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 뒤 미국의 보복에 대한 우려 높아… 그래도 시라크 지지율은 역대 최고
4월15일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이라크 결의안 승인을 논의했던 2월7일 이래 처음으로 이루어진 두 나라 정상 사이의 전화통화였다. 20여분의 통화내용에 대해 엘리제궁쪽은 ‘긍정적’이라는 평을 한 반면, 백악관쪽은 매우 ‘사무적’이라는 평을 내렸다. 두달 이상이나 지속된 침묵을 깨고 전화를 시도한 프랑스가 수신자보다 더 긍정적인 이유는? 지난 두달은 반전의 최선두주자로 나선 프랑스 외교의 고뇌와 고난을 대변해준다.
결국 터진 전쟁, 쓴 술을 들이켜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3월10일, 미국에 공식적으로 ‘노’를 표명한 데 대해서는 여러 관점의 분석이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평화주의 외교’라는 과찬을 보냈지만, 사실 당시 프랑스는 상당한 도박을 한 셈이다. 왜냐하면 당시 프랑스의 ‘노’가 해낼 수 있는 최상의 외교적 성과는 유엔에서 비토권을 행사해 전쟁을 막는 일이었지만, 그런 이상주의적 성과를 기대하기에 미국은 아무도 꺾을 수 없는 불굴의 전쟁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엔의 동의 없이도 침공이 시작됐고, 전쟁 찬성을 외친 나라들은 참전을 서둘렀다. 이로써 프랑스·러시아·독일로 대표되는 반전노선은 마침내 막을 올린 전쟁무대의 뒤쪽에 덩그러니 외롭게 남겨졌다. 이라크 개전일에 발표된 시라크의 공식연설문 내용은 프랑스가 전쟁이라는 엄혹한 현실과 대면해 억지로 들이켜야 했던 ‘쓴 술’의 맛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라크에 군사작전이 개시되었다. 유엔의 동의 없이 강행된 이 행동에 프랑스는 유감을 표한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보려고 끝까지 노력했지만 별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제 프랑스는 그동안 외친 ‘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평화’와 ‘왕따’ 사이를 오고갔다고 묘사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시라크는 9·11테러 직후 미국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국가원수다. 2001년 가을에 두 나라가 나눈 우애와 동맹이 2003년 봄, 긴장과 대립으로 바뀐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사태로 프랑스 정부가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받은 비난은 다양하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두 나라의 보수언론들은 프랑스를 비난하며, “기회주의 프랑스”, “007 영웅을 자청한 시라크”, “시라크는 사담 후세인의 친구”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월 중순 반전의 물결이 뜨거워지기 시작할 즈음, 영국의 일간지 <더 선>(The Sun) 2월20일치는 “시라크는 지렁이다”라는 제목의 특별기사를 실으며, 그 기사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파리에 무료 배포했다.
‘프렌치 프라이’ 이름마저 없애다
이 신문은 프랑스가 반전입장을 취하는 배경을 설명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비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려는 이번 전쟁에 반기를 드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적 입장은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또한 현실을 외면하고 국제무대에서 ‘폼잡기’를 즐기는 프랑스는 유럽의 수치라고 썼다. 이에 덧붙여 프랑스가 그동안 사담 후세인을 도운 정책들을 나열하면서, 1·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망각한 프랑스는 이제 먹고살 만하게 되어 천하의 독재자를 제거하는 일도 방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기사의 마지막 구절에선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있다. “1천만 독자를 가진 우리 신문은 1천만의 이름으로 프랑스인에게 묻노니, 당신들은 당신들의 대통령이 수치스럽지 않은가.”
프랑스가 배은망덕하다는 말은 그즈음 영국에서보다 미국의 정치인이나 언론들 사이에서 더욱 공공연하게 쓰인 표현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세계대전 참전 미국인 병사 공동묘지 사진과 함께 실린 2월10일치 <뉴욕포스트> 사설은 “어떻게 감히 프랑스인은 잊을 수 있나”라는 제목으로, 프랑스를 적나라하게 비난하고 있다. “우리의 용감한 병사들이 독재자 히틀러로부터 프랑스를 구해주었다. 이제 미국이 독재자 후세인을 무찌르고 세계를 구출하려는데, 프랑스인은 어디 있는가?”
미국이 프랑스를 괘씸하게 여기는 중에 미국 국회의사당 식당의 감자메뉴 ‘프렌치 프라이’는 ‘프리덤 프라이’로 이름이 바뀌었는가 하면, 프랑스산 포도주를 길거리로 들고 나와 대량으로 파괴하는 등의 안티프랑스 시위가 이어졌다. 전쟁이 일어난 뒤 미국의 우익 온라인뉴스 사이트 뉴스막스(www.NewsMax.com)에서는 전쟁 중인 미군을 후원하기 위해 프랑스 상품들을 보이콧하자는, 일명 ‘프랑스 보이콧’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미국에 의한 보복성 경제제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프랑스에서도 높다. 하지만 국제무역법이 엄연히 존재하며, 국가와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강대국의 일방적 제재조처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오는 6월에 열리는 파리에어쇼에 참여하는 미국쪽 기업의 수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 대신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관광의 경우는 기업과 달라서, 이번 사태로 인해 미국인 관광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원인에는 미국인의 반프랑스 감정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일고 있는 반미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포함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서구에서 가장 반미적이라고 알려진 반전·반미·평화 구호가 정치와 언론과 길거리로 나선 시위군중에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여론조사(IFOP)에 의하면, 2003년 3월 프랑스인의 시라크 지지율은 75%로, 제5공화국 사상 전례가 없는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했는데, 그 원인이 시라크의 강경한 반전입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야, 자유를 이겨다오”
이렇듯 반전과 반미열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한창 전쟁 중이던 4월 초에 한 여론조사(Ipsos-Le Monde)에서 프랑스인 3명 가운데 1명이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가 이기길 바란다는 결과까지 나와, 이제 미국과의 알력을 수습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든 프랑스 정치인을 놀라게 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각각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국과 프랑스의 대립은 역설적으로 자유와 평화의 대립이 된다. 자유는 독재자의 압박으로부터 세계를 구출한다는 지극히 미국식 논리에 근거하고, 평화는 미국의 독자노선에 대항해 다원주의에 기반한 평화적 해결책을 찾자는 프랑스의 입장이다.
“유럽은 단결된 세계관과 하나의 목소리를 가져야 하며,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들에 대항해 지속적이고 정당한 해결책을 찾도록, 평화를 심을 수 있는 유일한 합법기구인 유엔의 범위 안에서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귀가 따갑도록 되풀이돼온 시라크의 연설에 한번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것만이 오늘날 미국 패권주의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이제 시리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미국을 바라보며 프랑스인은 이런 기원을 하고 있다. “프랑스야! 좀더 버텨다오. 평화야! 자유를 이겨다오.”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사진/ 지난 2월15일 파리에서 열린 반전시위. 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3명 가운데 1명이 이라크가 이기기를 바란다는 결과까지 나왔다.(이선주)
아니나 다를까 유엔의 동의 없이도 침공이 시작됐고, 전쟁 찬성을 외친 나라들은 참전을 서둘렀다. 이로써 프랑스·러시아·독일로 대표되는 반전노선은 마침내 막을 올린 전쟁무대의 뒤쪽에 덩그러니 외롭게 남겨졌다. 이라크 개전일에 발표된 시라크의 공식연설문 내용은 프랑스가 전쟁이라는 엄혹한 현실과 대면해 억지로 들이켜야 했던 ‘쓴 술’의 맛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라크에 군사작전이 개시되었다. 유엔의 동의 없이 강행된 이 행동에 프랑스는 유감을 표한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보려고 끝까지 노력했지만 별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제 프랑스는 그동안 외친 ‘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사진/ 파리 반전시위대의 ‘이라크 살육 반대’(NON BUCHERIE IRAK)라는 피켓이 눈에 띈다. 여기서 BUCHERIE는 BUC(S)H+ERIE의 합성어로 “부시가 하는 짓”이란 뜻이 될 수 있다.(이선주)

사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식당주인이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이름을 바꿔 팔고 있다. 미국에서는 프랑스 제품을 보이콧하자는 운동도 벌어졌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