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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폴란드의 뜨거운 충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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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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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과 함께 이라크 점령 통치 3대 원흉으로… 파병의 대가는 알량한 ‘유럽 2등시민’

필자가 처음 노르웨이에 와서 노르웨이어 과정을 다녔을 때 폴란드 출신의 석·박사들과 같이 공부한 적이 있었다. 18세기말부터 1918년까지 폴란드를 식민지로 삼아 통치했던 러시아에서 폴란드인은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독립운동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폴란드 사람처럼 자존심이 세다”는 것은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대대적인 무장 독립투쟁을 벌였던 19세기부터 러시아에서 널리 쓰여온 표현이다.

그들은 자존심을 버렸다

사진/ 지난 5월30일 폴란드를 방문해 군인들의 사열을 받는 부시 미 대통령. 이라크전 군대파견에 보답이라도 하듯 양국간의 우애를 과시했다.(AP연합)
그러나 그 폴란드 급우들은 곧고 드센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19세기 러시아 고전소설 속의 폴란드인과는 너무나 달랐다. 교실에서 발표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수많은 간호사와 선원, 학자들을 받아들여 준 노르웨이 관민에 ‘뜨거운 감사’를 표현했으며, 자기 나라를 후원해준 유럽국가들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하곤 했다.


필자는 그 ‘충성심 고백’을 들을 때마다 폴란드의 싸고 요구 수준이 낮은 노동력을 이용하는 노르웨이 자본가들이 그렇게 고마울까 싶었다. 서구에 대한 이런 태도를 1945년 이후의 소련의 가혹한 패권정책에 대한 반감의 소치로 본다 해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은 제3세계에 대한 그들의 태도였다. 그들 대다수는 이슬람을 ‘유럽 문명의 반대자’로 생각했으며 이슬람권 출신들의 유럽 진출을 ‘문화적 오염’쯤으로 인식했다. 이슬람 국가 출신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겨우 숨긴 경멸과 무관심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서구에서 ‘2등 유럽’의 대접을 받는 폴란드인들이 또다른 약자인 이슬람권 이민자들을 박대하는 것은 역설 중의 역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가 9천명의 군대를 파견해 미국의 지휘 아래서 바스라(Basra) 이북 바그다드, 이남의 시아파 거주 지대의 군사적 점령을 담당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폴란드 친구들의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태도는 필자를 크게 놀라게 했다. 18세기말부터 1989년까지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려온 폴란드. 구한말 시절에 한국 독립을 염원했던 신채호와 같은 계몽주의자들의 애독서는 폴란드 왕국 말기의 독립전쟁을 그렸던 <파란말년전사>(波蘭末年戰史)라는 책이 아니었던가? 해방공간에서 지식인들이 <신천지>와 같은 잡지에서 ‘굴복을 모르는 국민, 폴란드’의 제2차 세계 대전 시절의 반(反)파쇼 투쟁은 가장 즐겨 읽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 폴란드가 지금 미·영과 함께 이라크 점령 통치의 3대 원흉 대열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현재 폴란드 정부(아이러니컬하게도 공산당 계통의 좌파 정권이다)의 대미 협력 행위에 대한 대다수 폴란드인들의 지지와 노르웨이어 과정에 있던 폴란드 학생들이 보였던 제3세계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는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 이라크로의 군대파견에 대한 폴란드 정부의 열정()과 비(非)서구 지역들에 대한 많은 폴란드인들의 일그러진 태도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4500달러를 넘지 못하는 폴란드는 자본주의 체제의 약자다. 특히 평균 7.7ha밖에 토지를 가지지 못하고 기술이나 재정 면에서 서구 농·축·산업의 업자들에게 밀리지 않을 수 없는 폴란드 농민(전체 국민의 약 20%)이나 증가돼 가는 실업자(노동인구의 18%)들은 별다른 희망 없이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미 서구 상품과의 경쟁으로 농업과 중공업이 사상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올해 6월로 예정돼 있는 유럽연합 가입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가입이 결정된다면 소외층은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유럽연합에의 가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서구인들의 투자’를 들먹이고 있는데, 외자 도입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대우를 의미하는지 60~80년대의 한국이나 오늘날 중국·베트남의 경우를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서구인들의 편견을 답습할 것인가

사진/ 폴란드의 철강 노동자들. 서구 상품과의 경쟁 속에서 농업과 중공업이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GAMMA)
벨기에 자본에게 25%의 지분이 매각된 폴라니에크(Polaniec) 발전소의 감봉과 대량해고 위협, 부데크스폴 스칸스카(Budexpol Skanska)라는 폴란드에 거액을 투자한 스칸디나비아 계통 목재기업에 의한 폴란드 노동조합 활동가 21명의 불법해고 사건들은 폴란드 노동자들을 서구 자본이 어떻게 대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폭력을 휘두르면서 농민의 데모를 과잉 진압하는 폴란드 경찰의 추태를 보면 한국과 폴란드의 노동자·농민들이 서로에 대해서 충분히 동병상련의 정을 느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유럽 자본의 위계질서 밑바닥에서 착취와 멸시를 당하고 있는 폴란드 대중들이 왜 침략 전쟁에 폴란드 군대를 용병으로 보내는 정부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그들은 왜 훨씬 더 형편이 어려운 이라크 민중들을 향해서 동감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가? 왜 그들 상당수는 제3세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편견을 답습하려 하는가? 폴란드 대중들의 순치의 비결은, 서구·미국의 세계 전략 중의 하나인 ‘분리 통치’에 있는 듯하다.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는 폴란드는, 만약 내년에 유럽연합이라는 세계 체제 중심부의 국가 연합에 가입한다면 사회·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라크 등지와 완전히 다른 ‘준(準)중심부’ 영역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진짜 유럽인’의 대접을 받을 것은 물론 아니다.

유럽연합 가입 조약에 따르면 가입 이후 5년 동안 폴란드 이주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부분적으로 폴란드인 고용을 제한할 수 있다. 그 후로도 차별이 없어질 것은 아니다. 폴란드 농민들이 받을 보조금은 서구 농민들이 받는 금액의 40%에 불과한 것이 좋은 사례가 된다. 그러나 서구로 탈출하는 길에서 죽는 아시아·아프리카 출신들의 이민자들의 수가 한해에 2천명에 이르고, 에티오피아 등지의 농민은 보조금은 물론 아사를 면하기 위한 구호물자조차 얻기 어려운 지옥과 같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유럽연합 2등 시민’의 신분도 일종의 특권일 수 있다.

최저임금이 한달에 200달러가 되는 폴란드라도 불법으로 가서 일할 만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우크라이나·벨로루시(최저임금이 30~40달러를 밑돈다)의 노동자 입장에서는, 스칸디나비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폴란드의 청년이 거의 ‘제1세계의 귀족’쯤으로 보일 것이다. 서구의 대규모 투자(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90년대에 미화 20억 이상을 폴란드에 투자했다)들이 외국인 기업에서 비교적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중산층의 화이트칼라들을 살찌운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의 ‘문명적 우월성’과 비서구의 ‘태생적·문화적 열등성’에 대해서 설파하는 우파 언론들로부터 세뇌까지 당한 상당수의 폴란드인들이 ‘부자 클럽에서의 2등 회원권’을 커다란 은혜로 보고 서구 주인들 이상으로 아시아·아프리카 대중들에 대해 우월한 고자세를 취하려는 심리는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마름?

유럽연합의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것을 폴란드 대중도 알지만, 아직 서구와 미국을 동일한 문명의 공간으로 상상하는 한, 유럽연합에의 가입과 대미 군사적 협력을 호환 가능한 전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 자원의 약탈에 동참하려는 기업인들의 독촉을 받고 있는 정부는 이와 같은 분위기를 이용하여 파병의 대가로 자기 몫을 챙기려 하는 것이다. 거기다 미국과의 유대관계를 과시함으로써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프랑스·독일)와의 교섭에서 몸값을 높여보려는 계산까지 깔려 있다. 물론 폴란드에서도 이라크 침략과 점령에서의 참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시위하는 진보세력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도 이제 유럽인이 된다”는 것에 도취된 분위기를 바꾸기란 역부족이다.

폴란드인들은 불리한 조건으로 독일이나 노르웨이의 기업주를 위해서 땀을 흘리는 것을 언제까지 은혜이자 특권으로 생각할 것인가 유럽연합 가입이 이루어져 좀더 많은 폴란드인들이 서구의 차별적인 현실을 직접 겪게 된다면 환상들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차별을 만회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서 서구인들의 제3세계에 대한 차별의 콤플렉스를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폴란드의 진보세력들이 세계 체제 중심주의 ‘분리통치’의 실체를 대중들에게 밝혀주는 길을 찾지 않는 한, 이라크 파병과 같은 폭력적인 우거(愚擧)들은 계속 저질러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1. 이라크 점령에서의 영국 진보지 <가디언>의 리포트:

http://www.guardian.co.uk/comment/story/0,3604,956271,00.html

2. 스웨덴 사회당의 <오늘의 사회주의>라는 기관지가 폴란드 등의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에의 가입의 결과들을 논한다:

http://www.socialismtoday.org/54/sweden.html

3. 폴란드의 유럽연합에의 가입 관련 자료 (유럽연합의 공식적 사이트):

http://europa.eu.int/comm/enlargement/poland/index.htm

4. ‘부데크스폴 스칸스카’의 폴란드에서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노르웨이 건설·토목 노동조합의 공식 항의문:

http://www.fellesforbundet.no/upload/ENGELSK/Skanska.doc

5. 폴란드 농촌 상황에 대한 독일 대외 공립방송의 보도:

http://www.dw-world.de/english/0,3367,3066_A_783477_1_A,00.html

박노자 |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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