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 독일
탄광촌 상점으로 시작한 ‘알디’가 독일의 새로운 소비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기까지
컴퓨터라는 현대 문명의 대표주자와 손잡고 세계 최고의 부자로 등극한 사람이 빌 게이츠라면(<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약 407억달러의 자산을 소유한 세계 1위의 갑부다) 수천년 인류역사에서 돈벌이의 가장 고전적 수법으로 통하는 ‘장사라는 수완’으로 현재 세상을 평정한 이는 독일의 알브레히트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코카콜라 대신 ‘알디 콜라’
이 형제의 자산은 총 256억달러로 <포브스> 선정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형제의 어머니는 탄광 노동자의 아내로 2차 대전 당시 어려운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탄광촌에 작은 점포를 열었다. 전쟁이 끝나자 이들 형제는 어머니의 점포를 넘겨받으며 본격적인 ‘상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50년대에 독일에 냉장고가 도입되면서 더 신선한 우유와 버터가 소비자에게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포 수를 조금씩 늘여가던 이들 형제가 자신의 점포들에 냉장고를 설치하기에는 너무나 고가의 상품이었다. 그렇다고 경쟁에 뒤처져 냉장고에 고객을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탄광촌의 갱도를 보고 자란 이들 형제에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들은 바로 점포마다 깊은 지하 저장고를 만들어 우유와 버터의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하였고, 소비자들은 매시간 지하 창고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제품에 만족을 표시했다. 그렇다고 지하 저장고가 냉장고를 이길 수는 없는 법, 하루이틀이 지나면 우유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들 형제가 궁리 끝에 찾아낸 해결책은, 더 정밀한 수요예측에 기초하여 당일에 필요한 우유와 버터만을 공급하는 새로운 유통체계였다. 1980년대 세계 자동차 생산 공정에서 일대 혁명으로 일컬어졌던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Just in Time’ 모델의 원조인 셈이다.
탄광 갱도에서 착안한 지하 저장고와 점포와 점포를 잇는 수요 예측 유통망을 통해 얻은 비용절감 효과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탄생한 독일 저가 슈퍼마켓 체인점이 바로 ‘알디’(ALDI)다. 현재 독일에만 점포 수가 약 3770개에 이르러, 알디의 판매망은 사실상 전 독일을 촘촘히 메우고 있다. 촘촘한 점포망만큼, 알디는 독일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일종의 소비문화 현상으로까지 자리잡았다.
알디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들은 일단 가격이 저렴하다. 진열대에는 코카콜라 대신 ‘알디 콜라’가 놓여 있는 식으로, 유명 상표 대신 알디용으로 특별 생산된 저렴한 생필품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다. 그렇다고 이 염가 매장이 생필품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매주 품목이 바뀌며 시의적절하게 제공되는 기획상품은 텔레비전에서부터 속옷까지 이르러 “알디에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고 할 정도다.
1996년부터는 일년에 서너번씩 컴퓨터도 판매되고 있다. 컴퓨터를 판매하는 날이면, 소비자들은 영업 시작 전부터 알디 매장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 독일에서 성능대비 가장 싼 컴퓨터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알디에 컴퓨터를 납품하고 있는 ‘메디온’(Medion)이라는 회사는 이 덕에 이름 모를 작은 기업에서 하루아침에 중견 전자업체로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때면 선물용으로 시계와 목걸이를, 디지털 방송 도입에 즈음해서는 전파 전환기까지 구입할 수 있으니 독일 서민들 사이에 ‘알디 중독’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알디의 실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알디 점포망은 이미 독일 국경을 너머 프랑스(500개), 영국(277개), 네덜란드(390개)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미국(615개)과 오스트레일리아(39개) 시장까지 넘보며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다. 2002년 매출액은 무려 390억유로(약 50조원 규모)에 이르며, 이는 전년대비 11%가 증가된 규모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알디가 현재까지 전적으로 알브레히트 형제 개인소유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약 400억유로 수준의 기업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알디가 기업공개를 할 경우, 알브레히트 형제의 재산은 산술적으로 650억달러 이상에 이르게 된다. 이들 형제가 빌 게이트를 훌쩍 제치고 세계 제1위의 갑부로 등극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쯤 되면 알디의 성공신화는 세간에 무수히 회자되며 관련 저서나 인터뷰가 넘쳐나고, 이들 형제가 독일사회 다방면에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의아스럽게도 알디의 전직 간부가 쓴 한권의 책을 제외하면 알디는 여전히 두터운 베일에 싸여 있다. 이는 1971년 큰형 테오가 납치되었다가 거액을 지불하고 풀려난 이후, 이들 형제가 세상과 두껍고 높은 담을 쌓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들 형제는 정치권 및 경제계 인사들과도 전혀 접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개로 쪼개진 법인체들이 정부에 지불하는 세금 납부 방식도 좀처럼 알디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업정보를 공개하라는 정부압력에 밀려 2003년 4월에 이르러서야 알디는 처음으로 2002년 매출 총액 등 기업 전체의 대차대조표를 세상에 공개하였을 정도다. 이미 1961년부터 ‘북부 알디’와 ‘남부 알디’로 형제가 회사를 나누어 소유·경영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알디의 성공비결을 속속들이 밝혀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열대에 상자째 어지럽게 쌓여 있는 이른바 상표 없는 제품들은 일견 ‘싸구려’라는 인상을 준다. 천장에 축 늘어져 매달려 있는 형광등만 보아도 인테리어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알디 매장 주차장에 가보면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독일사람들 사이에 “부자도 알디는 간다”라는 말이 있다. 즉 ‘싸다’라는 것말고도 사람들을 알디로 이끄는 비결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알디에서 판매되는 물건들의 품질이다.
스위스의 ‘네슬레’는 알디에 버터를 납품하고 있다. 우유를 7일간 발효시켜 생산된 버터가 네슬레의 상표를 두르게 된다면, 알디로 향하는 버터는 6일간 발효시킨 제품들이다. 여기서 비용이 절감되나, 품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제품용기 또한 볼품이 없지만 화려한 제품포장에 비해 당연히 비용이 적게 든다. ‘북부 알디’에서 물건을 사서 계산대에 서면, 손가락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계산기를 누르고 있는 종업원을 만나게 된다. 아직 가격을 자동 인식하는 스캐너가 도입되지 않은 탓이다. 독일의 일반 슈퍼마켓에 평균 3만개의 제품이 있다면, 알디에는 600여개의 제품만이 있으니, 종업원이 가격을 외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비교적 적은 제품 수는 이에 대한 품질관리도 용이하게 한다.
제품평가 안 좋으면 바로 사라져
소비자를 위해 독일 국가기관에서 발행하는 월간 <제품 평가>(www.warentest.de)도 알디의 성장에 한몫하고 있다. 고급 상표의 화장품들 사이에 섞여 알디 화장품이 비교·분석되고, 동일 회사가 자사 이름으로 판매하는 세탁 세제와 알디에 납품하는 세제가 비교된다. 각 기업들의 거친 로비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이 잡지에 대한 독일 소비자의 신뢰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매월 발행되는 이 잡지는 시중에 판매되기 24시간 전에 독일 전역의 알디 매장에 배달된다. 가격·품질·위생상태 등 몇 가지 항목별 평가를 종합해 매기는 최종제품평가에서 중하위 평가를 받은 제품들은 이른 아침 매장 문을 열기 전에 모두 진열대에서 사라져버린다. 결국 남는 것이란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뿐이다. 이렇게 가격과 품질의 황금조합을 만들어낸 알디의 경영전략이 천문학적 광고비를 동반한 감각적 제품들과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오늘도 ‘알디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사진/ 베를린의 한 알디 체인점. 알디 점포망은 이미 독일 국경을 너머 세계시장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사진/ “알디엔 없는 게 없다.” 알디는 현재 독일에만 점포 수가 약 3770개에 이른다(왼쪽). 알디에는 유명상표 대신 알디용으로 특별 생산된 저렴한 생필품들이 즐비하다. 모두 가격과 품질을 보장한다(오른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