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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13억의 인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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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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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 중국

수용소 안에서 청년이 맞아 죽은 사건을 계기로 들끓는 네티즌·지식인들의 인권 개선 요구

사스가 한풀 꺾인 중국에서 최근 들어 ‘인권’ 문제가 새로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 광저우의 유랑자 수용소 안에서 한 청년이 맞아죽은 사건으로 촉발된 ‘공민인권문제’는 현재 중국 내 법학자들과 지식인, 언론인, 일반 시민들이 연명으로 서명한 공개적인 인권보호 탄원서를 전인대와 최고인민법원에 제출할 정도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인터넷 지식인’ 일어서다


사진/ 중국의 ‘수용관련규정법’은 신분증과 잠주증, 직업증명서가 없는 도시 유랑인들을 유랑자수용소에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인근의 도시 농민공들.(이미지프레스 노순택)
이 사건은 지난 4월25일, 중국 광저우에서 발행하는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의 최초보도 뒤 인터넷 등을 통해 네티즌들의 꾸준한 항의와 지식인들의 호소 등에 입입어 차츰 여론화되었다. 여기에 최근 사스가 잠잠해진 틈을 타 <인민일보>(人民日報)를 비롯한 주류 관방매체들까지 가세하면서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여론정치’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관련범 전원에게 사형을 비롯해 무기징역 등의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중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중국 내 많은 지식인들은 더 나아가 공민 기본 인권에 관한 본질적인 ‘재사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어 향후 중국 인권문제 개선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 대다수 관방매체에서조차 “중국 민권의식의 각성을 촉발시켰다”라고 평가한 이 사건은 지난 3월17일, 우한과학기술대 졸업생인 쑨쯔깡이 잠주증(주로 타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발급하는 일종의 임시거주 증명서)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유랑자 수용소로 이송되면서 발생했다. 한 의류회사에 취직되어 광저우에 온 지 불과 두달밖에 되지 않아 미처 잠주증을 만들지 못한데다가 밤에 PC방을 가기 위해 별다른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은 채 외출했던 쑨쯔깡은 뜻하지 않은 불심검문을 받고 바로 파출소를 거쳐 유랑자 수용소로 보내졌고, 3일 뒤 수용소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당시 수용소쪽은 쑨쯔깡이 지병인 심장병으로 돌연사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이를 수긍하지 못한 가족들의 항의로 4월18일 부검을 실시한 결과 결국 ‘맞아 죽은 것’으로 최종 사인이 밝혀졌다. 이러한 부검 결과가 나온 이후 지난 4월25일 <남방도시보>에 ‘강제 수용된 쑨쯔깡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첫 관련보도가 나가면서 이 사건은 ‘쑨쯔깡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후 인터넷 등을 통해 꾸준한 ‘항의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쑨쯔깡 사건’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네티즌들의 인터넷 항의운동뿐만 아니라 중국 내 법학자들과 지식인들의 호소가 큰 힘을 발휘했다. 특히 언론매체에 대한 통제로 인해 주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정치·사회적인 현안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대다수 중국 ‘인터넷 지식인’들의 역할은 이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즉, 사이버 인권투쟁으로까지 불리는 쑨쯔깡 사건은 <남방도시보>의 최초 보도 이후에도 근 한달간 침묵을 지키던 주류 매체들이 이들 ‘인터넷 지식인’들의 사이버 투쟁에 힘입어 사건을 공론화시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월26일경부터 이들 인터넷 지식인들이 주축이 되어 벌인 진상조사 및 공민인권보호에 관한 연명 호소문은 뒤이어 중국 내 주류 법학자들이 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 형태로까지 발전되었다.

수용소 제도, 대대적 개혁 필요

사진/ 그동안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빌미로 한 집체인권 개념에 밀려 중국의 개인 인권은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톈안먼 앞.(이미지프레스 노순택)
지난 5월20일 베이징대 법학과 허웨이팡 교수와 국가행정학원의 두젠깡 교수 등 중국 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법학자 다섯명은 이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쑨쯔깡 사건에 대해 최고인민검찰원에 보내는 건의안’을 발표했으며, 이 건의안은 5월29일 전인대 내 관련 부서로 보내졌다. 이들 다섯명의 법학자들의 공개건의문에 이어 5월24일에는 각계 지식인들이 ‘자유와 평등한 공민사회 건설을 위한 공동호소문’을 전인대 상무위원장 우방궈와 국무원 총리 원자바오 앞으로 보냈으다. 5월29일에는 345명의 공민이 연명으로 서명한 최고인민검찰원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서명운동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또한 6월6일에는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 <광명일보>(光明日報) 등 대표적인 다섯 개의 관방매체 기자들이 쑨쯔깡 사건 재판 방청을 거부당한 일과 관련해 ‘투명한 공개재판을 하라’는 내용으로 연명 비판성명을 발표하는 등 중국에서는 보기드문 연명 항의, 호소 현상이 벌어졌다.

공개서한을 보내고 있는 많은 법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쑨쯔깡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며 중국의 ‘수용소 제도’와 ‘잠주증 제도’ 등에 내재된 인권유린적인 악법요소 등으로 인해 언제든지 다시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회에 대대적인 관련법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1982년 제정된 ‘도시유랑민에 대한 수용법’을 근간으로 1992년 개정된 ‘수용관련규정법’에 의하면 신분증과 잠주증, 직업증명서가 없는 도시 유랑인들은 사회치안과 안정을 위해 유랑자수용소에 수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사실 농촌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위해 올라오는 ‘농민공’들을 겨냥한 것이며 특별한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도시에서 불법체류(현재 중국은 농촌에서 도시로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하고 있는 농민공들은 언제든지 수시로 ‘수용’될 수 있는 남용의 소지를 가지고 있어서 오래전부터 농민과 도시민간의 공민차별 내지는 인권유린 규정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서명에 참가한 중국 내 많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규정들이 도농간의 인구이동을 금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경제시대의 부산물로 시장경제가 도입된 지금에 와서는 합법적인 인구이동,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경제발전에도 불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농민들과 사회적 약자계층에 대한 인권유린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제기하고 있다. 또한 경제발전을 이룬 뒤라야 비로소 인권도 있고 민주도 있다는 중국정부의 사고방식 역시 여전히 “계획경제체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낡은 관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집체인권에 밀렸던 개인인권이…

사진/ 수용소제도는 보통 공민뿐만 아니라, 특히 농민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나타내는 것이다. 건설산업에 동원되고 있는 도시 농민공들.(이미지프레스 노순택)
<13억의 충돌> 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내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인 한더치앙 교수는 “쑨쯔깡 사건은 시장경제체제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의 문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했다. 시장경제체제 도입 이후 중국 사회는 약자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약자들의 생존권과 공민들의 기본인권이 존중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민인권을 유린하는 차별법인 수용소제도와 잠주증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하며 나쁜 일(쑨쯔깡 사건)이 좋은 일(인권개선)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의 공저자 중 한명인 송치앙 역시 “사스가 중국 대륙을 휩쓸면서 중국 내 많은 악습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듯이 쑨쯔깡 사건 역시 그동안 은폐되어 있었던 인권문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쑨쯔깡 사건은 중국 정부로서는 매우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인권문제인데다, 그동안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빌미로 한 집체인권 개념에 밀려 개인인권은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었던 중국 내에서 처음으로 인권문제가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방법을 통해 이슈화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이 ‘중국 공민’의 명의로 제기한 공개적인 ‘인권개선’ 요구는 중국 내 시민사회 발전의 가능성과 함께 중국 정부로 하여금 인권문제 개선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향후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베이징=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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