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의 “대통령 재가 없이 군 작전권 행사” 위한 수정안 둘러싸고 시민들은 ‘쿠데타’ 걱정
“새 군 법안이 싫으면 그만이지, 쿠데타를 들먹이지는 마라. 아둔한 생각이다. 대체 쿠데타가 뭐냐”
‘진짜’ 군인으로 불리며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육군총사령관 랴미잘드 랴쿠드는 기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럼에도 군에 대한 의혹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정치’를 입에 담지 않는 군인으로 소문난 랴미잘드였지만, 그 자신이 불신감을 증폭시킨 주인공이었던 탓이다.
발리 폭탄테러 이후, 군부 슬금슬금…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자카르타에서는 군부가 밀어붙이는 새로운 군법 초안을 놓고 개혁진영 전문가들이 반대하고 나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쿠데타설까지 불거져나왔다. 결국 3월6일 랴미잘드 장군이 한 발짝 물러나 “싫다면 바꾸라”며 논쟁의 핵심인 제19조 수정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부터 분위기가 온통 전쟁판으로 쏠린 채 군법 논쟁의 불길이 수그러들면서, 여전히 군부의 야심을 놓고 시민들 사이에는 의혹에 찬 눈길들이 번뜩이고 있다. “이 전쟁을 눈여겨봐야 한다. 정치적 부활을 노리는 군부가 기회의 시간으로 여길 수 있다.” 인권변호사로 이름난 무니르 말처럼, 현재 몸놀림을 자제하고 있는 군부를 놓고 ‘안팎으로 불쏘시개를 모으는 휴지기’라 여기는 전문가들이 많다. 돌이켜보면 군법 논란의 불씨는 지난해 10월 발리 폭탄테러 사건이 터질 무렵부터 슬금슬금 피어올랐고, ‘부활’을 꿈꾸는 군부의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발리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때 만난 듯, 군부 내에서는 군 역할을 강조하는 소리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발리 폭탄사건은 군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국가를 위해 군이 나서야 한다.” 랴미잘드 장군은 그때부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다녔다. 당시 군부는 이미 군을 중심으로 국방부와 민간 전문가들을 포함한 연구자 48명을 선정해 새로운 군 법안을 만들고 있었다. 발리 폭탄테러 사건은 군부가 새 군 법안을 숨가쁘게 밀어붙일 수 있는 두 가지 동력을 제공했다. 하나는 국내외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테러사건으로 사회적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일정한 공간을 얻은 군이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군으로부터 독립한 경찰이 신속하게 테러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데 따른 ‘경계심’이었다. 군부가 만든 새 군법 초안 가운데 가장 큰 말썽거리가 된 제19조는 이렇게 발리 폭탄테러 사건 뒤 군부가 지녔던 ‘야망’과 ‘긴장’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이다. “국가 주권과 영토 보존을 위해 비상시 군 총사령관은 대통령 재가 없이 군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대통령에게 24시간 안에 보고하면 된다”는 내용을 담은 제19조에 따르면, ‘비상시’라는 모호한 상황 설정과 함께 군 총사령관은 사실상 대통령 허가 없이 군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제19조는 1945년 헌법과 1959년 비상법 그리고 2002년 국방법(DPR 제14조 3/2002)이 규정한 대통령의 군 통수권- 대통령은 군 최고사령관으로 국민대표회의의 승인 아래 군의 작전과 이동에 대한 모든 권리를 지니며…- 개념을 모조리 뭉개버리며 군 명령권을 대통령에서 군으로 옮겨다놓았다. 게다가 제19조는 “군과 경찰 조직을 분리하고… 군은 방위를, 경찰은 치안을 책임진다”고 명시한 국민협의회 법령(MPR.제6.제7/2001)과도 정면 충돌한다. 메가와티, 한마디 의견조차 안 내놔 “30년 넘도록 정치판을 주물러온 군부 강경파가 심리적으로 민간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점이 문제다.” 새 군 법안 초안작업에 참여하다 느닷없이 군부가 문제의 제19조 항목을 삽입하자 뛰어나와버린 이크라르 누사박티(인도네시아과학원 연구원)는 랴미잘드 육군총사령관이 주도하는 군 강경파들에 대한 깊은 불만을 털어놓았다. 실제로 군부 내에서도 제19조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랴미잘드 육군총사령관이 법안을 주도하는 사이 유일한 상급 명령권자인 군총사령관 엔드리알토노 수탈토 장군은 ‘요약판’ 보고만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공군과 해군쪽에서는 제19조에 대한 반대 기운이 만만찮았음에도 육군에 질려 표면적으로는 모든 군이 통일된 모양새를 갖췄다. 그리고 육군총사령관 랴미잘드가 “다듬을 만큼 다듬어 결정했다. 더 이상 바꿀 건 없다”며 논쟁에 쐐기를 박고 다니는 동안, 군 법안 관련 상층부에 해당하는 국방부와 정부는 빈 수레소리만 울렸다. 수실로 밤방 정치안보조정장관은 “군과 비판세력 서로 다른 쪽에 귀기울여 서로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겠다”고 훈장 같은 말만 되풀이했고, 마토리 압둘 쟈릴 국방장관은 “국민대표회의에 법안을 제출하기 전에 다시 검토하겠다”고 원칙만 되뇌었다. “그래서 법으로 군을 제압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의회가 제19조를 절대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건 군과 시민사회 모두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넣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새 군법 초안 연구자 명단에 올랐지만 군부로부터 초대받은 적이 없는 인권변호사 무니르는 군부보다 오히려 군인들 눈치보기에 바쁜 정치판을 타박했다. 그동안 개혁파 연구자들과 언론이 군 법안에 대해 거센 비판을 해오는 동안에도 정치판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부통령 함자 하즈(개발연합당·PPP)와 국민협의회 의장 아미엔 라이스(국민위임당·PAN)는 논쟁이 한창 달아올랐던 2월 말과 3월 초 각각 군 법안 19조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대통령 메가와티의 무거운 입은 군 법안 논쟁이 화산처럼 달아올랐을 때도 결코 열리지 않았다. 그 열리지 않는 입은 예외가 없음을 이번에도 증명했다. 단 한마디 의견조차 내놓지 않았고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메가와티가 이끄는 여당인 민주투쟁당(PDIP)도 입을 닫았다. 군부 입김이 여전히 강하게 서려 있는 수하르토의 후신인 골카르당(Golkar)은 고요한 적막감으로 군부 입장을 지원했다. “군부가 영리하게도 선거를 앞둔 절묘한 시점을 포착했다.” <템포> 편집장 밤방 하리무트리의 말은 정치권이 이번 군 법안을 대하는 태도를 잘 표현해주었다. 현재 자카르타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전역은 내년 4월 총선을 위한 투표인 등록이 시작되면서 이미 각 정당들이 선거체제로 돌입했다. 총선에 이어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일정을 앞에 둔 정치인들의 발길도 바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판은 “전국적 조직이 있는 군부에게 밉보이고는 총선도 대선도 없다”는 문장 아래 자연스레 통일되어 있는 분위기다. 군부를 낀 이 생존방식을 거부할 수 있는 정치가가 적어도 인도네시아에는 없다는 걸 잘 아는 군부에게 지금은 부활할 수 있는 최고 조건을 갖춘 ‘기회의 시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수하르토 퇴진 이후 집중적 ‘개혁타’를 맞아 국민협의회 의석이 대폭 줄어들었고, 특히 2004년부터는 국민협의회 의석을 완전히 상실하고 그로부터 4년 안에 다시 국민대표회의 의석마저 상실하는 군부로서는 지금이 ‘위기의 시간’이기도 하다. 군부가 정치적 관심을 끊지 못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기형적 자기 위기감이 군 법안 제19조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템포> 사무실 공격의 비밀
현재 군 법안이 잠자고 있는 터라 군부가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지만, 이후 벌어질 정치 일정과 묶어서 개혁부문에 종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는 군부 동향을 염려스럽게 지켜보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무니르 변호사와 이크라르 누사박티 박사 같은 이들은 지난 3월 초 알타 그라하그룹 총수 토미 와나타 지원자들이 기사에 불만을 품고 <템포> 편집실을 공격한 사건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최근 군부 움직임은 누가 뭐래도 정치판에 대한 영향력 확대다. 그 연장선에서 <템포> 공격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군부가 재벌을 끼고 도는 인도네시아식 정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무니르 변호사는 <템포> 공격은 군부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밀착해온 재벌그룹을 동원해 비판적 언론에 본때를 보인 사건이라 진단했다. 실제로 토미 와나타는 군과 경찰쪽에 방대한 선을 달고 있는 인물이며, 그의 사업들이 군부의 적극적 비호를 받아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쿠데타는 없었다. 더러운 마음을 가진 놈들의 생각일 뿐이다.” 랴미잘드 육군총사령관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문제는 시민들이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군인들은 이렇게 자진해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아무도 군인들이 시험대에 오르기를 원치 않았지만, 군인들은 스스로 제19조를 꺼내들고 그렇게 올라갔다.
자카르타=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사진/ 인도네시아 육군총사령관 랴미잘드 랴쿠드(가운데). 논란에 휩싸인 군법 19조가 수정되면 그는 사실상 대통령 허가 없이 군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Dimas Ardian)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자카르타에서는 군부가 밀어붙이는 새로운 군법 초안을 놓고 개혁진영 전문가들이 반대하고 나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쿠데타설까지 불거져나왔다. 결국 3월6일 랴미잘드 장군이 한 발짝 물러나 “싫다면 바꾸라”며 논쟁의 핵심인 제19조 수정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부터 분위기가 온통 전쟁판으로 쏠린 채 군법 논쟁의 불길이 수그러들면서, 여전히 군부의 야심을 놓고 시민들 사이에는 의혹에 찬 눈길들이 번뜩이고 있다. “이 전쟁을 눈여겨봐야 한다. 정치적 부활을 노리는 군부가 기회의 시간으로 여길 수 있다.” 인권변호사로 이름난 무니르 말처럼, 현재 몸놀림을 자제하고 있는 군부를 놓고 ‘안팎으로 불쏘시개를 모으는 휴지기’라 여기는 전문가들이 많다. 돌이켜보면 군법 논란의 불씨는 지난해 10월 발리 폭탄테러 사건이 터질 무렵부터 슬금슬금 피어올랐고, ‘부활’을 꿈꾸는 군부의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발리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때 만난 듯, 군부 내에서는 군 역할을 강조하는 소리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발리 폭탄사건은 군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국가를 위해 군이 나서야 한다.” 랴미잘드 장군은 그때부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다녔다. 당시 군부는 이미 군을 중심으로 국방부와 민간 전문가들을 포함한 연구자 48명을 선정해 새로운 군 법안을 만들고 있었다. 발리 폭탄테러 사건은 군부가 새 군 법안을 숨가쁘게 밀어붙일 수 있는 두 가지 동력을 제공했다. 하나는 국내외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테러사건으로 사회적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일정한 공간을 얻은 군이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군으로부터 독립한 경찰이 신속하게 테러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데 따른 ‘경계심’이었다. 군부가 만든 새 군법 초안 가운데 가장 큰 말썽거리가 된 제19조는 이렇게 발리 폭탄테러 사건 뒤 군부가 지녔던 ‘야망’과 ‘긴장’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이다. “국가 주권과 영토 보존을 위해 비상시 군 총사령관은 대통령 재가 없이 군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대통령에게 24시간 안에 보고하면 된다”는 내용을 담은 제19조에 따르면, ‘비상시’라는 모호한 상황 설정과 함께 군 총사령관은 사실상 대통령 허가 없이 군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제19조는 1945년 헌법과 1959년 비상법 그리고 2002년 국방법(DPR 제14조 3/2002)이 규정한 대통령의 군 통수권- 대통령은 군 최고사령관으로 국민대표회의의 승인 아래 군의 작전과 이동에 대한 모든 권리를 지니며…- 개념을 모조리 뭉개버리며 군 명령권을 대통령에서 군으로 옮겨다놓았다. 게다가 제19조는 “군과 경찰 조직을 분리하고… 군은 방위를, 경찰은 치안을 책임진다”고 명시한 국민협의회 법령(MPR.제6.제7/2001)과도 정면 충돌한다. 메가와티, 한마디 의견조차 안 내놔 “30년 넘도록 정치판을 주물러온 군부 강경파가 심리적으로 민간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점이 문제다.” 새 군 법안 초안작업에 참여하다 느닷없이 군부가 문제의 제19조 항목을 삽입하자 뛰어나와버린 이크라르 누사박티(인도네시아과학원 연구원)는 랴미잘드 육군총사령관이 주도하는 군 강경파들에 대한 깊은 불만을 털어놓았다. 실제로 군부 내에서도 제19조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랴미잘드 육군총사령관이 법안을 주도하는 사이 유일한 상급 명령권자인 군총사령관 엔드리알토노 수탈토 장군은 ‘요약판’ 보고만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공군과 해군쪽에서는 제19조에 대한 반대 기운이 만만찮았음에도 육군에 질려 표면적으로는 모든 군이 통일된 모양새를 갖췄다. 그리고 육군총사령관 랴미잘드가 “다듬을 만큼 다듬어 결정했다. 더 이상 바꿀 건 없다”며 논쟁에 쐐기를 박고 다니는 동안, 군 법안 관련 상층부에 해당하는 국방부와 정부는 빈 수레소리만 울렸다. 수실로 밤방 정치안보조정장관은 “군과 비판세력 서로 다른 쪽에 귀기울여 서로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겠다”고 훈장 같은 말만 되풀이했고, 마토리 압둘 쟈릴 국방장관은 “국민대표회의에 법안을 제출하기 전에 다시 검토하겠다”고 원칙만 되뇌었다. “그래서 법으로 군을 제압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의회가 제19조를 절대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건 군과 시민사회 모두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넣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새 군법 초안 연구자 명단에 올랐지만 군부로부터 초대받은 적이 없는 인권변호사 무니르는 군부보다 오히려 군인들 눈치보기에 바쁜 정치판을 타박했다. 그동안 개혁파 연구자들과 언론이 군 법안에 대해 거센 비판을 해오는 동안에도 정치판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부통령 함자 하즈(개발연합당·PPP)와 국민협의회 의장 아미엔 라이스(국민위임당·PAN)는 논쟁이 한창 달아올랐던 2월 말과 3월 초 각각 군 법안 19조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대통령 메가와티의 무거운 입은 군 법안 논쟁이 화산처럼 달아올랐을 때도 결코 열리지 않았다. 그 열리지 않는 입은 예외가 없음을 이번에도 증명했다. 단 한마디 의견조차 내놓지 않았고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메가와티가 이끄는 여당인 민주투쟁당(PDIP)도 입을 닫았다. 군부 입김이 여전히 강하게 서려 있는 수하르토의 후신인 골카르당(Golkar)은 고요한 적막감으로 군부 입장을 지원했다. “군부가 영리하게도 선거를 앞둔 절묘한 시점을 포착했다.” <템포> 편집장 밤방 하리무트리의 말은 정치권이 이번 군 법안을 대하는 태도를 잘 표현해주었다. 현재 자카르타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전역은 내년 4월 총선을 위한 투표인 등록이 시작되면서 이미 각 정당들이 선거체제로 돌입했다. 총선에 이어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일정을 앞에 둔 정치인들의 발길도 바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판은 “전국적 조직이 있는 군부에게 밉보이고는 총선도 대선도 없다”는 문장 아래 자연스레 통일되어 있는 분위기다. 군부를 낀 이 생존방식을 거부할 수 있는 정치가가 적어도 인도네시아에는 없다는 걸 잘 아는 군부에게 지금은 부활할 수 있는 최고 조건을 갖춘 ‘기회의 시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수하르토 퇴진 이후 집중적 ‘개혁타’를 맞아 국민협의회 의석이 대폭 줄어들었고, 특히 2004년부터는 국민협의회 의석을 완전히 상실하고 그로부터 4년 안에 다시 국민대표회의 의석마저 상실하는 군부로서는 지금이 ‘위기의 시간’이기도 하다. 군부가 정치적 관심을 끊지 못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기형적 자기 위기감이 군 법안 제19조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템포> 사무실 공격의 비밀

사진/ 기사에 불만을 품고 〈템포〉사무실을 공격하는 알타 그라하그룹 총수 토미 와나타 지원자들. 군부가 재벌그룹을 동원해 비판적 언론에 본때를 보인 사건으로 평가된다.(사진/ 정문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