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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에도 선박주는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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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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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명의 생명 빼앗은 사미스호 침몰 사고… 재벌 선박주는 직원 실수만 강조하며 발뺌

(사진/사미스호 참사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권력자인 선박주들의 무책임함을 보여주었다.희생자들의 주검을 옮기는 구조대원들)
지난주 <그리스TV>에 방영된 생존자들의 증언은 그리스 사람들의 가슴을 메이게 만들었다. “물에서 허우적대는 중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아기는 가까스로 구해냈다. 하지만 아기엄마는 물 속에 잠겼다”면서 아기엄마를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전하는 조지 키울라피스, “신발을 신고 파자마를 입은 상태에서 헤엄을 치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질렀다. 갑자기 내 발을 누가 물 속에서 잡아당겼다. 수영을 잘 못하니 발을 놓으라고 사정했다. 이후 나뭇조각을 발견하고서는 그 위에 몸을 실었다”고 생존을 위해 한 시간 이상을 물 속에서 버틴 에피 히우, “타이태닉을 연상했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여학생…. 많은 생존자들이 지금까지도 그리스 신문지면을 채우면서 그날의 참사를 증언하고 있다.

선장과 일등항해사는 어디로 갔나

지난 9월26일, 아테네 피레오스와 파로스를 오가던 4400t의 대형페리선 사미스가 파로스를 3km 앞두고 암초에 충돌해 침몰했다. 이 사고로 80명 이상의 승객이 숨졌으며, 실종자들의 주검 수색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사망자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538명의 승객을 태운 이 배는 1966년에 건조돼 무려 32년이나 바다를 누벼왔다. 프랑스 선박회사 소유로 지난 1986년 이후로는 ‘골든버지나’란 이름으로 에게해를 운항해오다가 올해 초 그리스 선박회사인 미노안라인에 팔리면서 ‘사미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해에 1천만명의 여행객들이 선박을 이용하는 그리스는 410척의 거대한 페리선들이 에게해를 채우고 있다. 배의 나라인 그리스는 대선박주들이 모두 세계적인 부호이며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했던 오나시스도 그리스의 선박주였다. 그리스라는 나라는 이들 선박주들이 움직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고 당시 사미스호의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은 선장이나 항해사가 아니라 올해 겨우 항해과를 졸업한 22살의 수습생이었다. 현재 선장과 일등항해사는 살인죄로 구속된 상태이다. 선장 바실리스 야나키스(53)는 법정진술에서 당시 “몸이 좋지 않아서 선실로 내려가 잠이 들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또한 승객들은 일등항해사 아나스타시오스 시코기오스가 키를 수습생에게 맡겨둔 채 라운지에서 매력적인 여승객과 노닥거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는 라운지에서 TV로 생중계되던 유럽축구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햇병아리 수습항해사 요르고스 파틸라스(22)는 “당시 바위를 갑자기 발견하고 키를 왼쪽으로 급하게 돌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고 진술했다. 기관실에서 일하던 디미트리스는 “선체가 마치 종이처럼 갈라졌으며 자동으로 닫혔어야 할 이중문이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선박회사인 미노안라인의 대표 피타고라스 나고스는 사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배는 절대적으로 안전했으며 사고는 선원들의 실수로 빚어진 것임을 애써 강조했다. 대형참사가 빚어졌을 때는 선박주가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서는 게 통례인 외국과는 달리 그리스는 선박주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된 지 오래다. 32년이나 사용된 고물배를 헐값에 사들여 운항하면서도 전혀 안전도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더구나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에는 이 배에 안전문제를 지적한 한 기관사가 해고됐다. 유럽연합의 안전기준은 페리선의 운항연한을 27년으로 정해 그 이후에는 사용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1998년 그리스 정부는 선박주들의 압력에 못이겨 선박현대화기금적립을 명목으로 오래된 배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었다.

“배타기 두려워 고향에 못 간다”

사고가 난 뒤 그리스 정부에서는 사고의 위험성이 있는 60척의 페리선과 승객선 70척의 운항을 중지했다. 또한 선원들에 대한 교육도 종전의 일주일에 한 차례씩에서 매번 출항시와 입항시에 실시하도록 했다. 지금 그리스 의회에서는 페리참사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페리선을 직접 이용해야 하는 국민들에게는 이 사고가 엄청난 심리적 공포로 작용하고 있다. 5년 이상을 오나시스 밑에서 일했다는 야니스(57)는 “정치공방은 선박주들의 이익을 위한 공방이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잠시 떠들썩하다가 그냥 넘어갈 것이며 오직 사망자들의 친지들만이 힘들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난 1966년 180명의 생명을 빼앗아간 ‘헤라클리온’ 참사 이후 두 번째 대형참사로 기록될 ‘사미스호 참사’는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했던 에게해를 다시 한번 두려움의 존재로 떠오르게 하고 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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