.11 테러 이후 강화된 것이 아니라 연방의회에서 96년 개정한 이민법을 시행할 뿐"이라면서, "규제가 강화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새로운 기계나 시스템으로 보다 완벽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A= 김지현 전문위원 lia21c@hotmail.com

일러스트레이션 | mqpm최용호

사진/ 미국의 한 이민 수용소에 수감된 외국인. 2001년 통계로는 수용소에 1만9천여명이 수감되어 있는데, 이 수치는 94년의 7천500명에 비해 거의 3배나 증가된 것이다.(SYGMA)

사진/ 미국의 한 입국심사원이 이민자의 여권을 확인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불심검문까지 하면서 마구잡이로 추방 대상자를 찾아 나서고 있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