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후 이라크 과도정부 청사진… 미국 기업 ‘잔칫상’인 복구사업에 딕 체니 연루설도 제기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와 전쟁을 개시하면서 “미군은 해방군이지 점령군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이 바그다드에 ‘과도정부’를 단독으로 세우고 전후 복구사업에도 ‘미국 기업 우선원칙’을 고수할 계획인 것으로 밝혀져 국제적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월25일 미 국무부 브리핑룸에서는 미 국제개발처(USAID) 고위 관리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전후 복구에 유엔 등을 포함한 국제기구와 외국과 협력해 이라크 국민을 위한 인도적 구호와 재건사업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회견이 있은 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는 국방부와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전후 복구사업과 관련해 미국만의 단독작업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또 일부 정치인들은 복구사업 특수에 딕 체니 부통령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과도정부 통치방안 윤곽 완성
미 국방부는 과도정부를 이끌 실무책임자로 군복무 경력 38년의 제이 가너(64) 퇴역장성을 선정했다. 그는 현재 전쟁을 지휘하는 미 중부군 사령관인 토미 프랭크스 장군이 군정사령관이 될 때 ‘행정청장’으로 정부를 통치할 계획이다. 가너 장군은 걸프전 막바지에 1400여명의 해병대원을 이끌고 이라크 북부의 쿠르디스탄으로 날아갔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차관은 당시 가너가 이라크 군장성들과 직접 협상을 벌여 반경 35마일 지역을 해방시켰기 때문에 쿠르드족에게는 생명의 은인 같은 존재고, 이 같은 배경이 그를 과도정부 책임자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가너는 지난 6개월 동안 비밀리에 과도정부 설립을 위한 작업을 벌여왔다. 최근 수주 동안 국방부, 국무부 그리고 다른 연방정부 기관들과도 협의를 진행해왔다. 가너의 행정팀은 지난 2월 워싱턴의 포트 맥니얼 기지에서 이틀 동안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이후의 상황”에 대한 예행연습을 했고, 그것을 토대로 국방부는 독단적인 과도정부 통치방안의 윤곽을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가너는 토미 프랭크스 군정사령관에게 제반 업무를 보고하게 된다.
제이 가너 밑에는 재건담당 조정관, 행정조정관, 구호조정관을 두게 된다. 그는 이라크를 북부 비행금지구역과 바그다드 지역, 남부 비행금지구역으로 3등분해 각각 조정관을 두어 통치할 계획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들 조정관들은 주마다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고, 각 주는 미리 위원회에 참여할 후보자를 미군당국에 추천하도록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라크 과도정부 부서마다 한명의 미국인을 두고 그 밑으로 미국에서 훈련받은 이라크 망명자들을 배치한다. 물론 사담 후세인 치하의 공무원들을 그대로 활용하며 미국 정부가 봉급을 주게 된다. 이 관계자는 재건을 위한 중장비공사와 건축사업에는 이라크 정규군을 동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알려진 3명의 조정관 후보 중에는 여성 외교관이 들어 있다. 2000년 당시 예멘 대사를 지낸 바바라 보딘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라크가 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할 당시 쿠웨이트 대사였으며, 80년대에는 이라크 미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녀가 관리할 중부는 수도 바그다드가 포함된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이 같은 미국의 이라크 전후 통치에 대해 일부 미국 관리들과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들은 문제가 많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번 전쟁이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데다, 미국이 국제적 협력을 피하고 단독으로 복구사업을 추진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국제개발처 관계자들은 과도정부가 국제적십자 등 국제구호기관들과 협력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 업체도 소외시켰다
한편 국방부와 국제개발처는 전후 복구사업 참여업체 선정에서 미국의 일부 업체들에만 비밀로 입찰하도록 통보해 말썽이 되고 있다. 복구사업에는 도로, 항만, 공항, 학교, 병원, 상하수도 시설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복구비로 6억달러를 계상해놓았다. 7개의 대규모 복구공사를 담당할 업체를 선정하면서, 수주 전부터 한정된 업체들로부터 입찰신청을 받아왔다. 이 중 알려진 기업으로는 벡텔그룹, 플루어 코퍼레이션,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 등이 있다. 이 같은 특정업체 선정에 대해 나치오스 국제개발처 사무처장은 “미국 업체에 한정된 것은 전시 보안 때문이다. 앞으로 외국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개발처는 이 밖에도 수십억달러가 소요될 항만운영관리, 공항관리, 지방정부운영, 공중보건관리, 공립교육운영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부시 행정부는 3월24일 전후 복구사업을 위한 하역업체로 ‘스티브도링 서비스 오브 아메리카’와 48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이 업체는 이라크 남부의 요충지 움카스르 항구의 복구와 운항관리를 맡게 된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 항만관리회사의 하나로 현재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 150여개 항구를 관리하고 있다. 영국의 ‘페닌술라 앤드 오리엔탈 스팀 내비게이션 컴퍼니’가 경쟁에 나섰으나 허사였다.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한 영국 기업들은 전후 복구사업에서 미국 기업들에 밀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은 이번 전쟁에서 유일한 동맹국임에도 미국에 전후 복구사업을 독식당하고 있다.
계약을 체결한 다음날인 3월25일 미 국방부는 불타고 있는 이라크 유정 진압과 응급 복구조치를 담당할 업체로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를 선정했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는 딕 체니 부통령이 95년부터 부시의 러닝메이트가 된 2000년까지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했던 핼리버튼의 계열사다. 이 회사는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 유전화재 진압을 담당했다. 계약액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초기 투자비용으로 약 50억달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권을 따냄으로써 핼리버튼은 앞으로 이라크 내 유전복구와 석유개발사업에서 계속 우선권을 갖게 됐다. 일부에서는 현재 미 행정부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자로 통하는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체니 부통령의 거짓말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맥신 워터스 연방하원의원(민주당)은 정부 태도에 대해 “성급한 계약은 문제가 있으며 부통령이 관련된 기업에 특혜를 준 인상이 짙다. 아직도 연합군의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데 복구를 위한 업체 선정을 서두른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제개발처쪽은 “하루빨리 이 항구가 복구돼야만 구호품 입항이 순조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 핼리버튼 계열사를 선정한 것은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유정 화재진압에 해당업체가 경험을 지녔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기관의 해명에 대해 워터스 의원은 “많은 미국인들이 석유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품고 있는데 부통령과 관련된 기업에 이권이 넘어갔다는 것은 의혹을 받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반전단체들도 “체니 부통령은 지난 선거기간에 자신은 이라크와 관련된 비즈니스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 워터스 의원은 “부통령은 자신의 이해와 연관되는 계약을 중지시켜야 했다”며 “그가 부통령직을 마치고 그 회사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워터스 의원은 과거 기업체의 고위 경영진에 있다가 행정부 고위직에 취임할 경우 기업체를 떠난 뒤 4년이 지나지 않으면 해당 기업에 계약권을 주지 않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이번 전쟁은 석유 때문이 아니다”는 부시 행정부의 목소리는 일차적으로 미 의회에서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른다.
LA= 글·사진 김지현 전문위원 lia21c@hotmail.com

사진/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파그다드의 민간인 거주지역. 전후 복구사업자 입찰에 미국기업만 포함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SYGMA)

사진/ 종전 뒤 이라크 과도정부에서 최고책임을 맡게 될 제이 가너(왼쪽)와 이라크 점령 뒤 군정사령관으로 유력한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 사령관.

사진/ 이라크의 불타는 유정. 미 국방부는 유정 화재진압과 응급복구를 담당할 업체로 체니 부통령이 최고경영자로 재직했던 핼리버튼 계열사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를 선정했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