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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의 도시여, 마약의 도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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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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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조직이 지배하고 있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빈민가… 지옥 같은 폭력의 악순환은 끝날까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공터를 가로지르며 드리볼을 하고 있던 깡마른 흑인소년. 상파울루 빈민촌의 그 풍경은 필자의 뇌리에 오롯이 남아 있다. 전쟁터의 난민촌을 방불케 하던 ‘불법점령지’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빈민의 자녀들. 흙먼지가 가득 피어오를 미래를 뚫고 나갈 이 아이들의 희망은 무엇일까 빈민 가정에서 태어난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지금 ‘빈곤제로’라는 이름으로 5400만명에 이르는 빈민들을 구제하려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과연 룰라는 이들 빈민가의 소년소녀들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최근 세계영화계에선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자리잡은 빈민가 ‘시다지 데 데우스’(신의 도시)를 다룬 같은 이름의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칸영화제에 초청된 이 영화는 마약 조직에 연루된 빈민가 청소년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뉴스에 정통한 스페인의 일간 <엘파이스>의 자매지인 주간지 <엘파이스세마날> 최신호는 바로 이곳 시다지 데 데우스를 취재했다. 다음은 브라질 빈민가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브라질 특파원 프란세스끄 렐레아의 기사를 번역·요약한 것이다.

로켓, 그리고 총성


사진/ 마약을 단속하는 군인들이 리우 데 자네이루 시민을 검문하고 있다. 브라질의 일상적인 풍경이다.(GAMMA)
누군가 하늘로 폭약이 장착된 로켓을 쏘아올린다. 이 요란한 소음은 경찰이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망보는 이들은 경찰의 작전이 감지되면 이를 감시하면서 즉시 연락을 취한다. 폭약 로켓은 바로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파벨라(브라질 대도시 변두리에 자리잡은 빈민집단거주지)에선 일종의 암호인 셈이다. 리우 데 자네이루 곳곳엔 다닥다닥 닭장과 다를 바 없는 집단거주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5분도 채 안 되어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사복을 입은 이들, 방탄조끼를 입은 경찰들, 스키마스크를 쓴 경찰들이 고함을 지르며 움직이는 것들을 향해서 닥치는 대로 총을 쏘기 시작한다. 골목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한다. 총알 한발이 골목을 가로지르던 오토바이택시 운전사 청년 홉손 페헤이라를 쓰러뜨린다. 그는 일어나지 못한다. 경찰은 그가 정지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발표할 것이다.

경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하늘을 낮게 날고 있는 두대의 헬리콥터 속엔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있다. 총성이 잦아들자, 주민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경찰을 향해 욕을 퍼붓는다. 이윽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졌지만, 빈민가에 아직 평화가 찾아들지 않았다. 골목 곳곳의 바리케이드 앞에 장작불이 환하게 불을 밝혔을 뿐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곳은 바로 8만명이 모여사는 리우 데 자네이루 서부의 대규모 빈민가 ‘시다지 데 데우스’(신의 도시)였다. 최근 이곳은 같은 이름의 영화 <시다지 데 데우스>로 유명해졌다. 영화는 메트로폴리스 한복판에 마약산업이 구축한 유사권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가장 강한 자의 말이 곧 법이 되는 곳, 폭력에 대한 숭배가 만연한 곳을 묘사한다.

시다지 데 데우스에서 활동하는 시민문화활동연구센터 소장 끌레오니세 디아스는 “영화는 두 시간이면 끝나지요. 그러나, 우린 매일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어요!”라고 한탄한다. 이곳을 다스리는 이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활개치는 주요 마약조직 가운데 하나인 ‘코만도 베르멜료’(붉은 단체)라는 집단이다. 시다지 데 데우스뿐만 아니라 리우 곳곳의 빈민가의 벽들엔 이 조직의 약자인 CV가 버젓이 새겨져 있다. 또한 빈민가에서 손가락으로 C 혹은 V자 모양을 만들어 인사를 건네는 소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경찰 추산으론 시다지 데 데우스 빈민가의 약 200여명이 마약사업에 연루되어 있다. 그러나 더 신뢰할 만한 다른 정보에 따르면 이 지역 청년들의 50%가 불법마약 유통에 관계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꿈이 범죄자 되는 것?

사진/ 리우 데 자네이루 빈민가의 초라한 풍경. 경찰의 헬리콥터가 수시로 정찰하고 있다.(GAMMA)
경찰과 마약조직간에 총격전이 벌어진 그날 오후, 나는 레안드로 피르미노(24)의 집에 있었다. 영화에서 레안드로는 조직의 두목이 될 때까지 인정사정없이 자기의 법을 강요하는 악질 폭력범죄자 세 피케노 역을 맡았다. 그날 오후에 우리들은 마약매매가 이뤄지는 ‘굴뚝’으로 접근하려 했다. 그러자 주변의 분위기가 자못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골목 모퉁이에 한 사람이 AK-47 소총을 반쯤 숨긴 채 서 있었다. 마약 판매를 지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바지를 입고 웃통을 벗어젖힌 한 흑인소년이 권총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었다. 마치 그 거리의 주인이 자기라는 것을 알리는 듯한 위협적인 태도였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그의 눈빛은 마치 기관총을 갈기는 듯했다.

“아이들의 이상형은 축구선수, 가수, 그리고 사회일탈자들이지요. 그들이야말로 이들의 우상입니다.” 시민문화행동연구센터 소장이 지적한다. 매일 그 꿈에 젖어 살며 그들의 행동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경찰의 헬리콥터가 빈민가의 하늘을 선회하면 어린이들은 하늘을 보며 손으로 총을 만들어 “타타타타” 총질을 해댄다. 땅에서 겨우 한뼘 일어날까 말까 하는 갓난 여자아이는 경찰순찰차를 보면서 상상 속의 권총을 들고 “팡팡” 하고 외친다. 경찰들은 그저 히죽거릴 뿐이다.

시다지 데 데우스엔 13개의 학교가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하나뿐이다. 이것은 오직 소수의 청소년들만이 대학 문에 들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소년 교육 정책의 부재로 인해 15살 청소년들은 범죄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리우에는 100만명이 넘는 빈민들이 약 800여개의 파벨라에 거주하고 있다. 그 빈민지역 대부분엔 조직범죄 집단이 유사권력을 확실히 구축해놓고 있다. 최근에 마약조직들은 800만명이 거주하는 리우 전체를 두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삼바 카니발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상가들을 철수하게 만들었고 호텔, 슈퍼마켓, 쇼핑센터, 지하철 등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버스들을 방화했으며 통행인구가 많은 주요 간선도로의 교통을 마비시켰다. 몇번은 도시 게릴라의 전술을 방불케 하는 테러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들이 이렇게 힘을 과시한 이유는 마야조직의 몇몇 우두머리들이 체포됐기 때문이다. 특히 코만도 베르멜료의 두목 루이스 페르난두 다 코스타(36)와 관련이 있다. 그는 리우 데 자네이루 마약전쟁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연방경찰은 마약유통 조직 및 무기불법매매 조직을 이끌었다는 혐의로 그를 고발했다. 빈민가 베이하 마르에서 태어난 그의 개인사는 소설의 상상력마저 압도한다. 그는 파라과이에서 2년간 숨어지내면서 ‘마리화나의 황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좌파 게릴라 콜롬비아혁명군(FARC)의 정글 캠프에서 체포될 때까지 콜롬비아에 머물렀다. 2001년 4월 콜롬비아 당국은 그를 브라질연방경찰에 인도했다. 그때부터 그는 브라질 전역의 주요 교도소를 옮겨다녔다. 그러나, 어떤 주 교도소도 그 위험한 인물을 받으려 하지 않아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법을 강요하는 마약조직

사진/ 브라질 빈민가는 거대 마약조직이 장악하고 있다. 군·경의 단속도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GAMMA)
그가 브라질에 돌아오자 조직범죄의 지도방식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감옥 안에서 리우 전체가 자기 손에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지난해 9월11일엔 리우 데 자네이루 특별교도소의 다른 감방에 수용된 몇몇 인사들을 자기 손에 넣었다. 라이벌 조직 ‘테르세르 코만도’(제3조직)의 두목 네명을 암살했고 감옥 안에서 폭동을 이끌었다. 그는 브라질 13개 주 66명의 범죄 네트워크와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경찰조직의 불감증과 공모의 결과이다. 지난 3월14일 마약사범에 철퇴를 내린 판사 조제 안토니우 마샤두 디아스가 암살당했다.

“그저 난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이에요.” 40년을 빈민가 모호 비디갈에서 살아온 마르셀리나(54)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한다. 산비탈에 자리잡은 가파른 빈민가의 골목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다. 그러나, 시다지 데 데우스와 같이 이곳 벽에 새겨진 CV 약자는 누가 이곳을 다스리는지 알려준다. 마르셀리나는 한 시간 정도의 대화가 지속되자 용기를 얻었는지 넉달 전에 본 것을 전해준다. “18살쯤 되는 다른 빈민가 출신의 두명의 청년들이 손이 묶인 채 끌려가고 있었어요. 겨우 걷고 있더군요. 기관총으로 무장한 8명이 그들을 죽였지요.”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라이벌 조직간의 끝없는 복수전. 마르셀리나는 이 모든 것이 매수된 경찰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마르셀리나가 자기 집을 드나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빈민가 안엔 도둑도 범죄도 없다. “오직 밖에서 오는 사람들만 죽여요. 밤에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잘 수 있어요.” 코만도 베르멜료는 몇년 전부터 이곳을 통제하고 있다. “그들은 이곳 사람들을 존중해요. 그러나 자신의 법을 강요하지요.” 주민회를 통해 마약조직은 합법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통제한다.

빈민가의 청소년과 아이들을 선도하는 재단 ‘호다 비바’의 운영위원장 아우구스토 마르티네스 데 알메이다는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한 청년이 한달을 일해 벌 돈을 하루 일당으로 지급하고 있는 마약조직을 이길 수는 없어요.”

현재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전역의 빈민가에 거주하는 약 170만 가구에 재산권을 부여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룰라는 상파울루에서 행한 연설에서 재산권을 행사하게 되면 빈민가의 주민들이 권리와 의무를 가진 시민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리우에도 다섯 집 가운데 한 집은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살아왔지만 단지 거주할 권리만 갖고 있을 뿐이다. 리우 시청은 1940년대부터 대도시의 산비탈이나 변두리의 공터를 점거해온 주민들에게 지난 1994년부터 재산권을 부여해왔다. 리우 데 자네이루는 1960년대까지는 브라질의 수도였기 때문에 대다수 파벨라는 현재 국가소유이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사진/ 축구를 하고 있는 상파울루 빈민가의 소년.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박정훈)
이곳에도 폭력의 지옥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내부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영화 <시다지 데 데우스> 촬영이 끝난 뒤에도 공동연출자 카티아 룬드는 영화작업이 계속 이뤄지기를 바랐다. 1985년부터 빈민가 모호 비디갈에서 활동한 단체 ‘노스 도 모로’(동산의 우리들)에 속한 400명의 아이들 대부분이 영화에 출연할 배우 선발에 참여했다. 영화제작이 끝난 지금 배우로 선발된 빈민가의 아이들은 ‘노스 도 시네마’(영화 속의 우리들)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우리들의 목표는 명백합니다. 영화를 통해 아이들 각자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우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 단체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는 우루과이 출신 미겔 바시의 말이다. 이 단체는 배우 일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레안드로는 룰라 정부가 파벨라의 심각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룰라는) 노스 도 모로와 같은 단체의 활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더 많은 공동체 활동이 필요하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리우의 빈민가엔 공포가 어슬렁거린다. 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속한 빈민가 출신이 아닌 사람과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주민회가 추천한 사람이 아닌 사람과 동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취재진을 안내한 밀톤은 “자기 차를 끌고 밤에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누가 욕먹고 싶겠어요”라고 반문한다. 누군가 폭죽을 터뜨리며 생일파티를 열고 싶어도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 소리가 경찰의 도착을 알리는 암호와 혼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우 데 자네이루를 비롯해 브라질의 대도시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세사스 페르난데스는 세 가지 방향으로 예상한다. 1년에 시민 10만명당 40명이 살해당하는 현재 추세가 더 악화돼 사망자 수가 두배로 급증한다. 아니면, 효과적으로 범죄를 막아 2006년에 10만명당 26.6명으로 줄인다. “낙관적인 미래를 위해선 경찰과 검찰, 법률체제, 사법제도 전반에 걸쳐 혁명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합니다.” 그의 절절한 염원이다.

멕시코시티= 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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