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사회와 타이 불교의 공모가 빚은 ‘비구니 불법화’… 국회에서 문제제기가 시작되다
새벽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화물차들 천국이었다. 아직 어둡기만 한 새벽 5시, 나콘 파톰 고속도로 옆에 자리잡은 송탐 깔라야니 사원에는 개들만 짖고 있을 뿐 인기척이 없다. 굳게 닫힌 사원 문은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임을 예감케 했다.
“여성들만 사는 곳이라서?”, “도둑놈들이 무서워서?”, “사람을 믿지 못해서?” 이 어리석은 중생은 40분간 문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어이없게도 사원 문이 닫힌 까닭을 화두로 잡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교리에도 계율에도 없는 희한한 ‘전통’
새벽 5시50분, 남성이 지배하는 타이 사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여성이 우월한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어색함도 잠시, 세상을 향해 사원 문이 열리고부터는 그 송탐 깔라야니 사원도 여느 사원들과 다를 바 없는 곳임을 깨달았다. 흰 가사를 걸친 수련승들 미소가 ‘절대소수’인 나의 마음을 풀어주었고, 방학을 맞아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계집아이들 재잘거림이 흥을 돋우었다.
새벽 6시, 황톳빛 가사를 반듯이 차려입은 담마난다 스님이 이끄는 예닐곱 수련승 대열을 열없게 따라나선 탁발도 이내 편안함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차린 먹을거리를 내놓았고 담마난다 스님은 어김없이 법문을 내리며 이들과 교통했다. 받기만 하고 떠나는 비구들 탁발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탁발을 마치고 사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성의 구분도 정치적 차이도 해소된 상태였다. 그곳은 나와 남의 경계가 없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담마난다 스님이 정원을 다듬는 사이, 나는 법당 한쪽에 기대 눈을 붙였다. 편안함…. 종교가 무엇인지를 탐색해본 적도 없고 신을 좇는 부지런함도 없었던 내겐, 마치 내 침대 같은 그 편안함이 종교의 본질처럼 느껴졌다.
“한겹 벗겨보면 세상은 지옥이라.” 담마난다 스님도 수련승들도 성징을 잘못 타고난 죄로 인생항로를 반쯤 밖에는 가볼 수 없는 ‘불쌍한’ 중생들이었다. 그 법당이 아무리 편안한들, 그 사원이 아무리 불국토인들 속세로 나오면 여성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삭발을 했음에도 흰 가사를 걸쳤다는 사실 하나로 수련승들은 비구들 시중이나 드는 하녀 취급을 받아왔고,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은 담마난다 스님도 타이 승가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그저 ‘국제면허증’ 소지자 정도로 여겨질 뿐.
1962년에 제정한 승려법 제2505조에도, 또 1992년 그 수정법 제2535조에도 비구니를 제한하는 구절은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교리에도 계율에도 없는 희한한 ‘전통’ 하나로 2만5천개에 이르는 타이 사원들은 비구니를 거부해왔다는 뜻이다. 헌법 제30항에는 모든 이들에게 완전한 종교적 자유를, 그리고 헌법 제80항에는 국가가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뚜렷이 규정해 놓았다. 이처럼 사회법 어디를 둘러봐도 여성은 승려가 될 수 없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동안 보수적인 승가가 1928년 최고승가위원회 명령인 “비구들은 여성에게 계를 줄 수 없다”는 조항을 확대 해석해 “여성은 승려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사실은 비구니 금지 근거로 삼을 만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타이 현실 불교 속에서는 지금까지 딱 두명만이 비구니 기록을 남겼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타 타오 스님이 타이완에서 비구니 계를 받았던 게 처음이었고, 이어서 올 2월 그의 딸인 담마난다 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비구니가 됨으로써 대를 이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타이를 떠나 외국에서 비구니 계를 받았다.
“이건 여성을 노예처럼 다뤄왔던 불쾌한 타이사회의 전통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걸 이 문명천지 세상에도 죽으라고 붙들고 있는 게 타이 불교다.” 팟차리 교수(실리파콘 대학)는 이를 남성 중심주의 사회 관습과 불교가 공모한 결과로 풀이했다.
‘그녀’는 왜 적극적으로 안 나서는가
이런 가운데 올해 3월, 라비에브랏 뽕빠니뜨 의원이 상원 내에 비구니에 대한 합법성을 점검하는 소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비구니 문제가 사회적 관점 속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비구니 계를 이을 대가 끊겨 비구니를 인정할 수 없다는 건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야.” 라비에브랏 의원은 한국과 타이완을 지목했다. “타이와 같이 테라와다 불교 맥을 잇는 스리랑카도 마하야나 불교 맥을 잇는 타이완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비구니 승가를 회복했듯이, 타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과 타이완, 일본이 걸어온 마하야나 불교의 비구니 계가 테라와다 불교에서 왔던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다시 되돌려받는 일이 기술적으로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것이 모든 불교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오히려 타이 여성계쪽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담마난다 스님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구들이 밥그릇 빼앗기기 싫다는 논리밖에 없는 이 판에 그녀가 나서야 한다. 혼자서만 고고해서는 될 일이 없다.” 뻬나빠 홍통(<네이션> 기자) 같은 이들은 담마난다 스님의 우월감에 젖은 개인주의 성향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담마난다 스님은 거리를 뒀다. “이건 분탕을 일으켜서 해결할 문제가 아냐. 내가 얼마나 옳은 승려의 길을 가느냐를 보여주는 것으로, 모든 게 가능해.” 담마난다 스님은 자신에게 비춰지는 지나친 무게를 거북해했다. “내가 승려가 되겠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 하나는 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찬가지로 사회를 아름답게 하겠다는….”
그리고 담마난다 스님은 늘 그 둘의 조화와 균형을 최고 경지로 여겨,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애쓰고 있을 뿐이라고 단호히 대답했다.
불국토를 넘어 속세로 돌아나온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성은 대체 무엇이며, 사람은 왜 이런저런 것들을 놓고 옳다 그르다 겨루고 있는지, 붓다는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쏜살같이 달려가는 저 자동차들만이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듯….
비구니를 인정했던 붓다가 구법을 설파하고 250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중생들은 ‘성기’를 무기로 삼아 싸움을 하고 있다니. 오호 통재라!
방콕·나콘 파톰=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사진/ 스리랑카에 건너가 비구니 계를 받은 담마난다 스님이 탁발을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내놓으면 어김없이 법문을 내리며 이들과 교통했다.

사진/ “타이의 붓다는 모조리 남자뿐인가.” 타이 최대 불교사원으로 영화를 누렸던 북부의 수코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