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 인사 처형으로 국제적 비판에 직면한 쿠바 정부… 진보적 지식인들도 카스트로 지지 철회
한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에선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의 빠른 속도로 연달아 여러 사건들이 벌어졌다. 지난 3월 말 75명의 반체제 인사들이 체포되어 4월 초 “미국과 사회전복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짧게는 6년에서 길게는 28년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아 투옥되었다. 이들에게 선고된 총형량은 1454년에 이른다. 같은 기간에 쿠바인이 두번 비행기를 납치했고, 이들은 승객을 인질로 삼아 목적지인 미국으로 떠났다. 한번의 여객기 납치가 실패로 돌아갔고 또 다른 비행기 납치 시도도 좌절되었다. 4월2일 승객 50여명이 탑승한 여객기를 납치해 미국 플로리다로 가려 했던 납치범 11명에 대한 재판은 아주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주범 세명은 ‘심각한 테러행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했다.
“이라크전에 묻혀 지나갈 것”
“(재판부의) 선고 형량이 너무 터무니없다. 여객선 납치범의 행위는 비록 폭력적인 것이었지만 부상자 한명 없이 해결되었다.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재판에서 쿠바 당국이 증명한 것은 이들 가운데 일부가 반카스트로 단체나 미국 정부와 연결된 단체로부터 약간의 돈을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왜 쿠바 정부는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일까?
때는 쿠바가 유럽연합과 아프리카, 카리브해, 태평양지역 78개국이 체결한 ‘코토누 협정’ 가입을 앞둔 상황이었다. 협정에 가입할 경우 쿠바 정부는 무역상의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쿠바에 대해 경제봉쇄 조치를 취한 터라 쿠바로서는 경제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중요한 기회였다. 또한 니카라과·우루과이·페루·코스타리카 등 라틴아메리카 4개국이 제출한 쿠바 인권결의안이 국제연합 인권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결의안에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쿠바 방문을 허용하고 이에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쿠바 정부는 하필 왜 그 시점을 선택했을까? 쿠바의 반정부 인사 블리디미로 로카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지나갈 것”이라고 쿠바 정부가 생각했다고 지적한다. 저명한 쿠바공산당 지도자의 아들이면서도 반정부 활동으로 5년간 구속된 이력이 있는 그는 “쿠바 정부가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문제의 핵심은 반체제 인사가 아니라 권력 내부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반정부 인사를 억압하면서 모두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의도”라는 것이다. 2002년 유럽의회가 주는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한 쿠바의 반정부 인사 오스왈도 파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이번에 체포된 반정부 인사 가운데 42명이 자신이 이끄는 ‘개신교 해방운동’ 소속 활동가들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반정부 세력 탄압의 주된 목표는 “우리가 추진하는 바렐라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쿠바시민 1만1020명의 서명을 받아 쿠바의회에 제출됐으나 한 차례 거부된 적이 있는 이 계획은 현 체제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정치적·경제적·시민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헌법개정을 요구하며 이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자는 제안이다. “이 계획이 뿔뿔이 흩어진 쿠바 반정부 세력을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운동을 제안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쿠바 정부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주장
그러나 쿠바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이 갈등을 유발하고 군사공격을 벌이기 위해 도발하고 있다. 우리도 이에 맞서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쿠바 정부는 납치범 처형에 대해서는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의 생명에 해를 끼칠 위험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잠재적 위험”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쿠바 외무장관은 세명에 대한 극형은 “최후의 수단으로 이 나라가 처한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선택했다”고 해명했다.
쿠바혁명이 발발한 1959년 이래 미국은 설령 불법적 방식으로 왔더라도 늘 쿠바 망명객을 환영해왔다. 이로 인해 그동안 수많은 비행기·선박 납치 행위가 벌어져왔고 쿠바는 미국의 조치가 불법 폭력행위를 부추긴다고 비난해왔다. 즉 쿠바 정부가 2000년 4월 이래 한번도 집행한 적이 없는 사형제라는 극약을 처방한 것은 쿠바인들에 대한 일종의 본보기 조치였던 셈이다.
쿠바에서 벌어진 두 사건은 즉각 국제사회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미 국무부 라틴아메리카 특사로 쿠바 태생인 오토 리이치는 “카스트로는 후세인과 똑같이 한 나라를 통째로 장악한 깡패”라고 비난했다.
워싱턴에서 쿠바 경제봉쇄 조치의 완화를 위해 활발한 로비활동을 벌였던 쿠바정책재단의 고위 간부들이 모두 쿠바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졌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행정부가 쿠바 출신 미국인들이 쿠바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을 제한할 것인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미국의 제재조치가 한층 강화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대쿠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쿠바는 인권위 고등판무관의 조사에 응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급기야 유럽연합은 쿠바 정부의 인권탄압에 대한 항의로 코토누 협정에 쿠바를 가입시키는 결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 세계 지성들의 항의 물결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세계적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비롯한 스페인의 예술가들은 “이라크전에 대한 우리의 반대와, 쿠바에서 벌어진 억압에 대한 반대는 전혀 모순되는 행동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적의 흉악함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쿠바 정부를 비판했다. 포르투칼의 노벨상 수상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는 “쿠바혁명은 자신으로부터 계속 멀어져왔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사라마구에겐 쿠바 정부가 씌운 이 혐의는 핑계에 불과하다. 또한 “희생자도 없었던 납치사건의 범인들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쿠바 정부를 비판하면서 수십년간의 지지를 철회했다.
마르케스 “나도 정치범 도왔다”
미국의 여성작가 수잔 손탁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제16회 국제도서박람회 행사 중 ‘위기시대의 지식인’라는 좌담회에서 “나는 미국에 맞서 쿠바를 지지했다. 그러나 곧 카스트로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피델 카스트로의 오랜 벗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무엇이라고 말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내 자신조차 내가 도운 정치범, 반정부 인사의 수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완전히 함구한 채 그들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쿠바에서 떠날 수 있도록 지난 20년간 도왔다.” 놀랍게도 이것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응답이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것을 아는 이들이 있기에 난 내 양심의 평안을 위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백년의 고독>의 작가는 왜 이 사실에 대해 고독하고 신중하게 오랜 침묵을 지켜온 것일까? 제국의 횡포에도 쿠바의 억압에도 동의할 수 없었던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 지성인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단이었던 것일까? 행동하는 지식인은 늘 행동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hotmail.com

사진/ 피델 카스트로의 정치범 처형은 정당한가. 그는 “미국의 도발에 대응하는 조처다”라고 주장했다.(GAMMA)
때는 쿠바가 유럽연합과 아프리카, 카리브해, 태평양지역 78개국이 체결한 ‘코토누 협정’ 가입을 앞둔 상황이었다. 협정에 가입할 경우 쿠바 정부는 무역상의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쿠바에 대해 경제봉쇄 조치를 취한 터라 쿠바로서는 경제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중요한 기회였다. 또한 니카라과·우루과이·페루·코스타리카 등 라틴아메리카 4개국이 제출한 쿠바 인권결의안이 국제연합 인권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결의안에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쿠바 방문을 허용하고 이에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쿠바 정부는 하필 왜 그 시점을 선택했을까? 쿠바의 반정부 인사 블리디미로 로카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지나갈 것”이라고 쿠바 정부가 생각했다고 지적한다. 저명한 쿠바공산당 지도자의 아들이면서도 반정부 활동으로 5년간 구속된 이력이 있는 그는 “쿠바 정부가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문제의 핵심은 반체제 인사가 아니라 권력 내부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반정부 인사를 억압하면서 모두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의도”라는 것이다. 2002년 유럽의회가 주는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한 쿠바의 반정부 인사 오스왈도 파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이번에 체포된 반정부 인사 가운데 42명이 자신이 이끄는 ‘개신교 해방운동’ 소속 활동가들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반정부 세력 탄압의 주된 목표는 “우리가 추진하는 바렐라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쿠바시민 1만1020명의 서명을 받아 쿠바의회에 제출됐으나 한 차례 거부된 적이 있는 이 계획은 현 체제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정치적·경제적·시민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헌법개정을 요구하며 이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자는 제안이다. “이 계획이 뿔뿔이 흩어진 쿠바 반정부 세력을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운동을 제안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쿠바 정부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주장

사진/ 진보적 지식인들도 쿠바 정부의 조처를 비판하고 나섰다.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왼쪽)와 미국의 수잔 손탁.(SYGMA)

사진/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쿠바 난민들. 쿠바 정부는 미국이 난민들의 불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한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