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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시는 미국 용병이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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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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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국 참전 논란을 지켜보는 베트남 사람들의 분노와 실망

사진/ 세계 각국의 반전시위를 크게 다룬 베트남 주요 일간지들. 베트남 정부가 직접 나서 반전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하재홍)

<한겨레21> 독자들의 성금으로 한-베 평화공원이 들어서 있는 푸옌성 뚜이호아현 호아히엡사를 1999년 6월에 양민학살 현장조사차 방문했을 때, 한 생존자가 우리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 말이 요즘 며칠째 하염없는 메아리로 되살아나 귓전을 울리고 있다.

학살 피해자의 당부


짙은 한숨 같은 담배연기 너머로 좀전까지 학살을 증언하던 응웬 탄 쯩(54·<한겨레21> 273호 46쪽 참조)은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자네들을 원망하는 건 아니야”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며 30년 동안 묶여 있는 질문의 매듭 하나를 조심스레 풀었다. “아저씨, 한국 사람이 많이 미우시죠 한국 정부와 한국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다 지난 일이야. 이젠 다 잊었어. 사실 따지고 보면 따이한군도 불쌍한 사람들이야. 죄는 모두 미국에게 있지. 얼마나 나라가 어려웠으면 미국이 시키는 대로 용병을 했겠어. 우리에겐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중요해. 앞으로 다시는, 다시는 말이야. 미국을 따라 다른 나라 용병으로 가서 그 나라 사람 죽이는 일은 하지 마. 또 그러면 난 정말 한국 사람들을 미워할 거야.”

응웬 탄 쯩은 한국군이 쏜 총에 맞아 왼쪽 넷째손가락 두 마디와 새끼손가락 세 마디, 오른발 넷째·다섯째 발가락 전부를 잃었음에도 한국보다는 미국을 탓했다. 그는 미국에 대해선 여전히 증오심을 갖고 있노라고, 그 이유는 미국이 과거나 현재에도 끊임없이 곳곳에서 전쟁을 일삼으며 전 세계를 자기들 마음대로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1978년에 미국인들이 미군 유해를 찾겠다고 마을을 찾아왔을 때도 유해를 찾아주면 그들이 많은 돈을 주겠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꼴보기 싫어 멀리 친척집에 가 있었노라고 강단 있는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2003년 3월20일.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국은 이라크에 폭격을 퍼부으며 또 한번의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희망어린 당부처럼 한국이 미국을 따라나설지 않을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라크전 발발과 더불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대이라크전 지지를 표명하고, 국회에 파병안 비준을 요청했다는 소식은 당일 저녁 베트남 뉴스에 곧바로 보도되었다. 보도를 접한 베트남 사람들은, 아시아 강대국인 한국이 왜 여전히 미국의 속국 노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아래 건치) 소속 ‘베트남 평화의료연대’를 따라 지난 3년간 베트남 중부 꽝아이성에서 통역원으로 일한 응웬 탄 민(가명·26·회사원)은 “나중에 이라크로 건치 선생님들이 이라크 평화의료연대를 만들어 또 진료활동 가야겠네요. 이라크 전쟁 끝나면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건데 북한하고 싸우고 나서도 북한 평화의료연대를 조직할 건가요”라며 우회적으로 한국 정부의 정책적 모순을 비판했다.

30년 만의 반전시위

사진/ “미국을 따라 용병이 되면 정말 한국 사람들을 미워할 거야.”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는 응웬 탄 쯩(왼쪽). (구수정)
올 들어 <뚜오이쩨>(젊은이), <응어이 라오동>(노동자), <사이공 자이퐁>(사이공 해방), <탄니엔>(청년), <공안>(경찰), <안닌테저이>(세계안녕) 등 베트남 주요 일간지들은 세계 각국의 반전평화시위를 주요 외신 톱뉴스로 다뤄왔다. 조용한 가운데 세계의 반전여론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호흡을 가다듬던 베트남 사람들은, 급기야 3월15일 하노이를 필두로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베트남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각급 산하단체와 조직, 각급 학교에 반전 캠페인을 조직하자 기다렸다는 듯 도시마다 수천명의 반전시위 물결이 일렁였다. 실로 30여년 만의 반전·반미 시위 풍경이다. 반전시위에 참여한 팜 투 응웬 자 학생은 사이공넷 인터넷 사이트(www.vnn.vn) 3월25일치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전쟁이 일어나서 나는 너무 슬프다.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파괴행위에 대해 나는 뭐라고 형용할 수조차 없다. 그 무기들은 베트남 전쟁 때 사용된 무기들보다 몇십배, 몇백배 강력한 무기라지 않는가…. 나는 미국과 영국이라는 나라가 유엔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그렇게 자기들 마음대로 불합리한 일을 자행하는가. 우리가 부시와 블레어에게 투항한다면 어찌되는가. 만약 미국이나 영국이 누군가를 싫어해서 그 나라를 때려부순다면 우린 어찌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그저 침묵하고만 있다면 죽어도 싼 인간들이라고 그들에게 무시당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 인류의 희망과 더불어 용감하게 평화의 대열에 나서야 한다. 지구가 영원토록 푸르름을 간직할 수 있도록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 인류가 단결한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전쟁 개시 이후 주요 일간지들이 이라크발 소식을 연일 계속 1면 톱이나 1면 하단 뉴스로 비중 있게 다루듯 베트남 사람들 대부분도 이라크 전쟁에 대해 마치 자신의 일인 듯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치민대 응웬 반 껫 교수(54·컴퓨터정보학)는 저녁까지 계속 강의가 있음에도 새벽 두세시까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어·중국어 방송화면을 보다가 잠을 청할 정도다.

사진/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미국 영사관.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다. (하재홍)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의 작가 반레는 요즘 마음이 불안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그는 3월25일 한국 문인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문학계 203인 행진’ 집회를 열었을 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안절부절못하는 불안한 내 마음은 며칠째 이라크 땅에 가 있다. 미국은 언제나 전쟁의 행진을 멈출 것인지 그저 착잡할 따름이다. 전쟁은 인류 최악의 범죄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경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구할 수 있지만, 사람의 생명과 문화는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는다. 무고한 인민의 목숨을 빼앗고, 세계 인류의 문화유산이 산재한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미국은 어떤 논리로도 자신의 죄를 감출 수 없다. 비록 체제의 성격이 다를지언정, 포성 속에서 울분을 삼키던 내 청춘의 나날과 베트남의 지난날이 그곳 이라크에 고스란히 있다. 나는 인류의 힘, 그리고 이라크 국민의 힘을 믿는다. 눈앞에 보이는 미·영 연합군의 무력이 아무리 강대할지라도 자유와 독립의 정신으로 단결한다면 부당한 침략군을 몰아내고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전 세계 모든 인류가 이라크 인민과 합심해 21세기를 평화의 세기로 열어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향배는 시민의 손에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한 1964년의 한국 사회와 2003년의 한국 사회는 거의 40년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있다. 명분이 없다며 영국조차 형식상 의장대 3명만 파견한 베트남 전쟁에, 세계여론이 어떤지 까마득히 모르는 가난한 농촌 총각들은 그저 대통령의 말만 믿고 보릿고개를 넘고자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서방 선진국들보다 발빠르게, 인터넷을 통해 세계 전역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파병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대통령과 토론을 당당히 요청할 정도가 되었다. 베트남 양민학살 생존자 응웬 탄 쯩의 당부가 희망처럼 이루어질 것인가. 향배는 시민 손에 달렸다.

호치민=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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