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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 땅 안의 남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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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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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 스페인·모로코

끊이지 않는 영유권 분쟁… 스페인의 영국땅 지브롤터와 모로코의 스페인땅 세우타를 가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말라가에서 버스를 타고 지브롤터로 향했다. 목적지는 라리네아. 말라가에서 라리네아 사이의 지중해는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으로 불리는데 해안을 따라 휴양지들이 형성돼 있다. 라리네아는 지브롤터와 인접한 스페인의 작은 도시다. 이곳에서 내려 지브롤터로 들어가는 국경검문소와 세관을 통과해야 한다.

스페인의 구두 속에 있는 바위


사진/ 지브롤터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검문소. 지브롤터는 1830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현재는 영국의 해외영토가 되어 있다.
검문소를 지나면 비행기가 착륙하다가 바다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비교적 짧은 활주로가 나타난다. 지브롤터의 초입에 ‘역사의 요람-지브롤터에 오심을 환영’한다는 기념물이 나타난다. 6㎢가 조금 넘는 면적에 3만명의 지브롤터인들이 살고 있으니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일 것이다. 국경검문소에서 정반대편에 위치한 유로파 포인트까지 고작 5km에 불과하고 넓이는 1㎢남짓한 크기인데 그나마 왼쪽은 급사면의 바위절벽이어서 오른쪽에 주거지역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설이 집중돼 있다. 지상에는 더 이상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지하에 터널을 굴착해 전기와 통신 등 하부구조를 구축하고 병원이나 저장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마누엘 레기네체는 지브롤터를 ‘스페인의 구두 속에 있는 바위’라고 표현한 바 있다. 스페인인들은 지브롤터를 ‘히브랄타르’로 발음하는데 본래는 ‘타리크의 산’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했다. 711년 지브롤터에 당도한 베르베르인 지도자 타리크 이븐 제야드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1501년 스페인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1713년 스페인이 유트레히트조약을 맺고 영국에 넘겨주었다. 1830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현재는 영국의 해외영토가 되어있다. 군사와 외교를 제외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치가 허용되고 있다.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들어가는 좁은 지브롤터해협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일찍부터 전략적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대잠수함작전의 전진기지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영국의 공군과 해군기지가 설치되어 있다. 1963년 스페인 정부는 탈식민화를 위한 유엔특별위원회에 지브롤터 영유권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안을 상정했고 69년에는 스페인 본토와의 국경 및 통신수단을 봉쇄했다. 지브롤터 영유권을 회복하려는 스페인의 노력은 부단히 지속됐으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7월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지브롤터 영유권을 영국과 스페인 양국 정부가 공유하는 방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발표함으로써 이른바 ‘공동영유권’으로 귀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공동영유권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 나와 지브롤터 문제가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7일 영국의 데니스 맥셰인 유럽문제담당 장관은 스페인 <엘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브롤터 주민들이 수락할 만한 합의를 도출해낼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밝혔다. 또 영국의 야당인 보수당은 스페인과 지브롤터의 영유권을 공유한다는 구상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스페인과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수당과의 초당적 공조를 이끌어내고 지브롤터 주민들을 설득해야만 하는 이중의 부담을 떠맡아야 한다.

지난해 11월 지브롤터 주민들은 영국과 스페인 양국 정부가 영유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99%가 반대하고 1%만이 찬성했다. 지브롤터는 26년 전인 67년에도 국민투표를 실시해 영유권 공동 행사나 스페인 반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었다. 물론 지난해의 국민투표 결과를 영국과 스페인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정치적 민감성과 파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지브롤터의 영유권을 반환받거나 최소한 공동행사하려는 스페인 정부의 시도를 좌절시키는 것은 영국 정부가 아니라 지브롤터 주민들의 의견이 될 것 같다.

사진/ 지브롤터 시내에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우리의 희망에 반하는 양보에는 반대, 합리적 대화에는 찬성”이라 적혀 있다(왼쪽). 세우타 시내의 벽화. “세우타는 자치 공동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오른쪽).

모로코 “식민주의의 유산이다”

스페인은 지브롤터 문제에선 ‘피해자’임이 분명하지만, 모로코에 영토를 가지고 있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세우타(Ceuta)는 세계 영유권 분쟁의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아직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마치 범접하기 어려운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처럼. 그런데 유럽과 아프리카가 적어도 지리적으로는 지척 거리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스페인은 그곳을 세우타라고 부르고 모로코인들은 셉타라고 부른다. 비록 모로코에 둘러싸인 아프리카 땅이지만 스페인의 영토다.

세우타의 아초성채에 올라가보면 지브롤터가 코앞에 보이고 수많은 배들이 좁은 지브롤터해협을 쉴 새 없이 통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브롤터와 스페인 국경에선 간단한 신분증이나 여권 검사만 하지만 모로코에서 세우타로 들어가는 국경 입구는 요새처럼 방벽을 두르고 있어 위압감을 준다. 세우타가 무관세 자유무역항이라는 이점 때문에 하루에도 수천명의 모로코인들이 세우타와 모로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을 하거나 상거래를 한다. 스페인은 북아프리카에서 세우타와 멜리야 두곳에 자국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

세우타에는 7만5천명, 멜리야에는 6만9천명이 상주하고 있는데 세우타는 1580년, 멜리야는 1496년 이후 스페인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지브롤터보다는 조금 크지만 세우타도 불과 18㎢의 무척 작은 땅이다. ‘아프리카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시가지를 따라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스페인의 해군기지와 수산물 가공시설 이외에 특별한 산업시설은 없다.

지난해 7월, 6명의 모로코 군인들이 불법 이민과 테러리즘을 감시한다는 명분하에 세우타 부근의 무인도인 페레힐섬에 상륙해 관측소를 세우려고 시도했다. 이에 스페인이 특수부대원들을 동원해 모로코 군인들을 몰아내고 재탈환한 적이 있다. 모로코의 하산 6세 국왕의 결혼식이 치러지고, 영국 정부가 지브롤터 영유권을 스페인 정부와 공유할 준비가 돼 있다는 발표를 한 때에 맞춰 발생한 외교적 분쟁이었다. 모로코 정부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지만 장기적으로 세우타와 멜리야의 영유권을 반환받기 위한 사전 포석과 명분 설정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물론 모로코의 행동에 스페인은 전함외교를 통해 영유권 문제에 관한 한 한치의 양보도 불가하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스페인이 세우타와 멜리야 영유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의 유산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모로코에 맞서 스페인은 모로코가 국가를 형성하기 이전에 세우타와 멜리야가 스페인 영토로 편입되었음을 내세우며 5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강조해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불안정한 현상유지는 계속된다

지난해의 외교적 분쟁에도 불구하고 스페인과 모로코는 멀리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이 있다. 20만명의 모로코인들이 스페인에 거주한다. 유럽에 사는 150만명 이상의 모로코인들이 해마다 여름 휴가철엔 스페인을 거쳐 귀향한다. 900여개의 스페인계 회사가 모로코에서 영업을 하고 스페인은 모로코에 대한 최대의 원조공여국 중 하나다. 또 모로코 정부의 협력 없이는 불법 이민, 해시시(마약의 일종)의 유럽 반입과 밀거래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페인이 회원국으로 있는 유럽연합(EU)으로서도 모로코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영유권 분쟁도 ‘이전상태유지’(maintenance of the status quo ante)라는 예상됨직한 외교적 수사 이외에는 분쟁 당사국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좁다란 지브롤터해협의 불안정한 현상유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브롤터·세우타=글·사진 양철준 전문위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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