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폭격으로 황폐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라크 형제에게 피를 바치겠다”
아랍이 들끓고 있다. 금요일마다 사원에서 기도를 마친 이슬람 교도들은 시위대로 변해 거리를 점령하기를 되풀이한다. 캠퍼스 곳곳에서 눈을 번뜩이며 사복경찰이 버티고 있지만, 대학가를 달군 반미열풍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다. 수백명에서 시작한 시위행렬은 전쟁 발발 10여일 만에 수만명으로 늘어나 아랍권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이라크 침공 틈타 민중 탄압 강화
“이라크 형제들에게 내 피와 영혼을 바치겠다.” 거리에서 사원에서 대학가에서 들려오는 분노의 외침은 전쟁의 참화 아래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에 대한 지지다. 격렬한 시위대의 외침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호가 있다. ‘팔레스타인 만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3월19일 개전 직후 행한 텔레비전 연설을 “이라크 만세, 팔레스타인 만세”로 마감했다. 팔레스타인은 고통받는 이슬람 교도의 상징이자 서방세계를 향한 아랍민중 분노의 뿌리기 때문이다. 3월27일 오후 가자지구 입구에 버티고 선 에레츠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퇴근 무렵이었다. 고된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은 기다랗게 줄을 선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은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만 거치면 쉽게 드나들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를 벗어나는 것만큼 다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길게는 두세 시간씩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스라엘군의 철저한 몸수색과 소지품 검사를 받고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검문소를 통과한 뒤 가자지구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황토빛 먼지로 뒤덮인 도로 위를 달리는 노새가 끄는 수레였다. 불과 몇km 밖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눈이 부시도록 푸른 초지를 끼고 펼쳐진 탁 트인 도로 위를 유럽산 승용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낡은 트럭의 앞을 막고 느릿하게 걸어가는 노새는 가자지구의 현 주소를 실감케 했다.
“이라크 아이들에게는 로켓이 아니라 식량이 필요하다.” 가자 시내 중심가에 있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공관 맞은쪽 무명용사 기념탑 광장에서는 확성기를 타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 발발 당일부터 가자지구의 13개 정치·사회 단체들이 모여 만든 ‘이라크 지원을 위한 팔레스타인 위원회’의 천막 농성장에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오사마 빈 라덴 등의 사진이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이라크의 형제들이 미군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동안,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는 오늘도 이스라엘군이 총과 불도저를 앞세워 집을 부수고 이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을 탄압하고 있다.” 농성장에서 만난 모하메드 토만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은 “전 세계 이목이 이라크로 쏠리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비인간적 탄압과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인구의 84.6%가 빈곤선 이하
바그다드에 폭격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원론적 얘기만 내놓고 있다.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1차 걸프전이 끝난 뒤 외교적 고립과 함께 극심한 어려움을 겪은 자치정부가 이번에는 미국과 영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가자지구에 넘쳐나고 있었다. 사촌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일손을 돕고 있다는 이스마일 아베드(32·교사)는 “전쟁 첫날 가자지구 학교가 모두 문을 닫고 반전집회를 벌였다.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폭격을 퍼붓는 건 어떤 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 하나 때문에라도 사담 후세인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2000년 9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당시 리쿠드당 당수)가 이슬람의 성지 가운데 하나인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신전 언덕을 방문하면서 촉발된 제2차 인티파다는 3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민중봉기에 맞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지역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요르단강 서안지구 전역에 세워지기 시작했고, 가자지구에서는 극소수 노동허가증을 받은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주민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로 인한 팔레스타인 경제의 피폐 정도는 전쟁의 참상 못지않다.
팔레스타인 난민구호활동을 벌이는 유엔의 자료를 보면, 2000년 9월 인티파다가 시작되기 전 1만1천 가구가 유엔의 식량구호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나 2003년 3월 현재 약 20만 가구 110만명이 유엔의 구호식량으로 버티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지역 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생후 6개월~5살의 어린이 가운데 가자지구에서는 13.3%,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8%가 만성 영양실조 상태다.
지난 2월 세계은행이 내놓은 ‘인티파다 2년: 봉쇄와 팔레스타인 경제위기’라는 보고서를 보면, 인티파다 시작 뒤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약 60%가 빈곤선(하루 생활비 2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인구의 57.8%, 가자지구 인구의 84.6%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과반수의 팔레스타인 가정의 수입이 인티파다 시작 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티파다가 시작되기 직전 63만7천명에 머무른 빈곤인구는 최근 200만명으로 약 3배 폭증했다. 21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평균실업률은 50%에 이른다. 특히, 외부와의 통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가자지구 실업률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이튿날 아침, 가자 시내를 출발해 시나이 반도와 만나는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로 향했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비단결 같은 금빛 모래밭은 아름다웠지만, 길에서 마주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에 다름 아니었다. 가자 시내의 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 빈곤의 정도는 눈에 띄게 심해졌다. 연료 부족 때문인지 맨발의 아이들은 아침부터 땔감을 나르고 있었고, 노새가 끄는 수레를 탄 노인은 물통을 가득 싣고 어딘론지 물을 길러가고 있었다. 벽에는 인티파다를 찬양하는 글귀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고, 자살폭탄공격을 감행한 젊은이들의 초상이 거리마다 나붙어 있었다.
무너진 잔해, 건물마다 총탄자국
1시간 30여분 만에 도착한 라파는 전쟁터 그대로였다.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난민촌이 돼 있었다. 건물마다 선명한 총탄자국이 벌집을 이루고 있었고, 불과 수십m 밖 장벽 뒤에 세워진 이스라엘군 망루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폭격을 맞아 무너진 건물 잔해를 헤치고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매일이다시피 벌어지는 무차별적 폭력에 노출된 채 커나가는 아이들 미래는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지 답답했다.
“저기 저 건물을 봐라.” 한 40대 주민이 더듬거리며 가리킨 곳에는 지진이라도 난 듯 3층 건물 반쪽이 잘려나간 채 가구며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들여다보였다. “저기서 일가족 15명이 지난주까지 살았다. 사흘 전에도 이스라엘군이 들이닥쳐 ‘테러리스트’라며 이웃에 사는 청년 3명을 붙잡아갔다.” 3월16일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항의하던 미국 평화운동가 레이첼 코리(23·여)가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깔려 숨진 곳도 이곳이다. 갑자기 굉음과 함께 뽀얀 먼지가 피어올랐다. 살펴보기 위해 장벽 쪽으로 다가서자 곁에 있던 주민이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며 말리고 나선다.
라파 주민 모두는 끝없이 이어지는 폭력에 익숙했지만, 이라크 전쟁을 틈타 이스라엘군이 주택 파괴 행위를 강화할까봐 우려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모하메드 무사(41)는 “인티파다가 시작된 뒤 사업은 바닥을 기고 있고, 아무런 이유 없이 거의 날마다 이스라엘군이 몰려들어와 집을 부수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총질을 해대기 일쑤다. 이라크로 이목이 집중된 사이 이스라엘군이 주민들을 이집트 국경 너머 시나이 반도쪽으로 몰아낼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삶의 마지막 희망조차 찾기 힘든 땅 가자지구에도 어김없이 성일은 찾아왔다. 금요일을 맞아 모스크로 향하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이라크와 함께 싸우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가자지구 밖으로 나갈 방법은 전혀 없다. 팔레스타인 민중은 자기 땅에서 유배된 채 외부세계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인 하마스의 녹색 깃발이 펄럭이는 사원에서는 기도회 내내 분노에 찬 이맘의 격한 음성이 확성기를 타고 메아리쳤다. 하마스 조직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자예드 아슐라(30)는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은 하나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 팔레스타인의 독립도 없다. 피는 피를 부른다. 미국은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스라엘 안보야말로 침공의 이유”
라파를 출발해 칸유니스 외곽으로 빠져나오던 택시가 도로 한가운데 갑자기 멈춰섰다. 운전을 하던 칼릴 쿨랍(41)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은 자세까지 바로잡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벽 너머 이스라엘군 쪽에서 불도저를 실은 대형 트럭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레스타인 주택 파괴에 쓸 자신들의 장비를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도로를 막은 사이, 팔레스타인의 낡은 차량은 꼬리를 물고 행렬을 이뤘다. 20여분 만에야 출발 허가를 받고 초소 부근을 벗어나면서 새삼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라크는 중동지역의 원유를 통제하는 열쇠다. 하지만 그것이, 미-영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이라크에 대규모로 미군이 주둔하면 지역질서를 미국 주도로 재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랍 급진세력을 억누르고, 이스라엘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안보야말로 이라크 침공의 핵심 이유다.” 가자 시내에 위치한 알아즈하르대의 파로크 다와스 교수(정치경제학)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위기가 서로 연계돼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현 중동질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스라엘과 맞서 고난받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은 미국과 맞서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의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아랍민중의 분노는 들불처럼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심장부에 팔레스타인이 자리해 있다. 바그다드에 폭격이 퍼부어지는 지금 팔레스타인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자지구=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한겨레 사진부 stepano@hani.co.kr

사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라파의 한 건물.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난민촌이 돼 있었다.
“이라크 형제들에게 내 피와 영혼을 바치겠다.” 거리에서 사원에서 대학가에서 들려오는 분노의 외침은 전쟁의 참화 아래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에 대한 지지다. 격렬한 시위대의 외침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호가 있다. ‘팔레스타인 만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3월19일 개전 직후 행한 텔레비전 연설을 “이라크 만세, 팔레스타인 만세”로 마감했다. 팔레스타인은 고통받는 이슬람 교도의 상징이자 서방세계를 향한 아랍민중 분노의 뿌리기 때문이다. 3월27일 오후 가자지구 입구에 버티고 선 에레츠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퇴근 무렵이었다. 고된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은 기다랗게 줄을 선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은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만 거치면 쉽게 드나들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를 벗어나는 것만큼 다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길게는 두세 시간씩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스라엘군의 철저한 몸수색과 소지품 검사를 받고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진/ 후세인 사진을 들고 반전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어린이. 주민들은 “이라크와 함께 싸우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 성조기를 태우고 있는 가자지구 시민들.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위기는 서로 연계돼 있다.

사진/ 폭력에 익숙해진 팔레스타인 시민들도 이라크 전쟁을 틈타 이스라엘군이 주택 파괴 행위를 강화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반전시위에 나선 팔레스타인 어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