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격렬했던 ‘회의장 진입 작전’… 반IMF 투쟁에 참가한 그리스 화가의 체험기
지난 1998년 가을에 영국의 버밍엄에서 열린 G7정상회담을 반대하는 투쟁으로 시작된 반지구화운동(anti-globalization)은 당시 7만명의 시위대들이 ‘제3세계 부채탕감’이라는 요구를 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이후 순항을 지속해오던 세계자본에 대한 최초의 반격이었다. ‘주블리2000’이란 교회세력을 중심으로 한 단체가 주도한 이 날의 투쟁은 평화적인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 싸움이 대륙을 건너가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진행된 시애틀 시위는 강도나 조직화의 정도가 한 단계 높아졌다. 지난 9월26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연례회의는 2만명의 유럽시위대들의 저항으로 일정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 날 시위대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회의장 안까지 들어가는 대담함을 보였다.
지난 10월6일 프라하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 아말리아 아리페리(46)를 만났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그는 그리스나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는 명망있는 화가이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몇 시간에 걸쳐 반IMF 시위의 생생한 기억을 전달해 주었다.
체코가 눈앞에 있으나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체코 경찰이 올라와서는 여권을 검사하고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무엇 하러 가느냐”라는 질문에 누군가 “오스트라바(체코의 조그마한 도시)로 가는 관광객”이라고 둘러댔다. 서너 시간 뒤 버스가 프라하의 대운동장에 들어서자 각국에서 이미 도착한 수천명의 동지들이 힘찬 박수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약 50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임시숙소로 만들어진 수백개의 텐트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곧 우리의 숙소인 텐트를 배정받았다. 그리스와는 달리 이곳은 매우 싸늘하다. 밤에도 추위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 안개가 눈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자욱하게 끼고 비가 내려 텐트도 젖어버렸다. 수천명이 아침부터 각 나라별로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 기개를 돋웠다. 약 2만명이 참가하리란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9월26일)에 맞춰서 많은 동지들이 오스트리아, 독일, 폴란드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운동장을 빠져나와 모두 평화의 광장에 집결했다. 우리가 광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이상하게 느낀 것은 도시가 마치 쥐죽은 듯이 고요하였고 체코 사람은 한 사람도 거리에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체코 정부에서 어떻게 악선전을 해댔을까. 체코 정부는 벌써 몇달 전부터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례회의를 대비하여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유럽의 깡패집단들이 프라하를 파괴하러 온다”라는 선전으로 프라하 시민들의 집밖 출입을 일체 금지했다. 오직 보이는 것은 체코 경찰들뿐. 헬멧에 장갑, 곤봉, 가스총으로 단단히 무장한 상태다. 약 2만명의 세계 각국에서 온 투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영어로 “IMF kills, Kill IMF.”(IMF는 죽음을, 죽음을 IMF에)를 함께 외쳤고 구호제창중에 <인터내셔널가>를 모두 함께 불렀다. 모든 언어로 함께 부른 이 노래는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온 무정부주의자들은 대열의 제일 선두에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온갖 사상을 가진 좌파세력들은 한곳에 모여 반IMF 구호를 외치면서 하나가 되었다는 데 너무나 고무되었다. 대열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스와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노란색대열’을 이루었다. ‘청색대열’은 무정부주의자들로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전투적인 대열로 구성되었고 ‘분홍색대열’은 그 이외의 국가들로 구성되었다. 광장에서 IMF회의장까지 이동하는 데 거의 세 시간이나 걸렸다. 이동중에도 계속 구호제창과 노래가 이어졌으며 경찰들의 저지는 없었다. 청색대열이 직진하면서 회의장으로 이동한 반면 다른 대열들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서 올라갔다. 곧이어 회의가 열리는 회의장(힐탑의회)과 회의장을 에워싼 무장경찰들을 시위대가 포위했다. 청색대열의 시위대 중 용감한 사람들은 회의장 안으로 진입했다. 곧이어 물대포, 가스탄 세례가 시작되었고 충돌이 일어났다. 각목을 든 선두는 곤봉을 든 경찰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전개되었고 거리는 곧 가스로 뒤덮였다. 대열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화염병으로 맞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부터 거리 곳곳에서 시위대들이 타이어, 나무를 태우면서 바리케이드를 형성했다. 충돌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소강상태를 보였으나 시내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맥도널드와 은행 유리들을 깨는 행위가 벌어졌다. 체코 경찰은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누구나 체포하여 연행해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시위대들을 체포하여 폐쇄된 공장건물에 가두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 운동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같은 일행 중 일곱명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들이 모두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 그리스대사관에서는 비교적 협조하는 자세로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여 석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섯명은 돌아왔지만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세 시간 뒤 마침내 나머지 한명의 동지도 체코 경찰과 함께 돌아왔다. 그는 경찰에 연행되어 구타도 당하고 온갖 수모를 겪었으며 체코에서 영구 추방되었다고 말했다. 체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
체코 경찰은 “만약 27일 24시까지 국경을 벗어나지 않으면 모두 체포하여 구속시키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네대의 경찰차가 우리 버스를 뒤따랐다. 그리고 헬기까지 우리 버스를 계속 따르면서 감시하였다. 가는 도중 몇번이나 경찰차가 버스를 세워 여권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시간을 끌었다. 우리 일행은 모든 것을 운에 맞길 수밖에 없었다. 자정 5분 전 버스는 국경에 도착했다. IMF로 인한 세계 민중의 고통을 어찌 우리의 순간적인 피곤함과 비기랴.
아테네=정리 하영식 통신원youngsig@otenet.gr

(사진/평화의 광장에 집결한 시위대.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1500여명의 동지들이 아테네를 9월23일 오전 11시경에 출발했다. 그리스 국경을 넘어 유고슬라비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여섯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 유고 대선이 있는 날이라 통제가 더욱 심하다. 유고를 통과하여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체코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을 통과하는 데에만 거의 이틀이 걸린 셈이다.
체코가 눈앞에 있으나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체코 경찰이 올라와서는 여권을 검사하고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무엇 하러 가느냐”라는 질문에 누군가 “오스트라바(체코의 조그마한 도시)로 가는 관광객”이라고 둘러댔다. 서너 시간 뒤 버스가 프라하의 대운동장에 들어서자 각국에서 이미 도착한 수천명의 동지들이 힘찬 박수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약 50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임시숙소로 만들어진 수백개의 텐트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곧 우리의 숙소인 텐트를 배정받았다. 그리스와는 달리 이곳은 매우 싸늘하다. 밤에도 추위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 안개가 눈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자욱하게 끼고 비가 내려 텐트도 젖어버렸다. 수천명이 아침부터 각 나라별로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 기개를 돋웠다. 약 2만명이 참가하리란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9월26일)에 맞춰서 많은 동지들이 오스트리아, 독일, 폴란드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운동장을 빠져나와 모두 평화의 광장에 집결했다. 우리가 광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이상하게 느낀 것은 도시가 마치 쥐죽은 듯이 고요하였고 체코 사람은 한 사람도 거리에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체코 정부에서 어떻게 악선전을 해댔을까. 체코 정부는 벌써 몇달 전부터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례회의를 대비하여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유럽의 깡패집단들이 프라하를 파괴하러 온다”라는 선전으로 프라하 시민들의 집밖 출입을 일체 금지했다. 오직 보이는 것은 체코 경찰들뿐. 헬멧에 장갑, 곤봉, 가스총으로 단단히 무장한 상태다. 약 2만명의 세계 각국에서 온 투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영어로 “IMF kills, Kill IMF.”(IMF는 죽음을, 죽음을 IMF에)를 함께 외쳤고 구호제창중에 <인터내셔널가>를 모두 함께 불렀다. 모든 언어로 함께 부른 이 노래는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온 무정부주의자들은 대열의 제일 선두에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온갖 사상을 가진 좌파세력들은 한곳에 모여 반IMF 구호를 외치면서 하나가 되었다는 데 너무나 고무되었다. 대열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스와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노란색대열’을 이루었다. ‘청색대열’은 무정부주의자들로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전투적인 대열로 구성되었고 ‘분홍색대열’은 그 이외의 국가들로 구성되었다. 광장에서 IMF회의장까지 이동하는 데 거의 세 시간이나 걸렸다. 이동중에도 계속 구호제창과 노래가 이어졌으며 경찰들의 저지는 없었다. 청색대열이 직진하면서 회의장으로 이동한 반면 다른 대열들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서 올라갔다. 곧이어 회의가 열리는 회의장(힐탑의회)과 회의장을 에워싼 무장경찰들을 시위대가 포위했다. 청색대열의 시위대 중 용감한 사람들은 회의장 안으로 진입했다. 곧이어 물대포, 가스탄 세례가 시작되었고 충돌이 일어났다. 각목을 든 선두는 곤봉을 든 경찰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전개되었고 거리는 곧 가스로 뒤덮였다. 대열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화염병으로 맞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부터 거리 곳곳에서 시위대들이 타이어, 나무를 태우면서 바리케이드를 형성했다. 충돌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소강상태를 보였으나 시내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맥도널드와 은행 유리들을 깨는 행위가 벌어졌다. 체코 경찰은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누구나 체포하여 연행해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시위대들을 체포하여 폐쇄된 공장건물에 가두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 운동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같은 일행 중 일곱명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들이 모두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 그리스대사관에서는 비교적 협조하는 자세로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여 석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섯명은 돌아왔지만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세 시간 뒤 마침내 나머지 한명의 동지도 체코 경찰과 함께 돌아왔다. 그는 경찰에 연행되어 구타도 당하고 온갖 수모를 겪었으며 체코에서 영구 추방되었다고 말했다. 체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

(사진/세계화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회의장으로 이동하는 시위대)
인터뷰/ 아말리아 아리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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