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 주업인 경비업체
등록 : 2000-10-18 00:00 수정 :
(사진/금속야금 업체 TEPRO사 전경.사설경비업체에 의해 노조위원장이 살해된 이 회사는 체코회사가 인수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루마니아는 지금 ‘사설경비의 천국’이다. 현재 600여개에 달하는 사설경비업체가 난무하고 있는데, 경비업체 설립과 활동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 법규정조차 전혀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사용할 수 있는 무기에 대한 제한도 없어 군대와 같은 무장을 해도 손을 쓸 수가 없다. 이들은 단순한 경비업무의 선을 넘어, 해결사 역할까지 해온 지 이미 오래다. 이들 경비업체의 사장들은 대부분 전직 군·경찰간부나 고위공무원 등이며, 경호원들은 특수부대나 전투경찰 출신이어서 더욱 불가침 지대가 되고 있다.
지난 9월12일 루마니아 북동부지역의 이아시에 위치한 금속야금 업체인 ‘TEPRO’사의 노조위원장이었던 샤흘레아누가 괴한들로부터 구타를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회사쪽에서 매달 약 4억4천만레이(미화 약 2만달러)를 지불하고 사설경비업체와 계약을 하려 했는데, 어이없게도 이 회사는 현재 노동자들에게 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다 곧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실을 알았던 샤흘레아누는 이를 노조에 폭로하고 저지하려 했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경비업체의 소행으로 결론날 것 같았던 샤흘레아누 살인사건의 수사 결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국영회사였던 TEPRO는 사유화가 진행중이었으며, 현재 루마니아에 진출해 있는 체코의 한 회사가 이를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조의 반대에 부딪히자 회사 인수를 위해 사설경비업체로 회사를 장악하고, 노조를 공중분해하여 회사를 인수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설경비업체를 고용하려 했던 TEPRO의 빅토르 사장이 체코 회사의 임원인 것이 드러나면서 밝혀졌다.
인수를 추진하려던 체코 회사가 사설경비업체에 사주를 하여 노조위원장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자, 노동자들은 즉각 공장을 점거하고 국가사유화위원회(FPS)의 사유화 결정이 무효화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체코에 있는 모기업의 사장은 사태의 해결을 위해 노동자 대표들을 체코에 초청하여 타협하려 했으나, 노동자 대표들은 “이제는 노동자들도 매수하려 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루마니아는 공산주의가 붕괴된 지 10여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사유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실정이다. 국가사유화위원회가 있지만 유명무실한 정부조직이 된 지 오래다. 실제로 사유화 진행과정에서 항상 검은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샤흘레아누의 장례식에 참석한 노조원들은 “사설경비업체는 합법적인 마피아”라며, 이들을 규제할 수 있는 법률이 하루 속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사유화가 루마니아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정부의 무능을 비난했다.
부큐레슈티=황정남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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