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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석유 아닌 가솔린을 위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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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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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쟁을 훼방놓자

우리, ‘아시아 네트워크’ 기자들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명분 없는 대이라크 공격을 놓고 세계시민들과 함께 분노했다. 그리고 ‘아시아 네트워크’는 미국이 외치는 ‘이라크 해방과 자유를 위한 전쟁’을 방해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놓고 ‘모욕적인’ 농담을 주고받기로 결심했다. 길바닥에서는 마음껏 소리치면서도 지면에서는 고상하게 말해야 한다는, ‘억눌린’ 형식을 떨쳐버리고 지난 10여일 동안 전쟁판을 바라보며 세계시민들이 겪어온 가슴앓이의 정체를 서로 주고받아 보자는 뜻에서다. 한편으로는 ‘불경스런’ 농담을 통해 반전운동판에서 용감하게 싸운 시민들이 땀이라도 한번 닦고 갈 만한 여유를 나눠보자는 뜻도 함께 담았다.

이번 아시아 채팅에는 인도네시아 기자들 사이에 걸쭉한 농담과 거침 없는 문장으로 소문난 아흐마드 타우픽,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논쟁 하나만은 철철 넘친다’는 인도에서도 말발 세기로 이름난 언론인 사티아 시바라만, 싱가포르 신세대 대표 재담꾼 록잰이 참가했다.

‘풍자’와 ‘불경스러움’을 통해 어떤 전쟁도 정의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발하면서, 억울하게 숨져간 이라크 아이들과 시민들에게 깊은 애도를 올린다.

유니스 라오(Eunice Lau)/ 전 <스트레이츠타임스> 기자 letschatasia@hotmail.com



이라크 침략에 딴죽 거는 반전 농담… 아시아의 말빨들이 조지 부시를 가지고 놀다


채팅날짜 : 2003년 3월27일.

채팅 방 주인 : 유니스 라오(싱가포르)

채팅 참가자 : 록잰(뉴욕), 사티아 시바라만(방콕), 아하마드 타우픽(자카르타)

유니스 : 자, 놀랄 만한 이야길 하나 하면서 들어갑시다. 전쟁통에 인디언 타임이 깨졌어요. 미스터 인디아, 사티아가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가장 먼저 입방했습니다.

사티아 : 농담할 기분이 아닌데! 요즘, 전쟁 때문에 영 식욕도 없고.

타우픽 : 사티아, 그쪽은 안녕하신가

사티아 : 그럼 나야 늘. 타우픽, 아파 카바르, 바구스(잘 지냈어)

타우픽 : 좋지! 잘 지냈고.

납치된 부시를 위해 기름을 기부하자

유니스 : 아직 우리 공주님께서 입방하지 않았는데, 기다리는 참에 타우픽부터 한줄 뽑아보시지요. 따끈한 걸로, 요즘 잘나가는 질 좋은 걸로.

타우픽 : 질 좋은 것 우린 좀 엄숙해서…. LA에 사는 한 사나이가 신호등에 걸려 있는데 누군가 다급하게 차문을 두드렸다지. 그래, 차창을 연 그 사나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차를 두드린 작자 왈, 테러리스트가 부시를 납치해갔는데 1900만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기름을 뿌려 태워버리겠다고 해서 지금 내가 차마다 돌면서 기름을 거두고 있는 중이오.

사티아 : 우와, 질 좋은 놈이다! 나도 기름을 기부할 수 있나

유니스 : 자 자, 록스가 들어왔습니다.

록스(록잰) : 모두 미안해요. 컴퓨터가 문제를 일으켜 좀 늦었어요.

타우픽 : 하이, 록스. 그런데 이름이 밴드그룹 ‘더 폴리스’의 노래 록잰과 같네.

록스 : 야야, 어쩌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

사티아 :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세상이 좀 수상하지 않냐 백인이 최고 강간범으로 흑인이 최고 골퍼로, 또 프랑스가 미국의 오만을 고발하고, 독일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 데서부터 세상이 막가기 시작한 게 아닌가

유니스 : 자, 모두 모였으니, 간단하게 선수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타우픽은 구스둘(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와히드의 별명) 다음 가는 위대한 익살꾼이며, 사티아는 간디에 버금가는 인도 재담꾼이며, 또 록스는 리콴유와 쌍벽을 이루는 싱가포르의 입심입니다.

사티아 : 어떤 간디 인도에 유명한 간디가 셋 있었는데, 모두 암살당했어.

록스 : 으으음, 처음부터 나는 쨉이 안 되겠는 걸 오케이. 요즘 뉴욕에서는 이런 말이 나돌고 있어. 미국이 지금 이라크에서 OIL(Operation Iraqi Liberation)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는데, BVB(son of Bush Vs son of Bitch) 결투라고.

사티아 : 이건 BBB(Bitch Behind Bush)가 더 옳겠는데

록스 : 아무튼, 문제는 사담의 슬픈 전설인데, 그가 1천만달러를 들여 사병을 기르는 바람에 돈이란 게 결국 바나나 노트라는 말이지.(바나나 노트-금 비축 없이 화폐를 발행한 일본 전시내각을 바나나 조각에 비유한 말)

사티아 : 뭐, 1천만달러

록스 : 그래, 전투비용으로!

사티아 : 그렇게 바나나 노트로 전쟁을 준비했다면, 진짜 돈은 어디다

록스 : 사티아, 정말 몇 발짝 앞서가는군요! 암튼, 그 돈을 뻔쩍이는 병영에 처바르고 말았다는 뜻이지.

공중전화부스에 미국인 집어넣는 법

타우픽 : 록스, 바나나 노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는데, 사이가 요즘 보통이 아니라지 에서 전황보도를 하면서 느닷없이 ‘Our army’라는 말을 사용하자 에서는 ‘Their army…’라고 맞받아쳤다고. 그러자 미국인들이 를 Baghdad Broadcasting Cooperation이라고 하며 분노하고 있다던데

록스 : 헤헤, 그래 그러면, 어떻게 공중전화부스에 미국인 30명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타우픽 : 그냥 다 들어갈 때까지 구겨넣으면 되지.

록스 : 간단해. 전화 부스에 기름이다! 한마디면 끝이야. 그러면 어떻게 프랑스인 30명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이것도 간단해. 전화부스는 이라크가 아니야! 끝.

사티아 : 프랑스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멋진 연설을 했는데, 아무도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했으니.

록스 : 반전운동가들 30명은 어떻게 이건 더 간단. 아메리카 대사관이다!

타우픽 : 농담이 아니라 반전운동가들이 바깥에서만 소리만 칠 게 아니라, 미국 대사관 안으로도 좀 들어가고 하면 좋겠는데.

사티아 : 그러면, 싱가포르인 30명을 어떻게 전화부스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록스 : 뒤통수치기구먼.

타우픽 : 어렵게 전화부스 들어간 이들을 뭐 하러 끌어내. 그냥 두지.

사티아 : 미스터 리(리콴유 전 총리)가 온다. 좀 시원찮지 방금 록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어내다 보니….

록스 : 아냐, 진짜 멋있는 반격이야! 참, 록스, 미국에서 요즘 부시 입지는 어때

록스 : 부시(bush), 음, 미국인들이 여성 신체 은밀한 곳을 가리키는 속어인데…. 레즈비언들이 부시를 반대하고 있어. 어제 한쌍이 이런 구호를 들고나왔어. LESBIANS AGAINST BUSH.

유니스 : 그럼, 오늘 참가 선수들은 모두 반전쪽이겠지

사티아 : 난 아냐. 난 이라크 순교자들을 지원하는 쪽이야.

타우픽 : 난 선별적 반전이야. 일테면, 잠자리전쟁(bed war) 같은 경우엔 호전쪽이고.

사티아 : 그럼, 타우픽 넌 배속기자(embedded journalist) 같은 쪽이 좋겠는데.

타우픽 : 왜

사티아 : 요즘 TV에서 보는 것처럼, 전쟁 좋아하는 수많은 기자들이 미군 해병대에 배속돼 전쟁 취재를 하고 있잖은가

타우픽 : 유니스, 영어에 이런 표현은 없나 Embedded journalist말고 Inbedded journalist 같은

사티아 : 타우픽, Embedded란 미군이 전쟁 작전지역에 기자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미군과 기자들이 in bed 하는 거니, 사실은 그게 그거야.

근데 이라크 아이들은 왜 죽여

타우픽 : 나도, 그 정도는 알지! 영어가 딸려서 문제지, 나도 명색이 기자야!

유니스 : 자, 화제를 다시 부시쪽으로 돌립시다. 미국이 부득부득 전쟁을 하는 배경이 뭘까, 생각해본 적 있나요

록스 : 어떤 편집증 같은 것 아닐까 그게 기름이든 안보문제든.

사티아 : 한번 봐. 미국 솔로가 아니라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끼어들었어. 이건 앵글로색슨 삼중창이야. 긴 역사와 전통, 그 앵글로색슨의 무력숭배사로 설명할 수 있지 않겠어. 세상을 모두 자기들 뜻대로 자기들 발 아래 두고 모든 걸 챙기겠다는 버릇 같은.

록스 : 그렇게 유형화시켜버릴 수는 없을 듯싶고, 현실적으로 내 생각은 90년대 초 걸프전 연장인데. 미국 내부 안전 확보를 위해 잠재적 위협세력들을 모두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편집증과 9.11 공격을 함께 놓고 보면 이해할 만도 하지 않겠어

사티아 : 사담만 없앤다면 그래도 좋다 이거야. 이것도 사실은 말같잖은 말이지만, 아무튼. 근데, 이라크 아이들은 왜 죽여 미국 안보와 이라크 아이들이 무슨 관계가 있어

록스 : 정치판 현실주의자들에게는 미국을 위해 이라크 아이들 희생이 필요하다는 의미겠지

사티아 : 이번 전쟁을 통해 앵글로색슨은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유엔도 법도 동맹도 필요 없다는. 오직 무력만 존재하고 무력만이 정의라는.

록스 : 사실 유엔은 한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 행위에 간섭할 권리가 없어. 싫든 좋든, 전쟁도 독립국가의 한 권리에 해당한다고 보면, 미국 입장에서는 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니겠어

사티아 : 어떤 기준에서

록스 : 물론 부시가 이번 개전을 놓고 나를 설득하지는 못했어.

사티아 : 모든 국제법을 어겼는데도

록스 : 그건 미국 아닌 입장에서 보는 눈길이야. 미국 입장에서 보면 사담이 실질적으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데.

유니스 : 록스, 1차 대전 때도 독일이 스스로 침략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걸 기억해봐. 독일과 미국 경우가 왜 달라야 하지

록스 : 이렇게 보자. 너희 발을 뉴욕에 담가보자는 건데, 어느 날 갑자기 테러리스트로부터 공격을 받았잖아. 그로부터 모든 게 변했지. 너희 나라는 안전할까

사티아 : 그건 너무 헐렁한 신발이라, 썩 좋은 방식은 아닌데!

록스 : 아랍세계가 너를 미워한다고 생각해봤어

타우픽 : 그래서 너는 가서 좀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건가

전쟁 대신 섹스를!

록스 : 사담과 나는 좋은 친구가 아니야. 그이는 화학무기를 갖고 있는 사나이야.

타우픽 : 미국은 어때

록스 : 가능성을 보자는 거지. 같은 화학무기라도 누구 손에 있느냐에 따른….

사티아 : 그건 한줌 이데올로기고, 세뇌고.

록스 : 대량살상무기라는 사안이 유엔 무기조사단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잖아. 사담은 사티아나 타우픽이 찾아내지 못할 곳에 그걸 감추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 100% 장담할 수 없다면, 위험성은 100% 있다는 뜻이야!

사티아 : 염려 마! 대량살상무기는 인류 역사상 미국만이 사용했을 뿐이야. 지금도 최대 생산국가고. 베트남 전쟁이 뭐겠어. 하노이에 한판 더 퍼붓지 그래

록스 : 바보같이 굴지 마! 그건 역사일 뿐이야.

사티아 : 북베트남은 결코 뉴욕에 테러를 가한 적이 없잖아

록스 : 미국을 옹호하자는 게 아냐! 전쟁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군사적 계산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따져볼 뿐이야.

사티아 : 오, 멋져! 그 부자가 되겠다는 편집증!

유니스 : 이러다, 진짜 싸우겠네들! 이쯤하자. 이젠 반전운동이 주류문화로 자리잡았는데, 요즘 본 슬로건 가운데 깜찍한 것들 좀 없어

사티아 : 모든 부시 뒤에는 테러리스트가…. 전쟁 대신 차를 끓이자! 압권이 있어. 부시(여성 음부 비유)를 줄이자면 더 많은 나무를 심자.

록스 : 난 마음에 드는 걸 아직 못 봤어.

타우픽 : 인도네시아판은 “전쟁 대신 섹스를!”이었어.

록스 : 주여,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그리고 록스가 방에서 사라졌다).

유니스 : 록스가 가스 마스크를 구입하러 간 모양인데.

사티아 : 아, 록스가 이렇게 사라질 줄 알았다면 한명 더 모셔놓는 건데.

유니스 : 이 사내들이 정말, 그렇게 공격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으실 건가

(록스, 다시 등장)

록스 : 컴백! 내 욕들 했지

유니스 : 아냐, 모두들 록시가 예쁘다고 칭찬만.

록스 : 얼굴도 본적 없는데 무슨 방금 뉴스를 잠시 봤는데, 왜 그렇게 난리들이야. 이라크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9·11 뉴욕 테러와 비교해!

타우픽 : 이 세상이 모두 9·11을 놓고 그만큼 울고불고 떠들썩했는데도

사티아 : 미국이 베트남에서 죽인 300만명, 캄보디아에서 죽인 80만명 같은 생명에 대해서는 왜 침묵해야 할까

록스 : 미국인을 체포하자! 이제 속이 시원해

코피 아난을 동물원으로

타우픽 : 체포하기 전에 한판 웃고 가자. 푸틴 왈 “우리가 최초로 우주공간에 나섰다.” 부시 왈 “우리가 최초로 달에 내렸다.” 듣고 있던 사담 왈 “우리가 최초로 태양에 내릴걸.” 흥분한 부시 왈 “이 새끼, 웃기지 마. 태양에 내리기도 전에 타 죽어!” 다시 사담 왈 “흥분 마. 그쯤은 우리도 알아. 그래서 밤에 내릴 거야!” 격노한 부시, 결국 대이라크 공격 개시.

사티아 : 그거 압권이다!

록스 : 타우픽, 사랑해요!

유니스 : 자, 정리할 시간이다. 모두 귀한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전쟁 끝나면 한번 더 만나 최종판을 만들어보기로 약속하자.

록스 : 또 만나자고 아휴, 징그러워. 암튼 인사 대신 나도 한 소절 웃기고 사라질게. 제이 리노라는 유명한 코미디언 왈. “이라크 전쟁을 하러 가는 부시 대통령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던데 이 전쟁이 오일을 위한 게 결코 아니다. 다만 가솔린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사티아 : 록스가 더 골때리는구먼!

타우픽 : 부시만 때렸는데, 난 작별인사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걸고 넘어질게. 코피 아난을 동물원으로! 이 사람도 별종 가운데 별종이야.

록스 : 하하하. 타우픽, 그 동물원 갈 거야

타우픽 :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안내판이 있는 한

사티아 : 록스, 오늘 잡담 너무 가슴에 새기지 마! 가슴에서 나온 말들이 아니니. 타우픽은 건강 조심하고, 그 챔피언 자리 잘 지키도록 해!

유니스 : 지금은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 그 적들을 넘어설 날이 올 거야. 모두 잘자!

타우픽 : 유니스가 마치 볼리우드(인도의 봄베이 영화산업을 가리키는 말) 영화 같은 인사를 하네. 모두 건강하고 입조심하고!

록스 : 동물원 갈 때 함께 가자. 좋은 아침, 난 일어날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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