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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동물의 왕국은 테러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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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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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조직원 잠입설로 관광산업에 타격 입은 케냐… 고질적 부패가 테러조직 양산

스와힐리어로 ‘여행’을 의미하는 사파리와 거의 동의어처럼 인식될 정도로 케냐는 사파리의 천국이다. 광막한 사바나 초원지대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동물들을 바라보거나 맹수들이 끊임없이 펼치는 약육강식의 현장을 보려고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케냐를 방문한다. 케냐를 찾는 외국인이 연간 50만명을 넘는다. 케냐는 아프리카대륙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로 꼽힌다. 마사이마라 야생동물보호구역, 암보셀리 국립공원, 차보 국립공원 등 전형적인 사파리의 명소는 물론 빅토리아호수, 킬리만자로산, 인도양에 면한 항구도시 몸바사 인근의 해안도 최상의 관광지로 손색없는 천혜의 조건을 지니고 있어 케냐 정부는 관광산업 진흥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굴뚝 없는 산업인 관광산업이 커피·차 같은 농산품과 함께 케냐의 주요 외화수입원이고 관광산업의 부침에 따라 국가경제도 크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모로코 테러범이 케냐로?

사진/ 지난해 11월28일 몸바사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일어난 테러로 숨진 시민들. 테러위협이 케냐 관광산업에 큰 타격이 되고 있다.(GAMMA)
하지만 더욱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해 외화획득과 고용창출 효과를 거두려는 케냐 정부의 범국가적 노력은 점증하는 테러위협으로 인한 관광산업의 침체 때문에 불발로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알카에다 조직이 서방에 대한 테러의지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케냐의 크리스 무룽가루 국내치안담당 장관은 ‘하룬’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알카에다 조직의 핵심요원 파줄 압둡라 모하메드가 케냐에 잠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코모로 출신의 하룬은 1998년 8월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폭파사건과, 지난해 11월 몸바사에 있는 이스라엘인 소유 호텔 테러공격을 배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미 정보당국이 지명수배를 내린 22명의 핵심 테러리스트들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하룬이 케냐에 잠입했을 가능성과 테러공격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됨에 따라 케냐 정부는 테러방지 임무를 띤 특수경찰을 동원하여 공항, 외국공관 및 외국인 주거구역에 대한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사진/ 케냐는 사파리의 천국이다. 초원에서 얼룩말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양철준)
무룽가루 장관의 발표가 있고 나서 영국 교통부는 5월15일을 기해 자국 항공기의 케냐 운항을 즉각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자국민들에게 불요불급한 케냐 여행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독일과 미국 정부도 자국민들에게 케냐 여행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고 이스라엘의 국적기인 엘알 항공도 영국 항공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로비 노선에 대한 항공기 운항을 잠정적으로 중단시켰다. 국제언론인협회(IPI)도 6월1∼4일에 나이로비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제52차 연차총회를 취소하는 등 테러위협의 불똥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영국 항공의 운항중단 결정은 관광업계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매년 케냐에 입국하는 영국인 관광객 수가 10만명을 넘어, 영국인 관광객들이 케냐에 입국하는 외국인들 중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냐의 일부 정치인들은 무룽가루 국내치안담당 장관의 발표가 테러공격에 대한 경계심과 대응태세를 조기에 확립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을 경솔하게 공론화함에 따라 부정적 파급효과를 발생시켰다고 비판했다. 칼론조 무쇼카 외무장관도 영국 항공의 나이로비 운항 중단은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굴복과 다름없는 조치”라며 영국 항공의 즉각적 운항재개를 요청하고 나섰고 안전한 여행지로서 케냐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여행사·호텔업계 등 이해 당사자들은 미국과 영국 정부의 과민반응을 성토하는 한편 나이로비는 뉴욕·런던보다 테러공격 위험에 덜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관광객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두 차례의 혹독한 테러공격 발생

사진/ 지난 5월17일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망가진 건물. 이 사건의 주범 중 한명이 케냐로 잠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GAMMA)
케냐에서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혹독한 테러공격이 발생한 바 있다. 98년 8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와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동시에 일어난 미 대사관 폭탄테러 사건으로 케냐에서만 24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지난해 11월에는 항구도시 몸바사에 있는 이스라엘인 소유 호텔에 차량폭탄 테러공격이 발생하여 케냐인 11명과 이스라엘인 3명이 죽었다. 몸바사 호텔에서 차량폭탄 테러공격이 발생한 때와 비슷한 시각에 이스라엘 관광객들을 태운 전세 여객기가 테러리스트들이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격추당할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끝나고 와해상태에 있던 알카에다가 케냐, 수단, 파키스탄 등지에서 조직재건에 주력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 왜 케냐가 테러활동 대상지로 부각되고 있는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케냐 국민의 다수는 기독교도들이고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비교적 거리가 먼 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많은 요인들이 거론되지만 첫째, 케냐에는 상당수의 무슬림들이 주로 수도 나이로비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정치적으로 주변부에 내몰려왔고 이로 인한 불만과 소외감이 누적돼온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대도시에는 파키스탄·소말리아계 무슬림 공동체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어 동조자 규합과 은신처 물색이 용이하다. 또한 정보소식통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과 연계된 알이티하드알이슬라미(AIA)라는 단체가 소말리아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케냐는 소말리아와 접경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테러 조직원들이 쉽사리 케냐로 잠입할 수 있다.

둘째, 독립 이후 전통적으로 친서방 노선을 견지해온 케냐 정부는 식민종주국인 영국은 물론 미국과도 각별한 정치·군사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밀접한 관계로 인해 나이로비에만 5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인과 영국인들을 표적으로 삼는 테러리스트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대상이다. 또 이스라엘과도 긴밀한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케냐의 정보·군사 요원들이 이스라엘에서 훈련을 받고 이스라엘은 케냐의 농업기술과 수자원 개발 등 제반 분야에서 케냐 정부와 협력을 강화해왔다.

“뇌물이 일상화된 나라”

사진/ 1998년 나이로비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터진 폭탄으로 부상당한 시민들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SYGMA)
셋째, 케냐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패가 테러조직이 뿌리내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케냐는 ‘뇌물이 일상화된 나라’로 알려질 정도로 부패가 뿌리 깊고 특히 경찰, 이민당국의 관리들이 부패하여 테러리스트들의 출입국 관리와 감시체계가 허술한 것으로 지적된다. 부패한 관리들이 테러리스트들을 위한 “국경 없는 세계”를 보장하는 것이다.

많은 케냐인들은 케냐가 알카에다와 같은 국제 테러조직과 서방의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신세로 전락했다고 불평을 터뜨리곤 한다. 그러나 점증하는 테러위협은 케냐 정부가 줄곧 견지해온 대외관계와 곪을 대로 곪은 부패구조가 잉태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로 파악하는 것이 좀더 냉철한 현실인식이다. 빈곤, 사회적 불의, 제도화된 절망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맹아가 되었듯 케냐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부패가 테러조직이 둥지를 틀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헨트(벨기에)= 양철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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