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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들의 손에 맡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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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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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삶과 유리된 전문 경제회담… 맹목적 경제수치 증가의 욕망은 고통을 부를 뿐

“아셈이 뭔가?”

타이 시민 가운데 열에 아홉은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교육받은 시민들은 아세안(ASEAN)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아셈을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3년 전 방콕에서 비롯된 아시아의 경제위기에서 수많은 약자들이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는 탓이다.

GMO? NGO?


대개의 시민들은 최근에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따위를 알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이게 그 기관들이 타이와 아시아 국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까지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적인 경제회담들은 늘 일반적인 타이 시민들에게서 유리되어 왔기 때문이다.

농민운동 지도자 밤룽 카요타가 들려준 일화 한토막. 어느 날 밤룽은 유전자조작생물(GMO)의 부작용에 대해 농민들과 긴 대화를 나눈 뒤, 결국 이 농민들이 유전자조작식품을 인정하지도 재배하지도 않으리라는 확신을 거둔 것까지는 좋았는데, 헷갈린 농민들이 “NGO 반대, NGO 반대”를 외쳤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오랫동안 도움을 받아온 비정부민간단체(NGO)와 유전자조작생물(GMO)의 영문 머리글 약자를 혼동했던 탓이다.

<한겨레21>의 ‘아시아 네트워크’가 내게 아셈(ASEM)에 대한 원고 청탁을 했을 때, 사실은 나도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착각했다. 원고 청탁 시점이 바로 아세안경제장관회의(AEM)가 타이에서 열리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타이 시민들이 이처럼 헷갈리긴 해도, 우리는 현안들을 전문 경제학자, 기술관료, 재무부 관리 또는 외무부 관리에게만 맡겨놓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다. 우리가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까닭은 시장부문의 개방은 그 분야의 종사자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난 40년 동안 정부가 주도한 개발정책이 시민들을 가난에 찌들게 만들었고 결국 경제파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1997년 몰아닥친 아시아의 경제위기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는다면, 국가를 통치하는 정부나 정당들이 정당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통계수치만을 강조해온 성장 위주의 개발정책은 치명적인 실패로 드러났고, 시민들은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을 깨닫는 데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허비한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과 정치가들은 결정권을 독점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아직도 대외투자나 국민총생산 같은 수치놀음이 시민들의 풍요를 보장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다는, 지난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있다. 40년에 걸친 왜곡된 개발은 농촌과 도시 가릴 것 없이 폐허로 만들었고, 수출지향성 단일작물재배를 강요당했던 수백만 가구의 농민들은 빗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들은 비료와 살충제를 사기 위해 돈을 빌리고 수확기가 되면 중간상인이 모든 수입을 가로채가는 꼴을 경험해 왔다.

게다가 농산물 가격은 세계적인 저가정책 탓으로 농비와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이의 경우 좀더 생활수준이 낮은 다른 나라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많은 농민들이 장기적으로 각종 화학제 농약품에 노출되어 심각한 건강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것은 꼬리를 무는 부채의 덫과 썩어가는 몸뚱이뿐이다.

도시 산업 노동자들, 이들의 임금은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실질 생계비의 감소를 강요받았다. 3년 전 경제위기와 함께 타이의 하이테크산업에 대한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타이산업은 한국을 포함한 외국 기술과 자본에 더욱 깊이 의존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비정부·시민단체들이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정부가 40년 동안 실패해왔으므로, 더이상 정부가 시민들의 운명을 아셈이나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적인 회담을 통해 결정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뜻이다.

(사진/“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전문 경제학자, 기술관료, 재무부와 외무부 관리들에게만 맡겨놓아야 할 것인가.” 지난 96년 3월 방콕에서 열린 아셈회의)
최근 맹목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항의의 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아가고 있다. <푸찻칸라이완> 같이 진보적인 신문들은 경제실패의 원인을 좇아 기술관료들의 역할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와 분석을 내보내고, 심지어 97년의 경제위기에서 자신들의 부가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일부 부유층에서도 분노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회구성원임을 주장하는 비정부단체와 시민들은 중요한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들의 참여를 보장할 만한 장치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관행에 의한 정책결정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타이의 수많은 비정부·시민단체들도 국제시민사회의 연대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추동하는 국제적인 거대이익집단에 맞서기 위해 서울 아셈정상회의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관심사는 농업부문, 환경문제, 노동자 권익과 같은 세계화 시대의 평등한 권리이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현재까지 실직한 250만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특히 아셈과 같은 국제회의에서 시민의 대표성 문제나 국가주권과 같은 좀더 정치적인 부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들고 타이의 비정부 민간단체들은 ‘서울항의’에 동참할 것이다.

프라빗 로자나프룩(Pravit Rojanaphruk)/ <더 네이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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