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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스는 젊은 놈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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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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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 중국

사스 확산이 세대 갈등 부추겨… “도망가기 바쁜 타락한 신세대” vs “사스 은폐한 무책임한 구세대”

어떤 중국인이 반은 농담 비슷한 문제 하나를 냈다. 중국 근현대사에서 청년학생들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졌던 역사적인 사건 세 가지를 꼽아보라. 힌트는 셋 다 ‘쓰(四)’가 들어간다는 것. 우쓰(1919년 5·4 운동), 류쓰(1989년 6·4 천안문 사태),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쓰’는 무엇일까 그 중국인이 말해준 마지막 정답은 바로 ‘사쓰’(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의 중국식 발음)이다. 그런데 왜 ‘사스’가 청년학생들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졌던 역사적인 사건이란 말인가? 그건 “쥐새끼처럼 날쌔게 가장 빨리 도망가서 중국 전역에 사스공포 바이러스를 퍼뜨린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란다.

80년대 이후 출생 세대 도마 위에


사진/ 사스로 인해 통제된 런민대 정문. 한 학생이 허가를 받고 교문을 나서고 있다.(고경태 기자)
최근 중국 인터넷 토론방을 달구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화제의 인물’들도 바로 이들 ‘쥐새끼처럼 날쌔게 가장 빨리 베이징을 도망간’ 청년학생들이다. 우쓰와 류쓰 당시의 선배들에게 따라붙는 시대 정신의 선구자, 애국 열혈청년들이라는 찬사 대신 이들 ‘사스’ 시대의 청년학생들에게는 ‘무책임한 세대’에서부터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세대’, 심지어는 ‘타락한 세대’라는 극단적인 꼬리표까지 붙고 있다. 도대체 ‘사스시대’의 중국 청년학생들이 뭘 어쨌길래 이런 십자 포화를 맞고 있는 것일까.

지난 4월20일 중국 정부가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사스관련 환자 통계에 대한 은폐 사실을 시인한 이후, 베이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베이징을 탈출하려는 외국인과 외지인들의 행렬은 외신들의 대서특필 감이 될 정도로 한동안 사스 못지않은 붐을 이루었던 게 사실이다. 이들 베이징 탈출 행렬에는 타지가 고향이면서 베이징 소재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도 한몫을 했다.

특히, 4월20일을 전후해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하이텐취의 몇몇 대학에서 학생들이 줄줄이 학교를 이탈한 사건과 부모들이 자가용을 몰고와 자녀들을 집으로 데리고 간 사건 등이 중국 내 언론에 ‘무책임한 행위’로 보도되면서 이들 대학생을 겨냥한 사회적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이러한 비판은 급기야 ‘추악한 대학생들’이라는 말로 비약되었고 논쟁은 인터넷 공간으로 확산되어 이른바 80년대 이후 출생 세대(주로 대학생들)와 그 이전 세대(주로 60~70년대 출생세대) 간의 ‘세대간 논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난 4월28일, 싱가포르의 대표적 일간지인 <연합조보>(聯合早報·www.zaobao.com) 인터넷판 사스 관련 토론방에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중국)대학생들을 수치로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글이 떴다. 한 중국 네티즌이 올린 그 글은 곧바로 중국 내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로 ‘퍼 날라져’ 갔고 그후 관련 토론방은 불이 나기 시작했다.

“최근 베이징 각 대학교의 학생들을 보면 수치심을 느낀다. 사스가 그들의 본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 한 무리의 새로운 세대의 대학생들은 놀라서 머리를 감싸고 쥐구멍으로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중략) 바그다드의 이라크인들을 봐라, 폭탄이 비오듯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도 너희같은 놈들처럼 그렇게 빨리 도망가고 그렇게 허둥거리더냐? (중략) 사실, 너희들은 아주 뻔뻔스러운 놈들이다. 조금도 거리낌없이 말해서 너희들은 타락한 세대들이다. 뿐만 아니라 열정이 없는 세대이다.”

인터넷 게시판의 핫 이슈

사진/ 베이징을 탈출한 학생들로 인해 런민대 강의실은 썰렁하기만 하다. 최근 도망가기에 바쁜 학생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경태 기자)
논쟁의 발단이 된 위의 글은 베이징 일대에 사스가 확산된 이후 중국 언론에서조차 ‘탈출’, ‘피난’으로 표현할 정도로 허둥지둥 학교를 이탈해 각자의 고향집으로 내려간 중국 대학생들의 사회적 무책임성과 이기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학교당국의 불허 방침과 교육부의 공식 지침이 내려지기도 전에 자기들만 살겠다고 베이징을 탈출한 그들은 국가적 재난 앞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책임감을 상실한 ‘타락한 세대’라는 것.

그는,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을 인터넷에서 하찮은 재미나 추구하고 사회적 재난 앞에서 무책임하고 부도덕하게 도망가는 겁쟁이 세대, 부모세대의 무조건적인 유학열과 경쟁적인 교육열로 인해 애국심을 상실한 세대로 묘사하고 있다.

이 글이 인터넷 게시판의 핫이슈가 되면서, 한동안 이들 80년대 세대들에 대한 논쟁은 중국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가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몰고 왔다. 중국 언론들 역시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이들 80년대 세대들을 사스로 인해 뒤흔들린 ‘벌꿀단지 세대(고생을 모르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는 뜻)’로 비유하며 이전 세대들에 비해 사회적 면역력이 떨어지는 세대인것만은 분명하다고 꼬집고 있다. 졸지에 ‘쥐새끼 같은 겁쟁이’로 몰린 80년대 세대들은 이러한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래, 도망이든 피난이든 어쨌든 베이징을 떠난 건 인정해.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은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상황이라고. 정부도 잘 모르고 있는 정체 불명의 전염병 앞에서 보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게 어떻게 추악하고 타락한 행위라는 거지? 숙소에 죽치고 앉아서 사스가 날 잡아먹어라 하고 기다리는 게 도덕적인 행위란 말야? 사실을 말하자면 애초에 사건을 은폐한 게 누군데 우리들을 부도덕한 세대라고 비판하는 거야.” (‘집으로 돌아간’이라는 아이디의 대학생)

‘집으로 돌아간’ 수많은 대학생들은 오히려 부도덕하고 흐리멍텅한 세대들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맞짱’을 뜬다.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이전부터 대학가에서는 사스 환자가 줄줄이 발생했는데도 학교 당국이나 교육부에서는 그에 대해 어떠한 행동 지침이 내려지지도 않았으며,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외부에서 보도되는 내용들을 접한 대학생들은 어렴풋이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20일 전까지만 해도 사스는 한낮 농담 따먹기 수준의 화제에 불과했고 외신들의 보도에도 반신반의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가 ‘별것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있었다는 얘기다.

집체주의 세대와 독생자녀 세대의 ‘문화 충돌’

사진/ 사스를 둘러싼 세대간 갈등은 ‘독생자녀’로 대표되는 개인주의 세대들과 구세대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베이징 시민.(박현숙)
그러한 믿음과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린게 누군데, 이제 와서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부도덕한 겁쟁이 세대라고 비난하느냐는 것이다. 70년대와 60년대 세대들이 만일 같은 상황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고 하면 그들은 도망가지 않고 버틸 무슨 도덕적인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문화대혁명이다 뭐다 해서 사회 발전을 최소한 10년 이상 후퇴시키고 사스 은폐로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린 장본인은 당신들이면서 왜 엉뚱하게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느냐는 항변이다.

중국 모 관방언론의 한 기자는 사스로 불거진 이번 세대간 논쟁의 핵심을 계획경제 시대의 집체주의 세대들과 독생자녀(獨生子女)로 대표되는 개인주의 세대들 간의‘문화적 충돌’로 설명하고 있다. 즉,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과도기를 거치면서 이전 세대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체념과 순응에 길들여졌던 반면, 80년대로 대표되는 독생자녀 세대들은 인터넷 문화와 세계화된 인간형, 개인의 자아 실현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등장했기 때문에 이들 세대간에는 서로 소통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때문에, 사회적 재난 등에 적당히 훈련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는 이전 세대에 비해 지금의 대학생 세대들은 그러한 경험이 없었으며 사스는 그들에게 있어 집단적인 위기가 무엇인지를 체험케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그러나, 이 언론은 이번 사스를 계기로 당연히 돌이켜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는 세대간 갈등과 가치관의 차이라기 보다는 과연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중국적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중국적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뒤흔들었으며, 이것은 ‘후사스시대’에 중국이 풀어가야 할 새로운 사회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베이징=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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