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공포가 아직 기세등등한 발리를 찾아… 군부 영향력이 강화되는 동안 낙원은 굶주렸다
‘신의 땅’ 발리는 고요했다. 바다에 비행기가 착륙하듯 해안을 따라 활주로가 이어진 덴 파살 국제공항은 관광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했다. 세계최대의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 문화를 간직하고 족자카르타 왕족의 1천여년 역사를 간직한 발리는 세계의 예술인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섬이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20여분 정도 서쪽 바닷가로 가다보면 ‘성곽요새’라는 뜻을 가진 쿠타 지역의 폭탄테러 현장이 나온다. 지난해 10월12일 토요일 밤 11시, 카페와 쇼핑 거리로 유명한 레기안 거리에서 터진 폭탄은 20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주변 상가를 주저앉게 했다. 지금은 사고현장을 카메라에 담아가려는 관광객들과 거리취재를 나온 호주의 한 민영방송국 직원들만 있을 뿐이다.
사스, 엎친 데 덮친 격
군부대에서도 특별 취급하는 C4라는 강력한 폭발물을 실은 차량은 밤늦게 술을 마시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던 페디 카페와 바로 건너편에 자리잡은 사리클럽(외국인 전용 나이트클럽)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사건발생 이후 불과 일주일 만에 메가와티 대통령은 특별 내각회의를 통해 테러용의자를 재판 없이 구금,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대테러법안을 공포했다. 곧이어 일찌감치 테러범으로 지목되었던 무슬림 과격단체 지마 이슬라미아 등 폭탄테러 혐의자 30여명이 잡혔다. 지난 5월12일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한산했던 발리에 국내외 취재진 400여명이 몰려드는 등 세계여론의 이목을 다시 받고 있다.
그러나 시내 몇곳을 빼놓고 관광객들로 늘 붐볐던 해변이나 산 어느 곳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폭탄테러 이후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발리 섬 주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스 열병 때문에 지난해 이맘 때 하루 평균 9천여명에 달했던 공항이용객들이 500여명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광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는 270만명의 발리인들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처해 있다. 거리에 줄지어 정차하고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운전수 가데는 지난 한달 동안 손님이 없어서 친척들로부터 돈을 꾸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들은 평균 20%할인 메뉴로 어떻게든 손님을 유치하려고 애쓰지만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두쌍의 커플들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호텔 등 숙박업소도 마찬가지여서 하루 숙박 7만원 하는 숙박비를 3만원으로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10%에도 못 미치는 숙박률을 나타내고 있다고 호텔지배인은 울상이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항공료를 반값으로 인하하거나 모든 숙박업소들이 숙박비를 반값 이하로 내리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공포의 테러와 사스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정권 재창출의 호기 이렇듯 발리 폭탄테러는 관광산업을 위축시켰지만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한때 약화되었던 군부가 세력을 다시 확장하는 데 한몫을 했다. 최근에는 평화협정을 맺었던 아체의 분리독립파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발리의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구스만은 발리 폭탄테러 배후는 어떤 형식으로든 군부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사건 이후 군부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친미성향을 보이는 인도네시아 현 정부의 입지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발리인들에게는 당장 먹고살아야 할 생계문제가 더 중요해 보였다. 폭탄테러 이후 급격히 줄어든 관광객들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주민들은 자신이 폭파범이라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떠드는 재판정의 정신병적 혐의자에게 모든 원망을 퍼붓고 있다. 정권 재창출과 테러와의 전쟁 뒤에는 생계를 위협받고 무고하게 희생되는 생명이 있음을 ‘인간의 땅’ 발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덴 파살(발리)=글·사진 나효우 전문위원 nahyowoo@hotmail.com

사진/ 발리 폭탄테러의 현장.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민영방송국 직원이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그러나 시내 몇곳을 빼놓고 관광객들로 늘 붐볐던 해변이나 산 어느 곳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폭탄테러 이후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발리 섬 주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스 열병 때문에 지난해 이맘 때 하루 평균 9천여명에 달했던 공항이용객들이 500여명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광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는 270만명의 발리인들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처해 있다. 거리에 줄지어 정차하고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운전수 가데는 지난 한달 동안 손님이 없어서 친척들로부터 돈을 꾸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들은 평균 20%할인 메뉴로 어떻게든 손님을 유치하려고 애쓰지만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두쌍의 커플들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호텔 등 숙박업소도 마찬가지여서 하루 숙박 7만원 하는 숙박비를 3만원으로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10%에도 못 미치는 숙박률을 나타내고 있다고 호텔지배인은 울상이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항공료를 반값으로 인하하거나 모든 숙박업소들이 숙박비를 반값 이하로 내리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공포의 테러와 사스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정권 재창출의 호기 이렇듯 발리 폭탄테러는 관광산업을 위축시켰지만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한때 약화되었던 군부가 세력을 다시 확장하는 데 한몫을 했다. 최근에는 평화협정을 맺었던 아체의 분리독립파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발리의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구스만은 발리 폭탄테러 배후는 어떤 형식으로든 군부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사건 이후 군부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친미성향을 보이는 인도네시아 현 정부의 입지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발리인들에게는 당장 먹고살아야 할 생계문제가 더 중요해 보였다. 폭탄테러 이후 급격히 줄어든 관광객들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주민들은 자신이 폭파범이라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떠드는 재판정의 정신병적 혐의자에게 모든 원망을 퍼붓고 있다. 정권 재창출과 테러와의 전쟁 뒤에는 생계를 위협받고 무고하게 희생되는 생명이 있음을 ‘인간의 땅’ 발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덴 파살(발리)=글·사진 나효우 전문위원 nahyowoo@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