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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글’이 너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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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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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게 빗나간 미·영의 단기전 전략… 바그다드 시가전 시작되면 거대한 저항에 부딪힐 듯

사진/ 포연에 싸인 바그다드. 최근 미군은 낮에도 폭격을 가해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낳고 있다. (GAMMA)
요즘 다섯살배기 아들 하언이는 뉴스에 가득 넘쳐나는 전쟁 보도를 곁눈으로 바라보며 기도한다. “하나님! 전쟁이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사람들이 아파해요.” 그런 동심과는 무관하게 어른들의 탐욕이 부른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바그다드 시가전이 코앞에 닥쳤다. 기선을 제압하려는 미·영 침략군은 이제 낮에도 바그다드 인근에 공습을 강화하고 있다. 민간인 지역에 대한 공습이 잦아지면서 희생자가 늘어만 간다. 바그다드로 가는 길목에는 아직도 이라크군의 저항이 치열하다. 그동안 보여준 이라크군과 민간인들의 저항은 이번 전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들을 드러냈다.

민중봉기의 기대는 부서지고…

보급선이 길어진 침략군은 이라크군의 게릴라전식 기습공격에 당혹해하고 있다. 급기야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작전 사령탑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조차 장기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전쟁이 길어지고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그다드 시가전 양상을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막강한 화력 앞에서도 수그러들지 않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인티파다는 그 밑그림을 보여준다. 미국은 다시금 새로운 정글 바그다드 미로에 갇힐지 모른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부시 미 대통령이 열어젖힌 이라크 전쟁의 판도라 상자는 많은 당혹감과 공포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미·영 침략군을 당혹하게 하는 일들은 많다. 예상한 민중봉기는 일어나지 않고 연합군에 맞서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그 가운데 하나다. 미·영 언론은 3월25일 이후 남부 바스라에서 이라크인들의 반후세인 민중봉기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이 같은 사실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알자지라> 등 아랍 언론들에 의해 즉각 부정되었다. 얼마 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언론에서 사라져버렸다. 개전 전부터 미국이 줄기차게 주장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침략군은 아무 증거를 찾지도 못했고 제거하지도 못했다. 전쟁만 터지면 반후세인 전선에 가담할 것이라던 이라크 군장성들이나 집권 바트당 지도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 장성이나 집권 바트당 지도자들에 대한 항복 회유 노력을 줄이고 있다.

이제까지 침략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 지역들 대부분이 반후세인 정서가 강하다는 시아파 밀집지역들이다. 지금도 교전 중인 나자프나 카르발라가 이라크 내의 대표적인 이슬람 시아파의 성지지만 이곳에서도 시아파의 반후세인 정서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침략군이 이라크 국민의 정서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라크 국민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 땅을 위해 총을 들려 한다. 후세인에 대한 충성이 항전의 이유는 아니다. 이제 바그다드 시가전을 앞두고 다시금 침략군은 민중봉기를 기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민중봉기보다 이라크인들의 저항과 반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스라 출신 무함마드는 “시아파라고 하여 반후세인 정서는 아니다. 바그다드 시가전은 적지 않은 민간인들의 저항으로 이어질 것이다”며 전쟁이 장기화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또 하나의 변수, 자살공격

사진/ 이라크 남부 모래폭풍 속에 이동 중인 미군. 악천후는 이번 전쟁의 ‘속도’를 늦춘 최대 변수였다. (GAMMA)
바그다드 시가전의 변수 중 하나는 자살공격이다. 지난 3월29일 발생한 나자프에서의 자살공격이 그 시작을 알렸다. 바그다드에서 약 150m 떨어진 이라크 중부 나자프에서 이라크 하사관 자파르가 택시를 이용해 자살공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4명이 사망했다. 침략군에 저항해 자살공격이 이어질 것은 이미 개전 전부터 주지된 사실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자살공격을 결의한 1500여명의 아랍인들이 이라크에서의 대미항전 결의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라크 하사관의 자살공격 직후 타하 야신 라마단 이라크 부통령은 “순교를 각오한 무슬림 지원자들이 이라크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 그 수가 4천명에 달한다”고 이라크 TV를 통해 밝혔다.

오비이락일까, 아니면 새로운 이라크인들의 저항의 서막일까 3월30일 쿠웨이트 북부 미군기지에서는 정체불명의 트럭이 미군 병사를 향해 돌진해 15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살공격은 이번 전쟁이 종교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주목된다. “우리 땅을 침략한 미국과 영국을 무찌르기 위해 바그다드로 향한다.” 사헤르는 지난 3월28일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바그다드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암만과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터미널 무잠마 바그다드에서도 연일 성전을 주장하며 바그다드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있다.

두 번째 변수는 미·영군의 안전을 위해 교전 규칙을 완화하게 될 때 발생할 민간인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바그다드는 평지에 세워져서, 고층건물도 별로 없는 500만명이 사는 도시다. 고가도로와 넓게 뚫린 대로를 통해 어느 지역이나 쉽게 연결된다. 마치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를 연상시키는 탁 트인 평지 위로 아기자기한 단층 건물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런 바그다드의 어느 골목, 어느 건물 옥상, 커튼 처진 어느 집 창문 틈에서 미·영군을 향한 공격이 감행될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적들을 상대로 한 지루한 싸움이 시작될 수 있다. 미로를 따라 민간인과 정부군의 저항이 늘어나면 침략군은 미로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자칫 ‘움직이면 발포한다’는 식으로 교전 규칙이 적용되면 민간인 사상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모든 집과 건물을 수색하고 의심가는 모든 장정들을 체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낮에는 미국 성조기가 휘날리고 밤에는 후세인 기가 나부낄 수 있는 일이다. 지금도 <알자지라> 등의 아랍 뉴스 방송에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의 처참한 모습들을 여과 없이 방송하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갈수록 미국 내 반전여론도 증폭될 것이기에 미군 당국으로서는 자충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침략군은 바그다드를 장악하는 데 실패하고 바그다드 고립작전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미 선보이고 있듯 봉쇄작전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군은 새로운 전략 개념을 말하지만,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를 정글로 묘사하고 있다. 정글은 방어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요새지만 공격하는 편에서는 미궁에 빠져들게 하는 수렁이고 밀림이다.

개전 이후 미·영 당국은 이라크 국민의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한 반면 이라크군의 항복 가능성은 과대 평가했다. 여기에 기상악화로 고전했다. 아직도 미군은 승기가 굳어지면 이라크 민중들의 반후세인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체념을 할지언정 저항의 총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인 만큼, 미·영군도 침략자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라크인들의 정서는 바그다드 시가전 양상이 이제까지 상황보다 더 큰 장애물들로 가득할 것임을 보여준다.

내부 비판에 직면한 부시

사진/ 미국은 이라크 남부에서 후세인에 대항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아랍 언론들은 모두 이를 반박하고 있다. 바그다드 공격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GAMMA)
결국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부시 행정부는 국민의 들끓는 반전여론을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이미 미군 군 수뇌부의 전략적 실수와 오판을 질타하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이겨도 지는 전쟁이 될 것으로 지역 전문가들은 본다. 부시는 이미 바그다드 정글에 갇히기 시작했다. 중·남부 보급로 강화 필요 등으로 대규모 병력을 추가 지원받고서야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바그다드 함락작전. 월남전의 악몽이 재연되기를 바라지 않는 미국민의 민심과 거세지는 반전여론은 부시 행정부에게 사막의 모래폭풍마냥 다가서고 있는지 모른다.

전쟁의 포연이 사라진 뒤 맑은 하늘 아래서 웃고 싶은 이들의 고통스런 얼굴들이 오늘도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히 비친다. “연합군이 지금껏 부딪혔던 저항도 매우 강력했지만 앞으로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날들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럼즈펠드의 고민스런 말조차 모든 것을 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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