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와 온건파 미묘한 입장 차이에도 군정 반대 한목소리… 미국 체제 개편의 큰 걸림돌될 듯
바그다드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 학정의 흔적, 경제제재의 악몽에도 바그다드는 살아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1달러가 3천이라크디나르 정도였는데 지금은 전쟁 전 수준인 2천디나르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호황을 누리던 국경 차량 사용료도 편도 기준 250달러 안팎으로 떨어졌다. 전력공급은 원활해지고, 병원이나 학교 등의 정상화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문을 여는 가게들이 늘어가고, 거리는 사람과 차량들로 넘쳐난다. 치안 상태가 호전되고, 움츠러들었던 이라크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사회 모든 면에서 영향력 행사
이런 변화와 함께 정권을 쥐려는 다양한 정파와 계파 간 갈등과 샅바싸움, 줄대기 경쟁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이 와중에 주류파로 급부상하며 이라크의 미래에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는 시아파의 향배가 주목된다. 국내파·해외파·강경파·온건파 등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른 합종연횡이 이어지고 있다. 시아파의 움직임은 앞으로 재편될 중동 질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아파는 이라크 전체 인구 2600만명의 65% 정도를 차지한다. 물론 자세한 통계수치는 없고, 어림치일 뿐이다. 절대다수임에도 소수파로 전락했던 이들은 후세인이 사라진 지금 자칭타칭 이라크의 주류가 되고 있다. 지난 4월20일께 사담시티의 알카디시야 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경계근무 중이던 자경단이 취재진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이슬람 시아파 종교지도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병원 행정도 모두 성직자들의 몫이었다.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통상 셰이크라 불린다. 이들 셰이크들이 중심이 되어 후세인 이후, 아니 개전 이후 발생한 통치력의 진공상태를 메우고 있었다. “전쟁 중에 다른 병원들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우리 병원은 한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고 약탈도 당하지 않고 운영돼왔다.” 셰이크 사디르는 자신들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시아파는 이같이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행정관료가 사라진 지금 셰이크들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실제적 권력기관이 돼버렸다. 이들 셰이크는 의사결정 기구를 통해 중요한 사안들을 의결·집행하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정치·사회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위세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권력기반이 형성된다고 하여 쉽사리 무너질 수 없는, 확실한 민중적 지지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민초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이들은 반미정서를 확산시키는가 하면 피폐해진 지역사회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금이 바닥난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물자를 공급한다. 아울러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경단은 약탈자와 질서 문란자들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이들을 잡아들이는가 하면 치안과 질서유지 임무도 자임하고 나섰다. 수권 세력임을 민중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란식 이슬람 혁명 가능할까
시아파의 강·온 양파는 동일하게 미군정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진영안에는 합치될 수 없는 큰 간극이 있다. 국내파와 해외파, 특히 이란을 배경으로 하는 그룹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대다수 국내파들은 온건 진영으로 비폭력 저항운동과 지역사회 개발 등 현안 문제 해결에 주목한다면 해외 강경파들은 권력투쟁에 더 적극적이고 무장 투쟁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보수적인 국내 시아파의 입장은 아야톨라 알리 후세인 앗시스타니(72)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시아파의 정신적 지주인 그는 이란식 신정정치 체제 도입을 거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신도들에게 질서회복과 행정공백을 메우기 위한 재건활동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아울러 자주정부 수립을 원하지만 한시적인 미군 주둔에 조건부로 동의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라크인 스스로가 세우는 정부라면 어떤 형태가 되든 상관없는 것이 다수 이라크 시아파의 입장이다. 해외파의 중심에는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 (SCIRI)의 지도자 바크르 하킴이 있다. 비폭력이든 무장투쟁이든 다수의 시아파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란식 이슬람 신정정치다. 미군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하고자 하는 지금은 ‘미군에 대항하는 무력항쟁은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치적 수사로 보는 것이 옳다. 점령자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나선 이라크민족해방기구(INRO)도 강경파의 한 갈래다.
영향력 있는 국내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 야쿠비는 최근 행한 설교를 통해 “이라크 통치는 무슬림이 맡아야 하며, 이슬람법(샤리아)이 헌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자프나 카르발라 등 주요 이슬람 시아파 성지의 셰이크들도 원칙적으로 이슬람법에 의한 신정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바트당 세속 정권의 탄압에 시달려온 다수의 시아파 이라크 무슬림들은 이 같은 주장에 고무되고 있다. 반외세 이슬람 자주정권 수립이라는 이념이 이라크의 새로운 지각변동의 핵이 되고 있다. 강경파는 더 나아가 이란식 이슬람 혁명을 지향하며 무력투쟁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란에서 호메이니 혁명 사상으로 무장된 친이란계 이라크 무장세력들이 이라크 남부지역으로 속속 잠입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아울러 이란과의 접경지역 경계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시아파의 움직임은 미국이 주도하는 판을 깨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그 때문인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서의 이란식 이슬람 혁명을 허용할 수 없고, 이란은 이라크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도 나서서 이들의 움직임에 경고장을 보냈다. “이라크에서 친이란계 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새 정부는 이라크 내의 모든 정파를 대표하여야 한다”(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등의 발언이 이어지는 것도 부시 행정부의 경계심을 반영한다. 다 된 밥에 재뿌리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경계하는 부시 행정부
시아파 무슬림들은 30년 가까이 중단됐던 카르발라 집회를 통해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관심을 드러냈다. 100만이 넘는 시아파들이 카르발라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만방에 알렸다. 시아파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이라크의 향배가 달려 있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전제군주와 같은 후세인이 사라져버린 지금 이라크인들은 모처럼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기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신음하고 있다.
예전에 후세인에게 자유를 저당잡혔다면, 지금은 외세에 이라크인의 자주성이 침해당하는 상황을 염려해야 한다. 이라크인들은 이라크의 자유를 위한 두 번째 싸움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우리는 자유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라크인 하이데르의 이 지적은 모든 이라크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지금도 이라크 곳곳에서는 반미·반외세의 목소리가 커져만 간다. 이라크의 주류로 급부상한 시아파들은 미국의 일방적 이라크 체제 개편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지금도 바그다드는 변하고 있다. 극성스럽던 언론이 서서히 싫증을 내기 시작하는 지금에도.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사진/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시아파 시위대. 시아파의 움직임은 앞으로 이라크 체제개편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GAMMA)
시아파는 이라크 전체 인구 2600만명의 65% 정도를 차지한다. 물론 자세한 통계수치는 없고, 어림치일 뿐이다. 절대다수임에도 소수파로 전락했던 이들은 후세인이 사라진 지금 자칭타칭 이라크의 주류가 되고 있다. 지난 4월20일께 사담시티의 알카디시야 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경계근무 중이던 자경단이 취재진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이슬람 시아파 종교지도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병원 행정도 모두 성직자들의 몫이었다.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통상 셰이크라 불린다. 이들 셰이크들이 중심이 되어 후세인 이후, 아니 개전 이후 발생한 통치력의 진공상태를 메우고 있었다. “전쟁 중에 다른 병원들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우리 병원은 한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고 약탈도 당하지 않고 운영돼왔다.” 셰이크 사디르는 자신들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시아파는 이같이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행정관료가 사라진 지금 셰이크들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실제적 권력기관이 돼버렸다. 이들 셰이크는 의사결정 기구를 통해 중요한 사안들을 의결·집행하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정치·사회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위세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권력기반이 형성된다고 하여 쉽사리 무너질 수 없는, 확실한 민중적 지지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민초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이들은 반미정서를 확산시키는가 하면 피폐해진 지역사회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금이 바닥난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물자를 공급한다. 아울러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경단은 약탈자와 질서 문란자들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이들을 잡아들이는가 하면 치안과 질서유지 임무도 자임하고 나섰다. 수권 세력임을 민중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란식 이슬람 혁명 가능할까

사진/ 지난 4월22일 카르발라에 있는 후세인 빈 알리 사원에 모여든 시아파 신도들. 25년 만에 열린 대대적인 종교집회다.(GAMMA)

사진/ 시아파의 성지 카르발라로 행진하는 신도들. 이들은 모두 자주국가 수립을 갈망하고 있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