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 팔레스타인
이-팔 유혈충돌로 좌초 위기에 처한 ‘이정표’…샤론의 의도적 공격이었나
“가자지구가 이스라엘군의 무덤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무장대원들에게 즉각 시오니스트 국가(이스라엘)를 분쇄하기 위한 공격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테러 공격이 계속되면 어떠한 평화 과정도 없을 것이다. 테러와 평화회담이라는 두개의 길은 있을 수 없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구두에서 중동의 모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피를 흘리고 있다. 지난 6월4일 부시 미 대통령,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가 요르단의 항구도시 아카바에서 만났다. 이들이 애써 밝게 웃는 한 장의 사진은 중동 평화를 위한 로드맵 이행을 이끌 새로운 3인의 위치를 부각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자살폭탄 공격과 보복 공습이 이어지면서 희망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있다. 중동평화안인 ‘이정표’는 항해를 떠나기 전에 좌초 위기에 처했다.
팔 무장단체 저항은 자연스런 결과
최근에 벌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혈충돌의 격전장은 가자지구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혈충돌의 일지를 보자. 6월5일, 이스라엘군 요르단강 서안 툴 카렘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조직원 2명 사살. 6월8일, 이스라엘군으로 위장한 팔레스타인인 3명, 가자지구 이스라엘군 주둔지에 침입, 이스라엘 병사 4명 사살. 6월10일, 이스라엘 헬기, 하마스 지도자 압델 아지즈 알란티시가 탄 차량에 미사일 발사, 란티시가 부상하고 그의 경호원 2명 사망.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쪽 로켓 공격이 일어나고 이스라엘 헬기 및 탱크의 반격으로 16살 소년 포함, 팔레스타인인 3명 사망. 6월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번화가 자파 거리에서 하마스 소속 무장대원이 버스를 상대로 자살 무장공격을 감행 최소 17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 이 사건 직후 이스라엘군의 아파치 헬기 공격으로 하마스 간부 2명 등 9명 사망. 6월12일 하마스 군사조직의 지도자 1명을 포함한 7명이 숨지고 30명 이상이 부상. 이라크전 못지 않은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시 샤론 총리는 타고난 강경파였고, 압바스 총리는 무기력한 지도자였다. 샤론 총리는 11일 팔레스타인 무장저항 단체와 그 지지자들에게 앞으로 최강도의 압박을 계속할 것을 강한 어조로 재다짐했다. 최근 샤론의 행보 중에는 평화를 바라는 중동인들에게 고무적인 모습도 있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제시한 이정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국과의 관계가 손상된다며 강경파들에게 수용을 촉구하는 한편, 지난 6월9일 이정표의 선행조건인 2001년 이후 건설된 유대인정착촌 60여곳 중 10곳의 철거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타 지역 정착촌은 확대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실시해 이스라엘 여론의 반발을 무마시키고자 했다. 아울러 미·이·팔 3자회담 직전에는 예루살렘은 포기할 수 없다고, 6월11일에는 단 한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강경책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강한 반발과 무장단체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지난 6월10일 이스라엘군의 아파치 헬기가 하마스 지도자 란티시가 탄 차량에 미사일을 날린 뒤, 이스라엘 군당국은 란티시가 이정표 협상 이후 대이스라엘 테러공격에 더 깊숙이 간여했기 때문에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란티시가 6월8일 이스라엘 군복으로 위장한 하마스 무장대원 8명이 이스라엘 군인 4명을 사살한 사건을 배후 지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란티시에 대한 공격은 그 시기부터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6월10일은 이집트의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부장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의 휴전협상을 위해 요르단강 서안을 방문하기 하루 전이다. 또한 일부 하마스 지도자들이 기존 입장을 바꿔 팔레스타인 당국과 대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한 직후 이스라엘의 공격이 감행됐다.
이스라엘군 전면전 지시
과연 이스라엘이 이정표를 이행할 의지가 있느냐는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란티시의 차량에 미사일 공격을 가해 팔레스타인의 무장 저항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그동안 줄곧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주었던 부시 미 대통령조차 이스라엘군의 이날 공격을 비난할 정도였다. 부시 대통령은 “하마스 지도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스라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미 의회 안팎에 포진한 친이스라엘계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하마스와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지난 6월11일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버스 자살 폭탄 공격 직후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마스를 완전 제거하라”는 명령을 전군에 시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샤울 모파즈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버스 자폭 공격 직후 열린 이스라엘군 최고 지휘관 회의에서 하마스와의 전면전 명령을 시달했다. 이 전면전은 하마스의 창설자인 세이크 아흐마드 야신을 포함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하마스 대원과 조직의 기반을 궤멸시킬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편으로 이스라엘군의 전면전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와 지하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파타운동 등 14개 단체는 이미 ‘민족주의자와 이슬람 부대(NIF)’로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NIF는 최근 성명을 발표해, “우리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하는 무장봉기를 계속하고 독립과 팔레스타인 난민 복귀, 예루살렘의 해방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게 투쟁할 것”을 밝혔다. 이스라엘군과 민간인에 대한 무장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선이 더욱 강하게 형성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이어지고 있는 유혈충돌은 서로 ‘자위권 행사’라는 명분을 걸고 있다. 호들갑스런 언론은 중동평화의 불씨가 꺼진다며 연일 우려와 탄식을 내뱉고 있지만, 아랍인들은 미국이 만든 ‘이정표’라는 것이 예전 평화안과 차별성 없는, 오히려 더 후퇴한 ‘지뢰밭’이었기 때문에 예상된 결과라고 말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협상,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공격, 이를 빌미로 삼은 이스라엘의 무차별 살상…. 반복되는 역사는 과연 팔레스타인 땅에 희망은 있는가 회의를 갖게 한다.
위기에 내몰린 압바스 총리
어쨌든 미국이 지지하는 몇 안 되는 팔레스타인 지도자인 압바스 총리는 최근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평화협상이 와해 조짐을 보이자, 안팎의 압력에 시달리며 그나마 좁았던 입지가 더욱 축소된 것이다. 반면 샤론 총리는 교묘한 정치역량을 한껏 발휘하면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목전에 앞둔 99년 9월말 샤론은 예루살렘 성전산 방문을 통해 ‘인티파다’를 촉발시키며 독립국가의 꿈을 수포로 돌렸다. 현재의 유혈충돌이 샤론 총리의 계산된 수순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아랍인들은 어떤 ‘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미래는 있는가”라고 물으면 “알라 외에는 다른 대답이 없다”는 신앙 고백만이 돌아온다.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애환과 점령국가 국민으로 살아가는 ‘가해자’ 이스라엘인들의 처절함이 교차된다.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사진/ 가자지구 하마스 조직원들이 리더 란티시를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대항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연대하고 있다.(GAMMA)

사진/ 지난 6월4일 요르단 아카바에서 열린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3자 정상회담. 이 회담 다음날부터 유혈충돌이 이어졌다(왼쪽,GAMMA). 이스라엘 헬기의 공격으로 불타고 있는 자동차(오른쪽,AF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