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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곳에 ‘보로부두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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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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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전 불국토를 꿈꿨던 인도네시아의 불교유적이 ‘자바의 정신세계’ 프로젝트에 멍든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를 일컫는데, 보로부두르에서 불교는 과거였지만 미래에 다시 올 수도 있고….” 보로부두르 입문서를 펴내기도 한 자칭 향토사학자인 아리스와라 말은 땅을 맞고 튀어오르는 땡볕과 뒤섞여 눈꺼풀을 무겁게 했다.

그렇다! 보로부두르가 환생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1982년에 이어 꼭 20년 만에 다시, 그 보리수 아래서. 이번에도 20년 전과 빼닮은 모습으로.

“개발 반대하면 공산당으로 몰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20년 전에는 찍 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쫓겨났는데, 이번에는 떠들어댈 수 있다는 정도.” 20년 전 새파란 아이였던 프리요토는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었지만 당시 기억을 지워버릴 수가 없는 듯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마을 한쪽에 갖다버린 범죄자 주검을 놓고 정부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두 이렇게 될 수 있다고 협박하지를 않나, 시위를 벌이는 자들은 모두 공산당이라고 몰아붙이질 않나….”

사진/ 관광객보다 기념품 판매상 수가 훨씬 많은 현실이 ‘자바월드’프로젝트 발목을 잡는 주 요인으로 등장했다.
보로부두르를 한눈에 접어볼 수 있는 보리수 앞에 살았던 프리요토는 이른바 보로부두르 복구와 공원화사업에 치였던 제1기다.

1973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일본 해외개발협력국(OCTA)에 보로부두르 공원화사업 종합계획서 마련을 요청했고, 1980년 일본 해외경제원조기금(OECF)은 4억4천만엔 투입을 결정했다. 2억8500만엔짜리 공사계약은 ‘당연히’ 일본 건설회사인 가시와가 따냈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1983년 주민들을 ‘깨끗이’ 몰아냈다. 1988년에는 보로부두르 공원화 프로젝트 둘레에 높이 3미터짜리 담장을 설치해 주민들과 보로부두르 관계를 완벽하게 차단해버렸다. “대형 건설사업으로 유적 손상과 환경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주민들의 삶터를 앗아간 원칙 없는 개발이다.” 당시 소피아대학 무라이 교수를 비롯한 개발반대론자들은 제3세계 빈곤해소라는 명분을 지닌 정부개발원조(ODA) 자금이 오히려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지원하는 불법성을 드러낸, 파렴치한 사업이라 비판했다.

사진/ 세계최대 불사리탑인 보로부두르. 이미 1980년대 공원화 사업으로 유적파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말쑥한 보로부두르 ‘코빼기’에 마주앉은 수상쩍은 일본풍 건축물 마노하라호텔은 지금도 그 공원화사업의 야만성을 증언하고 있다. 사람도 마음껏 다니지 못하게 하는 유적보호구역에 대체, 어떤 까닭으로 이런 호텔이 들어앉아 있는지!

그리고 이제, 20년이 지나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보로부두르 제2기들이 치이고 있다. 20년 전 ‘공원화사업’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에 비하자면 ‘자바의 정신세계’라는 프로젝트 제목부터가 심상찮다. 취재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련된 만큼 교묘해졌다”이다. 주민들이 아직도 지난해 계획입안자들이 임시로 사용했던 ‘자바월드’라는 제목을 들고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면, 주정부는 그 계획서를 폐기해버리고 고상하게 ‘자바의 정신세계’를 추구하고 있어 서로 엉뚱한 사안을 놓고 싸우는 꼴이다.

“지난 2월20일 마르디안토 지사(중부 자바)가 우리한테 직접 자바월드를 포기했다고 말해서 시위를 접고 요즘은 좀 시들해져 있는 상태다.” 반대시위를 이끌었던 예술가 수탄토도, 보로부두르 동쪽 동네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지난 3월 말에 마르디안토 지사가 직접 우리한테 자바월드를 건설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자바월드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 서쪽 쿠존마을 주민들은 모두 모하메드 암만처럼 믿고 이미 거액을 들여 집들을 보수하느라 정신이 없다. “게스트하우스를 차릴 생각이다.” 호텔 경비원으로 일하는 암만은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자바월드가 쿠존마을쪽으로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1평방미터당 15만루피아(약 2만원꼴) 하던 땅값이 벌써 25만루피아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계획입안자인 웬두 누리안티 교수(가자마다대학)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프로젝트를 누가, 왜 포기를 해. 지금 현장조사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두 가지 정보… 분열되는 주민들

보로부두르를 끼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두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정보와 생각으로 서로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자의 취재 과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 수탄토도, 모하메드도, 또 웬두까지도 모두 경악했다.

“바로 이게 문제야. 정부가 주민들을 속이는 짓. 정직했으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던 일인데….” 배신감을 감추지 못한 수탄토쪽에서는 곧장 극단적인 말들이 오갔다. “막 가자면 우리도 막 가는 거지 뭐. 20년 전에도 꼭 이랬어. 정부가 주민들을 속여서 심각해졌잖아.” 보로부두르 제1기로 정부를 믿지 않던 프리요토의 흥분은 남달랐다. “금시초문인데, 만약 주지사가 그렇게 하고 다녔다면 바보 같은 짓이지.” 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돈’만 밝힌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 웬두마저도 놀라는 빛이 역력했다.

이렇게 정부를 잘못 만난 주민들은 하늘이 내린 선물 보로부두르를 지척에 두고 그 향을 맡지도 그 기운을 얻지도 못한 채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20년 전 보로부두르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중생들은 돌부리를 차면서 돌부리를 나무라고 있었다. 정부도 주민도 계획자도 모두 돈에 눈이 멀었을 뿐, 보로부두르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는 말이다. ‘자바월드’가 되었건, ‘자바의 정신세계’가 되었건, 이제 남은 것은 보로부두르를 낀 마을들 사이에 터져나올 원성과 주민들 가슴에 새겨질 증오심뿐. 그곳에는 보로부두르는 없었다.

1300여년 전 불국토를 꿈꾸었던 보로부두르. 그 땅에는 지금 이기심을 좇는 붓다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어둠에 잠긴 보로부두르는 정녕 말이 없다.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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