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서 열린 6·15 공동선언 특별공연 ‘오 통일 코리아’ …윤도현밴드와 총련계 학생들 하나 되다
“북과 남 해외동포 누가 갈라놓았나요. 분렬의 세월에 흘린 눈물 서로 닦으며, 북과 남이 뜨겁게. 우리끼리 손을 잡고 이제는 통일하자요.” 48년의 역사를 지닌 재일본조선인총연맹(총련)계 금강산가극단의 젊은 연주가 집단인 ‘향’의 노래 <우리끼리 잡은 손>의 일부다. 6ㆍ15공동선언 3주년을 기념한 특별공연 ‘오 통일 코리아’. 윤도현밴드가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문화강당이 만들어진 이래 한국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초청되어 무대에 섰다.
조선학교 대강당에 울리는 한국 록
<오 필승 코리아>라는 월드컵 때 유행했던 곡의 영향이었을까. 종종 ‘비 더 레즈’라고 쓰여진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지만, 지난 6월6일 1회 공연에서는 총련계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관객의 다수를 이뤘다.
“행진! 행진! 앞으로!” 윤도현밴드의 첫 곡이 흘렀지만, “앞으로!”를 후렴으로 같이 외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한국과 재일동포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같은 침묵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모두들 일어서서 같이 부릅시다”라는 밴드리더의 외침에 마치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무대 앞쪽으로 몰려들었다. 이후의 무대는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 일부는 의자 위에 올라서고, 함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절도 있고 차분한 조선음악 일변도였던 조선학교 대강당에 한국 록음악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격한 록음악이 잠시 잦아드는가 했더니, 미선·효순 추모 촛불시위에서 불렀던 노래 <하노이의 별>과 <너를 보내고>가 흘렀다. 무대인사에 나선 윤도현이 강자와 권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라며 미국에 대한 비판을 담은 노래라고 소개했다. 파란 조명 아래 가끔씩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꽤 많은 수의 학생들이 따라 부르기도 했다. 미선·효순양에 대해서는 이곳 조선학교 학생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도현 자신은 조선학교를 비롯한 아시아계 학교에 대한 대입수험자격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일본에 도착한 뒤 서명운동에도 참석했다면서 박노해의 시에 자신이 곡을 붙인 <이 땅에 살기 위하여>라는 노래를 불렀다. 박노해가 느꼈던 80년대 한국 ‘그 노동의 땅’보다 ‘이 일본 땅’이 더 척박했던 탓일까. 조선학교 폐쇄령에 반대하다 목숨까지 잃었던 1948년 한신교육투쟁이, 전철 안에서 찢기던 치마저고리의 아픔이 그들 모두에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마지막 곡은 <철망 앞에서>. 공연 주제곡이기도 하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처음 듣는 곡이지만 대형화면에 적힌 우리 글을 읽고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끈기 있게 우리말 교육을 시행해온 총련계 조선학교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일동포 반쪽의 공연이란 아쉬움도 금강산가극단 ‘향’의 공연은 윤도현밴드 공연에 앞서 1부에 열렸다. 관객들의 가장 뜨거운 환영을 받았던 것은 최영덕의 장새납 연주 <룡강기나리>. 장새납은 농악에서 사용되던 태평소(날라리)를 개량한 악기이다. 아주 긴 고음의 피날레는 단연 압권. 장새납을 연주한 최영덕은 금강산가극단에서도 아주 유명한 연주자이다. 2001년 평양 2·16예술상 콩쿨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02년 2월에는 한국 국립국악단 정기연주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드럼과 사물, 기타와 소해금, 가야금과 피아노가 함께 잘 어울렸다. 서구음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민족악기를 개량해낸 것도 대단하지만, 그같은 연주를 북쪽 연주자보다 재일동포 3, 4세들이 더 잘 해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내내 아쉬웠던 것은 재일동포 반쪽의 공연이란 점이다. “북과 남, 해외의 청년학생들과의 련대를 강화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운동에 전체 동포청년학생들을 불러일으켜온” 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이 공연을 주관했지만, 관객 대다수도 후원단체도 안타깝게 재일동포의 절반이었다. “우리끼리 손을 잡고 이제는 통일하자요”라며 노래 부를 때, 먼저 손을 잡아야 할 것은 남녘의 통일밴드 이전에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또 다른 반쪽의 재일동포들은 아닐는지. 도쿄=글·사진 신명직 전문위원 mjshin59@hotmail.com

사진/ 6월6일 공연에서 윤도현밴드와 조선학교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윤도현밴드는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문화강당이 만들어진 이래 한국 대중가수로서는 처음 무대에 섰다.
“행진! 행진! 앞으로!” 윤도현밴드의 첫 곡이 흘렀지만, “앞으로!”를 후렴으로 같이 외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한국과 재일동포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같은 침묵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모두들 일어서서 같이 부릅시다”라는 밴드리더의 외침에 마치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무대 앞쪽으로 몰려들었다. 이후의 무대는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 일부는 의자 위에 올라서고, 함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절도 있고 차분한 조선음악 일변도였던 조선학교 대강당에 한국 록음악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격한 록음악이 잠시 잦아드는가 했더니, 미선·효순 추모 촛불시위에서 불렀던 노래 <하노이의 별>과 <너를 보내고>가 흘렀다. 무대인사에 나선 윤도현이 강자와 권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라며 미국에 대한 비판을 담은 노래라고 소개했다. 파란 조명 아래 가끔씩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꽤 많은 수의 학생들이 따라 부르기도 했다. 미선·효순양에 대해서는 이곳 조선학교 학생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도현 자신은 조선학교를 비롯한 아시아계 학교에 대한 대입수험자격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일본에 도착한 뒤 서명운동에도 참석했다면서 박노해의 시에 자신이 곡을 붙인 <이 땅에 살기 위하여>라는 노래를 불렀다. 박노해가 느꼈던 80년대 한국 ‘그 노동의 땅’보다 ‘이 일본 땅’이 더 척박했던 탓일까. 조선학교 폐쇄령에 반대하다 목숨까지 잃었던 1948년 한신교육투쟁이, 전철 안에서 찢기던 치마저고리의 아픔이 그들 모두에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마지막 곡은 <철망 앞에서>. 공연 주제곡이기도 하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처음 듣는 곡이지만 대형화면에 적힌 우리 글을 읽고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끈기 있게 우리말 교육을 시행해온 총련계 조선학교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일동포 반쪽의 공연이란 아쉬움도 금강산가극단 ‘향’의 공연은 윤도현밴드 공연에 앞서 1부에 열렸다. 관객들의 가장 뜨거운 환영을 받았던 것은 최영덕의 장새납 연주 <룡강기나리>. 장새납은 농악에서 사용되던 태평소(날라리)를 개량한 악기이다. 아주 긴 고음의 피날레는 단연 압권. 장새납을 연주한 최영덕은 금강산가극단에서도 아주 유명한 연주자이다. 2001년 평양 2·16예술상 콩쿨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02년 2월에는 한국 국립국악단 정기연주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드럼과 사물, 기타와 소해금, 가야금과 피아노가 함께 잘 어울렸다. 서구음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민족악기를 개량해낸 것도 대단하지만, 그같은 연주를 북쪽 연주자보다 재일동포 3, 4세들이 더 잘 해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내내 아쉬웠던 것은 재일동포 반쪽의 공연이란 점이다. “북과 남, 해외의 청년학생들과의 련대를 강화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운동에 전체 동포청년학생들을 불러일으켜온” 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이 공연을 주관했지만, 관객 대다수도 후원단체도 안타깝게 재일동포의 절반이었다. “우리끼리 손을 잡고 이제는 통일하자요”라며 노래 부를 때, 먼저 손을 잡아야 할 것은 남녘의 통일밴드 이전에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또 다른 반쪽의 재일동포들은 아닐는지. 도쿄=글·사진 신명직 전문위원 mjshin59@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