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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팔레스타인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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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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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의 바그다드 점령은 재앙…평화 협상 전망은 불투명하고 강제이주설까지 나돌아

4월11일 영국 출신의 평화운동가 톰 헌덜이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이스라엘 저격병의 총에 머리 관통상을 입고 의식불명상태에 빠졌다. 지난달 미국 출신의 레이첼 코리가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깔려 숨진 뒤 불과 한달여 만의 일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최근호에서 헌덜이 총격을 당하기 이틀 전 남긴 메모를 실었다.

“어젯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F-16 전투기가 거리의 차량을 향해 로켓 2발을 발사했다. 이 차량에 타고 있던 하마스와 파타 등 팔레스타인 저항조직 회원 5명을 겨냥한 것이다. 첫 번째 로켓은 빗나갔지만, 두 번째 로켓은 정확히 명중했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숨졌고, 부근에 있는 30여명의 시민이 중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4명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편들기’는 저항에 부딪힐 것


사진/ 이스라엘 불도저와 탱크에 돌을 던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시위대.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다.(GAMMA)
이라크가 미·영 합동군의 손에 떨어진 뒤 중동의 정치지형이 이스라엘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전쟁 최대의 승자는 이스라엘”이라는 인식이 아랍권에 팽배하다. 이스라엘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시리아에 대해 부시 행정부 고위관료가 잇달아 강하게 압박하는 것도 이런 인식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도 이라크에 친이스라엘 정권을 세울 것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발행되는 <뉴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이런 상황을 두고 “미국이라는 개를 이스라엘이라는 꼬리가 흔들어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적대적 아랍국가에 둘러싸여 안보문제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이스라엘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만한 모든 요소를 미국이 제거해주길 바라는 게 일견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이런 절대안보가 쉬울 리 없다. 아랍의 모든 국가가 이스라엘의 헤게모니에 굴복할 때만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탓이다.

바그다드 함락이 이스라엘에게 축복이었다면, 팔레스타인에게는 재앙이었다. 30개월 이상 진행되고 있는 ‘2차 인티파다’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외부 정치환경마저 최악으로 변해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유혈극의 종지부는 언제쯤 찍을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비정부기구 네트워크에서 발행하는 <팔레스타인 모니터>(www.palestinemonitor.org)는 2000년 9월28일 인티파다가 시작된 뒤 4월17일까지 모두 240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중동질서 재편에 나선 미국으로선 언제까지고 이스라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이다. 점점 늘어나는 아랍권의 분노에 정면으로 맞섰다간 자칫 어렵사리 얻은 지역패권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는 탓이다. 3월14일 이라크 침공을 5일 앞두고 부시 미 대통령이 서둘러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에 대한 중재안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중재안은 양쪽 모두 현 상황에서 한발 물러나는 데서 출발한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대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 병력을 물리고 정착촌 철거와 건설 중단을 동시에 진행하도록 했다. 미국의 강한 압력에 따라 사실상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승계한 마흐무드 압바스 신임 총리가 인준을 받는 대로 △국경 문제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 △정착촌과 난민 문제 등에 대한 마지막 협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05년까지 이스라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립적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이스라엘 정부의 ‘이주연습’

사진/ 지난해 11월12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이스라엘로 일하러 들어가기 위해 에레즈 검문소에 줄지어 있다.(GAMMA)
그러나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이른바 ‘테러의 하부구조’를 근절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신임 압바스 총리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산하 모든 저항조직을 해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격파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최대조직인 파타는 물론,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이슬람 지하드 등 모든 정치적·비정치적 조직이 포함된다. 이스라엘의 요구를 따를 경우, 팔레스타인은 평화협상에 나서기 전부터 내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은 또 자국의 동의 없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미국이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과 관련한 어떤 사항이라도 이스라엘이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다. 게다가 정착촌 철거와 신축 중단 문제는 협상의 최종단계에서 논의될 사안이라며 선결사항으로 받아들일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쯤되면 평화협상은 시작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평화협상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스라엘이 현 거주지에서 몰아낼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집트의 주간 <알아흐람>은 최신호에서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기사를 내보냈다.

“최근 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북부 툴카렘에서 15~50살까지 팔레스타인 남성 2천명을 대상으로 이른바 ‘이주연습’을 단행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총을 겨눈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트럭에 나눠타고 마을에서 수km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이들은 식량도 없이 약간의 물만으로 3일을 버텨야 했다. …이번 ‘이주연습’은 대규모 팔레스타인 민중추방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로부터 유대민족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민족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이스라엘은 4월16일 밤부터 1주일여에 걸친 축제기간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지역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는 통금과 봉쇄가 더욱 강화됐다. 몇몇 지역에서는 24시간 통금이 선포됐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는 사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연금 아닌 연금상태에서 분노와 공포로 치를 떨고 있다. 4월17일 <팔레스타인라디오>가 전한 소식은 팔레스타인의 참담한 현실을 극명히 드러내준다.

“아드함 알카타리와 하산 술라이만 알마나시라가 가자와 헤브론에서 각각 순교했다. 30대 경찰인 알카타리는 지난 2월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군의 아파치 헬리콥터 공격으로 입은 상처로 산화한 아홉 번째 인물이다. 알마나시라는 바니나임 출신으로 야타시 남쪽 알자판 지역에서 이스라엘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가자지구에서는 17살 난 무하마드 술라이만 투타와 마흐무드 알라우가 지난주 가자지구 알자이툰에서 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한 헬리콥터 기총사격 때 입은 상처로 순교했다. 이로써 이 사건으로 숨진 민간인은 모두 10명으로 늘어났다.”

유월절을 맞는 착잡한 심정

사진/ 팔레스타인의 고난은 언제 멈출 것인가. 지난 2월28일 가자지구 라파 난민캠프의 한 여성이 이스라엘 군대가 무너뜨린 건물 잔해에서 목재를 줍고 있다.(GAMMA)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유월절 축제기간은 유혈극으로 얼룩졌다. 3월27일 유월절 시작을 알린 것은 네타냐의 파크호텔 식당에서 툴카렘 출신 압델 바세트 오데가 감행한 자살폭탄공격이었다. 이 사건으로 2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3월29일에는 예루살렘 남동부 지역의 한 쇼핑센터에서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살공격을 감행해 3명이 숨지고 20명이 부상을 당했다.

팔레스타인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땅이던 영토의 78%를 이스라엘쪽에 양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대부분의 동예루살렘을 넘기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이 ‘성실한 중재자’ 역할을 방기한 채 이스라엘쪽에 기울어 평화협상안을 끌고간다면 저항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스티븐 준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교수(정치학)는 4월18일치 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이라크 침공 초기에 의도한 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둔 것을 외교적 목적을 얻어내는 데 활용하려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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