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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악당’들이 장렬하게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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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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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정부의 무지막지한 마약전쟁… 3개월 동안 2275명이 살해당하고 4만9594명 체포

“재산 10억바트(약 300억원) 몰수, 혐의자 4만9594명 체포, 메탐페타민(각성제) 1406만5749정 압수, 사망자 2275명….”

4월16일 경찰 대변인 뽕사파트 뽕차로엔 소장이 밝힌 이 내용은 지난 2월1일부터 탁신 총리 정부가 벌인 마약과의 전쟁, 두달 보름의 찬란한 ‘전황보고서’인 셈이다. 탁신 총리는 ‘전면전’ 격인 3개월짜리 마약과의 전쟁을 4월 말까지 끝내고 ‘소탕전’을 벌여 올 12월2일을 완벽한 승리의 날로 선언하겠다며 거듭 전의를 불태웠다.

424명 공무원, 구속 또는 해고


사진/ 경찰이 주도하는 마약과의 전쟁은 두달 만인 4월3일 현재 2275명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마약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지난 2월1일 마약과 전쟁을 시작하고부터 탁신 총리 정부에게는 마약 하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성가시던 언론도, 물어뜯던 비판그룹도 이 전쟁 앞에 고개를 숙였고, 지방정부와 관료들은 딴전 피울 겨를도 없이 오직 마약과의 전투에 몰두했다. “마약과 연계된 300여명의 정치가들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탁신 총리 일성에 날을 세운 정치판도 잦아들었다. 타이 최대 재벌 탁신 시나와트라 그룹 총수로, 의석 68%를 쥔 사상최대 여당 당수로, 경찰 출신이라는 배경을 업고 경찰과 군을 손아귀에 넣은 장수로, 또 iTV의 실질적 지배주로 언론을 장악한 탁신 총리는 한순간에 사회 전체를 긴장으로 몰아가며 이른바 ‘전시통합’을 이룩한 모양새다.

전과를 알리는 경쟁적인 ‘전투상보’는 하루가 멀다 않고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지금까지 마약관련 자금 20억바트를 몰수했다.” 4월21일, 경찰 대변인 발표 6일 만에 마약감독위원회 고문 세리 타윌왕은 액수가 두배에 이르는 새로운 통계를 내놓았다.

“콘캔과 수랏타니를 비롯한 5개주 100% 마약 퇴치 성공. 치앙마이와 촌부리를 비롯한 12개주 75% 성공.” 마약퇴치센터 발표에 맞서 뒤질세라 내무부도 “424명에 이르는 공무원을 마약관련 혐의로 구속했거나 해고시켰다”는 전과를 밝혔다.

정부 희망대로 12월까지 100억바트 몰수계획이라든지 100% 마약퇴치 같은 ‘수치’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믿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런 ‘전투상보’만으로는 승리를 선언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적 전문가들 견해다.

“탁신 정부는 최소한 사망자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승리도 패배도 가능하다.” 사회운동가이자 변호사로 이름난 솜차이 포럼 아시아 사무총장 말처럼, 경찰이 두달 보름 작전기간에 발생한 사망자 수치라고 내놓은 2275명은 가히 문명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탓이다.

“경찰이 작전 중 현장에서 사살한 경우는 51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모두 정당방위였다.” 경찰 대변인 뽕사파트 뽕차로엔 소장 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2224명은 누가 살해했을까 “마약조직원들끼리 치고받았다.” 경찰 발표다. 현장에서 사살당한 여성과 어린이들을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도 없이 경찰 발표를 곧이듣는 이들이 드물다.

“법 절차를 무시한 마약과의 전쟁, 이건 폭거다. 시민사회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이고 인권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다.” 시민자유연합(UCL)의 사무총장인 빠이롯 폴페뜨 변호사는 마약과의 전쟁이 몰고올 파장을 ‘암흑천지’라 표현하며 “법을 무시한 공권력, 법 위에 존재하는 총리, 이걸 타이식 민주주의라 불러야 할 미래가 걱정”이라고 개탄했다.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을 나무라며 거센 반전운동을 일으킨 타이 사회지만, 정작 자신들의 전쟁인 마약과의 전쟁이 지닌 문제를 놓고 ‘반전’을 외치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반전’의 목소리는 외롭다

사진/ 마약과의 전쟁에서 사살당하지 않고 경찰서까지 잡혀온 마약혐의자는 그나마 행운이다.
“시민의 의무기도 한 마약퇴치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약과의 전쟁이 지닌 불법성과 그 절차를 문제삼았다.” 빠이롯과 시민자유연합이 주장하는 이 전쟁의 불법성을 꼽아보면, 첫째 마약퇴치센터 설치로 20여개가 넘는 마약관련 실정법을 무시한 채 모든 권한을 당국에 부여해 정부 정책을 지원한 점, 둘째 마약금지예방위원회와 돈세탁방지위원회만이 법적 권한을 지닌 블랙리스트를 내무부 산하에 불법으로 설치한 마약퇴치센터가 지녔다는 점, 셋째 공무원들이 ‘누구든 센터에 신고하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강압적인 출두서를 남발해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고유의무를 저버린 점이 드러난다.

시민자유연합이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 문제는 당연히 2275명에 이르는 사망자 관련부분이다. 경찰은 “악당이 악당을 죽였다”고 주장하고, 시민단체에서는 경찰의 ‘현장사살’이나 ‘즉결처분’이라 불러 온 데서 알 수 있듯.

이런 가운데 시민자유연합이 증언자들을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장에서 살해당한 이들 일부를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경찰은 경찰대로 자신들이 밝힌 정당방위용 사살을 제외한 2224명 살해건에 대한 혐의자나 관련자를 밝혀내지 못해 스스로 의혹을 키워왔다. 여기다 경찰이 밝힌 정당방위로 사살한 51건(시민자유연합 조사로는 60건)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시민자유연합에 따르면, 살해당한 60명 가운데 주변에서 총기가 발견된 경우는 14건뿐이었다. 나머지 46건은 저항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결론이다. 사후 처리도 말썽거리다. 형법 제150조에는 주검 부검시 4개 관련자가 참여하고 그 결과를 검사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일부 경우는 관련자들이 부검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주검이 손상당해 있었다는 조사발표가 나왔다. 4월5일 현재, 검찰청은 “경찰이 정당방위로 현장사살한 사건 가운데 한건도 수사를 진행한 바 없다”고 밝혀 문제의 심각성을 폭로했다.

인권유린과 숱한 의혹 가운데 벌어진 마약과의 전쟁, 그러나 종전을 앞둔 4월 말 현재 타이 사회에서 이 전쟁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소리는 수그러들고 말았다. 시민자유연합이 중심에 서서 극소수 시민단체들과 양심적 학자들을 엮어 외로운 ‘반격’을 하고 있을 뿐이다. 2275명이 살해당한 전쟁을 놓고 언론은 이렇게 전선을 독려했다. “못된 놈들은 모조리 그들 방식대로 죽어 마땅하다. 즉결처분을 의심할 것도 없다. 너무 겁내거나 흥분하지 말자.” 지난 2월27일치 <타이 포스트>가 이러다 보니 현재 타이 사회 분위기는 “불법에는 불법으로”라는 괴상한 논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기운이다.

각성제 가격만 폭등했을 뿐…

3개월에 걸친 탁신 총리의 마약과의 전쟁은 적어도 겉보기에 승리를 거두고는 있다. 마약 퇴치보다는 ‘긴장’을 통한 일방적인 사회통합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틀림없다. 그러나 “달라진 건, 한알에 50바트 하던 야바(각성제)가 400바트로 올랐을 뿐이다.” <방콕포스트> 환경 편집자 와산트 떼차옹탐 말처럼 전쟁이 끝나는 4월30일 이후를 ‘마약으로부터의 해방’이라 장담할 만한 근거는 아직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지난 3개월 동안 2275명이 살해당했고, 4만9594명이 체포당했지만, 마약시장을 쥐고 흔드는 대어를 낚았다는 소식은 없었다. 말하자면 ‘잔챙이’들만 솎아냈다는 뜻이다. 베트남 전쟁 때부터 악명을 떨쳐온 국제적 마약지대 타이가 단 3개월 전쟁으로 ‘마약해방지대’가 될 수 있을지를 놓고 비판적 시각을 지닌 시민들은 소근거리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이 끝나고 5월이면 다시 탁신 총리의 새로운 전쟁인 ‘불법 이주노동자들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권력 앞에 쓰러져가고 얼마나 많은 불법이 판을 칠지! 그러나 타이 시민사회는 숨죽인 채, 유일한 ‘스타’ 탁신 총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방콕=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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