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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로드맵’은 온통 지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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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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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평화중재안에도 이-팔 유혈충돌 계속…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도 반발

이라크 전쟁의 포연이 걷히는 와중에 ‘로드맵’이라는 새로운 용어와 함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중동에 돌아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혈충돌의 현장은 다시금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5월10일 예루살렘에 도착한 파월은 11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개별 면담, 12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회담, 같은 날 오후 암만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접견,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압둘라 왕세자와 회담 등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스라엘 강경책에 거부감 심화


사진/ 지난 4월29일 팔레스타인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아라파트 의장(사진 왼쪽)과 압바스 총리.(GAMMA)
미국은 지유시장경제와 공정한 법체계를 정착시켜 자유와 번영, 평화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10년 내 중동에 자유무역지대를 만들 것이라 발표했다. 또한 미국이 제안한 평화중재안인 로드맵의 성사를 놓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압바스 총리와 이스라엘 샤론 총리가 사상 초유의 총리회담을 하게 된다. 일련의 움직임들을 보면 마치 모든 문제들이 실타래 풀리듯 풀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실현될 때까지는 아무 신경쓸 필요 없다”는 것이 지역 정서다.

세계 여론이 이라크 전쟁에 몰입해 전쟁 게임을 구경하듯 열광하던 순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장례 행렬을 보아도 아무런 느낌을 느끼지 못하고 통곡소리를 들어도 무덤덤하다. 2000년 9월 인티파다(봉기)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2429명의 팔레스타인인과 730명의 이스라엘인 등 모두 3219명이 숨졌다.

최근 이-팔간 유혈충돌 과정에서 두 가지 주목할 사건이 터졌다. 지난 4월29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는 압바스 총리 체제가 시작되었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이튿날 중동평화 로드맵이 발표되었다. 뒤이어 압바스 총리 체제와 로드맵의 미래가 불투명함을 웅변하듯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공격해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뒤로도 희생자는 이어졌다. 5월7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난민촌 공격으로 18개월 된 남아가 죽었다. 5월8일에는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하마스 대원 아야드 알바에크(30)가 죽고 3명이 부상했다. 5월9일 가자지구 베이트하눈 지역에서 이스라엘 남부 스데롯에 수제 미사일 6기가 발사되고 10살 난 이스라엘 소녀가 부상했다. 이스라엘군은 베이트하눈 외곽의 농토를 폐쇄하고 이와 별도로 팔레스타인 주민이 차량 자폭테러를 감행한 가자지구 인근 팔레스타인 가옥 8채를 부쉈다.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것은 이스라엘 국내법만이 아니다. 국제법은 법도 아닌가?” 이스라엘의 강경책은 국제인권운동가들은 물론이고 취재진에게도 거부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가자지구 방문 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더라도 이스라엘쪽에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 본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간방패를 자원하고 나선 친팔레스타인 단체 국제연대운동(ISM) 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제 가자지구를 방문하려는 모든 외국인들이 작성해 이스라엘 군당국에 제출해야 하는 각서에는 이 같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동안 외국인들의 가자지구 출입은 큰 번거로움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군은 베들레헴 근처 베이트 사후르에 있는 국제연대운동 사무실에 진입하여, 컴퓨터 6대를 압수하고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인권감시’(HRW) 소속 활동가 3명을 연행했다. 이런 일련의 조치로 외국 취재진과 인권운동가들의 이스라엘 점령 지역 내에서의 활동이 제한받게 됐다. 전 세계 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파괴행위의 증인을 제거하기 위한 조처”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압바스와 샤론의 험난한 행보

사진/ 서안지구 툴카렘에서 무장단체 요원을 찾기 위해 가택을 조사하고 있는 이스라엘군.(GAMMA)
“팔레스타인은 무조건적으로 폭력을 포기한다. 이-팔 양쪽은 안보협력을 재개한다. 팔레스타인은 국가 창설을 준비하기 위해 헌법 제정과 자유·공정 선거를 포함하는 포괄적 정치개혁을 이행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 생활의 정상화를 위해 모든 필수적 조치를 취한다. (이를 위해) 2001년 3월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건설된 유대인 정착촌을 철거하며 향후 정착촌 건설은 동결한다.” 중동 평화를 위한 청사진인 양 등장한 ‘로드맵’의 한 대목이다. 로드맵은 압바스 내각 출범 직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전달되었다. 로드맵 작성 주체는 미국, 러시아, 유엔과 유럽연합이었다. 로드맵은 1단계 폭력 종식, 2단계 2003년 말까지 팔레스타인 임시국가 수립, 3단계 2005년 말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총리회담도 추진되고 있다.

미국 주도로 추진되는 로드맵은 처음부터 지뢰밭이다. 양쪽의 즉각적 휴전,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소탕, 팔레스타인 거주지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 및 2001년 이후 건축된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정착촌 철거 등은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팔레스타인은 대이스라엘 테러 중단을 요구받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최대 이슬람 저항운동단체인 하마스는 이미 로드맵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팔레스타인에 강요되는 무장해제는 결국 이스라엘의 강점에 맞서 싸울 수단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력투쟁은 자위권의 하나이며, 이스라엘에 대한 최후의 저항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저항운동 모두를 테러리즘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이들에 대한 강경책을 고수하는 이스라엘로서도 양보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정부의 취약한 리더십은 로드맵의 진행에 더 큰 어려움이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초대 총리 압바스의 대중적 지지기반이나 정치적 입지는 취약하다. 그런 그가 로드맵의 선결조건들 모두를 정해진 시간 내 충분히 수용하기는 어렵다. 저항운동조직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은 물론이고 아라파트의 파타 진영과 자치정부 내 아라파트 측근들도 아라파트의 ‘몽니’를 대변하기에 쉬운 상대들이 아니다. 샤론 정부로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로드맵에 대한 적극적 반대입장에서 부분 선회하여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고는 했지만 임시변통 성격이 짙어 보인다. 샤론 정부는 출범 이래 줄곧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핵심 공약으로 추진해온 덕분에 보수 강경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정착촌 건설 중단과 철거는 샤론 정부의 확실한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이탈과 이스라엘 내 중도 온건 노선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샤론 정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1999년 평화협정보다 미흡한 수준

사진/ 로드맵이 제안된 뒤에도 유혈충돌은 끊이지 않는다. 4월30일 자살폭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텔아비브 시민.(AP연합)
중동인들은 로드맵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지난해 3월 라말라에 아라파트가 감금되고 이스라엘군이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자치지구를 잔인하게 공격한 적이 있다. 세계 여론이 약화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인정하는 안보리 결의안 1397을 채택하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계기로 만든 결의안 내용과 로드맵은 대동소이하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꿈이 무르익어가던 1999년 가을 아라파트와 바라크 당시 이스라엘 총리 정권의 평화협정보다 미흡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도 아리엘 샤론의 성지 방문 등 돌발사태로 물거품이 되었는데,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로드맵이 큰 힘을 받을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협약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수도 없이 백지화되곤 했던 것이 이제까지의 평화협상 아닌가? 신경도 안 쓰인다.” 지역민심도 부정적이기만 하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 이후 숨을 고르고 이-팔 문제에 중립적 모양새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가 언젠가는 재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못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는 하겠지만 앞길은 여전히 지뢰밭이다.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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