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이후 미국의 압박 증대… 반미 민심과 자살폭탄 테러로 궁지에 몰려
이라크전 승전의 여유를 즐기지도 못한 미국의 발등에 다시 불똥이 튀고 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방문 중인 지난 5월12일과 13일, 공교롭게도 15명의 사우디인이 연쇄 차량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해 8명의 미국인 사망자를 비롯, 2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발생한 첫 대규모 테러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리야드 테러 직후 “이 비열한 행위는 증오가 유일한 신념인 살인자에 의해 저질러졌다. 미국은 살인범을 찾을 것이다. 살인범에게 미국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주겠다”고 경고했다. 사우디 정부도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세계는 미국식 정의와 이에 맞서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집단의 ‘맞장 뜨기’로 긴장감이 돌고 있다.
미국의 OPEC 흔들기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전쟁은 테러의 악순환을 낳는다는 상식이 새삼스럽다. 9·11 이후 전 세계 100여국에서 알카에다에 연루된 혐의로 3천여명과 최고위 간부급 10여명이 체포됐다. 그러나 아직도 알카에다는 미국의 포위망에 걸려들지 않은 듯하다. 미국은 리야드 테러의 배후로 알카에다를 서슴없이 지목했다.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냐 아니냐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의 오만함에 맞서 싸우는 것, 그 자체가 아랍인인 내게 대리만족의 기회를 준 것이 사실이다.” 요르단 암만에서 서비스업을 하는 아부 나세르는 아랍 민심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사담 후세인의 몰락은 중동의 반미감정 확산의 기폭제였다. 이라크 침공을 위한 ‘충격과 공포’ 작전은 끝났지만 후폭풍은 중동 전역에 불어닥치고 있다. 반미시위가 번져가는 가운데 알카에다 조직은 리야드 테러사건을 계기로, 아랍인의 반미정서를 자양분으로 전 세계에서 미국에 맞설 것으로 예견된다.
리야드 테러사건 이후 미국과 사우디의 대응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연 미국은 사우디 내에서 테러를 박멸하기 위해 사우디 군경과 함께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을까? 이라크전 이후 높아지는 중동의 반미감정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일단 미국은 사우디 정부에 테러박멸을 요구했고, 사우디 정부는 적극적 조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가 과연 자국 내 반미 무장조직을 제어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우디 반미 무장조직은 사우디 민심의 단면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우디 정부를 몰아세운다면 사우디 왕조는 필연적으로 반미 민심과 부딪쳐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지역 분석가들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왕조를 압박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길들이기 위한 미국의 포석이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격주간지 <포브스> 2002년 10월28일치는 ‘바그다드를 통해 OPEC 때리기’라는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을 축출하려는 이유는 이라크에 친미정부를 세워 석유가격을 떨어뜨리고 OPEC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옵서버>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이라크 석유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한 뒤 자신들에 비우호적인 OPEC 체제의 붕괴까지 노리려 했다. 미국 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악의 축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커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 사우디 왕조의 정치력을 무력화하여 더욱 온건한 개혁적 색채를 가미한 새로운 친미정권을 세우고, 자연스럽게 OPEC을 해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군기지 사용 불허로 ‘괘씸죄’ 걸려
미국이 사우디를 압박하는 두 번째 이유는 ‘괘씸죄’다.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자국 내 반미여론을 이유로 미군의 공군기지 사용을 불허했던 사우디는 미국의 ‘팽’ 대상 0순위였다. “테러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가장 위험한 적’이자 ‘악의 핵심’이다.” “필요할 경우 사우디의 유전과 미국 내 자산을 몰수할 수 있다.” 미 매파들은 줄곧 이런 강성 발언을 해왔다. 더 나아가 딕 체니 부통령과 국방부 인사들은 “후세인을 제거하고 나면 다음은 사우디”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 이슬람 소수파인 시아파가 거주하는 사우디 동부 유전 지역을 별도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보고서까지 미 국방부에 제출되기도 했다.
“미국은 그동안 대중동 정책을 사우디아라비아의 금권정치와 동일시하면서, 부패하고 불법적인 정권과 어울렸다”(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는 견해는 이런 분위기를 대변해준 바 있다. 그동안 이라크 전쟁 준비 과정에서 높아진 미국 내 반사우디 여론의 단면이다. 9·11 테러의 용의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인이라는 점 때문에 “금융·군사·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테러를 전면 지원하고 있는 사우디는 가장 위험한 적”이라는 미국 내 평가가 힘을 얻었다. 지난해 여름 미국 내 신보수진영의 다른 잡지들도 잇따라 사우디를 적으로 보는 기사를 게재했다. 대표적 기사는 시사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7월15일치)의 ‘다가오는 사우디와의 최종 결판’, 월간 <코멘터리>(8월)의 ‘우리의 적, 사우디’이다. 이들의 주장은 “테러 지원은 물론 미국 내 외교정책까지 관여하는 사우디와는 더 이상 동맹관계를 유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내에 확산되고 있는 신보수주의적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전 사우디 왕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미국 편에 선다면 성난 민심에 의해 사우디 왕조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고, 이라크 편에 선다면 미국이 후견인 역할을 내던지며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 중동의 질서개편을 시도했다기보다는 중동이 완전히 친미 일색으로 질서가 개편되었기 때문에, 최후의 공격 목표인 이라크를 쳤다는 설명이 더 타당성이 있다. 이제 중동질서 개편의 마무리 대상은 사우디아라비아일 가능성이 높다. 예멘이 미국 편에 서고, 이라크가 미국의 수중에 들어온 지금, 사우디의 전략적 중요성도 별로 없기 때문에 ‘팽’ 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전망이다. 이미 사우디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완전 철수 문제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미 테러가 반왕정 테러로?
겉은 어떤지 몰라도 일단 마음이 떠난 것으로 보이는 부시 행정부를 옥죄는 여론이 높아간다. 미국의 국제종교자유위원회(CIRF)는 5월13일 “미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종교의 자유가 결여된 나라로, 1998년 제정된 국제종교자유법상 ‘특별 우려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사우디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증오와 편협, 다른 종교집단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종교 사상을 전파하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하고 있는지 가려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쏟아진 ‘인권의 사각지대’, ‘종교 침해국’ 등의 비난을 미국 정부는 애써 무시해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질 듯하다. 리야드 연쇄 테러에 대한 미국과 사우디 왕조의 대응에 따라 사우디 내 반미테러가 반정부·반왕정 무장투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사진/ 전쟁은 테러를 낳는다. 리야드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부서진 건물.(GAMMA)
리야드 테러사건 이후 미국과 사우디의 대응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연 미국은 사우디 내에서 테러를 박멸하기 위해 사우디 군경과 함께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을까? 이라크전 이후 높아지는 중동의 반미감정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일단 미국은 사우디 정부에 테러박멸을 요구했고, 사우디 정부는 적극적 조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가 과연 자국 내 반미 무장조직을 제어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우디 반미 무장조직은 사우디 민심의 단면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우디 정부를 몰아세운다면 사우디 왕조는 필연적으로 반미 민심과 부딪쳐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지역 분석가들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왕조를 압박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길들이기 위한 미국의 포석이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격주간지 <포브스> 2002년 10월28일치는 ‘바그다드를 통해 OPEC 때리기’라는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을 축출하려는 이유는 이라크에 친미정부를 세워 석유가격을 떨어뜨리고 OPEC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옵서버>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이라크 석유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한 뒤 자신들에 비우호적인 OPEC 체제의 붕괴까지 노리려 했다. 미국 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악의 축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커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 사우디 왕조의 정치력을 무력화하여 더욱 온건한 개혁적 색채를 가미한 새로운 친미정권을 세우고, 자연스럽게 OPEC을 해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군기지 사용 불허로 ‘괘씸죄’ 걸려

사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파드 국왕.(GAMMA)

사진/ 사우디에 주둔 중인 미군. 일각에서는 미국이 군대를 철수할지 모른다는 설이 돌고 있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