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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체, 언론 모르게 박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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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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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임베디드 시스템’ 따라하는 인도네시아의 전시 언론통제… 전장 독자취재하는 기자들엔 총격도

“자, 이번주 아체기사 담당자들은 ‘인도네시아 라야’ 처음부터 끝까지 잘 부를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기사 넘기도록.”

지난 5월30일 금요일 밤, 마감에 쫓겨 헐떡이던 <템포> 편집실은 아체전쟁특집 데스크를 보는 아흐마드 타우픽 기자가 난데없이 던진 한마디로 팽팽하던 긴장이 깨지면서 웃음판이 되었다. 그보다 앞선 5월27일, 민족주의를 내건 퇴역군인 자손단체(PPM)가 ‘폭력의 희생자와 실종자를 위한 위원회’(Kontras) 사무실을 공격해서 오리에 라흐만 의장에게 강제로 국가(Indonesia Raya)를 부르게 했던 사건에서 따온 한판 우스갯소리였다.

“민족주의로 위장한 폭력이다. 그동안 군과 경찰이 저지른 아체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해왔던 일과 이번 전쟁을 반대한 데 따른 보복이고, 또 사회 전체를 겨눈 어름장이다.”

본사 인터뷰까지 거부한 <템포> 기자들


사진/ ‘애국적 언론’은 전쟁취재를 하겠다는 기자들에게 본질과 전혀 상관도 없는 뱀피를 먹이며 ‘언론의 용병화’를 꿈꾸었다. 미국의 대이라크공격에서 탄생한 인도네시아 병영에서 아체전쟁에 대비한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기자들.(TEMPO)
그날 위원회로 쳐들어간 100여명에 이르는 공격자들이 대놓고 사냥감으로 겨냥했던 인권변호사 무니르(Kontras 창설자) 말처럼, 지난 5월19일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체에 대한 계엄령 선포와 함께 자유아체운동(GAM) 박멸작전에 돌입한 뒤부터 인도네시아 사회는 이른바 군부주도형 초강력 민족주의에 짓눌린 기운이다.

“그 공격은 인권위원회 트집에 지친 이들의 과민반응이고 또 불법이긴 하더라도, 늘 정부를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아왔던 자신들(Kontras)을 거울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

온건파로 알려져왔던 인도네시아군(TNI) 총사령관 엔드리알토노 수탈토 같은 이들마저도 거리낌없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전쟁과 민족주의의 전통적인 결합은 21세기에서도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아체를 공격하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군의 무기로 부활한 이 민족주의 유령은 시민들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일로부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체전쟁이 열흘을 넘겼지만 현재 인도네시아 언론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결연한 정부군 표정과 육중한 탱크몰이뿐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미 지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말끝마다 민족주의를 디밀고 나오는 군부와 각종 패거리들 탓으로 전선에 서 있는 기분이다.” 밤방 하리무트리(<템포> 신문·잡지 총편집장) 말처럼 아체전쟁을 시작하고부터 인도네시아 기자들은 내남없이 ‘밥맛’을 잃었다고 한다. 신문기자, 방송기자 가릴 것 없이 만나는 이들마다 “취재부터 보도까지 되는 일이 없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특히 ‘템포’처럼 진보적 시각을 지닌 언론사는 그 어려움이 남달랐다. “이번주 마감에서 아체 관련기사 한 꼭지를 꺾었어. 현장에 나가 있는 우리 기자들 인터뷰를 실을 계획이었는데….”

아하마드 타우픽에 따르면, 아체 주재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자카르타에서 파견한 기자까지 모두 5명이 본사 인터뷰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아체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비롯된 일인데, 이쯤 되고 보면 아체전쟁을 놓고 현재 인도네시아 군 당국과 언론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듯. “템포, 또 물렸다며?” 자카르타 기자들 사이에는 이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템포의 고단한 언론자유 행진이 이번 아체전쟁에서도 또 탈이 났다. 지난 5월23일, <템포신문>이 ‘정부군, 시민 7명 살해’라는 제목을 뽑자, 군 당국이 노발대발 고발하겠다고 들고 나선 탓이다. 당시 다른 신문들은 ‘정부군, 자유아체운동 반군 7명 사살’로 내보내 군부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었으나, <템포신문>은 자사 취재기자들과 를 인용해서 게릴라 대신 시민으로 제목을 뽑았던 탓이다. “군은 반군이라고 주장했지만, 13살짜리 아이를 포함해서 현장에서 살해당한 이들이 게릴라라는 증거가 전혀 없었다.” 템포가 ‘시민’으로 제목을 뽑았던 배경이다.

아체전쟁, 전투기·전함까지 동원

임베디드 저널리즘을 풍자한 〈자카르타 포스트〉5월29일자 만평.
“대이라크 공격전쟁을 즉각 중단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자.”

지난 3월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을 전후해서 아시아 정치가들 가운데 남달리 목청을 높였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같은 입으로 두어달 만에 “평화적 해결 방법은 없다. 분리주의자들을 박멸하라”며 대아체전쟁을 선언했다. 5월18일 인도네시아 정부대표단과 자유아체운동이 마주 앉았던 도쿄회담이 결렬되자마자 메가와티 대통령은 단 몇 시간 만인 5월19일 아체에 대한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군사공격 명령을 내렸다. 1975년 대동티모르 침공 이후 최대규모 군사작전을 준비해왔던 인도네시아군은 곧장 해병대와 코파수스(특전사)를 비롯한 최정예병력 2만8천여명과 경찰병력 1만2천여명을 동원해 자유아체운동 4천여명에 대한 박멸전쟁을 개시했다. 공군은 계약상 국내작전 사용금지 무기로 알려진 영국제 호크-200 전투기들을 띄워 무장을 과시했고, 해군은 23대에 이르는 전함들을 동원해서 수륙양용작전을 지원했다.

전쟁과 언론, 창과 입이라는 상이한 성질을 지닌 이 두 부류는 이때부터 서로 정체성에 혼란을 빚기 시작했다. 지난 봄, 미국이 대이라크 공격을 감행하면서 짜냈던 이른바 전시언론통제 정책이 두달 만에 고스란히 인도네시아에서 되살아난 탓이다. 이라크 공격 취재에서 종군기자들의 영혼을 진흙탕에 처박으며 ‘맹위’를 떨쳤던, 그리하여 군과 언론을 하나로 통합해버렸던 미국식 임베디드 저널리즘(embeded journalism)을 한뼘 차이도 없이 베낀 인도네시아군은 대아체 공격명령이 떨어지기 열흘 전부터 국내 신문·방송기자 54명을 뽑아 육군전략예비사령부(Kostrad) 훈련장인 상가부아나에서 군사훈련을 시켜 ‘용병언론’ 유령을 부활시켰다. 군당국은 내친 김에 아예 기자들을 군전령사로 취급했는지, 아체 현지에 가서도 기자들은 취재 중 정부군과 동일한 군복을 착용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경악한 기자들과 독립기자동맹(AJI)이 반발하고 나서자, 군대변인 샤프리 샴수딘 소장은 “군은 기자들에게 군복착용을 명령하지 않겠다”고 발을 빼면서 대신 “만약 오보를 내면 군은 해당 언론사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말로 군의 본심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정부와 군은 “민족통합은 언론자유에 우선한다”고 이른바 ‘애국적 언론’을 합창하며 전통적인 전시 언론통제에 나섰다. 샴술 무아리프 통신정보장관은 “언론이 현명하게 판단하기를 당부한다. 아체 반란군을 인용한다는 건 정부군 작전을 방해하고 정부군을 주민들과 유리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고 기자들에게 강조하며 아체자유운동 취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런가 하면, 5월29일 자카르타의 신문·방송 편집장들을 초대해서 밀실대화를 나눴던 군총사령관 엔드리알토노 수탈토 장군은 한술 더 떠 “반란군을 취재해서 뉴스를 내보내는 언론들에는 그들이 지닌 민족주의의 깊이를 반드시 묻도록 하자”며 민족주의로 언론을 침묵시키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인도네시아 주류언론들은 모두 정부가 벌이는 대자유아체운동 공격작전을 놓고 우호적 입장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협상테이블에서 아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전장에서 해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통합 작전을 명령한 대통령 선언은 수용할 만한 일이다.” 이 <발리포스트> 논조가 대부분 신문들을 관통하고 있다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현장 취재기자들, 총격의 악몽

사진/ 코파수스군에게 사살당한 자유아체운동(GAM) 게릴라. 그러나 이미 1만명이 넘는 이들이 살해당한 땅 아체에서 전쟁의 끝을 알고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TEMPO)
이렇듯 언론의 날을 뭉그러트려 ‘암흑’ 속에서 아체 공격작전을 펴겠다던 인도네시아군의 야심은 아체 공격 첫날부터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언론은 자유아체운동(GAM) 반군들을 키우지 말라. 반란군들을 인용하지 말라.” 5월20일 아체지역 계엄사령관 엔당 수와랴소장이 취재기자들에게 무거운 경고를 보낸 것을 신호탄으로, 5월25일 인도네시아군 대변인 샤프리 샴수딘소장은 “외신기자들도 공격 목표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뼈 있는 경고를 보냈고, 다시 5월26일 군총사령관 엔드리알토노 수탈토 장군은 “반란군 취재를 말라. 오보를 내는 언론은 모두 고발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띄웠다.

이러다 보니 아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악몽’이라 표현하며 하나둘씩 짐을 챙겨 자카르타로 되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계엄령 선포를 전후해서 현지로 들어갔던 몇몇 외신들도 현지기자들만 남겨둔 채 대부분 철수하고 말았다.

“언론자유라고 취재라고 지나는 개도 웃을 말이지.” 현지를 취재하고 돌아온 한 기자는 만나자마자 손사래부터 쳤다. “취재할 게 없어. 정부군이 보여주는 것뿐이야. 게다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위협을 받는 현장에 더 있을 까닭도 없었고.”

인도네시아 언론자유투쟁을 주도해왔던 독립기자동맹(AJI)의 아체 언론상황 조사 책임자 이텀 기자는 “현지 취재기자들이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며 실상을 폭로했다. 이텀 기자가 건네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5월20일 국영 텔레비전라디오인도네시아(TVRI) 반다아체지국 기술자 무하마드 자말이 실종된 데 이어, 5월21일 반다아체 현지 국영 라디오방송(RRI) 송신장치가 파괴당했고, 5월22일 와흐유 물요노기자(TV7)와 5월23일 와얀 아스타파라기자(RCTI 텔리비전)가 타고 가던 차량이 각각 피디지역에서 총격을 받았다. 그리고 5월24일에는 아스완디 아사드(Metro TV), 델위 시남베라(Trans TV), 내니 화리다(Jakarta Post), 에드윈 스리 비모(radio 68H), 케말 주프리(Imaji), 엔드류 마샬(Time), 올란도 데 구즈만(BBC), 홀티 시만준탁(AFP)이 타고 가던 자동차가 각각 총격을 받았다.

누가 이 기자들에게 총격을 가했을까? 현재 이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정부군은 자유아체운동에, 자유아체운동은 정부군에 각각 책임을 지우고 있을 뿐.

국내 언론통제에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한 인도네시아 정부와 군당국은 현재 외신을 ‘훼방꾼’으로 여겨 뉴스 차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외신보도에 따른 국제압력으로 동티모르를 잃었다고 믿는 군과 정부는 처음부터 “아체 통합은 철저히 인도네시아 국내 문제”임을 강조하며 아체 문제를 국제적 화제로 만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동시에 인도네시아군은 국제언론 통제의 일환으로 홍보전에도 열을 올렸다.

“군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전해지고 있다. 명령을 어기거나 민간인을 괴롭히는 사병들은 현장에서 머리를 쏘아버려라.” 군총사령관 엔드리알토노 수탈토 장군은 군사작전 돌입과 동시에 아체 현지를 방문해서 200여명의 장교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으로 민간인 희생과 인권유린을 염려해 온 국제사회에 미소용 선제 메시지를 띄웠다.

그러나 현재 군당국은 아체에 대한 취재허가서를 발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해외에서 몰려드는 외신기자들의 현장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 외신기자들의 창구 격인 외무부 언론담당관 마저도 “계엄령 선포 이후, 군에서 누가 외신기자 허가문제를 담당하는지조차 모른다”며 졸라대는 외신기자들 등살에 대책 없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군당국쪽에서는 오히려 외신기자들의 취재허가 요청에 “외무부에서 추천장을 받아오면 검토해보겠다”는 식이라 결국 ‘공’은 허공을 떠다니고 있는 셈이다.

포성 대신 ‘교성’만 들린다

아체전쟁은 이렇게 언론의 말문을 막아버린 채, 시민들의 눈을 가려버린 채, 불을 뿜고 있다. 누가 누구를 죽였고,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아는 이가 없는 아체전쟁은 오늘밤에도 어둠 속의 황제들이 기울이는 피 묻은 술잔 속에서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전시언론통제, 코소보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그 불쾌한 기억들이 다시 아체에서 되살아났다. 미군에서 인도네시아군으로 판갈이만 했을 뿐, 언론은 변함없이 요염한 자태로 기생노릇을 하고, 시민들 귀에는 포성 대신 ‘교성’만 들릴 뿐이다.

자카르타=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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