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경제적 불균형을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희망은 시작된다
마리테스 시손(Marites N. Sison)
필리핀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시손은 1986년 필리핀혁명기에 <마닐라타임스> 기자로 현장을 누비면서 언론의 역할을 체화했고 <마닐라 크로니클>과 의 코라손대통령궁 출입기자를 거쳐 <일간 말라야>의 뉴욕특파원과 제3세계 전문 통신사인 특파원을 역임했다. 현재 필리핀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편 손꼽히는 칼럼니스트로 필리핀과 미국을 비롯한 각국 언론들에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필리핀부정폭로언론센터(PCIJ)의 회원으로 정치·사회적 비리 고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페라아의 역사>를 비롯한 역작들을 출간한 바 있다.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는 아시아가 금융대란에 휩싸여 숨을 헐떡이던 1998년 런던에서 열렸다. 당시 잘 나가던 유럽경제는 암담하게 가라앉아가던 비관적인 아시아를 돕겠다며 구제금융 지원을 허둥지둥 결의했다. 올해 제3차 아셈은,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한껏 민족화합의 분위기가 높아 있는 서울에서 열리게 되어 제2차 아셈 때보다는 경사로운 시기임에 틀림이 없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대타격을 받았던 아시아 회원국들이 표면상 경제성장 부문에서만큼은 최고치를 기록하며 회복 기미를 보여주고 있는 계절이지 않은가.
96년 아셈의 약속은… 그러나 정직한 현실을 보면, 세계의 눈이 서울 아셈으로 모이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아시아의 현장들은 여전히 산적한 문제들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민족분쟁에다 사회·경제·정치적 불안정이 겹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안보차원의 문제들이 계속되고, 개방사회를 향한 중국의 인권문제나 허약한 대만과의 관계도 날카로운 사안으로 떠올라 있다. 타이-버마국경쪽에서는 난민유입과 마약문제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Asean) 10개국 정상들은 어떤 사안을 들고 제3차 아셈에 참석해 어떻게 유럽의 15개국 정상들과 머리를 맞댈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하다. 쇠약증에 걸린 아시아가 정상회담에서 정상회담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겨가기 전에, 우선 1996년 아셈의 협력서약이 진정한 결실을 맺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셈을 가치있게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좀더 가난한 회원국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결의가 이제 필요한데, 그전에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유럽은 그들의 아시아 동료들이 극단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지원을 호소할 때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중재를 했던가? 만약 이제라도 그렇게 하겠다면 정확한 시기에 결정적으로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것인지? 아니면 전과 마찬가지로 ‘상냥하게’ 아시아의 현안들을 무시해버릴 것인지? 그리고 무역과 해외투자의 천국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지역에서 자유무역의 확대를 통해 이익을 얻는 쪽은 누구인지? 그 무역자유화는 평등한 관계인지? 거대한 무역 규모와 경제적 번영의 미명 아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의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이런 의문들이 아셈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과제로 떠올라 있다. 서울의 잔치를 앞두고 현재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는 아셈이 그들의 동반자들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지역포럼(ASEAN-RF)이 지닌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뒷심이 되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차별없는 무역구조 확립과 외채문제의 양보적인 재조정, 조건없는 순수한 정부개발원조(ODA)의 확대를 고대하며 필리핀과 아시아의 개발국들은 서울로 서울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 세계의 시민들은 깊은 회의에 빠져 있다. 과연 아셈 같은 거대한 조직, 그래서 잠재적으로 비현실적인 이런 조직이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상호발전을 위한 공동의 협의사항을 가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에서부터. 이건 제1차 아셈에서 논의했던 ‘날조된’ 공동의 미래상이 경제부문뿐만 아니라 사회정의, 테러리즘, 환경, 이민, 해외취업 노동자문제를 비롯해 문화적인 부문에 이르기까지 국경없는 세계화의 부산물을 살포하며 온 지구를 거대자본의 틀 속에 묶어가는 이른바 세계화의 역작용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회합장소가 될까 고문장이 될까
오래된 문명을 대표하는 아시아와 유럽 두 지역의 정상 25명이 머리를 맞대는 제3차 아셈이 회원국들의 공평한 발전을 위한 회합장소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번 부국들의 시장 경제논리와 정책을 강요하는 고문장이 될 것인지? 이들의 성공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새롭고 역동적인 사상을 개발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며 협의사항을 이행할 수 있느냐는 수용력에 달렸다.
그리고 이 모든 희망사항들의 전제는 아셈 회원국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경제적 불균형, 한쪽에는 국제적인 힘을 지닌 독일과 영국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필리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시아 시민들의 눈은 이제 서울로 모이고 있다.


96년 아셈의 약속은… 그러나 정직한 현실을 보면, 세계의 눈이 서울 아셈으로 모이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아시아의 현장들은 여전히 산적한 문제들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민족분쟁에다 사회·경제·정치적 불안정이 겹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안보차원의 문제들이 계속되고, 개방사회를 향한 중국의 인권문제나 허약한 대만과의 관계도 날카로운 사안으로 떠올라 있다. 타이-버마국경쪽에서는 난민유입과 마약문제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Asean) 10개국 정상들은 어떤 사안을 들고 제3차 아셈에 참석해 어떻게 유럽의 15개국 정상들과 머리를 맞댈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하다. 쇠약증에 걸린 아시아가 정상회담에서 정상회담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겨가기 전에, 우선 1996년 아셈의 협력서약이 진정한 결실을 맺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셈을 가치있게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좀더 가난한 회원국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결의가 이제 필요한데, 그전에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유럽은 그들의 아시아 동료들이 극단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지원을 호소할 때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중재를 했던가? 만약 이제라도 그렇게 하겠다면 정확한 시기에 결정적으로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것인지? 아니면 전과 마찬가지로 ‘상냥하게’ 아시아의 현안들을 무시해버릴 것인지? 그리고 무역과 해외투자의 천국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지역에서 자유무역의 확대를 통해 이익을 얻는 쪽은 누구인지? 그 무역자유화는 평등한 관계인지? 거대한 무역 규모와 경제적 번영의 미명 아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의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이런 의문들이 아셈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과제로 떠올라 있다. 서울의 잔치를 앞두고 현재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는 아셈이 그들의 동반자들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지역포럼(ASEAN-RF)이 지닌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뒷심이 되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차별없는 무역구조 확립과 외채문제의 양보적인 재조정, 조건없는 순수한 정부개발원조(ODA)의 확대를 고대하며 필리핀과 아시아의 개발국들은 서울로 서울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 세계의 시민들은 깊은 회의에 빠져 있다. 과연 아셈 같은 거대한 조직, 그래서 잠재적으로 비현실적인 이런 조직이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상호발전을 위한 공동의 협의사항을 가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에서부터. 이건 제1차 아셈에서 논의했던 ‘날조된’ 공동의 미래상이 경제부문뿐만 아니라 사회정의, 테러리즘, 환경, 이민, 해외취업 노동자문제를 비롯해 문화적인 부문에 이르기까지 국경없는 세계화의 부산물을 살포하며 온 지구를 거대자본의 틀 속에 묶어가는 이른바 세계화의 역작용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회합장소가 될까 고문장이 될까

(사진/지난 98년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아셈회의. 좀더 가난한 회원국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