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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독일 언론의 ‘북한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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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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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각에 치우쳐 핵 위기 지나치게 과장… 일부 진보지들도 ‘불량국가’의 모습에만 초점

북핵 위기와 함께 바야흐로 독일 언론에 ‘북한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단발성 보도로부터 독일 기자들의 ‘북한 방문기’까지, 북한 관련 기사들이 크고 작은 신문들에 연일 등장하고 있다. 매일 400만부 이상이 팔리면서, 유럽 최대 황색신문이라는 명예(?)를 누리는 <빌트>에게 북한이 매우 흥미진진한 기삿거리를 제공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 국방부의 ‘영변 폭격설’이 흘러나오자, <빌트>는 군사전문가들의 자문을 총동원해 한판의 화려한 ‘전자오락’을 그려냈다. 미군의 동원 가능한 전폭기와 폭탄의 성능이 나열되었고, 예상되는 북한군의 작전 전략과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뛰어난’ 미군의 첨단 군사력이 함께 소개되었다.

깜깜하고 춥고 배고픈 지옥?

사진/ 베를린에 있는 북한 대사관. 독일 정부와 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기자들의 ‘북한 방문기’가 최근 유행처럼 각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휴전선에서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서울은 단지 ‘군사 전술’의 고려사항으로 나열될 뿐이었다. 독일 최대의 경제신문은, ‘깡패의 고해’라는 제목과 함께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시인했음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왜 그리고 누가 북한을 ‘깡패(불량)국가’라고 규정하는가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 위기에 대한 절대적 이해 부족과 위 신문사들의 전통적인 보수적 색채를 고려한다면, 미국쪽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사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오히려 이른바 비판적이고 진보적이라는 독일 신문들의 북한 관련 보도들을 살펴볼 때,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2년 전부터 북한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 정부와 북한의 식량난 해결과 경제개발에 적극적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독일 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기자들의 ‘북한 방문기’가 최근 유행처럼 각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일관되게 ‘반전, 평화’의 논조를 담아내면서 독일의 반전 여론을 대변해온 주간지 <디 차이트>에도 북한 방문기가 실렸다. 이 신문사 테오 좀머 기자의 방문기는, “이 세상에 ‘불량국가’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북한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두명의 북한 안내요원이 따라붙은 좀머 기자의 북한 취재는 북한 체제가 얼마나 감시와 통제, 그리고 정치선동 아래 움직이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호전적인 음악이 거리를 가득 메운” 북한을 “군대에 의해 유지되는 왕조적 가족지배체제” 국가로 서술했다. 그가 ‘감시’를 뚫고 다행스럽게 목격한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북한 주민”들은, “깜깜하고 춥고 배고픈 지옥”이라는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의 북한 묘사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했고, 결국 이 말은 좀머 기자의 북한 방문기 제목으로까지 사용되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사용한 ‘불량국가’라는 말을 아무런 여과 없이 차용하는 것에 항의하는 독자편지에, 좀머 박사는 북한에 다녀온 사람으로서 “빈곤이 지배하는 나라, 슬픔이 가득 찬 주민, 썩은 북한 정부를 미화해야 할 어떤 근거도 없다”며 북한이 불량국가임을 거듭 주장했다.

이러한 ‘불량국가 방문기’가 독일 언론에서 북한 보도의 주류를 이루지만, 이와는 차별적인 글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독일 최대 종합일간지로 성장한 <쥐트도이체차이퉁>의 핸릭 보어크 기자의 북한 방문기가 그것이다. 연재물로 실리고 있는 그의 북한 방문기 내용도 흥미롭지만,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북한 정부에 매우 냉소적인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과거 기사들과 비교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에너지가 바닥난 나라”라는 제목의 첫 번째 기사와 “굶주릴 수밖에 없는 북한 주민들”이라는 두 번째 글에서, 그는 북한이 처한 문제에 매우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군사분계선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우리 일행의 차 외에 다른 차량은 한대도 없었다. 잠겨진 휴게소를 노크하고 들어선 뒤, 커피를 마시면서 한적한 고속도로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한반도를 일컫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렇게까지 기름이 부족한 나라의 군대가 정말 강한 전투력을 갖추었을까? 북한이 세계 평화에 위협적인 나라라고 주장하는 미국 국방부 군사전문가들도 이 휴게소에 들렀을까?“ “북한 정권이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정권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북한이 정말 세계 평화에 위협적인 존재인가? 북한은 스스로 경제적 파산상태에 있으며 궁지에 몰려 있다고 여긴다. 또한 이러한 절망적 상태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자신들을 적대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 정부의 상반된 감정은 여러 진술에서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외무부 관리는 ‘우리는 대화할 준비도, 또한 전쟁을 치를 태세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차별된 관점 돋보이는 <쥐트도이체차이퉁>

<디 차이트>의 좀머 기자와 <쥐트도이체차이퉁>의 보어크 기자가 보이는 시각의 차이는 동일한 사건을 전달하는 글에서 잘 드러난다. 좀머 기자는 독일 한 사회단체의 지원으로 설립된 황해남도 해주의 제과공장과, 여기서 생산된 과자의 배급현장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영양과자를 생산한다. 영양과자는 매일 160개 학교, 10만여명 어린이들에게 100g씩 배급된다. 한 중학교 교장은 ‘영양과자를 먹는 어린이들은 신체가 튼튼하고, 성장이 빠르다’고 말하며 감사를 표한다. 과자를 먹는 어린이들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과자를 더 달콤하게 만들어주세요’다.”

한편, 일본 도쿄에서 근무하면서 한반도 관련 기사를 전담하는 <쥐트도이체차이퉁> 보어크 기자의 과자공장과 배급현장 방문기다. “…나는 푸른 교복에 빨간 머플러 차림의 리영신(9) 학생에게 오늘 영양과자를 먹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 어린이는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하며 ‘예!’ 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몇개를 먹었는지 묻자 ‘100g입니다’라고 답했고, ‘왜’라는 질문에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충성을 다하고,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아이들에게마저 체제 붕괴나 국제정치의 그늘이 깊이 드리워져 있다. ‘경애하는 지도자’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 원조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북한 방문은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남겨놓았다. 북한 주민들에게 과자 몇개나 쌀 몇 포대 이상의 지원을 해서는 안 되는 걸까?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억압적 체제를 인도적 지원을 통해 인위적으로 연장시켜야 하는 것인가? 경제제재 조치로 북한을 아사상태로 몰아가며, 핵무기와 미사일로 협박을 시도하는 북한에 분노를 표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제부터 나는 북한 핵문제를 접할 때마다 점심시간에 영양과자 15개를 배급받아 주린 배를 달래던 영신의 말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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